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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구/수원/청주/마산/전주] 천사들과 함께 주님께 영광을
조회수 | 2,099
작성일 | 08.10.14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평화방송 가족 여러분! 오늘은 천사들, 그 중에서도 특히 성서에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 세 분의 대천사를 공경하는 날입니다. 성 미카엘 대천사와 성 가브리엘 대천사, 그리고 성 라파엘 대천사, 이 세 분입니다. 우선 이 대천사들의 이름이 나오는 성서의 대목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가브리엘 대천사부터 보겠습니다. 7 대천사 중의 한 분인 이 분의 이름,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니는 말마디인데, 성서에서는 모두 3곳에서 나타납니다. (1)처음 나오는 곳은 구약성서인 다니엘서 8,15-9,27까지의 대목입니다. 환시를 보면서 그 뜻을 몰라 애쓰고 있는 다니엘 예언자에게,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서 그 환시의 의미를 깨우쳐 줍니다. 그리고는 장차 언제쯤 메시아가 오실 것이며, 그 분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 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2)그 다음으로는 신약성서 루가 복음 1,11-21까지에 걸쳐 나타납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제 즈가리야가 비록 늙은 나이이지만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으로 정하라고 일러주는 대목입니다. (3)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루가 복음 1,26-38까지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 예고 장면입니다. 나자렛에 살고 있는 한 시골처녀인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장차 그리스도를 잉태하여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라파엘 대천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지요. 라파엘!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이 명시된 성서는 구약의 토비트서가 유일합니다. 토비트와 그의 아들 토비아는 포로로 잡혀가서 아시리아의 니느웨에서 귀양살이를 하지만, 하느님께 충실하면서 의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멀게된 토비트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해주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여행을 떠난 아들 토비아를 지켜주고, 그의 아내가 된 사라를 치유해주었습니다. 이 토비트서 12,11-15까지 보면, 라파엘 대천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대천사는 우리 인간을 수호하고, 우리 인간의 사정을 하느님께 전하고, 하느님 앞에 머물면서 그 분의 시중을 드는 7 천사 중의 하나라고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신약성서인 요한 복음 5,1-4까지 보면,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 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다”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물을 휘젓는 주님의 천사가 바로 라파엘 대천사라는 믿음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서에 묘사된 라파엘 대천사의 모습을 통해서, 교회는 그 분을 치유하는 사람의 수호자, 맹인의 수호자, 그리고 모든 여행자의 수호자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미카엘 대천사가 등장하는 부분을 찾아보겠습니다. 미카엘이라는 이름처럼 “하느님처럼 구는 자가 누구냐?”하고 소리치면서, 악마의 무리를 모조리 지옥으로 쫓아내고, 악마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해주는 분입니다. 구약성서 다니엘서 10,1-21에는, 다니엘에게 힘을 북돋워주고 유다를 침공하는 나라에 맞서 싸울 때 지켜주고 있습니다. 같은 다니엘서 12,1에서도 다니엘과 그 겨레가 일찍이 없었던 어려운 때를 당할 때 그들을 지켜주면서 슬기로운 지도자들이 밝은 하늘처럼 빛나게 하겠노라고 다짐합니다. 신약성서인 유다의 편지 1,9에서도 모세의 시신을 악마로부터 지키는 미카엘 대천사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고, 묵시록 12,7-9에는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던 늙은 뱀인 큰 용을 미카엘 대천사가 격퇴시킴으로써 하늘나라를 수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9월 29일은 원래 미카엘 대천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로마에 건축한 성 미카엘 대성당을 봉헌한 날인데, 교회는 바로 이 날 세 분의 대천사를 함께 기리면서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성서에 나타나는 가브리엘 대천사, 라파엘 대천사, 그리고 미카엘 대천사는 항상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힘을 줍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우리 인간 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늘 지켜보면서 전달해 줍니다.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며 이 현세를 걸어가는 나그네 인생인 우리 곁에 머물면서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사들의 보호를 받아 언제나 구원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주 하느님, 천사들과 사람들을 부르시어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니, 하늘에서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뵈오며 주님을 섬기는 천사들을 보내 주시어, 세상에 사는 저희를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소서. 저희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기리며 천사들과 함께 노래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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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김정호 베네딕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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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마주 대하는 세상

요한이 보도하는 제자들의 소명사화는 공관복음의 그것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첫 제자는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였다.(1,35-40) 두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두고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한 것에 힘입어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 두 사람 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이나, 다른 하나는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아마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으로 추정된다. 요한복음에서 특이한 점은 한 제자가 다른 제자의 소명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안드레아가 자기 형 시몬을 예수께 인도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께 인도한다.(1,41.45) 나타나엘은 공관복음의 바르톨로메오와 같은 인물로 추정된다.

나타나엘은 예수께 가기 전에 필립보를 만났다. 필립보는 그에게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이 기록한 메시아이며 요셉의 아들로서 나자렛 출신의 예수를 만났다고 증언한다. 예수께서 나자렛 출신이라는 말에 나타나엘은 다소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곧바로 예수님을 만나서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후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한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의 메시아 고백을 인정하고, 그가 지금까지 체험한 것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 더 큰 일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장차 드러내실 자신의 영광과 하늘나라에 관한 표징과 기적이다. 오늘 복음의 말로 표현하자면, 하늘이 열려있고, 하느님께서 계신 하늘과 땅에 내려온 사람의 아들 사이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왕래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케 한다.(창세 28,10-17)

결국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느님의 천사들을 나타나엘이 스스로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천사들은 하느님을 보필하는 영적인 존재이므로 비가시적(非可視的)이다. 물론 천사들도 하느님께서 특별히 허락한 사람과 경우, 즉 토비아, 즈가리야, 마리아, 다니엘과 요한의 환시, 요셉과 동방박사들의 꿈속에서와 같이 가시적(可視的) 형상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천사들은 비가시적인 모습으로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 사이의 중개역할을 담당한다. 이것은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이 땅에 현존하심을 말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세상은 열린 하늘과 마주 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예수님의 도래와 강생으로 인간세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을 의미한다.

박상대 신부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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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제 4차 라테라노 공의회와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앙교리로 선언하였지만, 천사들에 대한 여러 학설에 대하여 어떠한 유권적인 결정을 내린 일이 없습니다. 다만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의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학설에 따르면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적인 존재로서 '천사'라는 말은 직책의 이름이지 본성의 이름은 아니며, 천사는 그 존재 전체가 하느님의 봉사자이며 전령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존재로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파견되어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을 도와주고,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사람을 처벌하기도 합니다. 또 그들은 하느님을 모시는 신하요 군대로 인식되었으며 때로는 하느님의 발현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였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천사는 하느님의 사신으로서 인간에게 파견되고, 꿈에 나타나고, 흰옷을 입은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창조된 영적인 존재이며 하느님의 군대이며,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도들에게 봉사하고, 어린이들을 보호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천사세계의 중심이시며 천사들은 그분에게 속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속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을 당신의 구원계획을 알리는 전령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천사들은 더욱 그분께 속한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은 창조 때부터 구원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 구원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알리고, 이 구원 계획의 실현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구약에서 천사들은 인류의 선조들이 타락하여 낙원에서 쫓겨났을 때 지상낙원의 문을 닫았으며, 소돔의 멸망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호하였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과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을 구하였으며, 하느님의 명령으로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하였으며, 율법을 전해주는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40년간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으며, 판관 기드온에게 그의 소명을 알려주었고, 판관 삼손의 탄생을 알렸으며, 예언자 엘리야와 이사야를 도와주었습니다.

신약에서 천사들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으며, 어린 예수님을 보호하였으며, 40일간 사막에서 단식하며 기도하신 예수님께 봉사하였으며, 번민에 싸여 겟쎄마니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용기를 북돋아 드렸습니다. 결국 천사들은 하느님의 사신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중요한 일을 하실 때마다 천사들을 보내셔서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대천사 3명도 각기 고유한 임무를 가지고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먼저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 같으냐?'라는 뜻으로 주 임무는 하느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악마를 쫓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은 강하시다.',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으로 주 임무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신의 역할입니다. 성서에는 가브리엘 대천사에 관한 내용이 3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다니 9, 21-27에서 구약시대에 다니엘 예언자에게 나타나 장차 메시아가 오실 것을 전했습니다. 두 번째는 루가 1, 11-19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도록 보낸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의 부친 즈가리야에게 예고했습니다. 세 번째는 루가 1, 30-33에서 마리아에게 파견되어 성령의 잉태하심으로 구세주를 낳을 것임을 알렸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께서 치유해 주셨다.', '하느님의 묘약', '하느님의 의사'라는 뜻으로 위협과 악마의 손에서 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토비트 3, 17에서 라파엘 대천사는 구약시대의 의인 토비야의 아들 소 토비야가 무사히 긴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래서 라파엘 대천사는 여행자들의 수호천사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오늘 축일을 지내는 대천사들까지도 인간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천사들도 빼앗아 갈 수 없을 만큼 크십니다.

오늘 하루 천사들까지 동원하여 인간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느껴 보는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김주현 신부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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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데려 오는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을 먼저 본 사람이 필립보이고
또 그 예수님의 참 가치를 먼저 알아 보고
그것을 나타나엘에게 전해준 사람이 필립보인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필립보에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고
나타나엘과는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신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먼저 오고 알아보았던 필립보에게는
의미심장한 말씀 같은 걸 안하시고
나중에 온 나타나엘에게만 말씀을 거셨을까...

요한 복음을 보면 이런 비슷한 경우는 또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하고 안드레아인데
안드레아가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형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왔던 안드레아 한테는 아무것도 안해주시는 반면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비록 안드레아가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아의 이름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만약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안드레아의 이름도 뭐 거창한 것으로 바꿔줬을텐데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필립보나 안드레아의 입장이었다면 한번쯤
“예수님, 왜 제 이름은 안 바꿔주십니까?”나
“예수님, 왜 저한테는 말씀을 안 걸어주십니까? 너무 불공평합니다.
제가 먼저 예수님께 왔습니다. 왜 시몬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시고 나타나엘에게는 의미심장한 말씀도 해 주시면서 나한테는 안해주십니까?
나도 이름지어주시든가...뭔가 의미심장한 말씀같은 걸 해 주십시오.“
라고 했을법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질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첫 번째가 아닌 것은 또 있습니다.
천사들에 비해 늘 뒤지는 바로 우리 사람들이지요.
천사들 보다 못하게 만들어졌고
케루빔인가 세라핌인가 하는 천사들은 하느님 곁을 날아다니는데
우리들은 하느님 구경한번 못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천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게 아니라
늘 뒤처지는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이지요.

만고 제 생각이지만 억지스럽게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먼저 보다는 나중에게 더 관심을 가지시고
무언가를 더 해 주시는 듯 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못 따라가서 그런거지
안드레아나 필립보나 대천사들이 나쁘다는거나
그렇게 먼저 예수님을 보면 안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대신 이 두 번째의 영성도 한번 묵상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첫째가 되기를 좋아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둘째가 되고자 한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해 주실 겁니다.
시몬은 둘째였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에게 반석이 되는 문제를 제시하셨고
나타나엘도 둘째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하느님의 집을 열어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 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지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우리 사람들에게 씌워주셨습니다.

언제나 첫째가 되려 하는 이 세상에서
한번쯤은 느긋하게 둘째가 되어보심은 어떨런지요...

지병철 신부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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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소재로 다룬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곁에서 천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들어주며 함께 아파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홀로 있음을 느끼는 경우도 많지만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이가, 함께 마음 아파하는 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 보면 천사란 나와 함께 아파하는, 그리고 나와 함께 기뻐하는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전할 때, 그것은 기계적으로 우리가 늘상 받아보는 세금고지서나 전화비 통지서 같은 전달이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마음 아파하고 마음 부대낀 그런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천사란 또 다른 모습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모습임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사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머니의 눈입니다. 그런 눈이 우리에게 늘상 머물러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천사가 받지 못하는 존귀의 관까지도 우리에게 내리시는 주님을 찬미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인한 신부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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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같더라

선행, 미담, 희생 .......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선한 행동을 보고
아름다움 이야기를 듣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만날 때
기쁘고
그 이야기만 전해 들어도
마음은 감사가 넘치고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 사람은 ‘천사 같다’는 표현을 마다지 않습니다.
때문에 미담이 사라지고
희생이 어리석은 일인 줄 폄하되고 있는 세상을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천사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생명을 갈구하고 목말라하는 세상에
천사가 되어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외면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아낌없는 희생이며 봉사이며 철두철미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잊고
맨날 맨날
나를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해줄 천사를 기다립니다.
주님의 뜻이
자꾸만 꼬이고 얽히는 이유라 믿습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자기 한 몸의 영화를 위해서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영예와 부귀와 존경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올랐으니
전혀 남부럽지 않고
누구보다 편하고 안락하게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흥청망청 세상의 즐거움을 살아가기를 원치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묻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나서서 회개하며 지냈습니다.
한 마디로 선하신 하느님 앞에
‘죄인의 대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재상임에도 늘
“단식하고 자루 옷을 두르고 재를 쓴 채, 기도와 간청으로 탄원”
(다니 9,3) 하였던 까닭이었지요.

이러한 다니엘 예언자의 모습이
하느님께 얼마나 기쁘셨는지
“가브리엘이라는 이가 저녁 예물을 바칠 때 빨리 날아서”(9,21)
다니엘에게 하느님의 응답을 전하게 하시며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고 고백해 주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천사 같은 사람을 기뻐합니다.
천사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천사 같은 행동으로 세상을 감동시키기 원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세상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시고
세상을 변화시킬 것을 고대하고 계신 것이라 믿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천사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가 되어
천사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때문에
내 기도에
내 영혼에
내 삶에
천사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고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돕고 낫게 하고 위로하는
천사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깁니다.
그들의 안녕을 원할 뿐 아니라
발 벗고 나서서
희생하고 더 사랑함으로
그리스도인은
정말 ‘천사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천사처럼 행하고
천사가 되어 도와야 할 일은 널려 있습니다.
이 땅에는
천사 같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우리 모두,
천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에게
천사되어 줄 때
“그분께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 선택되리라 믿습니다. 아멘

▶ 장재봉 신부
  |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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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호 천사

오늘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축일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강함’ 또는 ‘하느님의 사람’이란 뜻이고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라는 뜻이며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입니다.

주님 앞에 서 있는 일곱 대천사 중의 한 분인 라파엘 대천사는 토비아와 사라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천사였습니다. 또 요한 5장 14절에 보면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나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주님의 천사’가 바로 라파엘 대천사라고 교회 전승은 전하고 있습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외경에 더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천상군대의 장수나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자들의 수호자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며, 즈가리야와 마리아에게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합니다.

어떻든 성서에 나오는 천사 이야기는 그 모두가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고 계심을 알려주기 위해 등장합니다. 어릴 때 저의 어머니는 수호천사들이 늘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가르쳐 주셨고, 특히 로사리오를 드리다 잠이 들면 나머지는 수호천사가 대신 기도를 해 주신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저는 잠들기 전에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수호천사가 나머지를 바쳐 주시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언제 어떤 위험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위태한 현세 생할 속에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있다는 거은 마치 든든한 보디가드를 항상 데리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의 수호천사들이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 주시기를 간청하며 하루를 보낸다면 누구보다 가까이 하느님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가 아닐까요?

▮ 대구대교구 김종기 바오로 신부
  |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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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재미있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요. 제가 첫영성체 교리를 할 때 본당에 계셨던 할머니 수녀님께서 저희들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성당에 오려니까 싫지? 재미없고 힘들고. 그렇지?”라는 겁니다. 이 말에 뭐 사실 그렇기는 했습니다만. 주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씻고 닦고 그때 재미있는 만화도 했었는데 그것도 제대로 못 보고 성당으로 가야 했었습니다. 사실 수녀님의 이 말씀에 “예, 오기 싫어요. 잠도 자야하고 만화도 봐야 해요.” 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또 그렇게는 못하고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성당에 올 때 눈에는 안 보이지만 수호천사가 따라오면서 성당으로 갈 때 얼마나 걸어가는지 금으로 된 잣대를 들고 거리 재면서 따라온다. 그리고 재놓은 거리가 멀수록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더 많은 상을 받는 거야. 그러니 성당에 자주 올수록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상을 하늘나라에서 받을 수 있겠지. 성당에 오기 싫다고 미사 빠지고 다른데 놀러가고 그러면 다른 친구들 다 상 받는데 그 친구는 아무것도 못 받아. 그러니까 열심히 성당 다녀야 한다.”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말씀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면서 수호천사가 금자를 들고 나를 따라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축일을 맞이하는 형제자매님들 축하드립니다. 천사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들이지만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늘 하느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분들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천사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떤 아이가 이렇게 질문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도 나중에 천사가 될 수 있나요? 천사가 되어서 하얀 날개옷 입고 하늘을 막 날고 싶어요.” 저는 “그럼 착하게 살면 하느님께서는 천사가 될 수 있게 해 주실 거야.”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이건 아이들한테 해 줄 수 있는 대답이구요. 실제 어른들에게 이런 대답을 하면 그냥 웃어넘기시지요. 천사가 되고 싶다는 질문도 하지 않구요. 우리 모두에게는 수호천사가 따라 다닌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게 우리를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 분들이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수호천사에게 도움을 받는 입장인데 그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신적은 있습니까?

내가 수호천사에게 무엇인가를 받는다면 그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수호천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 사람에게 기도가 필요하다면,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위로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그 당사자 모르게 얼마든지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호천사입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받고, 나는 그것을 그 사람이 모르게 주는 것입니다. “나도 나중에 천사가 될 수 있나요?” 여러분도 얼마든지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수호천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천사가 되십시오. 나도 모르게 뒤를 따라오면서 도움을 주는 천사처럼 여러분도 이웃에게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어느 순간에 여러분은 그 사람의 수호천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 대구대교구 장운철 (마르첼리노) 신부
  | 09.28
460 76%
[수원] 하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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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이다(히브 1,14). 성서는 자주 이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미카엘 천사는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두 번 언급되었는데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닌다. 미카엘 천사는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수호자,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한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란 뜻이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준 대천사이며, 즈가리야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이다. 그리고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이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며,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공경을 받고 있다.

이 천사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그들 천사들까지도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지고 계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제 더욱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사랑을 우리 안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천사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전하는 존재라면, 이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사랑과 그분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천사의 모습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이 예수님께로부터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하고 칭찬을 들었듯이 우리 자신이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세를 갖는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춘 다면, 오늘의 이 복음 말씀을 올바로 사는 것이며, 우리의 모습이 진정 다른 사람들에게 천사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삶의 노력을 주님께 바쳐드리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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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09.28
460 76%
[수원] 남이 나보다 잘 되는 걸 기뻐해 주는 사람이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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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적한 마을의 숲속에 우주선이 나타납니다. 우주선에서 내린 외계인들은 지구의 각종 표본들을 채취하던 중 인간들이 나타나자 서둘러 지구를 떠나는데, 그 와중에 뒤쳐진 한 외계인만 홀로 남게 됩니다. 방황하던 그 외계인은 한 가정집에 숨어들고, 그 집 꼬마 엘리어트와 만나게 됩니다. 엘리어트는 외계인에게 E.T.(Extra-Terrestrial)란 칭호를 붙여주고 형 마이클과 여동생 거티에게 E.T.의 존재를 밝힙니다. 그때부터 삼남매는 엄마의 눈을 속인 채 집안에서 몰래 E.T.를 돌봐줍니다.

어느새 아이들과 E.T.사이엔 끈끈한 정이 생기고, 특히 엘리어트는 E.T.와 텔레파시로 교감할 정도로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E.T.덕에 분열되었던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E.T.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야 할 몸. 그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집안의 잡동사니로 자신의 별과 교신할 통신장비를 만듭니다. 그리고 할로윈 축제를 이용해, 우주선이 착륙했던 숲속으로 가서 그곳에 통신장비를 설치하지만, 그만 체력의 급격한 소모로 탈진 상태에 빠집니다. 특이한 점은 E.T.가 아플 땐 엘리어트도 함께 아프다는 것.

엘 리어트와 E.T.가 빈사상태에 빠졌을 때, 그동안 이 집을 조사해오던 항공 우주국 직원들이 들이닥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자전거를 타고 E.T.를 숲속으로 피신시킵니다. 숲에는 E.T.의 메세지를 듣고 온 우주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E.T.는 지구를 떠납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어트와 E.T.가 작별인사를 하는데, 엘리어트가 눈물을 흘리자 E.T.의 심장이 뜨거워지며 “아프다(OUCH!)”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엘리어트도 “아프다(OUCH!)”라고 화답합니다. 우리나라 유명한 드라마 대사인 “아프냐?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뭐 이런 식의 말입니다.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이혼가정에서 태어나서 자신의 아픔을 이 세상을 넘어선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일종의 자기치유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고 자신이 잘 되기를 기도해주는 누군가를 아주 처음부터 원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세 대천사를 기리는 축일인데, 천사들이 아마도 우리 곁에서 그런 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천사는 주님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이 주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다가가면 천사는 인간보다 더 낮은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고 천사들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싫어서 뛰쳐나간 천사들이 사탄과 그의 졸개들입니다. 따라서 천사는 남이 자신보다 잘 되는 것을 기뻐할 줄 아는 본성을 지녔습니다. 사탄은 반대로 인간의 지위가 자신들보다 높아지는 것을 질투하여 끌어내리려 합니다. 하느님은 누군가를 자신들 위로 들어 높일 줄 아는 이들만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무언가 저보다 잘 하는 이를 보면 질투가 마음속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운동회 때 몸이 안 좋게 태어난 친구의 손을 잡고 모두가 꼴찌가 되려고 함께 걸어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진을 보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아닌 척은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 저보다 강론을 더 잘한다거나 운동을 더 잘하는 모습을 보면 질투가 서서히 올라옴을 느낍니다. 사제가 되어서까지도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니 참 창피합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자신 위로 높이는 것인데 질투는 어떤 누구도 자신보다 더 높아지는 꼴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어찌 보면 예수님과 경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천사의 마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자신이 진정 천국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고 그런 자신을 천국에 올려주시는 주님께 무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겸손함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남이 슬플 때 울어주는 사람보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이 나보다 잘 되는 것을 기뻐해줍시다.

또한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또 다른 나인 상대가 행복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행복도 우리의 행복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가 아픈 것을 보고 혼자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인 것입니다. 따라서 천사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서 우리가 자신들보다 높아지기를 기도하고 지켜주고 있습니다. 천사들도 우리 옆에서 우리가 자신들의 모습이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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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16년 9월 29일
  | 09.28
460 76%
[청주] 천사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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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입니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파견된 일꾼입니다.
히브리서 1장 14절에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 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하고 적고 있습니다.

천사란 말은
그들의 정체나 본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맡고 있는 직무와 사명을 뜻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일에 협조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될 때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의
아브라함은 길손을 대접하다 천사를 만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창세기 18장), 다니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기도응답의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다니엘 예언서 8장 17절). 토비트는 라파엘 대천사를 통해 눈을 뜨는 기적의 축복을 누렸습니다(토비트 11장 4절-13절). 구약에서 천사론이 전개되는데 하느님의 아들, 거룩한 자, 수호자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순수한 영적존재로 나타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루카 복음 1장 28절),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도(마태오 복음 1장 20절)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루가 복음 2장 14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때 천사들이“하느님께 영광”이라고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마리아가 이집트로 피난할 것도 알려주고(마태오 복음 12장 13절),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마르코 복음 1장 13절). 또한 흰옷을 입고 부활을 알려주었으며(마르코 복음 16장 5절),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묵시록 22장 6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며 천사들이 영적인 실체라고 가르칩니다(1차 바틴칸 공의회). 그리고 선한 천사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생각은 성경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이바지 한다는 것은 성경과 교회 정통 가르침에 의거한 교회의 신앙입니다.

각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우선 길을 인도하고 돌보는 존재로서 사람과 동행하는 천사입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시편 91장 11절). 마태복음은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오 복음 18장 10절).하고 각자에게 배속된 천사를 언급합니다.

결국 천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천사에 대한 의식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언자와 율법학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전해졌지만 이제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직자나 수도자, 교리교사를 통해 예수님의 계시진리가 좀 더 쉽게 전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천사의 존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천사는 존재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오 복음 18장 10절).

각 사람을 수호하는 천사들이 있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사는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이웃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천사가 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이미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제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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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16년 9월 29일
  | 09.28
460 76%
[마산] 하늘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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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천사(大天使)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을 기리는 축일입니다.

천사(天使)를 라틴어로 angelus,
희랍말로 앙겔로스라고 하지요.
천사(天使)라는 한자말은 angelus의 정확한 번역입니다.
하늘의 소식을 전하는 사자(使者)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명시된 대천사들은
모두 ‘엘’자 돌림의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엘’은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미카엘(묵시록 12장 7절-9절)은 ‘누가 하느님 같은가’,
가브리엘(다니엘 예언서 9장 21절-23절 / 루카 복음 1장 13절, 30절-31절)은 ‘하느님의 권세’,
라파엘(토비트 5,4)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입니다.

천사(天使)는 하늘과 사람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하늘의 뜻(天命)을 전달합니다. 그러나 천사를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하늘의 뜻(天命)을 따르려는 열린 가슴을 지닌 사람들이 천사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천사가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쳐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자기를 비워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천사의 손길을 감지하고, 천사의 이끄심에 따릅니다. 그러나 욕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사람은 천사가 등 떠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천사(天使)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당신 곁에 있습니다. 천사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손길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오늘도 천사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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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강영구 신부
  | 09.28
460 76%
[전주]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천사들을 본받아 사는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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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다(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 1차 바티칸 공의회-1870년). 그러나 천사의 본질과 역할, 계급과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 등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또한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고(745년, 라테란 공의회), 삼대(三大) 천사의 축일과(9월 29일) 수호천사의 기념일(10월 2일)을 제정하여 천사공경을 장려하고 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란 뜻으로 구약성서에 2번이 등장하며(다니엘 10,13이하; 12,1), 신약성서에도 두 번 언급되었다(유다 1,9; 묵시록 12,7-9). 이 천사는 외경에서 더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자로 나타난다.

미카엘 대천사 공경은 처음에 프리지아에서 발단되어,
서방교회로 확산되었고, 교황 젤라시오의 재임기간에(492-496) 북이탈리아의 가르가누스 산에 발현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발현 장소에 기념 성당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흔히 미카엘 천사는 악랄한 용과 싸우는 칼로 표현되며,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은 로마의 살레리아노가에 세워진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이고, 1970년에는 그의 축일이 가브리엘과 라파엘의 축일과 합쳐진 것이다.

가브리엘이란
‘하느님의 강함’ 또는 ‘하느님의 사람’이란 뜻으로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다(다니엘 8,16-26). 그는 즈가리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였고(루가 1,11-21),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하였다.(루가 1,26-38)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란 뜻이다. 주님 앞에 서 있는(토비트 12,12-15) 일곱 대천사 중의 한 분인 라파엘 대천사는 토비아와 사라를 위하여 하느님에 의하여 파견되었다. 라파엘은 이 땅을 치유하는 천사로 알려져 있다. 요한복음(5,1)에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던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구절의 ‘주님의 천사’가 라파엘 대천사라고 한다. 라파엘 천사는 맹인의 수호천사이다.

9월 29일은 로마의 살레리아노가에 세워진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로서 미카엘 대천사의 축일이었는데, 1970년에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축일까지 통합하여 지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감각의 대상인 세상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들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을 예배하고, 시중드는 존재들이다(묵시 5,11-12; 8,3.4). 또한 땅 위에서는 주님을 위하여 심부름하며 하느님의 일을 행한다(민수 22,22; 마태 13,41).

뿐만 아니라 천사들은
하느님의 명에 따라 신자들을 인도하며(사도 8,26), 돕고, 보호한다(1열왕 19장, 다니 6,22). 그리하여 천사들은 하느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시며, 창조된 모든 것은 곧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며 돕는다.

그러므로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천사들처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신앙인이 되자. 우리 삶의 중심에 언제나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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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경규봉 신부
  | 09.28
460 76%
나타나엘은 필립보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고,
필립보의 안내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 필립보가 먼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나타나엘에게 가 그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극찬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당시에 보기 드문 거짓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보셨다. 그리고 나타나엘 역시 필립보가 찾아오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사실을 알아맞추시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 그리고 즉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한다.

나타나엘은 누구인가?
나타나엘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바르톨로메오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가나 지방 출신이었으며 나자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난 이후 나자렛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았고, 즉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훗날 나타나엘은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요한 21,2)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처음 뵙고 믿음을 고백하였는데
그 신앙고백은 사실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하였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심으로 보았지만 그분을 이스라엘에 국한시켰다. 곧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느님의 아들로 보았다.

이에 예수께서는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시고 나서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훗날 있을 당신의 부활과 승천을 암시하시면서 인류를 위한 하느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통하여
당신은 인류를 위해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하신다. 따라서 나자렛 출신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왕이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왕이신 예수께 깊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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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병환 신부
  | 09.28
460 76%
[수원]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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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세 대천사의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아 인간을 다시 하느님께 데려가기 위해 일하는 거룩한 일꾼들입니다. 천사들의 이끎을 잘 따라가면 천국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천국에서 파견받은 천사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서 파견된 악마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심부름꾼으로서 우리를 천국과 반대 방향으로 이끕니다.

만약 우리를 이끄는 힘이 천사의 힘인지,
악마의 힘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 결말은 심각하게 끝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천사일 수 있고, 어느 정도는 마귀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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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과 영혼’(1990)은
한 여인을 둔 두 남자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몰리’는 갑자기 남자친구인 ‘샘’을 잃습니다. 샘은 영문도 모르고 총에 맞아 죽습니다. 하늘이 열리지만, 그는 울고 있는 연인을 두고 차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귀신의 모습으로라도 몰리 곁에 머물려 합니다.

그러던 중 샘은 자신의 친구이자 직장동료인 ‘칼’이 돈 문제 때문에 킬러를 고용해 자신을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몰리까지 차지하려 하는 것을 봅니다. 샘은 무언가 해야만 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심령술사인 ‘오다 매’를 찾아갑니다. ‘오다 매’는 샘의 일을 도와줍니다. 반면 샘을 죽인 킬러는 칼을 도와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엔 오다 매와 킬러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천사일 수 있고 악마일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천사나 악마가 된 사람은 거의 없기에 두 모습이 섞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쨌든, 오다 매는 천국의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고, 킬러는 지옥의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몰리는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천사인지, 누가 악마인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겉보기엔 감옥에 여러 번 다녀온 오다 매가 더 사기꾼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다 매를 통해 말하려는 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샘은 몰리가 오다 매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동전을 집어 올려 그녀의 손에 쥐여줍니다. 영화에서는 오다 매가 친구가 빼돌린 4백만 달러의 돈을 기부하게 만든 일이 나옵니다. 돈을 몰리의 손에 올려준다는 것은 저 나름대로 오다 매가 돈 때문에 그녀를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결말은 이 일로 몰리는 오다 매를 통해 샘을 만나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악한 무리는 죽어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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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영화에서 천사와 악마,
천사의 일을 하는 사람과 악마의 일을 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점을 보러 무당을 찾아갔다고 합시다. 무당은 공짜로 굿을 해 주거나 점을 봐주는 일이 없습니다. 그의 목적은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복채를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영화에서 칼과 킬러는 모두 돈에 중독된 이들이었습니다.
돈이 아니면 어떠한 행동을 할 에너지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오다 매는 돈이 아닌 연민의 마음으로 샘의 목소리 역할을 합니다. 끝나도 마음의 따뜻함 외에는 얻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고 악마는 복채를 챙깁니다. 이것으로 내 주위에서 천사와 악마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이 나옵니다.
그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란 칭찬을 듣습니다. 순결한 사람이고 세속, 육신, 마귀의 욕구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당신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사를 볼 수 있다는 말은 그 당사자도 천사의 일을 하게 됩니다.

오늘 세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의 천사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먼저 미카엘 이름의 뜻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입니다.

이름 뜻대로 미카엘은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돈, 쾌락, 교만이 아닌 청빈, 절제, 겸손의 길로 사람을 이끌고 있다면 미카엘 천사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은 나의 힘”이란 뜻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보통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모님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준 이가 가브리엘입니다. 미카엘 대천사가 사람의 마음에 하느님과 같은 분은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면 가브리엘 천사는 그 하느님만 의지하며 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으로 누군가에게 양식이 되어주고 또 누군가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잉태되게 하고 있다면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라는 이름을 가진 라파엘 대천사도 있습니다.

토비트서에 라파엘은 토비아와 함께 여정을 하며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치유해줍니다. 누군가의 옆에서 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고 부축해주는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라파엘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세속의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유학을 다녀와서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강의료를 받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교구에서 공부시켜 준 것이고, 또한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그 대가로 돈을 받기는 싫었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는데 거부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료를 많이 주는 쪽을 조금씩 선호하게 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돈을 적게 주면 왠지 하기가 싫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재물에 치우치는 욕심을 경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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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2020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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