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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정부/인천]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노래하오리다
조회수 | 1,965
작성일 | 08.10.14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형상에 날개를 가진 사람을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주 착한 사람을 <천사 같다>고 표현하지요.
천사는 사람과 교회를 지켜주고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천사의 이미지가 교회에서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대신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또 일부 장사꾼들이 <수호천사>라고 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의미로 천사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요.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세상에서는 살아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요?
우리 천주 교회에서는 이 천사의 존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천사는 어떤 변천사를 밟아 왔는지, 또 요즘은 왜 천사를 보기가 어려운지를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천사는 창세기에서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靈的)인 존재를 일반적으로 <천사>라고 표현했지요. 성경에는 천사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이 심부름꾼으로 천사들이 많이 파견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6장에 주인의 박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하가르 앞에 천사가 나타나 도움을 줍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여라."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기 16,9-10)

또 창세기 19장 1절-22절에는 멸망하는 소돔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며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고, 24장에는 늙은 아브라함이 며느리감을 얻는데 천사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편 천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처벌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사무엘 하권 24장에는 백성을 치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요.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 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2사무24,16)

그밖에 하느님을 모시는 군대로 천사들을 인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천사의 역할은 신약성경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싸고 처녀 마리아를 찾아오고(루카1,28), 약혼자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은(마태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에집트로 피신할 것을 일러주는 가 하면(마태2,13), 흰옷을 입고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며(마르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이라고(묵시22,6) 성경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 곳곳에서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천사에 대하여 교회의 학자들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디오니시오 성인입니다.
성인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9품 천사에 달하는 천사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9품 천사란 천사의 등급을
치품(Seraphim),
지품(Cherubim),
좌품(Thrones),
권품(Dominantes),
능품(Principatus),
역품(Potestates)
주품(Virtus),
대(大)천사(Archangelus),
천사(Angelus)로 분류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아니고
천사에 관한 디오니시오 성인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천사에 관하여 우리 신자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요?

믿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과 감각을 초월하는 영원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천주교회는 745년 라테라노 공의회 때까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다른 천사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천사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지요. 천사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는 존재하며, 천사의 등급이 또한 존재하는지에 관하여서는 권위 있는 해석을 유보한 채 다만 천사의 존재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증명해주듯이
예전에는 천사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천사의 존재에 관한 가르침도 확고했는데, 왜 우리 시대에는 천사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믿어야 되는지 믿지 말아야 되는 지도 모를 정도로 천사의 존재가 퇴조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천사는 주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하느님의 뜻, 즉 계시(啓示)의 원천이 성경에 그대로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새롭게 전달해 줄 이유가 없어진 셈이지요. 성경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 예언자들이 사라진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구약시대 많은 예언자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성경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시의 원천인 하느님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예언자들의 역할이 필요 없게 된 것이지요.

예언자들은 사라지고 성경을 해석해주는 율법학자들이 존재하게 됐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같은 맥락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또 성경을 해설해 주는 성직자와 수도자, 교리 교사들이 많아지면서 비교적 쉽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천사들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계시의 방법도 달라집니다. 이제 계시의 방법이 <천사>에서 <성경>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천사의 역할이 많이 퇴조해 있지만
분명한 것은 라테라노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천사는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에 관한 축일로 오늘 9월 29일을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로, 또 10월 2일을 <수호천사 축일>로 정하여 공경하며 장려하고 있지요.

오늘 축일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천상 군대의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요한 묵시록 12장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12,7-8) 우리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다니9,21 이하 참조), 무엇보다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루카1,26 이하 참조).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우리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매일 미사 9월호 참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습니다.
또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마치 <천사 같다>라고도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담긴 성경을 자주 접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천사 같이 사는 우리의 모습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오늘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착하게 사는 여러분이 바로 천사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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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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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어떤 신문사의 기자들이 와서 갑곶성지를 취재해 갔습니다.
저에게 이곳 성지가 어떤 곳인지를 자세히 묻더군요. 어떤 분이 순교를 하셨고, 이곳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그리고 순교자들의 무덤도 있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역사적으로는 이러 저러한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지 비석만을 제가 작년에 이곳에다 세웠다는 것만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럼 그렇게 의미 있는 성지는 아니군요.”

하긴 이곳 성지에 있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잘 알려진 순교자의 무덤이 있는 곳도 아니고, 그러한 순교자들이 활동하신 곳도 아니고, 또 그러한 분들이 순교하신 장소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그렇게 의미 있는 곳은 아니라는 식의 말씀을 많이 듣게 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성인의 유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성인들이 이곳에서 순교한 것도 활동하셨던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지라는 곳이 기도하는 장소가 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없다면, 그곳에 아무리 이름 있는 성인이 활동을 했고 무덤이 있다고 한들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곳은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이 있는 것을 볼 때, 그 어떤 성지보다도 더 의미 있는 성지가 아닐까 싶네요.

결국 내 자신이 성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며,
내 자신이 있는 곳이 성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모습을 보고서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내가 있는 곳이 주님을 찬미하고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어떤 특별한 장소만을 기도하는 장소로, 거룩한 장소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당이나 성지에서만 신앙인답게 살고, 다른 곳에서는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단순히 누구의 영명축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렇게 축일을 지정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역시 이 천사의 모습을 닮아서, 이 세상 안에서 천사의 모습으로써 주님을 증거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대천사들의 축일을 맞이하여
'나는 과연 천사처럼,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사탄처럼, 사람들에게 어둠을 전하는 존재인가?'를 깊이 묵상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이 세상에서 천사들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작은 삶의 체험 속에서 먼저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실천이 있을 때, 우리는 언젠가 하느님의 나라로 돌아가서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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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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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다닐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제 동기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우연히 보고서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친구가 제 사진을 몰래 빼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진은 저의 첫영성체 기념사진이었거든요. 그 친구가 제 첫영성체 기념사진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진은 그 친구의 것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가 이 사진을 가지고 있을 이유도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진 안에는 저의 얼굴이 분명히 있기도 하지만, 그 친구의 얼굴도 그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저에게 있어서 첫영성체 기념사진이지만, 그 친구에게도 첫영성체 기념사진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그 친구와는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었네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요, 제가 냉담하고 있을 때 성당에 나갈 수 있도록 끌어주었지요. 그리고 함께 신학교를 들어가게 되었고, 둘 다 이렇게 신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첫영성체도 함께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보니 어떠한 만남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 만남이 단 한 번의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언제 보겠어?’라고 생각하기 쉽고, 또 그렇게 단정을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만남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첫영성체 받았을 때, 그 친구와 아주 안 좋은 사이였으면 어떠했을까요? 고등학교 때, 그 친구와 대판 싸워서 얼굴도 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으면 제가 과연 지금처럼 신부가 되어 있을까요?

어떠한 만남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좋은 만남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좋은 만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상대방이 천사처럼 착한 마음으로 나에게만 잘하기를 원해야 할까요? 그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변화되는 것을 보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뀌는 것은 나의 강한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거든요. 따라서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써 다가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오늘을 대천사 세례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날로만 기억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 역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천사와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함을 오늘 축일을 보내면서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천사의 모습으로 살라고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천사의 모습인가요? 이기심과 욕심으로 천사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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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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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때의 일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 1학년 때의 일로 아마 총장배 체육대회 중에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체육대회는 신학교의 큰 행사 중 하나로 각 학년은 자기 학년의 명예를 걸고서 정말 열심히 경기에 임합니다. 당시 저희 학년은 전 종목에 걸쳐서 우수한 성적을 얻었고, 특히 포기했었던 농구가 결승에 오르는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학부 3학년과 대학원 1학년인 우리 반의 농구 결승전. 누가 봐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당연히 학부 3학년이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결승전이라고 전교생과 학교 교수 신부님들이 관람하고 있는 가운데 결승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점수가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팀에서는 봐주면서 하는 것 같고, 우리 팀은 이 정도만 되어도 성공했다는 듯이 즐기면서 농구를 합니다.

저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때 제가 승부욕이 엄청나게 강했거든요. 따라서 이러한 모습을 그냥 볼 수가 없었지요. 점점 과격해지면서, 상대방의 약한 파울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교수신부님들과 전교생이 보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큰소리로 욕을 하며 화를 내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의 승부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저희 학년이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의 일입니다. 저랑 농구를 할 때면 사람들이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 반의 승리를 가져오는데 보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이미지는 바닥을 치게 된 것이지요.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자신의 뜻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공격적인 사람들에게 ‘성공한 사람’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의 성공은 늘 단명으로 끝나지요. 반면에 그들이 저지른 해악은 자신과 남에게까지 널리 미치는 것 같습니다. 경쟁이 지나치면 결국 여러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고, 자신도 불쾌해지며, 욕을 먹게 되고, 정작 해야 할 일은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대학원 1학년 때의 저처럼 말이지요.

반면에 경쟁심을 버린 사람은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자기 식을 남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속상해하거나 움츠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천사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이런 사람들이 우리 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천사야.”라는 말을 자주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나 스스로는 그 천사와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천사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면서도, 스스로는 자신의 뜻을 타인에게 강요하는데 더 익숙해 하면서 천사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 역시 천사들의 모습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천사는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하고 있으며, 나 역시 내 이웃의 또 다른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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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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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9월의 막바지에 들어서있습니다. 사실 9월 한 달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특히 강의가 많아서 더욱 더 바빴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강의준비도 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제 방은 지금 완전히 전쟁터 같습니다. 특히 늘 일을 마무리하고서야 정리를 하다 보니, 책상 위를 비롯해서 어느 곳 하나 깨끗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를 하지 않아서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어제 새벽, 성당 문을 열기 위해서 사제관 키를 먼저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제관 문은 자동으로 문이 잠겨서 카드키가 있어야만 다시 들어올 수 있거든요. 하지만 어디에 붙어있는지 도대체 보이지 않습니다. 옷 주머니를 뒤져보고, 책상 위도 찾아보았습니다. 한 10분 이상을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았지요. 왜냐하면 제가 성당 문을 열어야 새벽 미사 오신 신자 분들이 성당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결국 두꺼운 책 사이에 끼어 있는 카드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카드키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사실 평소에는 이 카드키에 대해 반갑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카드키에게 고맙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에는 카드키가 너무나 반가웠고, 지금 내가 찾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문득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 학창 시절에 ‘Love Is....’라는 글이 적혀 있는 책갈피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 다양한 사랑의 정의를 볼 수가 있었는데요. 저 역시 어제의 카드키 찾기를 통해서 ‘사랑이란 발견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평소에 카드키의 중요함을 몰랐던 저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급할 때 발견하게 되면서 카드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지요. 마찬가지로 사랑은 이렇게 발견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실 나타나엘은 나자렛 출신인 예수님에 대해서 별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예수님을 그저 그런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서 그는 예수님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지난날을 아시는 예수님,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이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조금씩 조금씩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일상 삶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변화될 수 있으며, 가정, 일터,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셨던 더 큰 일을 우리 역시 보게 될 것입니다. 즉,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사랑을 조금씩 발견하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변화시킬 때, 그만큼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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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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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사랑을 가장 큰 사랑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맞는 것 같습니까? 실제로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저 고생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뿐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종종 자녀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신부님, 제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아세요? 그렇게 집이 어려웠는데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공부 다 시키고, 필요한 것은 다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부모를 만나러 오지도 않아요. 어쩌면 이럴 수가 있지요?”

괘씸한 자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부모 역시 문제가 하나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부모의 말에는 ‘내가 이렇게 애를 썼으니, 너도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냐?’라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순수한 사랑보다는 보상받으려는 사랑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렸을 때에 단순히 의무감이 아니라, 키우는 재미 그 자체에 집중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부모를 찾아오지 않는 것이 서운하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독립해서 가정을 잘 꾸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수한 사랑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수성이 사라질 때에 미움과 다툼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 바로 이렇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에 물들어 있는 우리를 향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꾸짖지 않으십니다.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고 함께 하면서 응원해주십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는 중대한 사건을 전하는 이들이지요. 미카엘은 요한 묵시록에 나오듯이 우리의 원수와 싸우도록 파견되어, 우리들이 악을 멀리해야 함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동정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파견되어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했으며, 라파엘 천사는 토비아의 눈을 고쳐주어서 하느님의 치유를 전해주었습니다.

대천사들이 전하는 중요한 사명들은 바로 인간을 위한 한 없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님의 사랑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주님의 사랑을 본받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어떤 보상을 원하는 삶이 아니라,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으로 나의 이웃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억울함이나 서운함을 단 한 번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도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의 억울함과 서운함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억울함과 서운함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안에서 느끼는 기쁨과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대천사의 임무처럼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또 다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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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16년 9월 29일
  | 09.28
460 76%
[의정부] 천사가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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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하느님께서 땅으로 보내신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립니다. 하늘의 하느님과 땅의 하느님사이에서 천사가 노닙니다. 천사가 오르내리며 노니니 하늘은 땅이요 땅은 하늘입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땅의 하느님 사람의 아들을 닮은 사람들 위에서 오르내립니다.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함께 하니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이 됩니다. 천사와 함께하는 사람은 땅을 딛고 하늘을 품습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내려옵니다. 땅만 바라보는 사람은 천사를 보지 못합니다. 땅만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천사를 거부하고 죽입니다. 하늘 없이 땅도 없기에 하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땅에서도 죽습니다.

*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하무인 날뛰는 권력자들과 이들에게 기생하는 무리들은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언제가 갑자기 닥칠 종말의 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고 짐승처럼 사는 것이 천벌일진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천벌을 희희덕거리며 즐기는 어리석은 무리들, 피눈물 흘리며 통회해도 늦을 날이 올 것입니다. 하늘이 있기 때문에 땅이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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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2016년 9월 29일
  | 09.28
460 76%
저는 세례명이 ‘가브리엘’입니다. 오늘이 축일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제가 정하지는 않았지만 저의 세례명을 좋아합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고, 요셉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을 보면 천사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분들입니다. 지난 화요일에 대전 가톨릭 대학교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부제님들이 강의를 부탁하였기 때문입니다. 서울역에서 전의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였습니다. 조치원에서 천안, 천안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표도 예매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난처한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제가 가는 날, 철도 노조에서 파업을 시작하였고, 제가 예매한 기차는 운행이 중지되었습니다. 대전까지 가는 길이 멀기도 하고, 길이 막힐 것 같아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천사처럼 버스를 예매 해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스마트한 세상입니다. 인터넷으로 조치원 가는 버스를 예매하였고, 스마트 폰으로 버스표를 전송해 주었습니다. 저는 덕분에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눈은 외부의 사물을 보기도 하지만, 눈은 내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눈, 사랑의 눈, 희망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시기의 눈, 증오의 눈, 불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회색 빛깔로 보이게 됩니다. 우리의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있지만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아무리 좋아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은 빛에 의해서 반사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보면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카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목적지가 같은 분들을 연락해서 승용차를 함께 이용하는 나눔입니다. 연말연시에는 사랑의 나눔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돼지 저금통을 가져오기도 하고, 군인들도, 기업체를 운영하는 분들도 이웃을 위한 나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평생을 모은 재산을 기꺼이 신학교를 위해서 기부하신 분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나눔이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치를 해도 함께 나누고, 잔치가 있으면 이웃을 초대하였습니다. 누군가 돌아가시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위해 함께 수고하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예전에 농경시대에 있었던 방식의 나눔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고 분주한 현대사회에 살면서도 나눔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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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016년 9월 29일
  | 09.28
460 76%
하나의 가치관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타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말, 행동으로 ‘예의 없다’, ‘개념이 없다.’ 등 수많은 비난과 지적을 합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 자체가 없습니다.

솔직히 이 대상의 주인공이 자신이었을 때, 참으로 견디기가 힘들어집니다. 나의 의도를 자기 생각으로 바꿔놓고, 내 생각은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만들 때 과연 편할까요? 그런데 더 힘들게 느껴질 때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의 말을 더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인터넷 활동을 하며 몇 차례 겪었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받는 비판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얼굴이 비치는 방송은 사양이고, 댓글은 무조건 무시합니다. ‘그러든지 말든지….’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야 저 자신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스스로 겪어보니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 역시 판단 받을 수 있음을 떠올리며 그의 장점을 봐주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개인을 향한 비난은 그저 한순간의 통쾌함을 바라는 폭력이자, 정의, 예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억압입니다.

나타나엘은 자기 형 필립보와 마찬가지로 예언서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단한 것은 성경을 자신의 해석에 맞추기를 거부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간 것도 사람들의 해석을 거부하는 행동이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 안에 갇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천사는 사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들입니다. 심부름꾼들을 볼 수 있는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들은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조력자이자 파견자, 치유자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런 거룩한 존재와 함께할 수 있어야 하느님의 조력과 치유 그리고 영광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희망 안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존재에 더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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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0년 9월 29일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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