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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선교는 말과 행동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조회수 | 2,113
작성일 | 08.10.14
제대로 된 자식이라면 부모의 유언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신자라면 주님이신 예수님의 ‘유언’을 소홀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그분의 ‘유언’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선교입니다. 따라서 모든 신자들은 선교의 사명을 지니고 있고,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제2독서).

선교는 말과 행동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믿음·사랑·희망의 삶,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님 덕분에 하느님으로부터 자비를 풍성히 받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자비에 응답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어떤 처지에서도 오직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삶이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말로 선포하고,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이런 믿음·사랑·희망의 삶을 살아간다면, 불신과 증오 그리고 절망으로 점점 더 어두워져 가는 세상에서 작은 등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서 등불의 역할을 하기에는 세상의 저항이 너무 거셉니다. 신자들이 합심해서 함께 등불이 되고자 한다면, 힘은 덜 들고 효과는 더 커질 것입니다. 신앙인 한 사람은 작은 등불의 역할을 하겠지만, 이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는 등대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서는 이웃은 물론 신이나 종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는 세상입니다. 교회가 이런 세상과는 다른 모습, 즉 주님을 굳건히 믿고 그분께 모든 희망을 두고서 신자들이 서로 아끼면서 살아간다면, 믿지 않는 이들에게 큰 매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초창기 신앙인들은 매력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는 황일광(1756-1802) 순교자의 증언에서 잘 드러납니다. “나는 백정으로 태어나 이제껏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천주교인이 됨으로써 어떤 학문이나 이치가 아닌 신앙의 삶을 통해 천주교가 참됨을 깨우치게 되었다. 나에게는 천국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아직 오르지 못한, 곧 가게 될 이승 너머의 곳이고 또 하나는 지금 이 생활이다. 양반인 천주교 형제들은 금수와 같이 취급되는 나를 형제라 부르며 나를 친형제처럼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 우린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 어머니께 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드렸고 함께 고생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구원을 주시는 주님을 찾아 몰려올 수 있도록(제1독서) 신자 각자는 등불이 되고 교회는 등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는 어려운 사명이지만, 세상 마칠 때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우리 곁에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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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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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남을 구원하는 전교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학업만큼이나 힘들었던 것은 캠퍼스 생활이었습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저는 교내에 있는 경당의 매일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캠퍼스 안에서 저를 알아보는 미국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도서관, 강의실 근처, 교내 식당, 교내 셔틀 버스 정거장 등에서, 그들은 저를 보면 "Hi, Father!(안녕하세요, 신부님!)" 하며 친근하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그들 중에는 매일미사에 자주 참례하여 이름을 알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학생들이 더 많았습니다.

매일미사에 참례하는 미국 가톨릭 학생들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유학 온 대학원 학생들은 가톨릭 사제인 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교정의 곳곳에서 제가 잘 모르는 한국 유학생들이 길거리를 마주 지나치면서 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합니다. 또 식당이나 도서관 매점에서 만나게 되면 저를 매우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부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합니다. 교정의 도처에서 저를 알아보는 학생들이 있기에, 교정의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임에도, 교정에서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은 대부분 󰡐신부님󰡑입니다. 제가 잘 모르는 미국 학생들과 한국 유학생들이 󰡐신부님󰡑하고 저를 부르면, 저의 무조건적인 행동 지침이 있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 상냥하게 대하고 친절을 베풉니다. 가톨릭 사제임을 표현하는 󰡐신부님󰡑이라는 호칭이 저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교정에서 학생이면서도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했던 캠퍼스 생활은 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상의 삶에서 저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행위였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가톨릭을 알리는 자연스런 전교였습니다.

전교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감추고서 전교할 수는 없습니다. 나 스스로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전교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믿는 신앙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긍심이 있을 때만이 전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를 체험하고 하느님의 사랑이 자신에게서 흘러넘치기에, 이 기쁜 소식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을 권하는 전교는 무엇보다 자기 신앙의 확신이며 표현입니다. 전교는 믿지 않는 사람이 신앙에 입문하거나 안하거나를 떠나서, 전교 자체가 자신의 신앙을 완전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전교를 통해 믿지 않는 이를 입교하도록 하면, 그를 구원의 길로 이끌게 됩니다. 전교는 믿지 않는 이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로 초대하는 행위이기에, 하늘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입니다.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신앙 안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자랑거리입니다. 전교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다른 이들 앞에서 떳떳이 증거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여 믿지 않는 이들을 구원한 까닭입니다.

오늘은 전교주일이고, 10월은 전교의 달입니다. 전교는 신앙인의 본질적 사명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완성하고, 또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전교를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김영춘 베드로 신부
  |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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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모든 민족이 주님의 집이 있는 산에서 주님의 길을 걷게 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전합니다. 그 주님의 빛 속을 걸으며 구원이 이루어질 것임을 노래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권한으로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라 하십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미 세례를 받았다면 관상 기도를 통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그 광경에 함께 참여해 보시길 권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해줄 것입니다. 그 광경에 참여하면 하늘이 열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또한 하느님의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우리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세례의 광경을 관상하며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더욱 하느님과 친해져야 한다는 것, 하느님을 매일 만나 그분께서 얼마나 예수님과 자신을 많이 사랑해 주셨는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 자신도 예수님을 통해서 사랑을 전해야 한다는 것, 또한 성령께서 이끄시는 영성 생활을 통해 성령의 활력을 체질화한다면 주님의 의미 있는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그분의 가르침을 지켜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제자가 된다.”(요한 8,31)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에는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9-10)라고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육화하시게 하고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님의 수난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자기의 힘으로만 가려 한다면 힘든 길일 것이고, 주님의 주도권을 체험했다면 기쁜 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권한을 받아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며, 늘 곁에서 제자들이 그것을 실천하는데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고 격려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 살아가려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 서울대교구 김창훈 바오로 신부 : 2016년 10월 23일
  |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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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 말씀

마태오 복음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교회는 매년 전교주일에 듣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은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분이십니다. 전교 또는 복음화의 내용을 이 말씀에 따라서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분께 엎드려 절하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심하고 있었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괘씸하게 생각해 심하게 나무라셨을 텐데 예수님은 전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부족한 신앙을 탓하지 않으시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제자들과 함께 복음화 사명을 계속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저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 더러는 십자가와 부활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에게 얼마나 많은 의심을 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를 동업자로 여기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고 계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분임을 밝히십니다. 광야의 유혹 때, 악마는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며, 그것들을 주겠다고 속삭이면서,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도록 유혹했습니다(마태 4,9-10).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느님만을 섬기면서 십자가 죽음까지 묵묵히 나아가시고, 마침내 부활하셔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천지의 모든 권한을 받으셨음을 선포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파스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권한에 참여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됐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기도를 겸손하고 진실하게 바쳐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종교인을 만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하고, 그분의 모범을 뒤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을 하는 교회의 사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표현을 쉽게 합니다. 그래서 듣기 싫은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제자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마음의 표시로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해 선택하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 교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쉽게 교회에 올 수 없습니다. 교회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용기가 필요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십사고 성령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달리 표현하면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재 안에서 사람들을 새롭게 탄생시켜라.’ 왜냐하면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새로운 탄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비참해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가 사라지도록 사람들을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엄하게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인간이 서로 신뢰하면서 살 줄 알게 해줘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줄 알도록 해줘야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하느님 자녀로서 새로운 탄생을 가져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나라로 완성돼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 빛과 생명 속에서 살고, 진리와 참된 자유 속에서 살고,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지금 시작돼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서울대교구 주수욱 신부 : 2016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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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우리로서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올해 전교 주일 담화에서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일 수 없으며, 다만 자신의 목적대로 활동하다가 없어져 버리고 마는 다른 수많은 단체들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라고 역설하십니다. 참으로 교회는 선교성(宣敎性)을 잃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만민에게」, 즉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시(摘示)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로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구원의 길을 깨닫지 못한 이들의 마음이 열리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야곱 집안, 곧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빛 속에 들어오도록 초대합니다. 주님의 빛은 구원을 상징하며, 이는 주님의 교회를 통하여 선포되고 실현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선포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몇 년 전에 우연히 손가락 끝 마디가 잘려나간 수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멕시코에 선교사로 파견된 분이신데, 어느 날 미국으로 떠나는 트럭에 올라탄 멕시코 사람들에게 음료수를 서둘러 건네주시다가 발생한 사고 때문에 손가락 끝 부분이 없어진 것입니다. 저는 본래보다 어쩔 수 없이 짧아진 수녀님의 손가락을 보면서, 그분이 정말로 아름다운 삶을 사신다고 느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온다고 강조하면서, 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찬양하시면서 그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주어라(마태 28,19 참조)

2015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미국을 사목 방문하셨을 때에 언급하신 일화입니다. 언젠가 카타리나 드렉셀(Katharine Drexel)이라는 미국 여성이 레오 13세 교황님을 알현한 자리에서, 자기네 가문에서 세운 학교에 선교 사제들을 파견해 주실 것을 청원 드렸답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그런데, 자매님은요?”라고 반문(反問)을 하면서, 카타리나 드렉셀 스스로가 선교사가 되길 권하셨답니다. 카타리나 드렉셀은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곧바로 수녀회를 설립했습니다. 200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카타리나 드렉셀을 성인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고 하면서, 당신의 복음을 만민에게 전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소명을 똑같이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선교사여야 합니다.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복음의 기쁨」 20항)

2005년부터 우리나라 가르멜 수녀님들이 캄보디아 프놈펜에 진출해 수도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 수녀님들이 열대지방에서 몸으로 겪는 수고가 적지는 않지만, 사실 더 큰 어려움은 그리스도교의 불모지에서 봉쇄와 정주(定住) 생활의 뿌리를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나가서 선교하는 교회”(「복음의 기쁨」 17항 참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계십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복음으로 “근본적으로 새로운 삶”(「교회의 선교 사명」 7항)을 살게 됐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선물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에서 증인이 되라고 격려하십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말할 수밖에 없는”(사도 4,20 참조) 아름다운 삶으로 충만하시길 빕니다. 아멘.

▥ 서울대교구 정연정 신부 - 2017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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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장 귀한 사람에게 전하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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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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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잊어버리고 전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천주교 자체가 세상에 탄생되지도 퍼져나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복음 선포가 우리 천주교의 생명이요, 존재 근거라는 말씀입니다.
 
사제는 미사가 끝날 때마다 신자들에게 사명을 주어 파견합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그러면 신자들은 이 사명을 받고 대답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말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순명의 대답입니다.
 
'선교'하면 엄두를 못 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이고, 제가 얼마나 신앙이 부족한데요. 교리 지식도 없는 제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이끌어옵니까?"
 
그러나 선교는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목자로서 저는 새로운 성당에 갈 때마다 비슷한 체험을 합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어느 연령층이 선교를 제일 잘 할 것 같습니까? 많이 배우고 인생 경험이 풍부한 40, 50대가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엉뚱하지요. 뜻밖에도 초등학생들이 제일 잘합니다. 초등학생 중에서도 저학년들, 유치부, 1ㆍ2ㆍ3학년생들의 활약이 제일 뛰어납니다. 선교가 교리 지식이나 언변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하고자 하는 노력이 우선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유치부 학생들한테 "다음 주에 친구 한 명씩 데려오세요"하면 아이들은 "네, 신부님!"하고 가서 친구를 만나 "성당에 가자. 우리 신부님이 너 데리고 오랬어" 이렇게 손을 잡고 옵니다. 그리고 좀 지나면 아이를 혼자 못 보내는 그 부모가 성당에 따라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선교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른들은 먼저 여러 가지를 계산합니다. '내가 이 사람한테 얘기를 했다가 거절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자존심이 상하겠지. 나를 광신자 취급하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재고 저렇게 재다가 말도 못 꺼내고 스스로 주저앉고 말지요. 선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유창한 언어가 선교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둘이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주일 아침에 친구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어이, 친구, 오늘 골프 치러 가지 않겠는가?"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고맙네만 나는 오늘 성당에 가야 한다네."
 
그러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런가? 나는 자네의 믿음에 정말 감탄사가 나오네. 내가 그 동안 자네에게 일곱 번이나 골프를 치자거나 낚시를 하자고 했는데 성당 때문에 모두 거절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자네는 번번이 성당 때문에 내 청을 거절했는데 내 생각에는 성당이란 곳이 골프장이나 낚시터보다는 갈 만한 곳이 못되는 것 같네."
 
이 말을 들은 친구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성당이 골프장이나 낚시터보다 훨씬 중요하기에 친한 자네의 청까지도 매번 거절하지 않았는가?"
 
그 친구가 대답했지요.
 
"정말 자네에게 성당이 그렇게 중요한 곳이라면 왜 나에게 한 번도 같이 가자는 말을 안 했는가? 나는 낚시터와 골프장이 정말 좋아서 자네한테 가자고 그렇게 청했는데 자네는 그런 적이 없지 않은가?"
 
여러분들은 성당 오시는 것이 정말 좋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그 좋은 곳을 함께 가자고 제안을 하지 않습니까? 이웃에게 우리의 주님을 전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이웃 사랑이고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귀한 사람에게는 귀한 것을 선물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지요.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하는 한 주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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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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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   [인천] 믿음 없이 제대로 봉헌할 수 없다  [1] 104
507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독서와 복음(11월 21일)  [9] 161
506   [춘천/원주/군종/의정부] 참 아름다운 우리 성전  [4] 2151
505   [부산/마산] 거룩한 성전  [5] 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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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안동/대구]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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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   [청주] 행복에로의 초대  [1] 387
496   [안동] “예수님께 기도드리면 빨리 나을 거예요.”  [2] 656
495   [원주] 전교는 우리의 마음에서  [3] 374
494   [수원] 선교는 신자들의 진정한 생활의 표양이다.  [7] 1997
  [서울] 선교는 말과 행동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5] 2113
492   [대구] 전교와 신앙인의 삶  [5] 2057
491   [의정부] 불리움에서 파견으로  [5]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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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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