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84.4%
[전주] 믿는 것을 삶으로 증거하자.
조회수 | 1,934
작성일 | 08.10.14
가을 들판은 씨 뿌리고 땀 흘려 가꾼 것들이 맺은 열매와 결실이 가득합니다.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과 과일들, 벌써 속이 차오르는 채소들이 풍요롭기만 합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면 열매를 맺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신앙생활에서도 뿌려야할 씨가 있고 거두어야할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제때에 열매를 맺고 결실을 내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떤 결실을 내고 있는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맺어야할 열매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갈릴레아에 있는 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열매 맺어야할 신앙의 결실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 신앙생활의 열매입니다.

얼마 전 가톨릭신문 창간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이라는 조사결과에서 ‘지난 1년간 이웃이나 비신자에게 신앙을 권유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0명 중의 3명만이 ‘신앙을 권유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7명 이상은 ‘전혀 없다 혹은 별로 없는 편이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10년 전에 비해서 선교를 위한 실천이 훨씬 낮아진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천주교 신자들의 전교 열의가 전반적으로 낮을 뿐 아니라, 과거에 비해 전교를 위한 실제적인 노력의 정도가 많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본당에서 생활하다보면 선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신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도 ‘선교’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 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신앙을 전하는 일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은 아직 주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신앙을 통해 삶에 기쁨을 얻고, 희망을 얻고, 힘을 얻는 다면 인생의 그늘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어둠 속을 헤매는 세상에, 삶의 언덕에서 주저앉은 이들에게 그 믿음을 전하는 일은 기쁨이고 보람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유행한 노래 가사 중에 ‘사랑은 아무나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인연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통속적인 이치를 노래한 것이지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일은 마음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눈이라도 마주쳐야하고 또 그 사랑을 고백함으로써 사랑의 결실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 신앙을 주신 분을 알아보는 것이고, 그 분께서 바라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된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믿는 일과 고백하는 일이 하나로 될 때에 비로소 신앙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이 그저 마음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일로 그치고 말 때에 그 신앙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은 ‘고백’을 통하여 결실을 맺어야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그 신앙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이 고백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신앙의 열매도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맺는 열매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풍성한 열매를 맺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나 덜 떨어진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신앙을 ‘고백’하며 사는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맺지만 ‘고백’없는 신앙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은 생활도 활기가 차고 생기가 넘치지만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른 나무처럼 생기를 잃고 마는 것을 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믿는 것을 삶으로써 증거하는 일을 통해서만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께서 뿌리고 가꾸신 사랑의 열매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

전주교구 김영수 신부
450 84.4%
[전주] “당신들의 하느님을 믿고 싶소.

----------------------------------------------------

일본이 진주만 전쟁을 일으키기 전 미국으로 이민 간 일본인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 교외에서 장미 농장을 경영했다. 이들 농장 옆에도 스위스에서 이민 온 부부가 장미 농장을 경영했다. 두 집의 농장 사업은 모두 잘 되었고,두 가정은 좋은 이웃으로 잘 지냈다. 함께 차도마시고 장미를 잘 키우기 위한 정보도 나누었다. 또 일주일에 여러 차례 샌프란시스코로 나가 함께 장미를 팔기도 했다. 스위스에서 이민 온 부부는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일본인 부부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했다. 그때마다 일본인 부부는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미국 정부는 일본 이민자들을 수용소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콜로라도 수용소에 가게 되었다. 콜로라도로 떠나야 하는 일본인 부부는 그동안 삶의 터전인 장미 농장을 그대로 둔 채 떠나는 것이 무척 가슴 아프고 절망적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이웃 스위스인 부부가 위로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들이 없는 동안 잘 돌보겠습니다.” 일본인 부부는 겉으로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미심쩍었다.

‘과연 저들이 남의 농장을 제대로 돌보아 줄까? 우리가 없는 사이에 우리 농장을 차지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런 그들의 생각을 눈치 챈 스위스인 부부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를 믿을 수 없다면 저희가 믿는 하느님을 믿으세요.”

일본인 부부는 콜로라도 수용소에서 2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중앙역에 도착하니 스위스인 부부가 플래카드를 들고 그들을 환영하는 것이 아닌가! 플래카드에는 “집에 돌아오게 되심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집에 와 보니 농장은 잘 관리되어 있었고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 있었다. 이 놀라운 광경 앞에서 일본인 부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부엌에 들어가 보니 테이블 위에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었고, 그 옆에 예금통장이 놓여 있었다. 그들이 콜로라도에 가 있는 동안 스위스인 부부가 그들의 장미 농장을 운영하면서 농장에서 나온 수익금을 모두 저금해 놓았던 것이다. 통장 옆에는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라고 쓰인 카드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카드를 읽는 순간 일본인 부부는 너무도 감격하여 “당신들의 하느님을 우리 하느님으로 믿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 송봉모)

이런 게 선교 아닐까요?

-----------------------------------------------

전주교구 정동수 안드레아 신부
2018년 10월 21일
  | 10.17
450 84.4%
[전주] 산에서

---------------------------------------------------

제자들이 복음 선포의 사명을 받은 곳은 어딘가? 산이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마태 28,16).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께서 산에서 제자들에게 이르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이하).

제자들의 사명과 본질이 무엇인지 하는 것은 살아생전 주님께서 사도들을 뽑으시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분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4-15). 주님께서 당신의 대리자로 파견하실 제자들에게 사명과 권한을 주시는 이 사건도 산에서 일어난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다가왔다”(마르 3,13).

왜 하필이면 산인가?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을 만나 하느님으로부터 법을 받아 이스라엘에 전했다. 이제 여기 모세보다 더 큰 분이 계신다. 모세는 하느님의 등밖에 볼 수 없었지만(탈출 33, 18-23참조), 하느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시는 분께서 이제 이렇게 말씀하신다. 당신을 보는 것이 하느님을 보는 것이며, 당신의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라고. 당신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것과 한치의 오차도 없으며 바로 아버지에게서 오는 것임을, 예수님께서 자주 산에 가셔서 오랫동안 밤새워 기도하셨다는 사실이 입증한다.

교회가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결국 제자들이 산에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과 권한을 기억하고 행한다는 것이다. 세상 끝까지 떠나갔던 제자들이 다시 산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음 선포를 위한 모든 활동과 노력이 흘러나오는 원천이요 다시 되돌아가야 할 봉우리. 이것 없이는 그 모든 것이 끝내는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전하는 게 되고 말 것 아닌가.

--------------------------------------------

전주교구 김혁태 신부
  | 10.17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510   [수도회]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1] 136
509   [청주/수원] 참된 가족  [2] 105
508   [인천] 믿음 없이 제대로 봉헌할 수 없다  [1] 104
507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독서와 복음(11월 21일)  [9] 161
506   [춘천/원주/군종/의정부] 참 아름다운 우리 성전  [4] 2151
505   [부산/마산] 거룩한 성전  [5] 2190
504   [광주/전주] 당연하다  [1] 8
503   [안동/대구]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 10
502   [서울] 우리의 내적 성전  [2] 2009
501   [수도회] 성전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  [4] 1903
500   [수원] 성전 정화 = 단순한 삶  [1] 350
499   [인천] 나를 필요로 하시는 주님  [4] 1916
498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독서와 복음 (11월 9일)  [23] 1698
497   [청주] 행복에로의 초대  [1] 387
496   [안동] “예수님께 기도드리면 빨리 나을 거예요.”  [2] 657
495   [원주] 전교는 우리의 마음에서  [3] 374
494   [수원] 선교는 신자들의 진정한 생활의 표양이다.  [7] 1997
493   [서울] 선교는 말과 행동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5] 2114
492   [대구] 전교와 신앙인의 삶  [5] 2058
491   [의정부] 불리움에서 파견으로  [5] 2035
1 [2][3][4][5][6][7][8][9][10]..[26]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