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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야할 복음
조회수 | 1,742
작성일 | 08.10.14
얼마 전, 한 선교사의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차!'하는 생각과 함께 그간 전화 연락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앞섰습니다. 어머님 말씀 요지는 아들이 보고 싶어 죽겠는데,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요즘은 기력도 많이 떨어지고 세상 뜰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번이라도 봐야 될 것이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궁금해 죽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 아드님은 통신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오지 가운데 오지로 파견돼 사목 중이기에 한번 연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수도자이기에 앞서 자식인 아들을 향한 어머님의 안타까움이 한동안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해외 선교사들이 어찌 그리 존경스럽고 부러워보였는지 모릅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예수님을 추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자아를 버리고 보다 큰 가치관이신 예수님을 가장 철저히 추종하는 열렬한 신앙인들입니다. 그래서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저 역시 지원자 시절부터 해외 선교를 간절히 원했지요. '선교사'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마음 속에 불길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왠지 낭만적이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선교 성소는 희망한다고 다 되는 것이 절대 아니더군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인 듯합니다.

안정된 생활 기반도, 사랑하는 가족들도 뒤로 하고,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지구 정반대 편으로 떠나가는 선교사들 삶을 묵상해봅니다. 모든 것이 생소한 선교지에 처음 도착해보면 우선 다가오는 것이 막막함이겠지요. 갖은 한계들과 투쟁이겠지요. 물론 선교사로서 보람이나 기쁨, 낭만이나 긍지도 크겠습니다. 그러나 매일 다가오는 고통과 끊임없는 십자가를 견뎌내느라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해외선교는 성소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성소, 가장 복음적 성소,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성소,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는 성소인 것입니다. 해외선교는 성소 중 성소이자 성소의 꽃, 성소 여정의 정점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단 한번도 예수님 복음을 접해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 가더라도 맛보지 못할 값진 감미로운 생명수, 그 어떤 교훈과도 비길 수 없는 소중한 말씀, 가장 값진 은총의 선물인 예수님 복음을 우리 안에만 간직하고 있다면 안 될 말입니다. 그래서 전교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 의무이자 가장 우선적 사명입니다.

오늘, 전교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 지향은 '민족들의 복음화'입니다. '전교' '복음화', 이런 말들 앞에 우리는 갑자기 부끄러워지고 몸 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전교는 우리 교회가 지니고 있는 가장 본질적 사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전교' 하면 왠지 부담스럽습니다. '나 아닌, 열심한 그 누군가의 몫이려니' 하고 외면합니다.

오늘 전교주일을 맞아 전교에 대한 지나친 소극성, 해외선교에 대한 무관심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 많은 청소년들 마음에 성소 중의 성소, 불같은 선교 성소가 활활 타오르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또 우리 모든 신앙인들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열정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젠 우리도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가끔씩 선교지에서 편지가 도착합니다. 심신은 비록 고달프지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손수 집도 짓고, 아이들을 위해 팝콘도 튀기는 신부님, 이 세상 어딜 가도 마땅히 머리 눕힐 곳조차 없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신부님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편지에 잘 담겨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선교사는 매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선교지의 참혹한 상황을 낱낱이 소개하며 마음 아파합니다. 그러나 결코 희망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처참하리만치 열악한 상황이지만 그 선교사는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우리 마음에 고이 간직된 복음, 우리끼리만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복음, 우리 민족만의 복음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복음은 점점 더욱 큰 동심원을 그리며 세상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는 세상 만민의 복음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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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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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장 16-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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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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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아프리카 수사님의 ‘임마누엘’이라는 수도명에 대해 덕담으로 해드렸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수사님의 수도명이 참 좋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뜻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느님이 늘 곁에 계셔서 수사님을 보호해주실 것이니 아무도 수사님을 다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 모두가 ‘임마누엘’입니다. 도대체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겠다는 주님의 이 약속 말씀,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지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견디기 힘든 것이 외로움과 고독일 것입니다. 대부분 이해가 얽힌 인간관계인지라 젊고 힘 있고 재물 있을 때는 많이도 찾았는데 늙고 힘 없고 재물 없으니 찾는 사람도 없고, 아파도 혼자 아파야 하고 죽어도 혼자 죽어야 하니 참 고독하고 외롭기만 한 게 중년 이후의 삶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이가 들어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외로움과 고독을 충만한 기쁨으로 바꿔주시는 분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께 대한 철썩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아름답고 품위 있는 노년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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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도회 이수철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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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6-­20)

우리의 신앙에 공통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준 성경의 인물 셋을 꼽으라면 아브라함과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약속하시고, 세상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되어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차별 없이 세상 모든 민족이 그분의 백성이 되도록 하셨으며, 바오로 사도로 인해 이방인들은 유다인들이 졌던 율법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단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억하며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서 드디어 예수께서 이루신 사명을 제자들에게 인수인계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아직 미완성이기에 제자들이 이 사명을 이어받습니다.

“열한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산으로 갔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5-­16) 갈릴래아는 예수께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제자들과 함께 공생활을 시작한 장소요 공생활 대부분을 보냈던 삶의 터전, 추억의 장소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인계하실 장소로 제자들에게 익숙한 갈릴래아를 선택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여인들에게 나타나신 예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만 보았던 예수님의 빛나는 모습을 이제 모든 제자가 함께 보게 되었지만 더러는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늘 하느님의 현존과 함께 있으면서도 인식하지도 믿지도 못하는 우리의 의심이기도 합니다.

이제 제자들은 권능을 가지신 분에게 사명을 인수합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황 베드로 수녀님의 <크는 달>이란 동시가 있습니다.

‘지구가
비켜주는 만큼
달이 크고
욕심
덜어낸 만큼
별빛이 맑다.’

지구가 완전히 비켜주는 날, 달은 온전한 모습의 보름달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요한 13,16ㄴ)

그런데도 당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듯이 제자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섬기는 권위로써 보름달이 되도록 이제 예수님은 자리를 비켜주십니다. 조금의 사심도 없는 인수인계인지라 그 빛이 맑고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때가 되면 사라지는 아름다움은 구약의 모세한테서도 빛났습니다. 그는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하느님과 고집 센 백성 사이에서 몸고생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하느님은 모세에게 “너의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간 것처럼 너도 네가 올라간 땅에서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가야 한다”(신명 32,50), “너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을 멀리 바라보기만 할 뿐 들어가지는 못한다.”(신명 32,52)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한마디 항의도 하지 않고 순순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사명을 맡기고 죽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요한 17,4)

착한 목자이신 예수께서는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요한 10,16)고 하셨는데,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예수께서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려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야 힘 있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배반자 유다의 자리를 대신하여 사도를 뽑을 때 베드로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처음부터 마지막, 부활과 승천까지 함께했던 이를 루카는 ‘사도’라 했습니다.

열두 사도는 아니지만 특별하고 위대한 소명 때문에 사도라 불린 바오로는 파견되지 않으면 선포할 수 없고, 선포하는 이가 없으면 믿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외쳤습니다.(로마 10,14-­15 참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이천 년이 넘는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오늘의 우리도 탈레반에게 인질로 잡힌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그분께서 심판관이 되시기를, 평화를 위장한 이라크 전쟁 때도 핵무기·살상 무기들이 보습이 되고 낫이 되길 바랐습니다.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서로 총칼을 겨눌 때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 않게 되기를 염원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데 세상은 왜 더 힘들어지는지…. 성찰하면 교세의 양적 확산보다 질적인 양성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됩니다. 민족들의 복음화 이전에 내가 얼마나 복음화되어 있는지 돌아보면서 낙담 중에도 “보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약속에 의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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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세라피아 수녀 (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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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제2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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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수도원에 저하고는 달리 정말 수도자답게 생긴 형제가 있습니다. 마음도 천사처럼 곱지만, 외모도 그럴 듯하게 예수님을 빼닮았습니다. 그 형제가 언젠가 볼일을 보러 지방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올라올 때 열차 안에서 생긴 일입니다.

맞은편에 앉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계속 그 형제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대뜸 "혹시 신부님이나 수사님 아니세요?" 하더랍니다. 평복 차림이었던 형제는 깜짝 놀라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더니 아주머니가 "벌써 얼굴에 쫙 써 있는데요" 하더랍니다.

그 형제가 겪은 일을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수도자로서 삶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보다 마음을 비우고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내면을 갈고 닦아야 할텐데… 그런 노력이 우리 얼굴을 통해서도 드러나야 할텐데… 세상 사람들은 그런 우리 얼굴을 보고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수 있어야 할텐데…'하는 마음 말입니다.

'∼답다'는 말은 언제 사용합니까? 주어진 신분이나 직책에 걸맞게 살아갈 때 '∼답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발자취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은 복음선포에 가장 기본적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선포를 위해 책자를 나눠주고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선교를 하는 노력들, 참으로 소중하고 눈물겨운 노력입니다.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도 끈질기게 집집마다 방문을 해서 천주교를 알리는 일 역시 효과적 선교를 위해 진정 중요한 노력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욱 근본적인 일이 있습니다. 복음선포를 떠나는 우리의 내적 준비입니다. 먼저 세상 때에 찌든 우리 헌옷을 과감하게 벗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제2의 그리스도,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화되지 않고,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따라 살지 않고 복음선포의 길을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색한 일입니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하루 운수가 어떨지 화투로 패를 떠보는 사람, 때만 되면 점집이나 역술가를 찾는 사람이 복음선포를 한다고 돌아다니면 세상 사람들이 다 웃을 것입니다. 사기나 유리로 만든 그릇은 부부싸움 하느라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으로 된 그릇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참으로 설득력 없는 복음 선포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선포는 무엇보다도 삶을 통한 복음선포입니다. 우리 존재 자체로, 우리 삶을 통해 복음 선포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얼굴만 봐도 '저 사람들은 힘겨운 가운데서도 왜 저렇게 기쁜가?', '나도 한번 신자가 되어보고 싶다'고 결심할 정도로 기쁘고 열정적인 삶,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최상의 전교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 신부님을 바라볼 때, 저는 마치 예수님을 보고 있는 듯해요."

한 신자가 찾아와서 제게 한 말입니다. 저는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았으며 그분이 한 말에 대해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제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제 말에 그분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예수님께서는 정말 우리 가운데 계심을 확신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체험같지요? 솔직히 제가 한 체험이 아니라 우리 시대 대영성가인 헨리 나웬의 체험담입니다. 헨리 나웬이 겪었던 그 소중한 체험이 이번 전교의 달 우리의 화두(話頭)가 되면 좋겠습니다. 헨리 나웬이 했던 그 아름다운 체험을 우리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우리 매일의 삶을 바라보면서 이런 말들을 하도록 우리 삶을 한 차원 높이길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사람입니다. 우리 엄마는 하늘에서 갓 내려온 천사라니까요. 우리 수녀님 얼굴만 봐도 마음이 다 편안해져요. 우리 신부님 옷자락에서는 예수님 향기가 나요.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계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전교주일을 맞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예수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리스도화'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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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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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선교는 신앙인의 중요한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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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21세기를 맞으면서 상생과 공존을 외치던 화려한 구호가 무색하게 금세기 들어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는 국제적인 전쟁과 테러,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로 움직여지는 약육강식의 각축전 배후에서 종교가 교묘하게 이용되고 있어 “차라리 종교가 없어지는 편이 낫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교를 움직여 가는 것도 사람의 일이라, 애초의 좋은 의도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해관계의 고리 안에 말려들게 됩니다. 한반도 통일 후의 종교정책을 염려하는 분들은, 현 시점에서 종교 간의 대화나 화합을 이루지 못하면 통일 후에 한반도는 교세 확장의 각축전으로 볼썽사나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초세기부터 선교를 본질적 사명으로 생각해 왔고, 오늘날에도 선교는 신앙인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내게 좋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전파할 수 있었던 힘은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투철한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확고한 신념은 마태오 복음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확고하게 전해집니다. 예수께서 참된 행복과 율법의 참뜻을 산 위에서 장엄하게 선포하신 것처럼(마태 5-7장, 산상설교), 이제 부활하여 승천하시는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당신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전권 선언).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전도 명령).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현존 약속).”

‘이방인의 갈릴래아’(마태 4,15)라고 하였듯이, 갈릴래아는 세상의 권세가나 부자, 기득권자가 살던 땅이 아니라 그야말로 오합지졸의 민중이 모여 살던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소외의 땅에서 예수께서 이스라엘 전도를 시작하셨다면, 이제 그분의 제자들도 이방인을 상대로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을 선포하고, 그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모아들여야 할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만국이 그리로 물밀듯이 밀려들리라. 그 때 수많은 민족이 모여 와서 말하리라. ‘자, 올라가자, 주님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께서 계신 전으로’”(이사 2,2-3). 제1독서의 말씀은 만민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나가 되는 종말론적 전망을 잘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으신 우주적인 통치권자이며 모든 민족을 다스리는 통치자임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권세가 아무리 판을 쳐도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사랑의 힘이 세상을 이길 것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평화의 사도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면, 구원의 기쁜 소식은 민족의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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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수도회 최혜영 엘리사벳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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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전교는 생활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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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초저녁잠이 많으시고 아침잠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시어 아침기도와 묵주기도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저의 아침잠을 깨우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견디다 못해 하루는 어머니께 아침기도를 다른 시간에 하시면 안 되는지 불평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제 불평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할 일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성당에 나가서 교리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신자가 되어, 지금은 수도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약 30여 년 전 주님의 품으로 떠나신 어머니를 떠올려 보면 어머니는 자신의 생활로써 저를 전교하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전교 방법은 다름 아닌 생활이었습니다. 그 생활 안에는 어머니의 따뜻하고 훈훈한 사랑,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28,16-20)에서 제자들은 갈릴래아를 떠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으로 가서 예수님을 뵙고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는 지상명령을 받습니다. 복음을 온 세상에 알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노력하는 교회’(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1항)는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에페 4,24)는 내용과 “하느님과 화해해야 된다”(2코린 5,20)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고 회칙, ‘현대의 복음 선교’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때 사람들을 인품으로 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백인대장의 종을 살리시는 모습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모습에서, 세리들과 음식을 함께 하시는 자리에서,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고 눈먼 두 사람을 고치시는 모습에서, 그리고 간음하다가 발각된 여인을 대하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말보다는 몸으로 보여 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체험을 나누는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믿는다는 것은 그 말이 진실이며 논리적이라는 것일 뿐 꼭 그 말을 믿는다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진실이지만 무엇보다도 말하는 사람이 진실해야 합니다.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은 복음의 내용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됨됨이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건 간에 사람의 됨됨이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 종교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됨은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하루 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생활에 걸쳐 쌓여진 것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수도자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보다는 복음의 내용으로 살고 있는지 우리를 바라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보다는 예수님처럼 살고 있는지 우리를 바라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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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주회 정원순 토마스 데 아퀴노 수사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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