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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전교와 신앙인의 삶
조회수 | 2,057
작성일 | 08.10.14
지난해 이곳에 부임한 후 어느 공소를 처음 방문했을 때 였습니다. 거기 계시던 교우들이 명색이 본당 신부라고 저에게 보여주신 환대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대접이 좋았다기보다는 오랫동안 배여온 그분들 신앙의 삶 때문일 것입니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은 과거 본당 신부님들의 삶과 일화를 종종 말씀하십니다. 본당 초기, 수사 신부님의 신자들에 대한 헌신적 사랑과 자기 것을 아낌없이 내어 놓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본당 사제에 대한 교우들의 지극정성을 들을 때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지금은 미사시간에 서있기조차도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어서 활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곳은 그렇게 살아오신 본당 어르신들의 삶의 장소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사를 보면 그 뿌리요 중심은 바로 평신도입니다. 평신도가 먼저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평신도가 스스로 교리를 공부하고 평신도가 먼저 중심이 되어 천주교를 알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곳곳에 교우촌이 형성되었습니다. 한국 교회 초기에 사제들의 수가 적었음에도 교회가 발전한 것은 옛 교우분들의 뜨거운 신앙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 당시 선교 사제들의 헌신적 삶의 모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분들이 살았던 그 삶의 터에는 기념성당이 세워지고 성지가 되었습니다. 그 터는 그렇다하더라도 그분들의 후손인 오늘날 천주교 신자들의 삶의 자리는 대도시에로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과 열성까지도 그대로 전해져 옮겨졌는가를 생각하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사에서 전교는 신앙선조들의 삶과도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전교는 우리 믿음의 삶으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선교와 선교사를 성체성사 내지는 성체에 비유하십니다(2005년 전교주일 담화문). 천주교를 전하고 우리 삶이 복음화 되려면 주님처럼 자신을 헌신하는 희생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냥 참새처럼 재잘거린다고 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전교주일을 지내면서 복음 선포의 열정이 다시 한번 끓어오르기를 희망합니다. 사제인 저 역시도 그렇게 살기를 다짐합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일할 수 있고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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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이재희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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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발을 가졌는가?

큰발, 작은 발, 예쁜 발, 마당발... ‘그 사람 참 발 넓다’ 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세상은 참 좁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발 하나만 가지고 비행기만 타면 하루 만에 갈 수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와 인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점점 좁아진다고 합니다. ‘좁은 세상 이론’ 혹은 ‘분리 6단계 이론’ 에 따르면, 서로 모르는 사람도 여섯 사람만 거치면 아는 사람과 연결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1967년 하버드대학의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실험에 의하면, 특정인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5.5명을 거치면 편지가 전달된다는 이론입니다. 2006년 6월, 이 이론을 뒷받침할 발표가 있었는데, MSN 메신저 네크워크 데이터의 3백억 개의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까지 연결되는데 평균 6.6단계를 거치면 연결된다는 흥미로운 결과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국 통신회사에서 6단계도 거칠 필요도 없이 3단계만 거치면 바로 연결된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몇 가지 관심 있는 분야에서의 공유 네트워크를 통하니까 평균 3단계까지 줄어들었다는데 그 이유가 공유 네트워크, 이메일, 휴대폰 등의 통신수단의 발달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세상 참 좁아졌다는 것과 이제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마당발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경우로 한창 계산기를 놓고 두들겼던 기억이 납니다. 30분 안에 두 사람에게 복음말씀을 전하고, 그 사람도 차례로 30분 안에 두 사람에게 전해주면 우리나라 전 국민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하루면 된다는 것입니다. 근거있는 것인지 나름대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얼마전 개신교 신자와 선교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당에 관한 궁금증으로 찾아와서는 이것 저것 물어봅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배웠다고 합니다.

자신들은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로마 10,10)라는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자하는 마음이 생겨서 자신도 열심히 전해주었는데, 천주교 신자들은 전교에 열심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 ‘나는 씨를 뿌리고 아폴로는 거두었다’ 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이야기하면서 받아들이는 사람에 관계없이 말씀의 씨를 뿌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선교관을 이해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들만의 구원에 대한 개인적이고 주관적 확신이라고 폄하해 보지만, 한편으론 천주교 교우들의 선교에 관한 열성에 대하여 반성해 보게 됩니다.

선교는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인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을 일컫는 말씀으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태 28,19-20)

둘째는 선교는 교회의 본성 혹은 본질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선교하면서 자녀들을 낳고 끊임없이 성장하는데 이는 교회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선교하지 않으면 교회 존재는 사라지고, 텅 빈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서 존재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교회를 교회이게 하는 것이므로 본성적으로 선교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례받은 우리 자신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교회의 사명이고 본성인 선교는 우리 자신들의 의무이자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 는 예수님의 현존, 우리와 항상 가까이 계시는 그분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열정의 근원이고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마당발을 가진 여러분, 기쁜 소식(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도 지녔으면 합니다.

김봉진 안드레아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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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선교 명령

갈릴래아로 제자들을 불러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명령’을 내리시며 파견하십니다. 마지막 파견의 자리인 갈릴래아는 제자들이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된 장소입니다. 마지막 파견의 자리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그 첫 마음을 기억하면서, 모든 민족들을 향하여 사명을 수행하도록 파견하신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제가 신학교 면접을 볼 때 교수신부님이 “왜 신학교 오려고 하느냐?” 하는 질문에 얼떨결에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 주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그런 첫 마음의 순수함을 아직도 가슴에 담고 사는가? 라고 반문해 봅니다.

하느님을 살아있는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기쁘게 살고 있을 때 하느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멀리 가서 선교할 수 있는 힘도 가까운 나부터 하느님으로 충전되어 살 때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기쁨과 감동을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요.“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나의 능력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충실성과 그분의 섭리에 대한 신뢰로 주님의 유언과 같은 ‘선교 명령’을 수행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 대구대교구 최광경 비오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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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태어나는 곳은 병원이고, 죽음을 맞는 곳도 병원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중증환자들은 상당 기간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으며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러므로 치료뿐만 아니라 먹고 잠자는 일상생활까지도 이루어지는 병원 안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개인적, 가족적, 사회적, 종교적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암 환자나 중증재활 환자들은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통증과 더불어 심리적인 절망과 치유에 대한 희망이 교차 반복되면서 차츰 삶의 활기가 소진되기 쉽습니다.

병자성사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치유역량과 어머니 품 같은 위로는 이러한 환자들에게 교회의 복음 선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인간으로서 몸과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때, 적절하고도 풍성한 도움을 효과적으로 제공해 주는 의료선교의 활동을 더 많은 이들이 요청하고 있습니다.

특히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누구나 그동안 건널 수 없었던 가족 간의 갈등조차도 아름다운 화해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바로 이러한 극적인 때, 예수님 손을 잡고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고자 하는 이들에게 의료선교 봉사자들은 큰 용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습니다.

지난 추석 전날 제가 일하는 전인병원에서는 사별가족들과 특별한 감사미사를 드렸습니다. 미사를 통해 사랑하는 이를 천국으로 보낸 사별가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보듬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전인적 치유사업을 본받아 환우의 육체적 회복과 더불어 영적인 구원을 지향하는 의료선교 사업에 더욱 많은 교회 공동체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는 또 다른 하느님의 집으로서 병원은 훌륭한 전교 장소입니다. 전교 주일을 맞아 특히 병원사목에 매진하시는 사제, 수도자 그리고 봉사자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당부 드립니다.

▮ 대구대교구 손기철 베드로 다미아노 신부 : 2016년 10월 23일
  |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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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와 선교는 그리스도교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처럼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성인들이 복음을 선포하였고, 그 복음을 지키는데 목숨을 바쳤으며,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단순히 경쟁자와 땅따먹기 하는 게임이나 기(氣) 싸움이 아닙니다. 물론 과거 교회 역사의 몇몇 시기에는 그런 경쟁적인 욕심으로 다른 신앙과 문화를 가진사 람들을 핍박하거나 자기들의 세를 불리는데 집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복음화가 아니었습니다.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선교는 더 이상 복음화가 아니며 오히려 더 큰 갈등과 상처, 무엇보다 씻을 수 없는 깊은 원한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는 지금도 우리는 종교와 정치, 사상과 인종, 문화의 대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바라봅니다. 더 나아가 가슴 아픈 과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머나먼 다른 나라 뉴스가 아니라 우리 눈앞의 현실로 다시 접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두렵고 걱정됩니다. 이런 걱정 때문인지 주변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정답이고 정의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강대 강의 대립만이 진정 우리가 살 길이고 복음화의 방법일까요?

이 험난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보다 더 큰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엄중한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을 근거 없이 흥분시키고 분노케 하고 거침없는 막말을 쏟아내는 사람, 그런 험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우리의 평화를 깨트리고 복음을 거스르는 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히려 진정한 복음화는 사랑과 인내와 용서의 연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것은 폭력과 위협으로 상대를 물리치고 세를 불리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싸 안고 용서하고 배려하고 도와줌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명령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요? 맞습니다.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바르고 좋은 일에는 반드시 수고와 인내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열악하고 위험한 선교지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대립과 갈등이 만연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사랑의 선교사명을 새롭게 각성하고 실천해야할 때입니다.

▥ 대구대교구 강진기 베드로 신부 - 2017년 10월 22일
  |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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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선교의식을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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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방문을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자매께서 “신부님, 제 남편 성당에 나갈 수 있게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신부님께서 말씀하셔야 다닐 것 같습니다.” “성당에 나가자고 권유한 적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10년 동안 한 번도 성당에 나가자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 성격이 성당에 나가자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예비자 환영식 때의 일이다. 예비자 중 한 사람이 한 형제를 보더니 매우 기뻐하면서 인사를 했다. 그 형제는 예비자가 2층에 세들어 사는 집 주인이었다. 5년 동안 그 집에 살았는데도, 주인이 성당에 다니는지 몰랐다고 한다.

전교주일을 맞아 우리의 선교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주님께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요한 15,16) 주님께서는 왜 나를 택하셨겠는가? 그것은 당신 일이 보잘 것 없는 나를 통해서 계속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예수께서
공생활 초기 때부터 “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일을 하도록 나를 보내셨다”(루가 4,43)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사명은 분명히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일이고 사명이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마태 28,19) “온 세상 사람들에게”(마르 16,15) “땅 끝까지”(사도 1,8) 파견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라고 하신다.

이러한 우리의 사명을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자로서 파견되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4.15) 라고 파견 받은 자로서의 사명과 기쁨을 표현한다.

초대교회가 선교함으로써 생명력을 키워 갔듯이 오늘날 예비자 감소, 냉담자 증가라는 교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로부터 파견 받은 자로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깊이 깨닫고, 선교의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단순히 교세확장으로서가 아니라 자신과 교회의 모습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비추어 참다운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생활로 끊임없이 바뀌어 나갈 때 선교의 결실은 더 충실히 맺을 수 있다. 선교의 결실은 우리가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충실히 따르고, 어느 누구도 배제없이 이웃을 찾아가고, 기도와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때 성령께서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라고 하신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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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 충 F. 하비에르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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