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66.8%
[마산] 신앙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조회수 | 2,219
작성일 | 08.10.14
오늘은 전교주일이다. 온 세계 교회가 '선교가 교회의 근본 존재사명 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마련된 주일이다.“신앙은 자유인데, 남에게 나의 신앙을 권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인가?”아무도“나에게 신앙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1. 종교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가?.

동물은 자기에게 주어진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에 어떤 갈등이나 고뇌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를 지닌 존재이기에 매 순간 갈등과 번민을 할 수밖에 없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하고 찾아보아야 하는데, 자녀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좀더 검소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런 저런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잘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는 것만큼 살 수 있으면’ 다 성인이 될 것이다. 아는 것을 사는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고해소에서 고해를 듣다보면, “신부님, 저는 주일도 계속 빠지고, 아침저녁 기도도 하지 않고 너무나 하느님과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하고 고백한다. 이 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말은“집사람과 자주 싸우고, 아이들에게 야단만 치고, 대인관계에서 자꾸 실수를 하고, 생활이 무질서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하는 고백이다. 모르긴 뭘 모르는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주일 미사도, 아침저녁 기도도 하지 않고 살다보면, 자신을 하느님 앞에 비춰보며 반성하고, 잘못을 제때에 뉘우치고, 새로운 결심을 하며 살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마치 낙엽이 물에 떠내려가듯이 시간 속에 그냥 떠밀려 가는 삶이기에 생활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하느님 앞에 새롭게 바로 세울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음미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자유를 지닌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을 다스리는 힘을 가진 사람만이 인간다울 수 있다.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한번의 결심으로 어느 순간에 생기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신앙 안에서 길러지고 강화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요즘 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가난을 비관한 자살도 있고, 재벌 2세의 자살도 있다.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때로는 정말 “모든 것이 끝장이다.”싶은 절망의 순간, 희망이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없어 보이는 경우를 누구나 당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게 될 때, 신앙이 없는 사람은 대개는 자살을 하거나 머리가 뺑 돌아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리고 기적처럼 회생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참으로 신앙은 강한 것이다.

암환자는 대개 죽는 순간까지 정신이 초롱초롱하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옴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을 가까이에서 돌보며 죽음을 지켜보는 호스피스들은 신앙이 있는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비 신앙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너무나 다르다고 말한다. 비 신앙인에겐 이 세상이 전부이기에 죽음은 절망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새로운 세상에로 옮아가는 과정이며 진통인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고통 그 자체도 자신의 일생의 죄와 허물을 속죄하고 정화하는 마지막 세례로 받아들인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제사와 합쳐 바칠 수 있는 향기로운 제물인 것이다.

2. 신앙보다 더 큰 유산은 없다.

우리는 이상에서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신앙이 얼마나 큰 힘을 주는 것인지를 잘 보았다. 사실 자녀들에게 돈을 몇 억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보다 어디 내 놓아도 혼자서 반듯하게 살 수 있는 신앙을 길러주는 것이 훨씬 더 큰 선물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웃에게 “신앙생활을 한번 해보시지요" , “함께 성당에 가봅시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왜인가? 괜히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아니면 “남 걱정말고 당신이나 열심히 다니시오.”“성당 다니는 당신이나 안 다니는 나나 뭐가 다른데!”하며 무안을 줄까봐?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신앙 같은 것, 하느님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항상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달리 말하면 인생을 살면서 신앙만큼 누구에게나 필요한 상품(?)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설령 내가 "당신도 신앙을 가져보시지요" 하고 권했을 때, 당장은“필요 없다.”고 거절하더라도, 언젠가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는 내가 뿌린 신앙의 씨앗이 싹을 틔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언제나 복음을 전해야 하는”(2디모4,2) 것이다.“새 순이 돋아나지 않는 가지는 죽은 가지이다.” 선교를 통해 새로운 신앙의 싹을 틔우지 못하는 신자는 죽은 신자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미리 미리 많은 공(功)을 들여야 한다. 갑자기 예비자를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앙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

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
450 66.8%
“브랜드 가치”

전례력 지침을 보면 “오늘은 전교 주일 이므로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드린다. (교황 비오 11세, 지역교서 Romanorum Pontificium, 1922년 5월 3일. 인류 복음화성 총회결정, 1992년 4월 27-30일)”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날을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로 생각해서 한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로 알았었는데, 단순히 한민족의 복음화가 아닌, 민족들이라고 쓰기 때문에 전 세계로 향하고, 교황청에서 결정한 것을 한국교회도 오늘을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한동안 유행했었던 브랜드 파워, 브랜드 가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호나, 회사명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으로 이야기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할 것 없이 각각 그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올림픽도 이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기회로 삼았었구요.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는 무상으로 얻고 있는 브랜드 가치가 타 종교에 비해서 우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제종교의 부침이 심합니다. 그런 변화 속에 우리교회는 항상 벗어나 있었고, 비 신앙인들의 차후 종교 선택의 1순위가 천주교라는 설문 조사가 매번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촛불 집회에서도 과격해지던 집회를 평화 집회로 물꼬를 틀고, 그것에 국민들이 따른 것도 바로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들 외에 많은 곳에서 우리 교회가 이 사회에 보여주는 좋은 면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게 하는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우리들의 성사적 삶이 이 세상을 복음화 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복음화는 삶입니다. 길거리에 나서 구호를 외치고, 기념일을 제정해서 기억함으로써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화는 삶입니다. 복음화는 통계 수치에 나오는 숫자가 아닙니다.

분명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 타종교가 백성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세월이 지나 역사 안에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적이 있었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따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는 오늘 복음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우리의 복음적 삶,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남영철 신부
  | 10.18
450 66.8%
[마산] 다시 예수님처럼

교목 겸 교사로 학교에 봉직한 지 5년째 접어듭니다. 월요병이라는 말처럼 학생들도 월요일 모습보다는 금요일 모습이 활기차 보이고, 등교하는 모습보다는 하교하는 모습이 더 힘차 보입니다. 교실에 들어서면 늘 지치고 졸린 모습의 학생들이 안타까워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우기조차 민망합니다. 가톨릭 사학, 복음화를 위해 교육현장에서 미래의 교회의 기둥이 될 아이들에게 지식만이 아닌 주님에 대한 사랑과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터전이지만 가톨릭계 학교마저 입시를 위한 전쟁터이며 명문대 합격자 수에 사활을 거는 21세기 대다수 학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저 역시 사제라는 신원보다 교사라는 입장이 우선일 때도 허다합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날이며 전교 주일을 맞아 학교는 군대와 더불어 복음화의 황금어장인가를 생각해봅니다. 해마다 새영세자 수를 헤아리며 개신교 학교들과 비교해보면 황금어장이라기보다는 어족자원들이 자취를 감춘 지금의 바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교내에 경당이 있고 매주 학생 미사마다 빠지지 않는 수십 명의 작은 예수님들이 있습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몇몇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어쩌면 절망스럽지만 희망은 남아있습니다. 어둡지만 불빛은 살아있습니다. 결국 답은 예수님에게서 찾게 됩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분이 보여주신 모습이 복음화의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전교를 하였습니까? 예수님은 몸으로 뛰셨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자, 병든 외로운 자를 더욱 많이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셨고, 힘을 주셨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기도 하셨고, 당신의 십자가를 먼저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하시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제자들을 신뢰하셨고, 제자들에게 힘을 주셨고, 제자들과 더불어 전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습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피눈물이 나도록 기도하셨고, 자신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당당하셨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셨고, 권력에 무릎을 꿇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불의와 권력을 야단치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처럼 살며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한다면 그곳이 학교이든 비어가는 시골이든 세속화의 풍랑에 시달리는 도시이든 바로 그곳에 희망이 솟고 빛이 비춰질 것입니다.

► 마산교구 정진국 바오로 신부
  | 10.17
450 66.8%
[마산] 선교 활동을 통해서 복음화 되는 우리의 신앙

복음화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며,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내적 삶의 변화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더욱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일을 말합니다. 또한 하느님 말씀과 구원 계획에 반대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상, 생활 방식 등을 복음의 힘으로 바로잡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 복음화에 따른 선교사명은 세례 받은 모든 신자와 교회 본연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믿음이 약해서 아직 전교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전교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 때에 전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이러한 우리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열 한 제자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하시는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복음전파의 사명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지만, 더러는 예수님을 의심하는 제자들도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누가 진심으로 “엎드려 경배”하고 있는지, 또는 의심하고 있는지를 따져 묻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두에게 똑같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십니다. 제자들 중에는 예수님을 의심하는 이도 있었지만 똑같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아들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모두에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심하는 제자도 선교사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선교는 우리 각자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약해도 가능한 일이 됩니다.

믿음이란 그저 나 하나 주님을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믿음에는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명이 부여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확신에 차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례 때 부여받은 선교사명을 의식하고, 이웃들에게 교회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선교는 내가 가진 확실한 믿음과 능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신앙에 대해서 또 하느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에게 또는 우리 이웃들에게 우리가 가진 신앙을 알릴 수 있도록 살아갑시다. 선교는 하느님이나 이웃에게 우리 자신을 알리는 좋은 수단이 됩니다. 이 선교라는 수단을 통해서 자신이 성화 되는 모습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2독서 로마서)

▮ 마산교구 손권종 다니엘 신부 : 2016년 10월 23일
  | 10.21
450 66.8%
[마산] 영원을 꿈꾸고, 꿈꾸게 하자

사람을 위해 돈을 만들었는데 돈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된다고 합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이 있는데, 너무 좋은 옷을 입으니 사람이 옷을 보호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려고 집이 있는데, 집이 너무 좋고 집안에 비싼 게 너무 많으니 사람이 집을 지키는 개가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현대인은 헛된 꿈을 꾸며 그것을 현실로 착각하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많은 것들을 옆에 두고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현대인, 미래의 노후대책 때문에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희귀병에 걸린 현대인,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사랑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현대인, 벌어놓은 재산을 그저 쌓아놓기만 했지 정작 써 보지도 못하고 자식들 재산 싸움으로 갈라서게 만드는 이상한 부분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는 현대인, 늘 행복을 곁에 두고 다른 곳을 헤매며 찾아다니다 일찍 지쳐버린 현대인…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가치가 전도되고 헛된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마태 28,19)을 우리는 오늘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비슷한 꿈을 꾼다면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로워져야만 합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마태 28,20) 하신 주님과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파리를 따라다니면 화장실로 가게 되고, 꿀벌을 따라다니면 꽃을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세상을 따라다니는 사람들과는 달리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배우고 실천할 때 올바른 가치를 정립하고 올바른 꿈, 곧 영원을 꿈꾸고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으신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을 꿈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원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기쁨, 행복, 사랑, 겸손…)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도록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더불어 사는 이웃들에게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가는 영원의 길에 함께 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 마산교구 장민현 테오도로 신부 - 2017년 10월 22일
  | 10.19
450 66.8%
[마산] “주님! 영광! 받으소서!”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매일미사 책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1926년부터 해마다 시월 마지막 주일의 앞 주일을 ‘전교 주일’로 정하여, 신자들에게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며 특별 헌금을 통해 전 세계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습니다.”

신자들에게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날이라는데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런데 잘 읽고 들어보시면 ‘제자들 가운데 더러는 예수님을 뵙고 의심하였다.’라는 말을 떡하니 남겨두었습니다. 열한 제자들 중 누가 그런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혹시 나도 제자들 중 누군가처럼 그렇게 의심해도 괜찮을까?라는 물음이 스쳐 지납니다.

그에 못지않게 복음의 다음 구절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는 명령을 말씀으로 남기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우선 의심이 드는 것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2독서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지만 그것을 의심으로만 남겨두게 됩니다. 믿음으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의심!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한 행동을 하십시오. 미사를 준비하십시오. 준비한 만큼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헐레벌떡 들어와 앉았다가 구경하고 가는 미사가 아니라 참례하여 주님과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오늘도 복음 봉독 전 봉독자의 말에 따라 우리는 주님 영광 받으소서라며 십자성호를 세 번 그립니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님을, 우리 모두 그 행동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복음 봉독 전 긋는 작은 십자성호는 복음 말씀을 머리(주님!)로 깨닫고 입(영광!)으로 선포하며 마음(받으소서!)에 받아들여 실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 다짐이 의심을 떨쳐버리는 행동입니다.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닌 주님의 명령을 지켜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주님을 일깨우는 행동입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 다시 한 번 더 선교 사명을 일깨우기 위해 나 자신의 몸에 십자성호를 새기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에 대한 의심을 떨쳐버리는 한 주간이 되길 빕니다.

▦ 마산교구 이상록 요한 신부 : 2018년 10월 21일
  | 10.19
450 66.8%
[마산]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여라

----------------------------------------------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다. 그래서 ‘복음화는 교회의 근본 사명이기도 하다. 새순이 돋아나지 않는 가지는 죽은 가지이다. 선교 열정은 항상 교회 활력의 척도가 된다.

---------------------------------------------------

1. 선교는 교회의 유일한 사명

교회는 이 세상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교회는 의료사업, 교육사업, 사회사업을 하는 동시에, 성당을 지어 예비신자를 모아 교리를 가르치며 포교사업도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포교사업은 교회가 하는 여러 가지 사업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다. 교회는 성부의 계획에 따라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선교 교령, 2항)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성부께서는 성자와 성령의 파견을 통하여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셨고, 이 목적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이다. ‘복음화’는 교회의 ‘첫째가는 사명’이 아니라, ‘유일한 사명’이다. 이는 교회에는 ‘세상을 복음화하는 것’ 외에 제2, 제3의 다른 사명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조직과 인력과 힘은 복음화를 위해 있는 것이다.

2. 복음화란 무엇인가?

‘복음화(Evangelizatio)’란 무엇을 뜻하는가? 쉽게 말하자면, 복음화란 ‘세상을 변화시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질서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모든 활동이 ‘사목활동’이다. 세상의 모든 분야에 복음의 빛을 스며들게 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화에는 두 가지 갈래가 있다.

첫째는, 제도권 사목(본당 중심의 사목), 곧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주고, 성사와 신앙교육 등 사목활동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킴으로써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새 교우 찾기, 쉬는 교우 찾기, 신자 재교육, 성서공부, 각종 피정, 성무 집행, 기도생활’ 등 본당의 모든 사목활동이 복음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사회사목, 곧 복음적 가치와 맞지 않는 제도와 조직, 구조 등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회사목은 사회운동(농민사목, 노동자사목, 도시빈민사목 등)과 사회복지(고아원, 양로원, 정신지체아 시설 등의 복지사업)로 나누어진다.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사회복지’는 항상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받아 왔으나, 사회운동은 깊은 이해를 받지 못한 때도 있었다. 어느 하나의 방법만으로는 복음화를 이룰 수가 없다.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3. 신자 증가의 황금기는 끝났는가?

물론 세례를 주는 것만이 복음화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세례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한국교회사를 보면, 신자가 크게 증가했던 시기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886년 한·불 조약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난 뒤,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를 찾게 되면서 신자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두 번째는, 6·25 동란이 끝난 뒤였다. 전쟁의 비참을 체험하고 난 뒤 새롭게 인생의 의미를 찾으면서 신앙을 찾은 것이 그 계기였다. 그리고 이때에는 외국의 구호물자도 교세 확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세 번째는, 1970-1980년대 군사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교회가 벌인 인권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힘입어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마지막 보루로 여기고 신앙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수도성소나 사제성소뿐 아니라, 신자 증가율도 현저히 둔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점에서 서울대교구에서는 앞으로 2020년까지 인구 대비 복음화 비율 20% 달성을 목표로 하는 ‘2020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서울대교구의 이러한 야심찬 포부는 교회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몇몇 본당의 사례를 보면 이것은 결코 황당한 계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얼마 전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천주교 신부’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앞으로 신앙을 갖게 되면 어떤 종교를 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천주교를 택하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신자 증가율은 예배당보다 못하다.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신자들이 열심히 전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에 무관심한 신자는 참 신자가 아니다. “교회 역사에서 선교열은 언제나 교회 활력의 표지였으며, 반대로 선교열의 감퇴는 신앙 약화의 표지였다”(『교회의 선교사명』, 2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교주일 담화에서 “하느님의 모든 자녀는 기도, 고통의 봉헌, 삶의 증거를 통하여 선교활동에 협력하여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거나 주저앉는 것은 패배주의이고, 성령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비신자 인도나 쉬는 교우 회두(回頭)를 위해 꾸준한 기도와 희생을 바쳐보지 않은 신자는,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사는 신자이기에 참된 의미에서 신자라고 할 수 없다. 새순이 돋아나지 않는 가지는 죽은 가지임을 명심하자.

------------------------------------------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 10.17
450 66.8%
[마산] 전교! 일단 시작해 보자

------------------------------------------------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인자도 지자도 아니지만 얼마 전부터 산을 즐겨 찾게 되었다.

전교 주일이다. 전교 사업에 헌신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물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 그리고 교회의 존재목적인 전교 사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기 위해 전교 주일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통계를 보면 영세자의 숫자는 해마다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음식점을 알게 되면 묻지도 않았는데 그 집을 선전하고 다른 사람을 데리고 다시 가는 것이 우리네 경험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신자로 살아가는 게 정말로 좋다면 그것을 나누고 전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인자도 지자도 아니지만 요즘 산을 즐겨 오른다. 처음엔 좋으니까 일단 해 보자는 의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실제로 내가 산을 만나면서 좋은 체험들이 생기고 그래서 이웃에게도 함께 등산을 가자는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전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일단 시작해 보자. 내 신앙이 충만하여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면서 내 신앙도 성장하고 신앙의 체험도 생길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해 보자. 쉽지 않은 시간들도 있겠지만 반드시 하느님께서 좋은 결실을 맺어주실 것이다. 전교는 남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나의 복음화를 이루는 과정인 것이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런 말씀을 들려준다.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

마산교구 여인석 베드로 신부
  | 10.17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510   [춘천/원주/군종/의정부] 참 아름다운 우리 성전  [4] 2149
509   [부산/마산] 거룩한 성전  [5] 2188
508   [광주/전주] 당연하다  [1] 5
507   [안동/대구]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 5
506   [서울] 우리의 내적 성전  [2] 2009
505   [수도회] 성전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  [4] 1901
504   [수원] 성전 정화 = 단순한 삶  [1] 348
503   [인천] 나를 필요로 하시는 주님  [4] 1915
502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독서와 복음 (11월 9일)  [23] 1694
501   [청주] 행복에로의 초대  [1] 387
500   [안동] “예수님께 기도드리면 빨리 나을 거예요.”  [2] 656
499   [원주] 전교는 우리의 마음에서  [3] 374
498   [수원] 선교는 신자들의 진정한 생활의 표양이다.  [7] 1996
497   [서울] 선교는 말과 행동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5] 2112
496   [대구] 전교와 신앙인의 삶  [5] 2055
495   [의정부] 불리움에서 파견으로  [5] 2033
494   [수도회]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야할 복음  [5] 1742
  [마산] 신앙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7] 2219
492   [부산] 그리스도 신앙인은 하늘과 땅을 새롭게 이해합니다.  [9] 2209
491   [군종] 내 삶이 내 메세지  [2] 379
1 [2][3][4][5][6][7][8][9][10]..[26]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