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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불리움에서 파견으로
조회수 | 2,033
작성일 | 08.10.18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다시 만나셨습니다. 제자들이 처음 불리움을 받고, 함께 생활했던 추억이 담긴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다시 만난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파견하십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불리움을 받았던 그곳에서, 이제는 파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파견의  내용은 자신들이 불리움 받았던 것과 같이 모든 민족들을 예수님께로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내려진 명령을 제자들은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곳곳으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떠났고, 또 대부분 그곳에서 순교하셨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그래서 부활을 통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준 제자들과 신앙의 조상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전례는 선교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복음을 받아들인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고 하지만, 중국까지 신앙을 전파해준 선교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또 가깝게 본다면 부모나 이웃을 통해서 나를 신앙으로 초대해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혹은 삶으로 신앙을 보여준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선포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신앙은 하늘에서 떨어진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고 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지켜지고 전해지고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을 받기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눈으로 보더라도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한 사람이 됩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더욱 깊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내가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님께서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내가 복음을 전하는 행위 안에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저절로 커지도록 되어있는 것입니다. 또 전하려는 내용에 대해서도 먼저 알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야하기 때문에, 신앙에 대한 더 큰 지식과 체험을 얻을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뒤늦게 천주교에 입교하신 많은 분들께, 천주교에 관심은 있었는데 초대해주는 이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게됩니다. 내가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께서 초대하는 것이니 그분을 믿고 자신있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믿음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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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문화미디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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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내가 전교를?

얼마 전에 부산 외방전교수녀원으로 종신서원 미사를 다녀왔다. 신학생 때 주일학교 교사였는데 사제서품 뒤로는 연락이 거의 없었고 수녀원에 들어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그런데 전화가 와서 종신서원을 하게 됐으니 참석해 줄 수 있느냐 하는 청을 받게 되었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동두천에서 부산이라니.. 그야말로 우리나라 끝에서 끝이다. 생각만으로도 피곤이 엄습해 왔지만, 교사일 때 나에게 던졌던 질문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기에 가기로 했다. 질문은 이랬다.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도 결국 천국에 가겠다는 욕심 때문 아닌가요?”

단순하면서도 화두 같은 질문이어서 지금도 가끔씩 묵상의 주제로 삼고는 한다. 이 세상에서의 탐욕과 천국에서의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전교주일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하신다. 밖에서 식사할 때는 성호경 긋는 것도 눈치 보여 하지 않는 많은 신자들에게 낯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부활체험을 한 사도들에게는 예수님의 이 전교 말씀은 강요나 억지가 아니었다. 전교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기쁨으로 넘치는 사도들의 마음이 일치했기에 그것은 사랑이었고 삶 자체였던 것이다.

직장이나 학교, 일상에서 커다란 기쁨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심지어 기쁨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 관계없는 사람까지 행복으로 물들인다. 하지만 탐욕은 타인을 경쟁상대나 적으로 규정하고 누군가는 불행과 고립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밀과 가라지는 겉모양이 매우 유사하나 근본이 다르다. 밀은 생명의 양식이 되고 가라지는 독성이 강해 버려져 불태워진다. 전교는 하느님 안에서 기쁨을 체험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나라로 초대하는 일치의 표현이다. 성부와 일치를 이루신 예수님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신다. 모두가 하나가 되도록 기쁨을 전하는 신앙인의 삶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은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우리는 기쁘게 살고 그 기쁨을 전할 때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 의정부교구 홍석정 가시미로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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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너는 혼자가 아니다”

저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제입니다. 선교사로 낯선 나라에 살면서 외로움을 느껴보지 않았다면 은총이거나 거짓말일 것입니다. 물론 선교지에서 선물처럼 주어지는 기쁨과 행복이 달콤하지만 때론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하지요.

5년 전 아직 잠비아의 문화와 환경에 서툴던 때 성당을 지으며 제게도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건물을 짓는다는 건 제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었고, 날마다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는 새로운 문제들을 직면하다 보니, 아무런 생존의 도구 없이 광야에 홀로 내쳐진 듯한 외로움과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목재를 주문하고 그것을 찾으러 제 차로 가던 날이었습니다.

우기의 한복판에서 길은 질척거렸고, 미끄러지듯 아슬아슬 가던 제 차는 결국 진창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놀리듯 마침 세찬 비까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눈물이 날 듯 서러워졌습니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빗속에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제 차로 다가와 제 차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힘으론 충분치 않았습니다. 잠시 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아이들이 빗속에서 저를 돕겠다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돌을 주워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진흙탕 바닥에 무릎을 꿇고 돌을 바퀴 밑에 밀어넣었지요. 그렇게 하나, 둘 어느새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쳤고, 결국 제 차도 더 버티지 못하고 진흙의 구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러자 저를 돕던 사람들은 마치 자기 차가 죽었다 살아난 듯이 소리치고 기뻐하며 춤까지 추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도 그동안 허우적대던 지독한 외로움의 구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혼자라고 느껴졌지만 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 몸이 비와 진흙에 엉망이 되면서도 함께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로움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지요. 그 후에도 제가 어려움에 있을 때마다 제게는 저를 돕거나 저를 위로해주는 누군가가 꼭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하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제게도 성실히 지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하신 말씀을 잘 따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성실하시니 저도 예수님의 분부에 성실히 따르며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겠지요. (물론 때론 내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쇠귀에 경 읽기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그 순간에도 어떤 이들은 의심하고 있었으니 우리의 모든 선교임무가 완벽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분의 명을 성실히 따르기로 결심하고 행합시다.

▮ 의정부교구 양현우 바오로 신부 : 2016년 10월 23일
  |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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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외국에서 선교 중인 후배 신부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선교지에서 살아가는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저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 작하면서 겪게 되는 시행착오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삶을 나눴습니다.

식사 때가 되어 후배 신부와 식당에 갔는데 종업원에게 메뉴를 주문하는가 싶더니 주문만이 아니라 무엇인가 대 화를 길게 나누었습니다. 우리말도 서툰 저에겐 후배 신부가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너무나 신기한 모습 이었습니다. ‘이 녀석이 엄청 유창하게 말을 하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저 가만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종업원과 외국어로 나눈 것이 아니라 너무나 환하고 밝은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한 마디를 건네는 것도 너무나 어색한데 그 후배 신부는 어색함이 전혀 없이, 아니 오히려 그 나라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행복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문이 끝난 뒤, 후배 신부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냐고 물으니 그냥 요즘 그곳에 대한 소소한 얘기를 나누다 그 사람이 자신이 외국인임을 알아보고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물어봐서 그 얘길 간단하게 했다고 합니다.

식사를 하면서 “선교사로 사는 것은 어때?”라고 물었습니다. 후배 신부는 쿨한 듯, “그냥 사는 거지, 뭐.”라고 대답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 배우면서 이곳 사람들을 사랑하는 게 선교사의 삶이라고 생각해.” 대박! 질투나게 멋진 말이었습니다.

전교주일인 오늘, 그 후배 신부의 말이 계속 떠오릅니다. 그리고 전교라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당에 올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셨듯, 이웃들과 함께 이웃들 속에서 복음을 살아가며 복음을 보여주는 것이 전교의 시작임을 바라보게 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굳게 믿으며 복음의 향기를 채우고 내뿜어야 함을 바라봅니다.

▥ 의정부교구 김승범 사도 요한 신부 - 2017년 10월 22일
  |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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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믿음과 행동

오늘 우리는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이자 전교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전교(傳敎)’란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전하며, 아직까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초대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으로 세상 모든 민족들이 밀려들 것이라는 예언을 합니다.어떻게 생긴 곳인지,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곳으로 모여 오는 수많은 백성들은 하느님의 길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변화합니다. 칼과 창을 들고 전쟁하지 않고, 그것들을 쳐서 보습과 낫으로 만듭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행동을 바꾸면, 우리는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답송 시편에서 노래하는 주님의 정의, 우리 하느님의 구원입니다.

제2독서, 로마서에서 바오로사도는 이사야의 예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입으로 고백할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그 복음을 믿고, 파견됩니다. 그렇게 입으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릅니다. 그렇게 발로 전합니다. 들어서 믿고, 행동합니다. 우리의 소리와 말은 온 땅으로,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갑니다. 우리는 의로움을 얻고 구원을 얻습니다.

마태오 사도는 오늘 복음에서 이 모든 것이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 명확히 알려줍니다. 바로 예수님께서“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당신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지키게 하라”하고 이르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세상이 완전해지는 끝 날까지 우리와 언제나, 매일, 매 순간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마태오 복음의 끝부분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즉 시작이고 마침이신 예수님께서 맡기신 우리의 사명입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결코 멈출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의정부교구 교우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전교주일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듣고 가진 믿음을 바탕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온 삶으로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선교 사제들을 위해 모두 함께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사로 힘을 얻어 구원과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아멘. (본기도 중)

▦ 의정부교구 나인구 스테파노 신부 : 2018년 10월 21일
  |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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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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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이사 2,3)

우리가 전교를 말하면서 떠올리는 희망은 아마도 위와 같은 장면일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길을 함께 걷는 세상,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시길 바라는 기도와 같은 희망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 18) 승천을 앞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그러한 희망을 어떻게 이루어가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일러줍니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이 일에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격려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려고 할 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이 말씀은, ‘남 앞에서 잘난 체 하지 마라’, ‘남을 가르치려 들지 마라’는 우리 처세의 상식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다른 이의 믿음이나 가치관, 사상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도 벗어나는 듯하여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이요, 진리니까’,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너의 구원과 행복을 위한 것이니까’라는 생각도, 결코 내가 남보다 낫다는 오만한 태도를 정당화하거나 사상적 강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해소하지는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 깊이와 가치를 누가 판단할 수 있습니까? 세례를 받고도 신앙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금방 쉬는 신자가 되어 버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우리의 말솜씨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교회를 찾았다면, 진리를 알고 배우게 되었다 해도 그것이 온갖 유혹과 어려움을 이기고 신앙을 지킬만한 힘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구원을 얻은 것은 체험을 통한 믿음이었고 응답이었기 때문입니다. 볼품없는 삶이라 해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이 세상과는 다른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복음을 체험하고 이끌리게 됩니다. 그런 그들을 초대하여 교회로 이끄는 것, 이것이 우리의 전교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말재주로 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말재주로 복음을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1고린 1, 17)

전교주일을 맞아, 내 삶의 모습이 우리의 이웃에게 복음을 통한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지 반성해봅시다. 우리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세상 모든 이를 주님의 나라로 이끄는 가장 아름다운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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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변승식 요한보스꼬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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