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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선교방법은 두 가지
조회수 | 2,215
작성일 | 08.10.18
오늘은 선교주일입니다. 선교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부담을 느끼거나 나는 선교를 못했는데 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분도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 어느 정도 선교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교의 한 가지 방법은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올바른 실천을 주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 방법은 누구를 권면하여 성당으로 인도하는 개인선교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권면하여 성당으로 인도하지는 못해도 모두 올바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2006년 5월에 통계청은 종교 인구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1995-2005년 사이에 천주교 신자는 219만5천명이 늘었는데 개신교 신자는 14만4천명이 줄었으며 불교신자는 적게 증가했다고 했습니다. 그 숫자가 꼭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는 천주교 신자가 더 많이 늘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해보고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그 이유로 천주교인들의 개인선교를 강조하지는 못했습니다. 개신교인들이 선교를 훨씬 더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신자 증가의 중요한 이유는 신자들의 올바른 생활, 즉 좋은 실천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천주교인들의 다섯 가지 좋은 실천이 무종교인, 개신교인, 불교인들에게 알려졌고 그들이 그 실천을 보고 천주교회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되었으며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입교해서 천주교신자가 늘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실천은 호감을 길러주고 호감은 입교자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다섯 가지 실천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단결입니다. 천주교인들은 싸우고 갈라지는 일이 없습니다. 교구와 본당들이 단결하며 본당 내 신자들이 단결합니다. 둘째는 청렴입니다. 천주교회에는 돈에 대한 부정이 없습니다. 돈을 투명하게 다루고 수입 지출을 공개합니다. 셋째는 인권과 정의에 대한 관심입니다. 특히 군사독재 시대에 천주교회는 인권과 정의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넷째는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입니다. 천주교회는 조상제사를 허용하고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망자를 위한 기도와 예식을 잘 합니다. 다섯째는 불교와 개신교 등 타종교에 대한 존중입니다. 천주교인은 타종교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인천교구 선교국은 개인선교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선교회원도 양성하고, 유인물도 만들며 가두선교와 지역선교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다행하고 좋은 일입니다. 금년은 사도 바오로의 해인데 그분은 개인선교의 최고 열성자이고 귀재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선교 못지않게 좋은 실천으로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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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오경환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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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 좁고 긴 판자가 놓여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그 위를 걸어보라고 한다면 걸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아마 걸을 수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판자 위를 자신 있게 걸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좁고 긴 판자가 하늘에 닿을 듯이 높게 솟은 빌딩과 빌딩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판자 위를 자신 있게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아마 많은 상금을 준다 할지라도 그 위로 걷는 것을 포기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록 쉽게 걸을 수 있는 판자 위라고 하지만, 높은 빌딩과 빌딩 사이에 연결된 판자 위에서 혹시라도 떨어지게 된다면 큰 위험에 처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운 가운데 판자가 놓인 반대편 빌딩에 있다면? 또 당신이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판자 위를 걷는 것뿐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내 삶을 헌신할 가치가 있는 대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큰 위험도 무릅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면서 그 위험을 피하면 어떨까요? 그 사람의 삶은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삶을 지속해야 할 뚜렷할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그 사명은 지금 이 시대에도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이 시대는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의 세대로 주님의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 우리가 믿고 따르겠다는 주님의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당연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모습을 게을리 합니다. 바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겉으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귀찮다면, 또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면, 또 조금이라도 내게 피해가 올 것 같다면, 마치 빌딩과 빌딩 사이에 놓여있는 판자 위를 걷는다고 생각하는지 주님의 뜻을 외면하는 우리들입니다.

자신이 헌신해야 할 대상을 현명하게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그 대상을 지키는 인생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입니다. 그 대상이 바로 주님임이 명백한데, 우리는 과연 누구를 선택하고 있습니까?

전교주일이며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 나는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하고 있었는지를 지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우리에게 권고하며 말씀하십니다.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주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님을 알리도록 합시다.

조명연 신부
  |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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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마음 담기

저는 선배 신부님들로부터 듣게 되는 따뜻한 조언 중에 살아있는 강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종종 듣게 됩니다. 제가 체험한 하느님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그러나 실상은 매번 강론을 준비 할 때마다 자료집을 찾게 되고 남이 체험한 하느님을 전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수고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자신의 하느님을 가질 수 없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이다.’라는 어느 교부의 말씀이 늘 머릿속을 맴돌기만 합니다.

그 수고가 부족하다는 것이겠죠. 어쩌면 우리에게 맡겨진 첫 번째 선교 여행의 장소는 우리 마음이 아닐까요? ‘그대는 사랑받고 있다. 참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라는 확신이 내 마음 안에 자리할 때 비로소 그 확신이 말씀으로, 삶으 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파리들은 식초보다 꿀에 더 많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얼굴에 지옥의 음울함을 담고 있는 사람들보다 천국의 기쁨을 담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말씀이겠죠. 할 수만 있다면 천국의 기쁨이 가득 담긴 웃음으로 삶의 여정에 지친 영혼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도록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이 전교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이라는 단어만 알 뿐이고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모르죠. 성체 성사의 의미 역시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은 성경을 읽은 이들과, 또 성체를 받아 모신 믿는 이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성경을 이해하고 성체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아름다움은 결국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이지 않을까 묵상해 봅니다.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코린 9, 16)

► 인천교구 송형훈 세례자 요한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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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주님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찬미 예수님, 오늘 우리는 전교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지상 생활을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시지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전교주일인 오늘은 예수님의 이 명령, 즉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하고, 그 사랑을 따라 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새롭게 마음에 새기는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교주일을 맞아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선교소명을 마주하며 문득 이사야 예언서 6장 8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주저함 없이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응답하지요. 이사야 예언자의 이러한 용기 가득한 답변 앞에서 문득 부끄럽지만 용기가 부족한 저의 응답을 듣게 됩니다. 주님께서 저를 불러주시고 당신 사랑을 세상에 전하라는 소중한 소명을 제게도 주셨건만, 이상하게도 세상 앞에서 움츠러들고 두려움에 떠는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어쩌면 이런 움츠러듦과 두려움은 아직도 제 안에서 주님께서 제게 베풀고 계시는 사랑과 은총을 충만하게 느끼지 못함이란 반성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분의 사랑이 저의 굽은 허리를 펴게 만들고 당당하게 주님을 드러낼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을 맞이하여 제가 살고 있는 강화에는 추수철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봄 모내기를 통해 심어진 벼들은 튼튼히 자라나 황금빛 들판을 이루었고, 이제 그 결실을 수확하는 시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성실한 노력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황금빛 들판을 볼 때면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하느님을 선포하는 사명도 이같이 하느님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시며, 너희의 복음선포를 위한 노력이 내가 함께하며 부어주는 은총을 통하여 반드시 그 결실을 맺을 것이라 약속해 주시는 것이겠지요.

오늘 복음의 주님은 우리에게 선교소명을 주시며, 그것을 잘 해 낼 수 있도록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이 소중하고 중대한 사명을 결코 너희 혼자 하도록 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나약함과 두려움과 부족함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당신의 사랑으로 함께 하시며 그 일이 온전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시는 분, 바로 그분이 우리가 전해야 하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다시 마음속에 새기는 주님의 선교소명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릅니다. 또 먹고살기 위해 뒤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주님을 드러내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두렵다고 말하고 싶은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도 안에서 눈을 감고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마주해 보길 바랍니다. 성경 말씀 안에서 나를 돌보아 주시고, 당신의 성사의 식탁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을 만나보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지금도 그 사랑을 더욱더 명확하게 보여주고 계시니,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된다고 말씀하고 계심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의 삶 안에서 그 안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기도와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충실히 만나고, 그분 사랑의 은총의 따스함을 더 크게 받아들여, 우리 모두가 용기 있게 이사야 예언자처럼 주님을 필요로 하는 곳에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응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전교주일인 오늘 더 간절히 청해봅니다.

▮ 인천교구 박승민 아타나시오 신부 : 2016년 10월 23일
  |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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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전교 주일입니다.‘ 전교’란 단어 의미 그대로 세상에 교회를 알리며, 세상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 예수님을 알리는 것 그분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접적인 사명이자 그분께서 하신마지막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생명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당신께서 그동안 행하셨던 일들을 이제는 제자들이 수행하라는 사명을 내리시고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제자들은 사력을 다해 세상에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이 전하는 예수님을 참된 하느님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과 그들을 배척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에 따라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그 길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힘찬 발걸음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마지막 이 말씀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도 이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분의 사명을 수행하는 순간이라 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에 그들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서는 언제나 빛이 났듯이, 희망이 가득했듯이 자신들의 전교 활동으로 세상 모든 이들이 예수님의 참된 빛을 품기를 그분 안에서 희망을 갖기를 힘든 세상 안에서 그분의 가르침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꿈꾸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하늘나라를 꿈꾸며 하나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제자들의 꿈의 결과가, 그들의 땀과 헌신과 희생의 결과가 바로 오늘의 우리 교회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제자들 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듯이 예수님의 사명 또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도록 불림 받은 제자들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를, 우리가 희망하는 교회를 세상에 전할 차례입니다. 내 주변 이웃들에게,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분의 가르침을, 그분의 사랑을 전하십시오. 제자들처럼 같이 힘찬 발걸음을 세상에 내딛으십시오. 우리의 힘찬 발걸음 안에 예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실 것입니다.

▥ 인천교구 강문식 미카엘 신부 - 2017년 10월 22일
  |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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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돈 많은 부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나이가 많은지라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우선 괜찮은 중형 자동차를 한 대씩 사서 두 아들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큰아들은 ‘아니,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 더 좋은 자동차가 아니라 겨우 이런 후진 자동차 하나 사주는 거야?’라고 생각했고, 반면에 작은 아들은 아버지가 사주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나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얼마 후에 이 부자는 큰아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선물한 자동차가 다 찌그러진 채 마당에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지요. 이에 반해서 작은 아들의 집에는 선물한 차가 반짝반짝 잘 닦여서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큰아들 집에서 상한 기분이 작은 아들 집에 가서 좋아졌습니다.

몇 년 후에 부자는 전 재산을 작은 아들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을 했습니다. 큰아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가 선물한 자동차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 그 자동차는 그렇게 찌그러뜨려서 마당에 방치할 정도로 싼 차도 아니었다. 하지만 너는 겨우 이 정도의 차를 선물 하냐면서 나의 선물을 소홀하게 여겼다. 그런 너에게 내 재산을 맡기면 제대로 간수하겠느냐?”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주님과 우리들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 직장, 교회, 이웃, 자연, 건강, 물질적인 재산 등등……. 생각해보면 좋은 선물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찌그러뜨리고 방치한 적이 많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작은 아들처럼 주님께서 주신 모든 선물들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사명을 오늘 우리들에게 전달해주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을 전교주일로 정해서, 우리들에게 맡겨진 또 하나의 선물이라 할 수 있는 내 이웃이 주님을 알고 주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어야 함을 말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전교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 잘하는 사람만이, 그리고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거리로 나가서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외치는 것만이 전교도 아닙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교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그 방법을 말씀하세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 말에 얼마나 큰 힘을 얻을 수 있는지요? 내가 어떤 어려움을 간직하고 있을 때, 고통과 시련으로 힘들어할 때,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그 약속은 큰 희망을 간직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 말씀을 나의 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나 역시도 주님처럼 내 이웃과 언제나 함께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좋은 전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교가 바로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잘 관리하는 충실한 종의 모습이 아닐까요?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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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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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선교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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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개별 교회(즉, 교구)는… 신자 개인과 공동체 전체의 삶의 증거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교령 만민에게, 20항)라고 했습니다. 1975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증거야말로 복음화를 가능하게 한다’라고 권고하셨습니다.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습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현대의 복음선교, 41항)

인천교구의 많은 가톨릭 신자들과 가톨릭 가정들이 한국 순교 성인들의 정신에 따라,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의 증거자가 됨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들은 주일 미사, 매일 기도, 가족 기도, 그리고 묵주기도도 언제나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또 이들은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신심을 가지고 있으며, 교황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잘 따릅니다. 또, 잉태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을 수호하며, 낙태나 배아 줄기 세포 연구, 인간 복제 등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형 제도를 반대합니다. 이들은 결혼과 가족 문제에 있어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며, 결혼은 오직 남녀 사이에서 성립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강조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제가 인천교구장으로 있을 때, 주일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깊은 지식과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했던 가족들을 보고 감탄해 마지 않았습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많은 국가에서 개인주의, 소비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의 악이 많은 가톨릭 신자들, 특히 젊은 가톨릭 신자들을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악들에 대항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과 구원의 복음의 증거자가 되라고 우리 모두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기쁘게, 용감하게 실천하며,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면, 많은 비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찾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를 하도록 모든 신자들은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면에서 신자들은 참다운 복음 선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현대의 복음선교, 2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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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길모 굴리엘모 주교 | 전 인천 교구장
번역 | 노틀담 수녀회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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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전교는 내 자신의 변화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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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 또한 모든 복음 선포에 힘쓰는 이들을 위한 전교주일입니다. 우리가 전교함에 있어서 한 날을 정해서 할 수는 없습니다. 전교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음 선포를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식일까요? 아니면 말로써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언변일까요? 아니면 무조건 열심히 나가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노력일까요? 이 모든 것이 갖추어 지면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서 전교를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주 쉽습니다.

전 그 쉬운 가르침을 본당 초등학생들에게 배웠습니다. 전교 주일을 맞아 우리 어린이들에게 뭐라고 강론을 할까 하다가 전교를 위해서는 우리 어린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모범된 삶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이 친구들에게 하느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전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먼저 모범의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매일 친구들을 괴롭히고 때리고 욕하면서 친구들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이야기 한다면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어떤 대답이 나오든 저는 “그래요. 어린이 여러분이 전교를 하기 위해서는 어린이 여러분들의 말처럼 살아야 해요”라고 강조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삶의 변화를 가져 오도록 이끌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 의도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전교를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대답은 “착하게, 행복하게, 잘, 친구들을 사랑하며…”등등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잠깐 다시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매일 친구들을 괴롭히고 때리고 욕하면서 하느님을 믿으라고 이야기 하면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요? 라는 질문에 저를 가르치는듯한 여러 아이들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비웃어요.”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대답은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전교를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내 자신의 변화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하느님의 기쁜 구원의 소식을 전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초등학생들도 아는 사실입니다.

교우 여러분, 전교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의 하느님께서,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힘찬 복음 선포가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의 작은 변화를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음 선포가 당당하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힘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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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장기용 세례자요한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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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事有終始). 신경써야 할 것에는 근본이 되는 것과 말단이 되는 것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마침이 있다. 「대학」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 맹자가 활동하던 그 때 유행하던 사상 조류가 둘 있었다. 하나는 양주라고 하는 도가(道家)의 극단적 이기주의적 말류(末流)와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한다는 묵가 사상이다.

양주 측에서는 설사 자신의 정강이 털 하나를 뽑아 세상을 구제한다 해도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것이 나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심보다. 극도의 이기주의로서 자신의 안위가 최대 목적이다. 그에 반해 묵가 계열은 발꿈치로부터 정수리까지 모두 갈아서라도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주의다. 겸애설로 유명한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자 했다.

그런데 맹자는 이 둘을 극도로 싫어했다. 양주를 미워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묵가를 미워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맹자는 양주보다는 묵가를 더욱 싫어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이 더 심하다고 여긴 탓이다. 맹자는 묵가가 부모를 버렸다고 여겼다.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하고 섬겨야 할 사람(本)을 버린 사람이 어떻게 관계가 멀리 있는 사람(末)을 극진히 섬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유가에서 효를 강조하는 이유다. 효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베푼 사랑에 대한 자녀의 보답으로 이해되지만 또 한편으로 효는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이기도 하다. 더 널리 사랑을 베풀기 위해 자기 자신을 점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가까이 있는 부모에 대한 태도를 통하는 것이다. 자식이 더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효에 대한 강조인 것이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효는 본(本)이지만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평천하(平天下)라는 큰 목적(末)을 지향하고 있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전교 주일이다. 모든 민족들의 복음화는 신앙생활의 최종 귀착지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신앙이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를 점검하지 않으면서 이뤄지는, 본말이 전도된 전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근본이 서지 않는다면 전교를 통해 새로 신앙인이 되는 숫자가 증가하는 만큼 사라져 가는 신자의 수도 그에 상응할 것이다. 그래서 전교 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역으로 근본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전교란 누군가를 계몽시키는 따위의 수혜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이 복음화되는 행위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전교는 일종의 압박과 무거움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복음 선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그 말씀은 우선 나에게 내려진 복음에 대한 진지한 묵상을 전제로 한다. 모든 민족으로 멀리 전파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나와 맺어진 가장 가까운 곳에서의 기쁨이며 전달받는 이도 자신의 삶 안에서의 구체적 기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 끝까지라는 말이 주는 압박으로 인해 가장 가까운 곳에서의 기쁨보다는 저 멀리라는 위압감에 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멀리라는 말은 거리상의 개념이 아니고 나의 기쁨이 확산될 수 있는 가능 범위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야곱의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4-5)고 말한다. 이사야의 이 환시는 종말론적 희망을 가진 고백이다.

이사야는 야만적인 폭력과 탐욕으로 점철된 세속적 심판이 아닌 칼과 창을 보습과 낫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랑과 용서의 심판을 기다린다. 모든 민족들이 주님 앞으로 모여드는 것은 한 사람의 외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희망이 한 사람에 의해 각성되고 선포되는 것일 뿐이다. 만민의 구원은 익명의 만민이 아니라 만민 각자에 해당되는 ‘나의’ 구원이다. 그리고 ‘나의’ 구원은 ‘너의’ 구원을 전제로 가능한 일이다. 만민은 각각의 나와 너가 합쳐진 말이지 지정되지 않은 이념적 숫자가 아니다. 이사야의 ‘야곱의 집안아,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는 독려는 종말적 구원의 때를 위한 너와 나의 결심과 각오에서 시작됨을 알린다.

그래서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10,9)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오늘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모시겠다는 말과 같다. 누군가를 주인으로 섬길 때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폭력이나 계약으로 인한 피동적 노예 생활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을 당신에게 오로지 맡긴다는 봉헌으로서의 삶이다. 우리는 모두 후자에 속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분의 통치에 나를 내맡긴다는 것이고, 모든 것을 당신 명령대로 하겠다는 자발적 고백이다. ‘이제 나는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당신이 원하시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라는 결심인 것이다.

또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말은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상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겠다는 하나의 실존적 결단이다. 그런 이에게만,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에게만 이미 부활하신 그분이 나에게서 되살아 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분의 종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기쁜 선택이다. 바오로 사도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전하는 이의 발걸음이 아름다울 정도로 기쁜 발걸음(로마 10,15)이라는 사실이다. 맹자가 하늘 뜻에 근본한 사람은 얼굴이 빛나고 등에서도 가득 넘치며(盎於背) 온몸에서 그것이 드러난다는 것도 같은 말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산으로 불러 모든 이를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당신께서 알려주신 것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신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그분의 부활을 의심한 이들도 있었다. 열한 제자. 예수님을 지근거리에서 보았던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여전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의심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보라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것이다. 복음 선포에 앞서 더러는 의심하고 더러는 무기력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 말씀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결심으로 인한 기쁨이 우리의 얼굴과 등과 사체(四體)에 가득 차는 것이 우선 아닐까? ‘만민’이라는 숫자에 구속되지 않기를,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그 기쁨이 확인되기를 전교 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다시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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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서강휘 신부
가톨릭신문 2019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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