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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독서와 복음 (11월 1일) (참행복 선언)
조회수 | 1,954
작성일 | 08.10.30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별도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기리는 날이다.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된 이 축일은 609년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 교회에서도 지내게 되었다. 5월 13일에 지내던 이 축일을 9세기 중엽 오늘날의 11월 1일로 변경하였다. 교회는 이날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지상의 우리와 천국의 모든 성인 간의 연대성도 깨우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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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5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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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 묵시록 7장 2절-4절.9절-14절

2 나 요한은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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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독서 :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요한 1서 3장 1절-3절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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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마태오가 전한 복음 5장 1절-12ㄴ절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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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 행복이 참된 것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희망하는 행복의 내용은 열이면 열 모두가 다릅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꿈이 참된 행복이고, 어떤 사람이 제대로 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모인 사람들에게 ‘참행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아홉 가지의 선언은 참행복과 하느님 나라를 얻을 수 있는 대헌장입니다. 이 대헌장은 사람의 삶의 태도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참행복은 공짜로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삶을 살 때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행복은
구체적으로 주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가능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자비를 베풀며, 의롭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 때문에 박해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쁘고 떳떳하게 주님의 종으로 살 때 비로소 주님께서 마련하신 참행복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밖의 행복에 대한 꿈은 모두 허상이고, 환상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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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11월 1일
  |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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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참 풍요롭고 밝게 키워 낸 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남편을 잃고
혼자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하였지만, 아이들은 매우 밝았으며 그늘진 구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공공 버스를 탈 때마다 “이건 우리 차야.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주신 거란다.” 하고 말했고, 산과 들과 하늘을 바라보면서는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셨단다. 우리는 얼마나 부자인지 모른단다.”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비록 물질적으로 빈곤했지만
늘 신앙 안에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면서, 아이들에게 척박한 세상에서도 늘 선한 의지를 갖도록 해 주고 세상을 풍요롭게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물질적 소유가
최고 가치가 된 이 시대에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어머니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정이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어머니가 하느님 안에서 믿음과 희망을 심어 준 이런 아이들은, 세상의 어떤 풍파가 닥쳐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빈곤 속에서도
마음만은 풍요롭게 살 줄 알고, 반대로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가난한 마음을 가질 줄 알 것입니다. 삶의 깊은 곳에 흐르는 인간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늘 깨닫고 살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생존 양식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지요.

그는
재산이나 지식,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추구하며 자기 소유에 전념하는 ‘소유 중심’의 삶과,

나눔과 베풂을 삶의 가치로 여기며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 중심’의 삶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소유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은
소유 자체가 자신의 존재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늘 두려워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이해관계로 보기 때문에 방어적이며 가혹해지고 결국 스스로 외로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존재 중심’의 삶은 베푸는 삶,
더불어 사는 삶, 봉사하는 삶, 곧 너와 나 모든 존재를 하나로 만듭니다. 참된 행복은 자기가 가진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 것으로 바라보며 함께 누리고 나누는 데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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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미사 2011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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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제자인 공손추(公孫丑)가 스승에게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聖人)이십니다.” 하고 말하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성인이라는 말은 공자께서도 자신에게 당치 않다고 하셨다.” 이처럼 성인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성인 가운데 교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겸손과 반대되는 교만은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를 자랑하며 남을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큰 병폐 가운데 하나가 교만입니다.

그렇다면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아(無我)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잊고,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비우는 자세입니다. 자신을 비우는 사람은 가진 것이 없으니 내세울 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 없으니 겸손하게 됩니다.

‘아빌라의 성녀’로
널리 알려진 예수의 성녀 데레사 수녀는 하느님만으로 아쉬울 것 없고 하느님만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았던 분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엇에도 네 마음 설레지 말라.
그 무엇도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하느님만이 가시지 않으니
인내함으로써 모두를 얻으리라.
하느님을 모시는 이는 아쉬울 것 없으니
하느님 한 분이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느님만을 믿고 그분께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곧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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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2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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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이른바 ‘진복팔단’(眞福八端)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에서 행복에 이르는 여덟 가지 기준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 기준에 가장 충실하게 살았던 분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셨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그분께서는 머리를 기대실 곳조차 없으셨습니다(마태 8,20 참조).

또한 그분께서는 슬퍼하셨습니다.
라자로의 죽음을 보시면서, 또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 11,35; 루카 19,41 참조).

또한 예수님께서는 온유하시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말없이 수난을 받아들이셨고,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시어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9,28 참조).

예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마음이 깨끗하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복음서 곳곳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또한 평화를 이루시고자
유다인들에게 박해를 당하신 것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요컨대, 진복팔단에서 제시하신 행복의 길을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실천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러셀’이라는 등산 용어가 있습니다.
겨울 산행에는 누군가 먼저 눈을 다지며 길을 내야 하는데, 깊이 쌓인 눈 위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길을 터 주는 힘든 작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러셀의 역할을 하신 예수님과 그 길을 따라 산 성인들을 기억하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을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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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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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문학 평론가 <피에르 바야르>의
『나를 고백한다』라는 매우 인상적인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스 같은 불의한 권력 집단에 저항한 의로운 사람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묻습니다.

그가 각별히 주목하는 이들 중에는
나치스를 비판하다가 사형된, 뮌헨 대학교의 학생 셋도 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내밀한 느낌’이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보여 준 그들의 모습에 대한 증언을 인용합니다. “기소당한 세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아주 바른 자세로, 침착하고 고독하게 앉아 있었다. 그들은 솔직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한 아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번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말하고 쓴 것은 사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거예요.
단지 그들은 감히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죠.’”

저자는,
혼자가 아니라는 그들의 확신에 찬 감정이 단지 동시대인들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 역사 안에서 그들의 행위가 옳다는 것을 확인해 줄 이들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현재의 폭력과 불의의 권력에서 자유로운 보편적인 정의와 인간성의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들이 고립감을 이겨 내고 꿋꿋이 올바른 일을 행할 수 있었던 데는 그들의 가톨릭 신앙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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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에
우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생각합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 안에서 현세와 내세, 지상과 천국을 포괄한 영원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단지 죽은 뒤의 삶을 위한 ‘영적 구원’에만 관련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인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여기서 구체적으로 선과 정의와 애덕을 위해 투쟁하고 헌신하는 삶을 이끄는 원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이는 결코 외롭지 않으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는 ‘이미’ 성인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주님의 길에
‘모든 성인’이 있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을 기뻐하면서, 성인들이 감지하고 의지했던 진리의 빛을 굳건히 따르도록 결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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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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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인장을 받은
하느님의 종 십사만 사천 명! 시한부 종말론과 연관된 사이비 종파들은 구원받을 수 있는 숫자를 십사만 사천 명으로 못 박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 숫자는 상징적입니다. 십사만 사천 명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만 이천 명씩 나온 숫자로서, 완전하게 가득 채워진 숫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그다음에 이어지는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와 가까운 의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성인들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성인들의 수를 수천 명, 수만 명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어린양의 피로 깨끗해져서 천국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이들, 하느님께서 사랑을 베푸시어 당신 자녀로 삼아 주신 이들은 그리스도를 닮아 순결하게 되어 언젠가 그분처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하늘 나라를 그리워하면서 정의와 자비와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갈망도 언젠가 채워져, 하늘 나라가 바로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니, 이런 분들의 숫자가 십사만 사천 명뿐이겠습니까!

“성인들은 인간이었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성인이 되셨다면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고백대로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나도 성인이 될 수 있고 또한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어떻게 살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성인은 맡은 일에 열중하며 주어지는 모든 일을 거절하지 않는다. 성인에게는 주어지는 모든 것이 선행의 좋은 기회가 될 뿐이다”(루이 라벨). 성인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거절하지 않는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인데, 아마도 이렇게 하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은 영원하니, 눈을 들어 하늘 바라보기를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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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5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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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인 모두의 공통된 바람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거룩함’은 본디 ‘다른 분’,
‘따로 떼어 놓은’,
‘구분 지어진’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태초에는 하느님께만 쓰인 칭호였습니다.
곧,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초월적인 상태,
그래서 우리가 삶 안에서
감히 참여하기 어려운 경외의 대상입니다. 그

러나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에서
주 하느님께서는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기 19,2)라고 하시며 인류를 당신의 거룩함에 초대해 주셨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도 여타의 민족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 노력했습니다.

우리 인류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거룩함은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곧, 거룩함은 계명을 준수하거나 외적으로 정화된 모습을 갖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인들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려 노력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함이야말로 참된 행복의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참행복도 세상이 추구하는 부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슬퍼하고 박해를 받을 때도 있지만, 이를 통해 오히려 하느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 안에 존재합니다.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또한 나의 삶과 생명을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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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매일미사 2016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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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을 뜻합니다. 겸손하기에 오로지 주님께만 의지하게 되지요.

우리는 살아가며 엄청난 슬픔을 겪습니다.
이런 고통을 통해서 오히려 삶의 깊은 면을 통찰하고 주님의 참뜻을 깨우치기도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권리보다 의무를 앞세우며 복수마저 주님께 맡깁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주님을 절실하게 찾으며, 주님 뜻에 따라 의로운 일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사랑을 나눕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마음이 올바르고 일하는 동기가 순수한 사람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름대로 순교의 길이 요구되지 않습니까?

신앙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시련의 길을 걸으면서도
주님과 일치되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며
성인들의 모습을 닮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성인이라 하여 모두가 하느님 계명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수한 것도 아닙니다.

뒤늦게 회개하기도 하고,
하루하루 삶에서 가난한 마음을 지니고, 고통을 통해 주님의 뜻을 새롭게 깨우치면서 주님을 절실하게 찾은 분들입니다. 자신을 단련해 가면서 하느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더 닮아 가려고 노력한 분들이지요. 우리도 이런 삶을 살 때 성인들처럼 하느님과 일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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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매일미사 2017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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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이 물질적 풍요와 고통 없는 쾌락, 그리고 세상의 명예를 얻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온순하고 착하게 사는 것은 멍청한 일이고, 자비롭고 의로운 삶은 이기적 세상의 희생양일 뿐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쫓던 군중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참된 행복의 기준은 역설적입니다. 참된 행복은 가난, 억눌림, 불의, 폭력, 위선, 전쟁과 박해의 고통을 벗어나려고 사람들이 선택한 가치들을 거슬러 살아가는 용기와 희망에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힘이 없어서,
능력과 용기가 없어서 좌절하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에 희망을 걸고 참고 견디는 사람에게 희망의 약속이 선포됩니다. 슬픔에서 위로를 받고, 착취와 박해에서 해방되며, 거짓과 위선의 탈이 벗겨진 평화와 정의가 넘치는 세상이 옵니다. 이런 희망은 오직 현실의 모순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와 희망을 간직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박해의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 얻는 희망을 상징적으로 선포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어좌에서 그분을 마주보는 영광을 얻습니다.

교회가 칭송하는 성인들은
우리처럼 고통과 슬픔, 고독과 두려움을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용맹과 순결의 덕으로 희망 속에 하느님을 잃지 않았기에 영원한 생명의 보상을 받은 분들이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도 성인들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먹고 참된 행복을 희망하며 살아야 하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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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매일미사 2018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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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은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이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참행복 선언은 누가 그러한 성인이 될 수 있는지, 누가 이미 하느님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성인인지를 알려 줍니다.

하느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철저히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 진정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 하느님의 뜻이 거부되는 상황을 슬퍼하는 사람, 예수님을 닮아 다른 이들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는 온유한 사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곧 아버지의 의로움이 드러나기를 갈망하는 사람, 하느님께 자비를 입은 것처럼 원수에게까지 자비를 베푸는 사람, 몸과 마음을 주님 법으로 깨끗이 하며, 하느님과 인간, 이웃과 이웃의 깨진 관계를 다시금 잇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 특히 예수님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이 바로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될, 아니 이미 참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성인들입니다.

제1독서에서
봉독한 요한 묵시록은 하늘 나라를 차지하여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될 이들의 수가 144,000명이라고 말합니다. 144,000은 구약의 이스라엘(열두 부족)과 신약의 이스라엘(열두 사도)에, 구원 역사 안에 현존하시면서 구원을 성취하시는 그리스도의 기간인 1,000을 곱하여 나온 수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무수한 성도들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인이란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인 말고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이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2독서가 말하듯 하느님의 큰 사랑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하나하나가 성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직접 ‘성도들’, 곧 ‘성인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지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성도들,
성인들이라 불리면서도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참행복을 누리며 살지 못합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면서 성인들처럼 하느님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이미 성인 반열에 드신 모든 성인에게 다시 한번 도움을 간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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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매일미사 2019년 11월 1일
  | 10.30
461 45.2%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제 연합(UN)은 해마다 행복 지수를 나라별로 조사하는데 국내 총생산, 기대 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타인에 대한 관대함, 사회의 부정부패 수준 등을 고려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들로 개인이 느끼는 행복을 모두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행복하여라.”
예수님의 이 선포는 그 당시에도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향한, ‘나’ 자신을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만일 지금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면 아직 마음이 가난하지 못하고, 함께 슬퍼하거나 온유하지 못하고, 자비를 실천하거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여 평화를 이루는 데 부족한지도 모릅니다. 또한 행복을 위한 의로움의 추구가 부족하거나,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할 만큼 주님을 따르는 일에 열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기준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말씀이고 삶에서 실천해야 할 행복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바꾸라는 초대처럼 들립니다. 행복 선언은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위한 새로운 기준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모든 성인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을 듣고 성인들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살아간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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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매일미사 2020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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