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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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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마음의 가난
조회수 | 2,212
작성일 | 08.10.30
처음 매일성서묵상을 부탁받고는
그동안 말씀을 맛들이는 것에 소홀히 한 저를 위한 하느님의 초대인 것 같아 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마감날짜가 다가오면서 뒤돌아보니 말씀을 맛들이지도 못했고, 급기야는 제가 쓸 묵상 내용이 어떤 반응을 가져올까? 행여 별볼일 없는 내용이라고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예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한가? 내 안에 하늘나라가 있음을 느끼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아니올시다’인 것은 하느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체면이나 차리려고 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이 잘나고 못나고,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믿음을 가진 사람이며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는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지금 이 순간 두려움과 걱정, 부담과 고통을 함께 나누시고 참 평화를 바라시는, 그래서 당신 사랑으로 돌보시고 영적·물적 필요를 안배하시는 그분을 신뢰하는 태도라는 생각인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하느님의 지식과 지혜를 청하며 당신의 말씀을 깨닫고 맛들일 수 있는 은혜를 청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만납니다. 이제 저는 당신의 사랑과 돌보심으로 두려움을 넘어 자신의 한계와 허물조차도 진솔하게 나누며 이런 저에게 내리시는 당신의 평화와 사랑을 체험하기에 하늘나라가 여기에 있음을 느낄 수 있어 감사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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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목자수녀회 변수운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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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씀하신 참 행복은 성령께서 주신 새로운 은총의 선물이다.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는 ‘산상설교는 하늘로부터 일으켜진 땅의 진동’이라고 했다. 순전히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참 행복을 따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참 행복은 불합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행복은 오직 미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시련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사랑하신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말씀은 기쁨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의 가난은 마치 돈이나 소유물에 행복이 달려 있기라도 하듯 그것들을 우상처럼 섬기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 준다. 하느님만이 절대적인 분이시며, 모든 창조물은 우리가 창조된 목적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에서만 선한 것이다.

행복을 주제로 한 동화가 생각난다. 한스는 일한 대가로 금덩어리 하나를 받고 행복했다. 그러나 그는 금을 말 한 마리와 바꾸었고, 그 다음에는 소·돼지·거위와 바꾸었고 마침내 돌덩이와 바꾸었다. 새로운 것을 바꿀 때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바꾼 돌을 낑낑거리며 들고 가다가 그만 물속에 빠뜨리게 된다. 그러자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난 다음에 그는 자유를 느꼈다.

오늘은 이 지상에서 순례길을 걷고 있는 우리와 천국과 연옥에 있는 이들의 통공을 고백하며, 우리보다 앞서 성화의 길을 간 성인들을 본받고 자신의 성화를 생각하는 날이다. 성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예수님 외에는 모든 것을 버린 자유로운 분들이었다. 오늘 우리도 ‘마음이 가난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첫걸음을 내디디며 행복한 순례를 시작하자.

김희자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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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聖人)이 되는 비결

성인(聖人) 하면 우선 드는 느낌이 무엇입니까? 저 같은 경우 일단 거리감부터 느껴집니다. 나와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나 세계에서 살아가신 분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할 수 없는 특별하고 비범한 인물들. 성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또 어떤 단어들입니까? 기도, 침묵, 관상, 탈혼, 고행, 극기, 오상, 단식, 거룩함, 엄숙함, 진지함, 기적, 치유 등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제 개인적으로 손이 별로 가지 않는 책들이 성인전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도서관에 꽂혀있는 성인전들은 대체로 빛이 바래고 책장을 넘기면 케케묵은 먼지가 날립니다.

그러나 최근 시성된 성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성인품에 오르는 일은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르면 성인의 길은 누구에게나 다 활짝 열려있습니다. 성성(聖性)은 우리에게도 도달 가능한 보편적인 길이기에 어찌 보면 부족한 우리 모두도 다 시성시복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예비 성인들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성인들이 지닌 특성이 한 가지 있는데 그 특성을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 특성은 다름 아닌 살아있을 때부터 성성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승에서의 삶이 전혀 아니었던 사람, ‘이건 아닌데’ 하는 사람이 죽어서 성인품에 오를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돈보스코 같은 분, 마더 데레사 수녀님 같은 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같은 분,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세상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성성(聖性)을 확인했습니다. 살아계실 때부터 사람들은 그분들을 성인(聖人) 대하듯이 대했습니다.

성인(聖人)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은 죽고 나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성인(聖人) 소리를 들어야만 합니다. 저 분은 정말 법 없이도 살 사람이네, 성가정이 따로 없네, 날개만 없다뿐이지 천사가 분명해, 혹시 바보 아냐, 이 세상에 살 때부터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성인후보자가 확실합니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아 저는 확신합니다. 성인이란 우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별세계에서 살다간 유별난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우리보다 한 3분 정도 더 인내한 사람, 우리보다 조금 더 친절했던 사람, 우리보다 조금 더 사랑했던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우리보다 조금 더 따뜻함을 지녔던 사람들, 우리보다 조금 더 인간미를 풍겼던 사람들, 우리보다 조금 더 영적 생활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성인들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머무는 빛인 사람들, 이제는 어둠의 세력과 결연히 단절하고 떳떳하고 당당한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확실한 성인 후보자들입니다.

어렵고도 어려운 길이 성화의 길이지만, 어떻게 보면 조금도 어렵지 않은 길이 성화의 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함을 통해서, 좀 더 기쁘게 살아감을 통해서, 조금만 더 기도함을 통해서, 조금만 더 양보하고 물러섬을 통해서 우리 역시 충분히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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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聖人)의 삶

방금 우리는 모든 성인의 대축일
시편 저녁 기도를 참 기쁘게 노래했습니다.
저녁기도의 시편 후렴들은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며칠 전 성가 연습 중, 다음 성모의 노래 후렴을 부를 때
‘아, 11월 위령 성월은 희망의 달이구나!’라는 고백과 더불어
기쁨이 가득 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성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는 그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흰 옷을 입고 어린 양을 따라 가는 도다.”
그렇습니다.
11월 위령성월을 여는 첫날인 모든 성인의 대축일은 ‘희망의 날’이고,
11월은 ‘희망의 달’입니다.
회색빛 우울한 허무의 달이 아니라 희망으로 충만한 달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란히 드러내는 모든 성인들 덕분으로
허무의 달은 충만한 기쁨으로 출렁이는 희망이 달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물론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살았던
모든 성인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성인들이 있어 살맛도 살 의욕도 샘솟습니다.
허무를 딛고 용감히 일어서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별난 성인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 성인들이 되라 불림 받고 있습니다.
본래의 ‘참 내(眞我)’가 될 때 성인이고,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모두 성인이 될 가능성을 부여 받았습니다.
바오로의 다음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어,
성인이 되어,
그리스도를 뵙는 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분께 이런 희망을 두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을 순결하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의 진복선언을 충실히 살아갈 때 참 행복에 순결한 삶이요,
성인의 삶입니다.
마음 가난한 사람이 되어,
슬퍼하는 사람이 되어,
온유한 사람이 되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어,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이 되어 살아갈 때,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최고의 보물인 하느님을,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되므로 참 행복에 순결한 삶이요,
성인의 삶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성인의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유일한 목표는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누구나 공평히 부여받고 있는 성인의 가능성입니다.
어느 성인을 닮아서 성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 본래의 참 내가 될 때 성인입니다.
제1독서 요한 묵시록에 소개되는 바,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있는,
인장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사람들이 이 상징하는 바,
구원받은 성인들이요, 장차 우리의 미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어느 원로가 요한에게 한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고 시사(示唆)하는바 깊습니다.
평탄대로, 온실 속의 성인이 아니라 온갖 어려움 속에서
진복선언의 말씀을 지킨 사람들에게 하사되는
하늘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진복선언의 말씀을 살면서 겪는 온갖 시련과 고통이
어린 양의 피가 되어 우리 영혼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합니다.
이 복된 미사시간, 주님은 성체성혈의 은총으로
우리 영혼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해 주셔서
우리 모두 성인임을 깨닫게 하시며,
어려운 삶을 힘껏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크나 큰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분도회 이수철 신부
  |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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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마태 5, 1-12)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이들! 그들이 위로를 받으리니. 행복하여라, 온유한 이들! 그들이 땅을 차지하리니.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에 따르면, 원죄는 세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 첫째는 우리가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함이고,
둘째는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탐욕이고,
셋째는 비록 행복이 찾아지는 곳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함이다.

이것이 원죄 이후의 인간의 상태이고 조건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나서지만 잘못된 곳 즉 탐욕을 쫓아가고 있으며 비록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을 알면서도 우리의 의지가 나약하기 때문에 작심 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주 넘어진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행복을 인간에게 되찾아 주러 오셨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우리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제시하셨고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가를 가르쳐 주셨다. 즉 오늘 복음은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인간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약도로서 행복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행복에로 초대받은 이들이며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예수님 한테 배우는 사람이고 그래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예수님이 제시하신 행복의 비결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번 예수님이 제시해주신 행복의 비결을 배우고 그렇게 생활하도록 노력하자. 예수님이 제시해주신 행복의 비결은 즉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여덟 개의 길이 있다. 그 중에 어느 한가지 길만이라도 제대로 간다면 행복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여덟가지 길은 서로 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첫째,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 이란 말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자서전과도 같은 말이다. 즉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얼굴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신 분이시다. 마음이 가난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실 수 있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코전 8,9) 그래서 바오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tu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5-7)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둘째, 슬퍼하는 이들이란 하느님이 누구이신가?를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와 똑같이 우리의 죄 때문에 슬퍼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불행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고, 인간이 지은 죄를 보시고 우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 많은 죄를 지었으면서도 아무런 슬픔이 없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다.

셋째, 온유한 이들이란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온유한 그분의 모습이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이며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온유한 마음만이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은총으로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가장 큰 불행은 완고한 마음이다.

넷째,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만이 거짓과 불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의로움이란 하느님의 것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이다. 하느님의 것에 대한 주림과 목마른 사람만이 하느님을 찾아 나선다. 예수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의 주림과 목마름 때문에 인간을 찾아 나섰듯이.

다섯째, 자비로운 이들이란 하느님의 공동체에서 사는 이들의 모습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가 6,36)고 말씀하신 것 같이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요, 하느님의 공동체이다.

여섯째,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란 현실의 진리를 밝히신다. 즉 이 세상 종말에 가면 현재의 것들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마지막 날에 승리하는 자는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다. 그들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그 도성으로 들어 가지 몫하고 흉칙한 짓과 거짓을 일삼은 자도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도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다만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들뿐입니다."(묵시 21, 27)

일곱 번째,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란 자기 신원에 맞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자녀라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해야할 일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평화를 가져다 주러 오셨다. 이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는 폭력적인 방법으로가 아닌 사랑의 방법이다. 따라서 사랑으로 평화를 건설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산 위에서 가르쳐주신 산상설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요약한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떤 생활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진복팔단은 병들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시켜주는 약이며 거짓과 탐욕과 불의로 병든 우리의 마음을 낫게 해주는 진리이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이 행복관을 생활하는만큼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며 우리 자신이 될 것이며 잃어버렸던 우리의 참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행복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직접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행동을 하고 또 그러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행복의 길은 행복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일이다.

성 바오로회 유광수 신부
  |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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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산길을 걷다가 나비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리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든 소녀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비를 구해 주었지만 소녀의 팔과 다리는 가시에 긁혀 피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멀리 날아간 줄 알았던 나비가 순식간에 천사로 변하더니 소녀에게 다가와 자기를 구해 준 은혜에 감사하며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소녀는 망설임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살게 해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천사는 알았다며 소녀의 귀에 무슨 말인가 소곤거리고 사라졌습니다.

소녀에겐 늘 행복이 떠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임종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할머니가 죽기 전에 그 행복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나비 천사를 구해 준 적이 있지. 그 대가로 나비천사가 나를 평생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주었어. 그때 천사가 내게 다가와 내 귀에 대고 ‘나를 구해 줘서 고마워요. 지금 나를 구해 준 것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꼭 도와주세요. 그럴 때마다 행복 에너지를 많이 보내드릴게요.’라고 속삭이고 떠나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참된 행복의 비결은 누군가에게 사랑이나 물질을 받음으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누군가를 위해 베풂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사도 20, 35)라고 했습니다.

복중의 복, 최고의 행복은 마음에 들어앉은 세상의 찌든 죄악을 비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 설교 여덟 가지 중에서 가장 먼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 3)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인가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합니다. 비운 후에 하느님의 복 일곱 가지를 채우는 것이 ‘진복팔단’입니다. 이 여덟 가지 행복은 하나하나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꿰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느님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다윗은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 1) 하고 자기를 하느님의 양에 비유했는데, 이는 다윗이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표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 한 분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 한 분으로 만족한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하느님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세상살이에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 주님은 보이지 않고 세상만 보이면 곤란합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고 돈만 보이면 큰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히브 12, 2)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잠언에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 4, 23)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마태오는 우리 마음을 밭에 비유합니다.(마태 13, 24) 밭에서 곡식과 채소와 같은 농작물을 재배하듯이 우리 마음 밭도 생명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밭을 지키는 것은 밭에 곡식이나 채소 종자를 뿌려 가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밭에 작물을 재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잡초가 무성하거나 쓰레기장이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온갖 잡초가 자라고 쓰레기 같은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로마 8, 5)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방치하면 온갖 육신에 속한 생각이 생겨나 결국 죽음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가난한 마음은 하느님으로 채워지려고,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비우는 마음입니다. 세상의 여러 유혹에 더럽혀진 마음을 회개를 통해 정화해야 합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날마다 마음을 깨끗하게 비워야 합니다. 성령의 생각을 우리 생각으로 받아들임으로 늘 겸손한 마음 상태를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낙심·좌절·증오·살인·악한 생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납니다. 이 같은 육신의 생각은 죽음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반면에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면 우리 마음에서 긍정적이고 건강한 생각, 믿음의 생각이 샘솟듯 일어나게 됩니다. 주인을 맞이하려고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하인처럼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각으로 채워지고 내 향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로 채워, 세상 사람들과 다른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이 가치관이 수록된 것이 산상설교이고 그 가운데서도 ‘진복팔단’의 가르침입니다. 여덟 개의 행복으로 이루어진 천국 사다리를 올라가려면 첫 계단인 마음이 가난한 이가 받는 행복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천국을 선물로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합시다.

정애경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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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행복한 성인들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래서’ 행복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뿐인 선물인생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나뿐 아니라 이웃 역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웃 없이 나만의 행복은 없습니다. 참 행복을 살았던 성인들이요 우리 역시 참 행복을 살 수 있는 지름길은 성인이 되는 길뿐입니다. 우리 모두 예외없이 성인이 되라 불림 받고 있습니다.

11월 위령성월 첫날의 문을 활짝 연, 참 기분 좋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모든 성인들 덕분에 우리는 11월, ‘텅 빈 허무’가 아닌 ‘텅 빈 충만’의 희망성월希望聖月, 성인성월聖人聖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대축일에 우리는 무명無名의 모든 성인들을 기리며 우리 또한 성인이 될 각오를 새로이 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성인이 되십시오.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인이 되는 길뿐입니다.

첫째, 누가 성인입니까?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가 성인입니다. 이미 성인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선물 받은 우리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자녀, 바로 이것이 우리 모두의 영광스런 신원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때 참 행복이요 성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께,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성인입니다. 이런 희망의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사랑과 순결은 함께 갑니다. 죄가 없어서 순결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할수록 순결한 삶입니다. 희망이, 꿈과 비전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성인들의 영원한 희망이자 꿈이요 비전은 하느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얼마전 달밝은 밤에 써놓은 ‘하느님의 등불’이란 소박한 시가 생각납니다.

-어둔 밤/환한 등불
눈들어 하늘 보니/달님 등불
나에겐/두 등불이 있다
낮에는/햇님 등불
밤에는/달님 등불
둘 다/하느님의 등불이다.-

온누리를 환히 밝히는 하늘의 해와 달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의 등불이요 영원한 희망이신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 희망을, 비전을 잃어버려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중에 방황이요 건강과 돈의 우상이 어김없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늘 ‘희망의 등불’인 그리스도를 따라 살 때 행복한 성인입니다.
둘째, 어떻게 살아야 성인입니까?

오늘 복음의 참 행복을 살 때 성인입니다. 모세의 십계명을 능가하는 것이, 아니 십계명을 완성하는 것이 오늘 주님이 주신 진복팔단의 참행복 선언입니다. 거룩함의 대헌장이요 행복한 성인이 되는 길도 여기 있습니다.

1.마음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 성인들입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2.슬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성인들입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3.온유한 사람들이 행복한 성인들입니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4.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행복한 성인들입니다. 그들은 흡족할 것입니다. 5.자비로운 사람들이 행복한 성인들입니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입니다. 6.마음 이 깨끗한 사람들이 행복한 성인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입니다. 7.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행복한 성인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8.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행복한 성인들입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성인은 물론 우리의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모든 성인들이 이런 참 행복의 하느님을 체험하셨습니다.내 성덕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바로 진복팔단입니다. 재미있는 제안 하나 드립니다. 여러분의 성덕聖德을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 위 진복팔단 8개 항목을 항목당 1점만점으로 하고 기본점수 2점 합하여, 도합 10점만점에 몇점이 되는지 계산해 보십시오. 10점 만점에 6점이 넘으면 성인聖人입니다. 하느님을 닮아 행복한 성인이 되는 길은 오직 진복팔단의 참행복 헌장뿐입니다. 하느님의 승리, 믿음의 승리를 상징하는 성인들입니다. 저절로 참행복한 성인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안에서 자기와의 치열한 영적전투의 승리의 결과가 참행복의 열매입니다. 오늘 1독서의 요한 묵시록이 참행복이 완전 실현된 성인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묵시록의 14만 4천명이 상징하는바 무명의 성인들입니다. 우리의 복된 미래를 보여줍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이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하느님을 경배합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이런 성인들의 비전이 우리에게 무한한 힘과 위로의 원천이 됩니다. 더욱 참행복의 진복팔단의 삶에 투신하게 합니다. 이미 천상성인들과 함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다음 묵시록의 영원한 비전을 앞당겨 체험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요한묵7,16-17).

셋째, 성인으로 살아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새롭게 성인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만나야 할 자리도, 하늘나라를 살아야 할 자리도, 진복팔단의 참 행복을 살아야 할 자리도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하늘나라는 고정된 자리가 아니라 참 행복을 살 때 바로 거기가 실현되는 하늘나라입니다. 지금 여기서 이런 하늘나라를 살지 못하면 죽어서도 못삽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를 격려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11월 위령성월은 어둡고 우울하게 세상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회색빛 달이 아니라 은총으로 빛나는 희망의 달이요 성인의 달입니다. 위령성월이 끝나면 이어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의 대망의 대림시기가 펼쳐집니다. 좋으신 주님은 이 거룩한 천상잔치인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 참행복의 하늘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2015년 11월 1일>

▥ 분도회 이 프란치스코 신부
  |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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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모든 성인의 날-여러분도 성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모든 성인의 날입니다. 성인품에 오르지 않은 그래서 알지 못하는 성인들을 함께 기리는 날입니다. 그러나 성인품에 오르지 못했지만 실제 성인들을 섭섭지 않게 해드리려고 우리가 이 날을 지내는 것으로 우리는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 성인들이라면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있는 성인들이라면인간들이 자신들을 공경하고 칭송하는 것에는 이미 초월한 분일 터이고, 인간의 공경이나 칭송을 바라는 성인은 성인도 아닐 터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성인의 날을 지내는 뜻은 모든 성인을 놓치지 않고 공경해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도 모두 성인이 될 수 있으니 우리 모두 성인이 되자는 것일 겁니다.

우리 모두 모든 성인을 본받아 성인이 되자는 교회의 초대가 여러분에게는 어떻고 그 초대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초대가 여러분에게 기쁘고 그래서 그 초대에 기꺼이 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나 같은 사람이 성인 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고 생각하거나, 성인되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기에 거절하시겠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 성인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는 것은 무척 어렵고 힘든 것이고, 고행극기를 철저히 하고, 십자가를 힘들게 져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초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밝고 따듯한 동기가 아니었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거라는 인격적인 동기도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뜻의 성인이라면 성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이 먹어 고행의지가 약해지고 십자가 질 힘도 떨어져 그런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성인에 대한 저의 생각이 밝고 따듯하게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밝고 따듯하게 바뀌었다면 어떻게? 앞서 봤듯이 성인이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성인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그러므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으로 행복한 것이고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복음 진복팔단에 나와 있기에 제 말이 군더더기가 되겠지만 참으로 행복한 것은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다시 말해서 안 좋은 조건에서도 무조건 행복한 것입니다.

가난해도 행복하고 부유해도 행복하고, 기뻐도 행복하고 슬퍼도 행복하며, 박해와 모욕을 당하건 그렇지 않건 어떠한 조건에서도 행복한 것인데 행복의 유일한 조건인 하느님 나라를 현세에서부터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성인이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할 때 참으로 만족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태중교우임에도 인생문제와 신앙문제로 방황을 할 때 몸은 우리 교회 안에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러 종교를 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깨달은 사람이 되려고도 했었고, 도교의 무위자연인이 되고 싶어 하기도 했지만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소유한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깨닫고 나서는 다시 그리스도교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그렇기에 성인의 길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 하니 말입니다.

다만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가 문제가 되겠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그 사랑으로는 성인되기 어렵고 모두를 사랑하고 모든 것이신 하느님을 사랑해야만 되겠지요?!

▮ 작은 형제회 김찬선(레오나르도) 신부 : 2016년 11월 1일
  |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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