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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행복 선언
조회수 | 2,369
작성일 | 08.10.30
그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군중들은 과연 그 말씀을 그대로 살았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기쁨은 찌들린 일상으로 희석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부자들 또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대로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을 예수님께서 굳이 이러한 선포를 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의 축일입니다.
우리들은 무수한 성인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서 성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그분들이 살아내신 가난 희생 고통을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선언은
내 안에서 하느님이 차지하시는 비율입니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은 그만큼 하느님의 자리가 넓을 것이고, 자신의 것으로 꽉 찬 사람은 하느님께 내드릴 자리가 좁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이 가난하고 슬프고 온유해야 하며, 자비로운데다가 마음까지 깨끗하여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때에만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내 것을 사랑으로 나누는 마음이 있다면, 이웃의 아픔에 연민을 가진다면, 주어진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순명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틀림없는 그분의 자녀라는 기쁜 소식입니다.

위령성월의 첫 날에
이 특별한 축복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와 함께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되기를 꿈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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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장재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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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분 어떠십니까? 마음이 화창하십니까? 아니면 조금 흐리십니까? 사람이 살다보면 언제나 맑은 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맑더라도 조금 있다가 집에 들어가보면 눈살을 찌푸리게도 되고, 지금은 조금 어둡더라도 내일 아침이면 다시 밝아 질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언제나 충만하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뭘 해도 조금은 부족하게, 혹은 너무나 부족해 보이는 것이 자기의 모습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재력, 건강, 자식복 등의 능력을 고루 갖춘 사람, 뭐 하나 빠진 것 없이 다 성취한 사람도 있어 보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우리는 내 옆 사람들 모두가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식 자랑하기 바쁜 이웃집 아주머니 앞에서, 이번에 횡재했다고 떠벌이는 직장 동료 앞에서, 시험 망쳤다고 속 상해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성적이 좋은 친구 앞에서 기가 죽습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행복의 조건들조차 나에게는 과분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리 부족할까’하고 자문해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평균적인 행복의 요소들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게 주어진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나보다 더 잘 나 보이는 절대 다수와 나보다 못해 보이는 절대 소수의 사람들을 더해서 나눈 값이 행복의 평균값일 수 있습니다. 단 이것도 우리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나의 눈에는 못나 보이는 사람들은 들어오지도 않고 더 잘나 보이는 사람들만 들어옵니다. 그렇게 잘난 사람의 잘난 부분과 비교하면 나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넘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늘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신앙적으로 나보다 잘난 사람들만 생각하면 나는 성인이 아니라 죄인에 가깝습니다. 기도도 부족하고, 나눔도 부족하고, 사랑도 부족해 보입니다. 내세울 것이 변변찮습니다. 세상의 그 무수한 성인들 앞에서 나만 죄인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인의 대축일이 있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성인이 될 자질이 있다는 교회의 권고입니다. 복음이 전하고 있는 한계와 부족함 속에서도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전하는 희망의 날입니다.

주님 때문에, 이웃 때문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
주님 때문에, 이웃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
주님 때문에, 이웃 때문에 참고 견디는 온유한 사람,
주님 때문에, 이웃 때문에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주님 때문에, 이웃 때문에 자비를 베푸는 사람,
주님 때문에, 이웃 때문에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주님 때문에, 이웃 때문에 옳은 일 하다가 박해를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실행하는 순간부터,
부족한 마음의 빈자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채워지고 행복해진다는 말이 됩니다.

항상 부족해 보이고, 내 뜻대로만 되는 세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가운데서도 사랑을 실천하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 닫는데까지 도울 때, 내가 한 부족한 일들이 세상에 쌓아 올린 공로가 됩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내민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모릅니다.

새로운 달의 시작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행복의 길을, 성인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번 한 달,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성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노력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아멘.

서진영 신부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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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의 후광(後光)

오늘 전세계 교회는 오직 하느님의 영광 속에 자신과 자신의 삶을 봉헌한 모든 성인(聖人)들의 축일을 기념한다. 모든 성인 대축일은 "강림하신 성령의 공현(Epiphania)"이라고도 한다. 이는 성인들 자신이 하느님 성령 안에서 마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2,24) 이는 아직도 지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적이기도 하며, 그 목적을 향한 우리의 여정 또한 계속된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은 일년의 달력 안에서 기념하는 모든 성인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다시 한번 축하하고 기리자는 날은 아니다. 마치 한 편의 성공한 연극에서 배우들이 관객들로부터 여러 번 박수갈채를 받고 난 뒤, 무대, 조명, 안무, 음악 등의 연출자들과 모두가 함께 앞으로 나와 마지막 박수를 받는 그런 일과 다르다는 것이다. 비록 성인들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떠난 훨씬 뒤에 교회에 의해 시성(諡聖)하여 공식적으로 성인대열에 올림을 받은 사람들이라 하지만, 이미 세상에서 성인의 삶을 살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공경하는 성인들은 이미 이 땅에 살 때 성인이었다는 말이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정말 성인(聖人)처럼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그가 거룩하게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거룩한 줄 모르고 거룩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들의 과거에 대한 어떤 것에도 상관없이 항상 처음처럼 새롭게 대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도 그를 사람들 중에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여, 한번은 수호천사를 불러 그에게 모습을 보이고 소원을 하나 꼭 들어주도록 시켰다. 하느님의 명을 받은 수호천사가 그에게 모습을 보이고 소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는 소원이라고는 없다고 하였다. 글쎄 소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는 한사코 소원이 없다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천사가 "너에게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기적의 은사를 줄까?" 하고 묻자, 병자를 치유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라면 거절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죄인들을 회개시켜 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힘을 줄까?" 하고 묻자, 그런 일이라면 당신들 천사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거절하였다. 마지막으로 천사가 "그러면 너의 거룩한 삶을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아 존경할 수 있도록 해 줄까?" 하고 묻자, 그는 펄쩍 뛰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교만해져서 사람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는 꼭 들어주어야 한다는 명을 받은 천사가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난처해하자,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저를 통해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해 주시되, 그 사실을 내가 모르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 천사는 하느님께 가서 그대로 고하였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천사를 시켜 그 착한 사람에게 후광(後光)을 걸어 주도록 하였다.

이것이 성인들의 후광(後光)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앞도 옆도 아닌 성인의 머리 뒤에 빛나는 광테이다. 자신만 볼 수 없고, 다른 사람만 볼 수 있는 후광인 것이다. 물론 살아 있는 우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후광을 빛내고 있으리라. 그들은 바로 오늘 복음의 아홉 가지 참된 행복의 길 중에서 하나의 길을 택하여 꿋꿋이 가고 있는 사람들이리라.

박상대 신부
  |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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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소유가 아닌, 존재 그 자체

11월을 시작하는 오늘, 우리 교회는 뜻 깊은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을 지냅니다.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삶을 본받아서 살고자 기억하는 날입니다. 아울러 잘 알려지지 않는 성인들과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분들에게 더 큰 관심과 기도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의미 있는 날,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있는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며, 복음은 우리 모두를 참 행복에로 초대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행복을 갈망합니다. 근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달리 행복의 첫째 덕목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 하시면서 그들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것이다."(마태 5, 3)라고 하십니다. 전혀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아닌, 이 세상에서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지고 채워야 행복하다는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될 때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함께 하는 삶은 스스로를 내어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셨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마음의 가난은 단순히 무소유의 비움이 아니라,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우리의 뜨거운 가슴을 가리킵니다. 정작 우리가 나누지 못하는 연유는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눌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나눌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심장이 차갑지, 산 사람은 당연히 심장이 뜨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면 모두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재물의 소유가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따듯한 마음의 존재 여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의 가치 기준이 달라진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이미 행복의 씨앗을 다 주셨습니다. 그 행복의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잘 키우고 잘 가꾸는 것은 각자 자유의지에 달렸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교우님 모두 지금도 제각기 삶의 자리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행복하십니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박근범 신부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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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성인, 행복한 이들

오늘은 이 지상의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와 천국과 연옥에 있는 이들의 통공을 고백하며, 우리보다 앞서 성화의 길을 간 성인들을 본받고, 자신의 성화를 생각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성인들의 모습을 볼 때, 그들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인들을‘행복한 이들’이라고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 볼 때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성인들은 힘들고 어려움 삶 안에서도, 늘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참된 행복’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놀랍게도 넉넉하고 넘쳐야 행복하다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부족함을 느끼는 데에‘참된 행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마음의 가난’을 행복의 조건으로 꼽으십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가난은 단순하게 마음을 비우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채우는 것일까요? 또 재물이 넘치면 저절로 행복해질까요? 엄청난 재산가이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듯이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행한 이들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이 계시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며, 이들에게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한 이들은‘작은 이들’의 모습이지만, 하늘에서는‘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결코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또한 이들은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도 작은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이들입니다. 즉, 감사하면 겸손되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고, 이들이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행복은 그것을 바라보는‘소유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데서 출발합니다. 행복은‘물질의 소유’가 아니라, 먼저 하느님을 찾는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음의 가난은‘소유에 대한 절제’를 뜻하는 것으로, 그러한 삶을 실천할 때 행복해진다고 가르치십니다.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행복을 우리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 아울러 성인들의 삶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아멘.

▥ 부산교구 박상운 바오로 신부 / 2015년 11월 1일
  |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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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참 행복을 누리는 성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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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 대축일'은
하느님의 승리를 보여주는 모든 성인들을 기리는 기쁜 날입니다. 이날은 코로나19의 지속으로 고통 속에 지친 우리를, 그리고 우울하게 느껴지는 위령성월 첫날을 희망의 빛으로 환히 밝혀줍니다. 성인들은 하느님 승리의 생생한 증거이자, 우리의 영원한 희망의 표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성인들을 기념하고 기억할 뿐 아니라, 그들을 닮아 성인이 되길 바라십니다.

오늘 감사송은
성인이 되려는 우리에게 내적 활력의 원천을 주기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께서 오늘 저희 어머니인 천상도읍 예루살렘을 보여 주시니, 거기서 저희 형제들은 이미 승리의 월계관을 받아쓰고, 아버지를 영원히 기리고 있나이다. 나약한 저희도 성인들의 뒤를 따라 영광을 기뻐하며, 그들의 도움과 모범으로 힘을 얻어, 활기찬 믿음으로 영원한 고향을 향하여, 나그넷길을 서두르고 있나이다. 그들의 모범은 나약한 저희에게 힘이 되나이다.”

제1독서 묵시록은 성인들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지상에서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충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랐던 이들의 미래입니다. 천상에서 하느님과 어린양을 에워싸고 끊임없이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성인들과 천사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저절로 하늘나라로 직행하며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103위 성인이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냈듯이, 주님을 위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 정화되고 성화되어야 성인이 됩니다.

복음의 참행복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지켜야 성인입니다.
8가지 참행복을 누리는 길을 묵상하고 성찰하면서 스스로 신앙생활을 점검합시다. 많은 부족함을 느끼며, 더 노력해야 한다는 자극이 생길 것입니다. 이렇게 참행복을 위해 산상설교의 가르침 하나하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성인들입니다. 제2독서에는 요한 사도가 성인이 되려는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 사랑과 용기를 북돋우며 격려하십니다.

기도나 전례 때 희미하게 뵙는 주님이지만,
천국에서는 있는 그대로 그분을 뵐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 희망을 두고,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지키며 주님을 닮아 순결해지고 거룩해집니다. 코로나 19로 힘들고 지치면서 신앙이 약해지고 있지만, 천상의 성인들을 기리며 우리 역시 참행복을 누리는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 봅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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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한 건 도미니코 신부
2020년 11월 1일 <부산교구 주보>에서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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