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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나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불행한 사람일까요?
조회수 | 2,439
작성일 | 08.10.30
임종을 앞둔 늙은 스승이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위해 제자를 불렀습니다. 그는 제자에게 자신의 이 입 속을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이는 보이지 않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있는 이유를 알겠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특성 덕분에 오래 남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이것이 세상을 사는 지혜의 전부이다. 이제 더 이상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다. 항상 이것을 명심해라.”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은 이 자연 안에서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거대한 바위가 계곡물에 의해서 계속 깎여 나가 결국은 매끈한 바위로 변한 모습, 바람에 의해서 쓰러져버린 나무들, 다이아몬드를 자르는 칼이 물이라는 사실 등등…….

그런데 우리들은 이 일상의 삶 안에서 단단함만을 추구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을 최고 자리에 놓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나요?

하긴 저 역시도 여기에서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었지요. 그래서 성지에 처음 왔을 때, 얼마나 물질적인 것들을 밝혔는지 모릅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돈을 모으기 위해서 노력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성지의 생활은 힘들기만 했습니다. 오히려 행복의 기준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도와 사랑임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 뒤에 성지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그리고 당신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는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 높은 지위에서 권력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 등등 세상의 단단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절대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불행한 사람일까요?

모든 성인 성녀들은 세상의 단단함을 이기심으로써 어떤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이 성인들의 그 모습을 기억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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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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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만두 가게의 주인은 매일 세 번, 한 번에 딱 120개의 만두를 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100개는 팔고, 20개는 가난한 노인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손님이 일정한 것은 아니겠지요. 어떤 때에는 손님들이 없어서 만두가 남는 경우도 있겠지만, 때로는 손님이 많아서 만두가 모자라는 경우도 종종 생겼습니다. 이렇게 손님이 많아서 만두가 모자라도 주인은 예외 없이 20개의 만두는 절대로 팔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은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을 외치면서 만두를 달라고 했지만, 주인은 오히려 정색을 하면서 “이것은 팔지 않아요.”라면서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럴 때 주인의 얼굴에는 광채까지 났다고 하네요.

더 팔아서 자신의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노인과 아이들을 위한 만두라는 이유로 팔지 않는 이 만두 가게 주인은 과연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물질적인 수익의 증가만을 목적으로 하는 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오히려 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만두 가게에는 불황이 없었거든요. 사람들은 항상 변함없이 100개의 만두를 선착순으로 사기 위해서 줄을 섰고, 가계가 열리자마자 순식간에 100개의 만두는 모두 팔렸지요. 그는 남는 시간에 봉사활동을 했으며, 여가활동을 즐기면서 행복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겪는 고통의 근원은 바로 욕심에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욕심은 욕심으로만 이행될 뿐, 만족함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이 욕심이라는 것은 끝이 없기 때문에, 욕심을 간직하면 간직할수록 더욱 더 만족이라는 행복과 멀어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가운데 만족을 깨달으면 항상 즐거울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행복인 것입니다.

우리는 날씨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지만 내 기분은 바꿀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의 이 못난 외모를 바꿀 수도 없지만, 스스로 연출하여 보기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항상 이길 수는 없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스스로 나를 변화시킴으로 인해 즐거움과 행복을 체험하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천상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늘나라의 행복 속에서 사시는 분들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간직하게 된 그 행복은 과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얻으신 것일까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욕심을 끊임없이 추구해서 하늘나라의 행복을 얻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짧은 이 세상에서의 행복이 아닌 영원한 하늘나라에서의 행복을 위해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최선을 다해 사셨기에 얻은 것입니다.

이제 나의 생활을 다시금 변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모든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아, 세상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을 향해서 걸어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행복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려보세요.

조명연 신부
  |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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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지금껏 살아오면서 잘 쓰지 않는 말이 두 개 있다. “사랑한다.”와 “행복하다.”

원래 내성적이라 그런지 아니면 복잡한 인생관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왠지 사람에게 ‘사랑한다.’ 는 말은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져 말하기 어렵고, ‘마음이 변할까’, 혹 ‘진심은 아닐까’ 고민된다. 대신 ‘좋아한다.’ 는 표현은 편하고 정감 있게 느껴지기에 종종 사용한다. 또한 ‘행복하다.’ 는 말은 그 행복이 금방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말하기 어렵다. 행복한 때가 언제였나를 생각해보면 과거의 일인 것 같고, 막상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행복 속에 숨어있던 아픔과 건조함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나는 행복보다는 가끔 ‘만족’ 이라는 개념이 더 편한 것 같다. 그때그때 가끔, 나는 ‘만족’ 한다.

행복이란 의미는 나에게 좀 어렵고 숭고하다. 서양의 사람들이 해피(Happy)라는 단어를 우리의 강아지 이름 ‘해피’ 처럼 서슴없이 쓰는 것을 보면, 혹시 그들의 해피(Happy)는 우리의, 적어도 나의 ‘행복’ 이라는 한국말과 의미가 다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주변 이웃들이 행복하다는 고백을 자신 있게 또는 조심스럽게 내게 건넬 때는 나는 내심 그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행복은 내게는 너무나 숭고하여서 ‘나의 행복 개념이 조금은 그들의 것과 다르지 않을까?’ 하며 위안하곤 한다. 나에게 있어서 행복은 쉽게 얻을 수 없고, 쉽게 얻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세상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다. 인간의 삶에도 목적이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 좋은 직장, 결혼, 안락한 삶, 안정된 노후 등등. 그러나 이러한 모든 목적의 계단 맨 꼭대기엔 ‘행복’ 이 자리한다. 모든 목적은 그보다 한 단계 더 고차원적인 목적의 수단이 되지만, 최고의 목적인 ‘행복’ 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왜 좋은 직장을 원하는가?” 하고 스스로 묻고 답을 찾을 수 있어도 “왜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라고 물을 수는 없다.

현대의 많은 이들이 행복을 추구한다. 아니 모든 이들이 그렇다. 때문에 육체와 영혼의 합일체인 우리 인간들은 물질을 추구하고, 안락함을 원하고, 정신적인 명예를 추구하며 사람들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전부 가졌을 때 우리는 모두 “행복하다.” 고 과연 외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 혹 몇몇은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 숭고한 단어를 진심으로 고백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복에 관해 말씀하신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다. 심오하고 역설적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에겐 더 마음에 끌린다. 예수님은 진리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신가! 예수님께서 오늘 입으로 직접 말씀하신 그 ‘행복’ 을 나도 따라 고백하고 싶다.

▥ 인천교구 김웅래 요셉 신부 / 2015년 11월 1일
  |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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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날마다 다가오는 스트레스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본당의 신부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힘듦을 구구절절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자기도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지금 어딘가를 급히 다녀와야 하는데, 다녀올 동안 이 짐 좀 들고 기다려 달라고 하십니다. 신부님의 대답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신부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면서 이 짐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짐이 그리 무겁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짐을 들고 있는 것이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너무 힘든 것입니다. 한 30분쯤 지났을까요? 신부님께서 오셨습니다. 신부님을 보자마자 너무 힘들어 “신부님, 이 짐은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합니까?”라고 형제님께서는 물었습니다. 이 말에 신부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이야기하셨다고 하지요.

“힘들면 내려놓지. 왜 아직까지 들고 있어?”

바로 이 순간에 이 형제님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하지요. 지금까지 자신을 힘들게 했던 모든 고민거리들이 지금 들고 있는 짐처럼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내려놓으면 될 것을, 바보처럼 머리를 싸매고 힘들게 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서 약간 각색해서 꾸며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은 정말로 우리는 내려놓아야 할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고,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걱정하고 집착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저 힘들기만 할 뿐입니다.

힘들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음의 짐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훨씬 더 가볍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성인들의 이 세상 삶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신 분이었습니다.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고, 고통과 시련이 동반하는 걱정들까지도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 내려놓으셨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었고,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차마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차마 내려놓지 못하면 그만큼 하느님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성인들이 보여주셨던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간직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기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2015년 11월 1일>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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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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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천국의 성인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
음을 묵상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설명대로,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 지체로써 그분과 한 몸인 ‘신비체(神秘體)’를 이루고 있습니다(로마서 12장 4절-5절 ; 코린토 1서 6장 15절-17절 ; 12장 27절 ; 에페소서 4장 15절-16절 ; 콜로새서 1장 18절). 사도 신경에서 고백하는 ‘모든 성인의 통공’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지체는 ‘교회’인데, 이 교회는 우리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섬기다가 세상을 떠나 천국에 다다르신 분들이 계시는 ‘천상 교회’와 아직 천국에 이르지 못했으나 그곳을 향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연옥 교회’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으며 나그네길을 걸어가고 있는 현세의 교회인 ‘지상 교회’로 나눠집니다.

그런데
이 세 차원의 교회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룬 채, 서로가 그리스도께로 가는 데 도움과 힘을 주고 있습니다.

천상 교회는 지상 교회를 위해 기도하여 주고,
지상 교회는 천국에 들어간 천상 교회 시민에게 전구를 요청하며, 그분들에게서 이 나그네길을 더 굳건히 살아갈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도움과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지상 교회는 연옥 교회를 위해 기도를 바쳐 드림으로서 그분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날을 앞당기게 도와줍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는
우리에게, 오늘이 천상 교회의 성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분들도 기억하자고 합니다. 주위 교우들, 가족, 친지, 옆집 이웃들 역시 서로 기도해주며, 유형무형의 도움들을 주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도 이 점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는 많은 증인들’(히브서 12장 1절 참조)이 우리가 목적지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도록 독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초대받습니다. 이러한 증인들 가운데에 우리 어머니, 할머니, 또는 그 밖에 사랑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티모테오 2서 1장 5절 참조). 성인들은 이미 하느님 계신 곳에 있지만 계속해서 우리와 사랑과 친교의 끈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 저는 하느님의 벗들에 둘러싸여 안내를 받고 있습니다. … 사실 저 혼자서 결코 짊어질 수 없는 것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느님의 모든 성인이 저를 보호하고 돌보시고 저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3-4항)

간혹, 외롭고 쓸쓸하다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비체적으로 보면, 나는 혼자일 때라도 ‘모두’이며, 부분일 때라도 ‘전부’입니다. ‘모든 것’이신 그리스도와 나는 ‘같은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오스딩 성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드립시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보내 주신 이 은혜를 이해하십니까? 놀라고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강해」, 21,8)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는 많은 증인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고, 오히려 외로워하는 분들을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절대로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희망의 불꽃이 꺼지도록 내버려 두지마십시오. 현실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인간은 바뀔 수 있습니다. … 교회는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보배로운 신앙의 유산을 전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자비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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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송기철 이사악 신부
2020년 11월 1일 <인천교구 주보>에서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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