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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님, 이런 이야 당신의 얼굴을 찾는 족속이니이다
조회수 | 2,303
작성일 | 08.10.30
우리 주위에는 책을 봐도 또 달력을 봐도 자신의 축일이 나와 있지 않다고 축일을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면 마치 조상들이 후손들한테 잊혀지듯이 성인들의 축일도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날짜를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의 축일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정말 오래 기억될 사람이 아니면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옛 성인들이 잊혀지면 새로운 성인들이 기억되고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교회 역사는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하는 신앙 고백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럼 성인의 통공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교회를 지상의 교회라고 이야기하고, 천사와 성인 성녀들이 사는 교회를 천상의 교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또 한 교회가 있지요. 연옥 영혼들을 위한 연옥 영혼들의 교회, 이렇게 우리는 세 교회를 알고 있습니다. 물론 천상의 교회는 성인 성녀들과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산 사람들이 하느님과 영복을 누리는 교회를 말하지요.

천상의 교회는 우리 지상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지상의 교회는 연옥에서 보속할 것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이렇게 기도를 받아서 천상의 교회로 간 연옥 영혼들은 지상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와 같이 천상과 지상과 연옥 영혼들이 함께 기도하고 서로 도움을 받는 것을 우리는 󰡐통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는 것은 천상에 있는 교회와 지상에 있는 교회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성인의 날, 또 위령의 날 그리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이 모든 것은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통공󰡑이라고 신앙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의 교회와 지상의 교회가 연결이 되어서 서로 기도해준다는 것을 믿고 또 체험하기도 합니다.

오늘 제 1독서는 요한 묵시록입니다. 환시를 통해서 지상의 교회를 살던 사람들이 박해와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여 마침내 천상의 교회에 머무르게 된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독서는 십 사만 사천 명이 하느님 소유의 도장을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말 십 사만 사천 명이라는 한정된 사람만이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지요. 일반적으로 십 사만 사천 명은 12×12×1000을 의미하는데 열둘은 구약의 백성들을, 또 열둘은 신약의 백성들 그리고 천은 매우 많은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많은 사람들과 천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있다는 것을 숫자로 십 사만 사천 명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묵시록은 하느님께 뽑힌 사람들을 십 사만 사천 명이라고 표현하면서도 또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묵시7,9)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십 사만 사천 명이라는 제한된 인원이 아니라 하느님께 인정받은 모든 민족과 겨레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 살다가 뽑힌 사람들이 바로 천상의 교회의 구성원들이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며 하늘나라를 차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사람, 그리고 하느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세상의 기준으로 뽑힌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하느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소유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합니다. 재산과 건강과 자녀들의 성공만을 바라보지요. 그런데 그러한 것에 행복이 있다는 말씀은 오늘 복음에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으면 행복하다, 자식이 성공하면 행복하다, 몸이 건강하면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까? 찾아볼 수 없지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거기에는 참된 행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에서 참된 행복을 기대하는 그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얼마나 불안정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지를 바로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 의지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재물이나 자식의 성공, 또 건강한 몸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불안할 수밖에 없지요. 재물은 언제 날아갈지 모르고, 자식은 언제 떠날지 모르며 건강은 언젠가는 시들게 마련입니다. 그런 것에서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복팔단의 말씀을 가슴에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산 사람은 지상의 교회를 마치고 천상의 교회에 몸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는 모든 성인의 축일의 의미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시작되는 11월은 󰡐위령 성월󰡑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달로써 성인의 통공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달이지요. 우리는 돌아가신 분들이 모두 천상의 교회에 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분들은 또한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모든 성인의 통공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모든 성인의 대축일을 맞아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특히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한 달, 또 앞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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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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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전이나 천주교 사전을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의 축일이 나와 있지 않다고 축일을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면 조상들이 후손들한테 잊혀지듯 성인들 축일도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라져서 날짜를 찾아볼 수 없는 성인들의 축일이 바로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세월의 흐름 속에 성인들 수가 많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한국 천주교회 역시 1984년 여의도광장에서의 시성식을 통해 자랑스러운 103위 성인을 모신 나라가 됐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성인들이 탄생하고, 오랜 세월 축일을 지내온 성인들은 기념일에서 사라짐에 따라 잊혀져가는 성인들을 모아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변화 속에 영광스러운 순교 성인들을 모시게 된 한국 천주교회이지만 이제는 또 다른 욕심을 가져봅니다. 우리 교회에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같은 성인과 성녀 데레사, 본당신부들의 수호자인 아르스의 비안네 신부 같은 성인들이 계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급속한 과학문명 발달과 물질만능 사회는 수 백 년 이어온 기존 권위와 질서를 혼돈에 빠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지 못했기에 세상과 교회 역시 깊은 혼란 속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일까요? 수도생활과 본당신부 생활에서 또 신자생활에서 살아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 계신다면 수도자와 성직자는 물론 모든 신자들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와 데레사 같은 성인이 계신다면 제일 행복해질 분들은 아마 수도자들일 것입니다. 수도자들은 어떻게 수도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가까이서 지켜 볼 수 있고, 어려움이 닥치면 면담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세상의 피로에 지친 신자들은 하느님 현존을 깊이 체험하는 고해성사와 미사 은총을 통해 한 순간에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주님 은총을 깊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서울 어느 본당에 비안네 신부 같은 분이 계신다면 우리 신자들의 열심을 고려하건대, 그분께 고해성사를 받으려고 수백 미터 줄은 물론이고 몇날 며칠의 기다림을 마다않는 신자들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미사참례는 또 어떠하겠습니까? 성인 신부가 계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분께서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하려는 신자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입니다. 또 그 미사의 은총으로 세상과 교회생활 속에 받은 상처도 한순간에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은총의 장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한낱 꿈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하느님 은총으로 어김없이 있어왔던 2000년 천주교회의 생생한 역사입니다.

불가에서도 이삼백 년에 한 번씩 큰스님이 나와 혼란스러운 교계를 정화하고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역사가 있어왔다고 합니다. 혼란이 극심해 교계 전체가 권위를 잃고 비틀거리면 스님들과 신도들은 더욱 수행정진하고 정성된 기도를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큰스님이 나오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정성과 기도가 부족해서라고 신도들은 제 탓을 하며 정성을 더하게 되고, 수행자들은 그 염원에 화답하기 위해 더욱 수련에 정진한다고 합니다. 이런 서로간의 정성과 노력으로 모두에게 희망과 위로가 될 큰스님이 탄생함으로써 왜곡되고 혼란에 빠졌던 교계가 정화되고 성장의 계기를 찾는다는 것이지요.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며 한국천주교회 미래와 신자들 행복을 위해 전 세계가 부러워할 훌륭한 성인이 탄생하기를 기원해봅니다. 그것은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 삶이 복음화되고 또 무엇보다도 그러한 삶을 지향하는 노력이 강해질 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복음적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며 훌륭한 성인들이 이 땅에 많이 나오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이기양 신부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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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한 신자분이 중병에 걸려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위험한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 기적적으로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병문안을 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며칠 전 병원 옥상에 간신히 한 걸음씩 올라가 보았습니다. 가을 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습니다. 여태껏 보아온 하늘이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하늘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하늘이 너무 고마워 그만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저는 이제 사랑만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 주위의 모든 것이 더없이 감사합니다.”

그는 두 발로 걷고 하늘을 볼 수 있는 것, 일상적인 모든 것이 행복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새롭게 알게 됩니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어쩌면 인생은 평생 행복을 찾아 헤매는 나그넷길인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행복이 아닌 것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 세상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비운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소유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버려야 행복해진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체험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눈을 들어 이웃과 주님을 찾게 됩니다. 마음으로 가난한 이가 진정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이 역설적인 진리를 빨리 깨닫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조건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마다 사랑을 알려주세요. 그리고 먼저 당신 자신의 집에서 그 일을 실천하세요. 당신의 자녀와 남편을 사랑하세요. 어떤 사람이든 당신을 만나고 나면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게 하세요.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을 통해 표현되도록 하세요. 당신의 얼굴에, 당신의 눈에, 당신의 미소 속에, 그리고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세요.”

과연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나는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까?

허영엽 신부
  |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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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2)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 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리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이들을 예수님께서는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언뜻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슬프고, 주리고 목마르며 박해받고 모욕을 당하면서 행복할리가 있을까요?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하고 온유하며 평화를 좋아하면 이 험난한 세상살이에서 남한테 이용당하기 딱 좋은 조건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행복 선언은 ‘하느님의 나라’를 전제로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맞이할 영원한 세상에 비추어 본다면 오히려 찰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과의 복락을 위해서라면 잠시의 고통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00원을 투자해서 100억을 벌 수 있다면, 그까짓 100원을 아까워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 보면 우리 눈에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을 예 수님께서는 행복하다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행복하다고 선언하신 이들은 사실 ‘온전히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그 분만을 바라보기에 이들은 세상살이의 수고와 고통, 온갖 슬픔까지도 감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을 기꺼이 사는 이 들을 주님은 참으로 행복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냅니다. 성인(聖人)들은 이 세상에서 바로 그런 삶을 살다 가신 분들입니다. 오직 하느 님 만을 바라보기에 욕심 없이 그분의 뜻을 좇으며 세상살 이의 온갖 수고를 감내하신 분들이 바로 성인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이 행복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어야만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오늘의 ‘모든 성일 대축일’이 말해줍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어도 하느님 안에서 묵묵히 일하며 자신의 삶을 완성하신 분들이, 오늘 요한 묵시록의 표현대로,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묵시 7,9) 많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도 그 대열에 들 수 있도록 ‘참 행복의 길’ 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비록 우리의 신앙이 불완전하고 사랑이 부족할지라도 그분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길이 반드시 미래의 행복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기쁨을 이미 지금부터 맛보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3절)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10절)에게는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현재 시제로 잘라 말씀하십니다. 지금 벌써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이지요. 이 기쁨을 죽 은 뒤로 미루지 않고 ‘지금 벌써 기뻐할 수 있는 지혜’를 주님께서 주십니다. 그 기쁨을 매일의 신앙생활에서 얻어 누리며 살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아멘. <2015년 11월 1일>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유경촌 주교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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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사람,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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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 대축일은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을 기억하며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또한,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인 11월 위령 성월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지난 한 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우려가 깊습니다. 하루빨리 우리 모두가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 선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행복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성인들은 생전에 행복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왜 행복했을까요?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알기에 오직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였습니다. 자기 생명조차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산상설교의 행복선언은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에 힘입은 사람들이 이 세상 한가운데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의 근본 지향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행복이 부귀와 권세, 그리고 세상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의미를 잘 깨닫는 이들은 세상이 말하는 그 행복이라는 것이 세월만 지나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잘 압니다.

산상설교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돈, 명예,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이상을 추구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과 겸손하고 온유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가난한 마음은 하느님만 의지하며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은 언제나 감사하며 고통 앞에서도 하느님께 희망을 둡니다. 우리가 남에게 온유하고 자비를 베풀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고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삶이란 유한하지만 사라질 운명을 간직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삶은 끝을 맞이하지만, 하느님께서 그 삶을 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당신의 뜻 없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삶을 품어 안으신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늘나라를 향한 염원이 우리를 향해 성인들이 피 흘려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성인들은 우리에게 사라질 운명이 슬픈 것이 아니라 영원을 향한 갈망 없음이 진정한 슬픔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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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
2020년 11월 1일 <서울대교구 주보>에서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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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부산/마산/청주] 거룩한 성전  [6] 2272
522   [광주/전주] 당연하다  [2] 100
521   [안동/대구]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 110
520   [서울] 우리의 내적 성전  [3] 2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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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11월 9일) 독서와 복음  [14] 1799
516   [수도회] 하느님의 자비  [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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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백) 위령의 날(11월 2일) 둘째 미사 독서와 복음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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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   [수도회] 마음의 가난  [7] 2212
  [서울] 주님, 이런 이야 당신의 얼굴을 찾는 족속이니이다  [4] 2303
506   [청주] 행복론 최고인기  [1] 81
1 [2][3][4][5][6][7][8][9][10]..[27]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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