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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조회수 | 2,563
작성일 | 08.10.30
제 방의 한쪽 벽에는 우리나라 103위 성인의 성화가 걸려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중심으로 성인들이 둘러 서있고 하늘에는 천사들이 날아다니며, 승리의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그림입니다. 마치 오늘 1독서 요한 묵시록에서 환시로 계시되어진 ‘희고 긴 옷을 입고 야자나무가지를 손에든’ 성인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런데
이 성화에 드러나는 성인들의 모습에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발견됩니다. 손을 모으거나 무릎을 꿇고 평화로운 얼굴로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는 등의 모습인데요. 그것은 모두가 기도하는 자세라는 것입니다. 바로 성화는 하느님을 향한 성인들의 마음과 기도의 자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특별히 성인들의 공덕을 기리며 그들의 삶을 본받고자 교회가 제정한 축일이지요. 우리들은 평소에 사도신경을 통해서 ‘성인들의 통공(通功)’을 자주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 통공의 내용은 바로 성화에서도 드러나듯이 하느님에 대한 찬미와 지상의 우리를 향한 기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지상의 순례자인 우리들은 천상영광중에 있는 모든 성인들과 하느님 안에서 연결되고 사랑의 친교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서간 성인들의 삶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 까요?

성인들이
지상에서 살다간 모습은 우리의 지상여정에 큰 이정표가 됩니다. 여행을 떠나게 될 때 우리는 여러 갈개의 길을 만나게 되지요. 목적지를 향한 올바른 길을 잘 선택하기 위해서는 지도도 챙기고, 이정표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거나 목적지에 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내비게이션(navigation)이라는 기계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길을 잃지 않고 올바로 목적지를 찾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바로 성인들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우리 삶의 여정에 있어서 내비게이션과 같은 안내자이며 올바른 방향을 잡게 도와주는 이정표와도 같은 분들입니다. 즉 이들은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구현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선포하신 진복팔단, 여덟 가지 참 행복의 길을 담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실제로 성인들은 말씀처럼
이 지상에서 슬퍼하였고, 온유하였으며,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 하였습니다. 자비로운 삶을 살았고, 마음이 깨끗하였으며,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지금 천상의 참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기도로 도와 초대하고 계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인들은 복음에 충실한 삶으로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향한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오늘도 천국에서 아낌없는 기도의 응원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성인들의 공덕을 기억하며 우리가 겪는 온갖 시련과 박해들을 용감히 이겨냅니다. 오늘도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를 향해 우리의 지상 여정을 더욱 힘내어 살아갑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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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영덕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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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땅에서 만났던 한 걸인

잊지 못할 한 ‘외제 거지’

저는 제 기억 속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한 ‘걸인’을 자주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이름을 모릅니다. 다만 그때 형편없었던 그의 행색 그리고 마지막에 던진 그의 한 마디 말만 생생하게 기억날 뿐입니다. 이렇게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았던 이유는 우리에게 그가 던진 한마디의 말과 함께 우리 일행에게 보여준 그의 따사로운 행동 때문입니다.

그 걸인과 마주쳤던 이야기는 대충 이렇습니다.

한 인기(?) 좋은 외국인 기숙사에 모여 살던 우리 한국 신부 중 네다섯 명이 함께 외출을 했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는데 보행자를 위한 인도는 어른 두 사람이 함께 나란히 겨우 걸을 정도로 좁았습니다. 때는 해질 무렵이라 시야가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 길 또한 학교와 성당, 수도원 담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행인이 뜸했었습니다. 한마디로 차는 많이 지나다녔지만 인적이 드문 그런 길이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행색이 형편없는 그리고 비교적 큰 덩치를 한 사람이 우리 무리 뒤를 쫒다시피 성큼 성큼 큰 걸음으로 걸어왔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틀림없는 걸인임에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역시 빠른 걸음으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힘차게 큰 걸음으로 빠르게 뒤를 쫒던 그 걸인은 우리 무리를 피해 찻길로 내려가 단 숨에 우리를 앞질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행자 길로 오른 그 걸인은 우리를 향해 돌아보면서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그 한 마디가 저는 지금도 무척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우리를 향해 그가 던진 한 마디는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외국인인 내가 계속 너희 뒤쪽에서 가면 너희가 무서워할까봐 내가 먼저 너희를 앞질러 간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 자신에게 무척 실망했었습니다. 그 걸인의 깊은 배려와 달리 선입견에다 필요 이상의 경계심으로 한 사람과 담을 쌓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겉모습이 무뢰하고 보잘 것 없어 보였지만, 그는 분명 남을 배려하는 넉넉하면서도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평범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겉모습에 잔뜩 선입견을 가졌던 속 좁은 제 자신과 무척 비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를 떠올리면, 그 때 나의 생각과 행동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의 여유로움이 부럽고 닮고 싶을 뿐입니다.

그 사건 뒤로 무척 실례되는 말이지만, “거지도 우리나라 거지보다 외제 거지가 훨씬 났다.”고 말하곤 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선진국에 사는 혹은 잘 사는 나라의 거지니까 그렇지…”라고… 그래도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는 그의 정서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이고, 오랜 그들의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성인(聖人)

우리 교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성식을 통해서 성인을 공표했고 그들을 공경해 왔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성인들의 생각과 행동을 오늘날 우리가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 우리 곁에 닮고 싶은 모델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로 입성하는 분명한 표지판입니다. 한자 성(聖)자를 재미삼아 풀어본다면, 자신의 귀(耳)와 입(口)을 임금(王)(사실 북방壬)처럼 다스리면 거룩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공동체에서 성인(聖人)으로 충분히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녀들에게 충분히 선명한 표지판이 될 것입니다. 모든 성인의 날을 맞아 모든 분께 축하드립니다.

오철환 베드로 신부
  |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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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배꼽 인사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병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과 간질병자들과 중풍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시고, 제자들과 함께 산자락에 자리를 잡으신 다음 ‘참된 행복’은 하늘나라에 있음을 가르치신다.

성당에서 어린이들을 만난다. 어머니는 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꾹~ 누르며, “신부님께 인사해야지”라고 한다. 아이는 누르면 누를수록 고개를 더 빳빳이 든다. 나는 양손을 배꼽에 가지런히 하고 “찬미예수님”하고 인사한다. 그때 아이도 양손을 배꼽에 대고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안녕하세요”라고 응답한다. 하늘나라의 천사가 따로 없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배꼽인사를 가르치셨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를 눌러 인사를 강요하지 않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참 사랑의 모범을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이제 우리가 실천할 때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과 이웃들을 사랑함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아 교우여러분 모두 성인 성녀 되세요!!!

▥ 대구대교구 이영재 대건 안드레아 신부 / 2015년 11월 1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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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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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에는 진복 팔단을 읽습니다.
이 글이 체득되기까지는 지난 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이 시간 속에서 체득한 분들이 있으니, 이분들은 성인이며 모든 신앙인이 닮을 분이 됩니다.

한 사람이 도시에 나와 성당에 나갔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그에게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행복합니다.
하늘 나라가 당신의 것이 됩니다.’
그는 나누는 것으로 가난해졌고, 하느님이 하늘 나라를 자신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체득하며 행복해졌습니다.

그들은 그다음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위로를 받게 됩니다.’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슬픈 삶을 자주 찾아갔고, 그들의 슬픔이 자신의 삶을 위로해 주고 있음을 체득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두 번째 행복에 닿았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또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따뜻한 물처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언 것을 녹이고, 더러운 것을 벗겨냈습니다. 세상은 그에게 살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그는 또 그렇게 행복해졌습니다.

그들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바르게 마음먹고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바름이 주는 양심의 자유만으로도 그는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비로운 사람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의 죄를 기억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더는 기억을 못하게 되었을 때, 하느님은 그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행복해졌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어린 날의 깨끗한 마음을 기억해 냈습니다. 나쁘게 생각할 줄 몰랐던 그 마음을 되찾자, 나쁜 것과 섞이지 않는 하느님이 보였습니다. 그는 또 그렇게 행복해졌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타인의 불완전함을 참고 기다려주었습니다. 그의 인내를 보고 사람들은 그가 하느님을 닮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행복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모욕하고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짓말과 사악한 말로 그의 삶을 부서뜨리려 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가르쳐주었던 마지막 행복이 시작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그는 그분이 보고 싶었습니다. 모욕에, 박해에, 거짓과 사악에 대한 달관이 마침내 이루어졌을 때, 하느님은 달관의 삯으로 큰 상을 주시려 하셨습니다. 그는 진정 행복했습니다. 그의 삶은 그분의 향기가 되어갔습니다.

‘모든 성인의 날’은
이렇게 살아온 분들의 날을 기억합니다. 365일의 달력은 이런 분들로 가득 차 오늘이 생겼습니다. 신앙이 겉돌지 않아 우리의 삶도 이렇게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입김이 늦가을, 늦은 향기로 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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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서정만 이시도로 신부
2020년 11월 1일 <대구대교구 주보>에서
  |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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