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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독서와 복음 (11월 9일)
조회수 | 1,718
작성일 | 08.11.07
▥  제1독서 :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따름 노래 “성전 오른쪽에서”).
▥ 에제키엘 예언서 47,1-2.8-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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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 코린토 1서 3,9ㄴ-11.16-17

형제 여러분,
9 여러분은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10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저마다 잘 살펴야 합니다.
11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6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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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요한 2,13-22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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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의 에제키엘은 기원전 597년 일어난 바빌론 1차 유배 때 끌려간 사제였습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성전과 그 성전에서 솟아나오는 물’이라는 환시를 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동쪽에는 기혼이라는 샘이 있었습니다. 풍부한 수량을 가지고 있는 이 샘 덕분에 예루살렘은 주변의 환경이 척박한데도 중요한 군사, 정치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기혼 샘의 물은 예루살렘 성전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물은 필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새로운 성전과 그 성전에서 솟아나오는 물에 관한 환시는 옛 성전이 새롭게 복구되고 정화된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복구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강을 이루며 바다로 들어가서,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살려 내는, 곧 모든 생명, 온 세상을 위한 물이라는 것을 보면, 이 환시가 단순히 과거의 성전으로 되돌아갈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오늘 복음으로 봉독한 요한 복음 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바로 새로운 성전이심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 19장 34절은 예수님께서 희생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바쳐지셨을 때, 그분의 몸, 곧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전합니다. 이 피와 물이 바로 에제키엘이 예언한 새로운 성전에서 솟아나온 물로, 온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해 줄 물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을 마시고 생명을 얻게 된 이들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나아가 우리 각자는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성전이 된 이들입니다(1코린 3,16 참조). 그렇다면 우리를 통해서도 다른 이들을 살릴 생명의 물이 흐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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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매일미사 2019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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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황실 가족의 소유였던 라테라노 궁전은 4세기에 교황님의 공식 거처가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딸려 있던 대성당은 처음으로 로마의 주교좌성당이 되고, 거기에서는 특히 부활 성야에 세례식이 집전되었습니다. 후에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에게 봉헌되어 라테라노 성 요한 성당이라고 불리게 된 이 대성전은 로마 교회의 어머니 교회로 여겨지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로마의 교회에 결합되면서,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언급한 ‘사랑의 수위권’을 로마 교회에 인정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교구에 있는 주교좌성당에도 교구의 모든 본당과 공동체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모든 성당에서 ‘구원의 신비’가 거행됩니다. 교회 건물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입니다. 거기에서 말씀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고, 그분께서는 스스로를 음식으로 내어 주시며, 기도 안에 모인 공동체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 가운데 영원히 머물러 계십니다.

신앙인들은 늘 성전을 지으며, 그 안에 하느님의 모습과 자신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머릿돌이 되어 계십니다. 교회의 형상인 성전은 공동체와 친교를 드러냅니다. 설계사와 건축사의 힘이 모여서 하나의 건축물이 단단하게 지어지듯이, 교회의 모든 구성원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진지하고 확고한 연대와 친교를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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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매일미사 2016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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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성전 입구에서 돈벌이를 하던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요즘 같으면 상인들과 한바탕 싸움이 붙을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고 이르시고, 사람들이 표징을 요구할 때 당신께서 죽음과 부활로 새롭게 이루실 새 성전을 약속하십니다. 이 성전은 제자들의 오순절 성령 강림 체험 이후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정과 믿음으로 완성될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였습니다.

제자들의 복음 선포 이후 2천 년 동안 교회는 숱한 역경의 시간을 보내 왔습니다. 이단과의 투쟁, 세속화의 유혹, 세속적 권력과의 담합,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타락과 부패, 무신론자들의 비난과 공격에 이어, 오늘날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다른 종교적 신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과 기도와 수행의 생활을 불편하게 여기고, ‘가톨릭’이라는 세계 종교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어도 정작 신앙인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세상과 타협하고 이기적이고 편향된 교회 생활을 하는 우리 곁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환전상의 돈과 탁자를 뒤엎으시는 것처럼 우리의 민낯과 위선을 벗겨 버리시며 호통치지 않으실까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죽은 바다를 살리고, 땅을 비옥하게 하여 과일과 양식을 준다고 예언합니다. 실로 새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어 주신 살과 피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성체와 성혈의 신비로 매일 미사 때마다 영적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을 모신 우리도 성전이기에, 이제 내 주변의 환전상들을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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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매일미사 2018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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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성전 뜰에서 하느님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오염된 신앙심을 꾸짖으십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이어 당신께서 성전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이 말씀에 유다인들은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은 성전을 어떻게 사흘 안에 다시 세우느냐고 반박하지요.

유다인들이 말한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전을 크게 짓고, 화려하게 꾸며도, 그 안에 하느님의 마음이 없으면 참된 성전이 아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실현되었지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참된 중개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십니다. 다양한 신심 행사보다 미사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19-20). 내 몸이 성령의 성전이기에 내가 얼마나 귀하고 거룩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귀한 존재가 된 내 몸을 가꾸도록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늘 찬미를 드리며,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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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매일미사 2017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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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인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성전 파괴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에제키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환시를 봅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넘쳐흘러, 바닷물이 살아나 물고기가 우글거리고, 물가에 있는 나무는 한 해에 열두 번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이 이 환시를 보았을 때는 성전이 파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바로 그때 에제키엘은, 언젠가는 성전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이 이스라엘을 살아나게 하리라는 구원에 관한 희망을 봅니다.

그렇게 파괴된 성전은 유배에서 돌아온 뒤 재건되고, 그다음에 또 파괴되고 재건되고를 여러 차례 거듭하여,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은 성전마저 로마군이 들어와 다시 무너뜨립니다. 성전을 허물라는 예수님 말씀에 유다인들은 의아해하지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현존하심을 보여 주는 그 성전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신 하느님(요한 1,14 참조), 성전을 사흘 안에 다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이라는 무너지지 않는 성전은, 에제키엘이 내다보았던 생명의 원천이 됩니다.

성당은 하느님 아버지를 더욱 가깝게 만나 뵙고 그분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장소, 은총과 생명이 넘쳐흐르는 곳입니다. 또한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일 때, 위로와 힘과 평화를 얻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당 그 자체가 중요하고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생활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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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5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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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전’의 참된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전해 주는 주님의 성전에 대한 장엄한 환시는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성전이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그것을 온전히 누리는 곳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말씀과 성찬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이 우리를 되살리고 우리 각자가 세상에서 삶으로 그 생명력을 전할 때, 비로소 교회는 참된 성전이 되고, 우리가 거행하는 전례는 하느님께 올리는 참된 예배가 됩니다.

부활 성야에 거행하는 ‘세례 서약 갱신’ 예절 때에 부르는 성가인 ‘성전 오른편에서’는 오늘 제1독서인 에제키엘서 47장의 내용을 가사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성전이란 외적인 건물이나 경신례의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부활의 생명력을 통한 내면의 변화를 체험하는 거룩한 장소여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성전 정화 장면을 묵상하면서 죽음의 바다인 사해와 불모의 상징인 메마른 강에서도 생명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의 성령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모습은, 일상의 고단함, 욕망과 분노, 눈앞의 이익에 우리 자신을 내어 주고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독려입니다.

유혹이나 위험에 놓였을 때 우리를 치유하시고 새로운 앞날을 열어 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더욱더 우리의 마음을 열고자 결심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간구하며 주님의 성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교회는 하느님의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이 될 것이며, 삶에 지친 우리는 그 안에서 다시 영적인 생기를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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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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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에 있는,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의 대성당이다. 오늘 축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면서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다. 라테라노 대성전의 봉헌 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각 지역 교회가 로마의 모(母)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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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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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교회는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미사를 성대하게 거행합니다. 베드로 대성전이 건립되기 이전에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거주하였던 라테라노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었습니다.

오늘 축일의 의미는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가 하나로 일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일치의 원천은 성령이시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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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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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이 바빌론의 점령으로 무너졌으나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시를 보여 주신다. 에제키엘은 특히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모든 자연과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것을 본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이기도 하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장삿집으로 전락한 것을 보시고 분개하시어 장사치들을 쫓아내신다. 그리고 성전을 허물라고 하시며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다. 이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는 말씀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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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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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카 축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명절로, 이때에는 남의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이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였습니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그날에 200만 명 넘게 모였고, 제물로 바치는 양도 30만 마리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장사치들은 제물로 쓰일 가축의 값을 턱없이 올려 받아 폭리를 취했으며, 성전에 바쳐야 하는 세금도 외국 돈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에 환전상들의 횡포가 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순례객들은 부당한 거래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장사치들과 환전상들의 불의로 말미암아 하느님 아버지께서 성전에서 쫓겨나시는 것 같은 상황을 보고만 계실 수 없으시어 그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성전이 두 가지 의미로 드러납니다. 하나는 46년 동안이나 지었다는 예루살렘 성전이요, 다른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하느님의 거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또 다른 성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1코린 6,19)

우리 자신이 성전임을 깨닫는다면, 오늘 복음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 안에 우리 자신을 위한 것만으로 가득할 때, 정작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머무르실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그러하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참된 거처가 되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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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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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 예언자는 환시를 통해 성전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이는 새로운 성전인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생명의 물을 상징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성전을 더럽히는 장사꾼들을 쫓아내시며 성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신다. 장사꾼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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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2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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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성 요한 대성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대성전 맞은편에는 거지 차림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라테라노 대성전 앞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동상이 있을까요?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설립 승인을 앞두고 망설이던 중 꿈을 꾸었습니다. 교황은 꿈에서 당시 교황청이던 라테라노 대성전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당황하는 교황 앞에 거지 차림의 보잘것없는 청년이 자신의 두 어깨로 대성전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 깬 교황은 수도회 회칙을 승인하였으며, 이로써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과연 교황의 꿈에 나타난 모습대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놓인 채 무너져 가는 교회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교회를 다시 일으킨 힘은 성인의 하느님과 인간을 위한 헌신,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청빈과 단순함, 겸손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6,16)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 자신 안에 채워야 할 것은 주님을 닮으려는 거룩한 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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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2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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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귀한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샘은 하느님의 능력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새로운 시온, 그곳에 세워진 성전 밑에서 새 샘이 흐르는 것을 본다. 새로운 성전인 예수님의 몸,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생명의 물을 예표하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쫓아내시며 성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건물로서 성전을 거룩하게 보전하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적 성전으로 거룩하게 받아들이는 행위와 같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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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1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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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을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신비의 심장부로 묘사합니다. 하느님의 집 오른쪽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그 물이 바다로 흘러가면 바다가 살아나고 강으로 흘러가면 강마다 생물이 넘쳐납니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푸르게 살아나고 새 과일이 주렁주렁 열립니다.

성전에서 샘솟는 물이 흘러나와 마치 초록 물감이 번지듯 그 물이 닿는 곳마다 푸르게 살아나는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행복해집니다. 교회는 이렇게 세상에 푸른 생명을 주는 곳입니다. 교회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파랗게 희망이 돋아나고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따뜻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곳곳에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은 예로부터 하느님의 거룩한 현존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은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 생명과 사랑의 가치들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곳입니다. 성전에서 샘솟는 이 물이 흘러 닿는 곳마다 죽어 가는 세상이 생기를 찾아 되살아납니다. 오늘날 강도 산도 모든 것이 잿빛 콘크리트로 변해 가는 세상에, 성전은 생명의 샘이 되어 흐르는 곳마다 푸른 생명으로 살아나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신앙인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그들의 삶이 닿는 곳마다 어둠을 빛으로 바꾸고, 죽음을 생명으로 살아나게 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절망을 희망으로 일어나게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성전은 아름다운 신앙인들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영적인 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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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1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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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한 로마의 박해를 종식하고,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별궁이었던 라테라노 궁전을 교회에 기증해 대성전으로 봉헌하였다.

이후 교황들은 이곳에 거주했으며, 대관식과 착좌식도 이곳에서 거행하였다.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로마 교구의 주교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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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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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장사꾼들과 환전꾼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으십니다. 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고 엄하게 이르십니다.

본디 이스라엘의 성전은 다윗 임금 시대부터 출발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차지한 뒤, 그곳에 ‘계약의 궤’를 모십니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 도시가 됩니다. 다윗은 이곳에 성전 건립을 추진하였고, 기원전 957년 그의 아들 솔로몬 임금이 완성합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바빌론의 침공 때 파괴되었다가 페르시아의 도움으로 다시 복구되지만, 그 이전보다 초라하였습니다. 로마 식민지 시대가 되자, 헤로데는 성전을 화려하게 재건했지만, 성전 광장은 집회 장소가 되고, 상인들이 모여들었으며, 최고 법정도 거기에서 열리는 등 거룩한 성전이 아닌 세속적인 성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성전이 마치 시장의 난전처럼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세속화된 성전을 보시고 정화 작업을 벌이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의 집’을 정화하시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성전은 화려하게 포장된 건물이 아니라, 바로 당신 몸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몸을 우리에게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 몸 또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전인 몸을 시장 바닥으로 만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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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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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별궁이었던 라테라노 궁전을 교회에 기증해 대성전으로 사용하게 했다. 이후 교황들은 이곳에 거주했으며, 대관식과 착좌식도 이곳에서 거행했다.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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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9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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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성전에서는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은총의 물이다.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은 활기를 띠며 살아났다. 과일나무들도 시들지 않고 새로운 과일을 내놓았다. 은총도 마찬가지다. 머무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영적 생명을 되찾아 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몰아내신다.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제거하라는 가르침이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제동을 걸며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성전의 주인이심을 당당히 선언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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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9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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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복음의 핵심입니다. 성당 안에서까지 세상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다시 읽어 봐야 합니다. 기도의 순간에도 ‘걱정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면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 봐야 합니다. 성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걱정’은 실제로 접어야 합니다.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는지요? 누구나 나름대로 문제점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성당에서만은 걱정이 아니라 ‘감사’를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삶의 ‘아홉’이 걱정이고 감사는 ‘하나’뿐이더라도, 그 하나를 붙잡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드리는 행위가 마음을 여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면 실제로 감사할 일이 생겨납니다. 걱정하면 걱정거리는 더 커 보입니다. 시각이 ‘삶을 바꾸는’ 것이지요. 찬양과 감사를 위해 성전이 존재하는 것이지, 두려움과 근심에 젖으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떠나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상상도 하지 않고’ 감실 앞에 앉아 있는 훈련을 해 보십시오. ‘무념무상’의 연습입니다. 생각을 비울 때 영혼은 비로소 소리를 냅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어디에 있든 고요한 몸이 됩니다. 마음이 어수선하면, 성전 안에서까지 짜증이 나고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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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9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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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는 환시를 통해 성전에서 솟아 흐르는 물을 보고 있다. 그 물은 광야를 지나 바다로 흘러간다. 물이 지나는 곳엔 생물이 살아나고 온갖 것들이 활기를 되찾는다. 물은 곧 생명이다. 그리고 성전은 물이 솟아나는 근원이다(제1독서).

모든 건물에는 기초가 있다. 기초가 튼튼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면 무너지지 않는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신다. 그들은 제물로 쓰일 동물들을 팔고 있었다.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기에 상인들은 미리 검사받은 동물들을 팔았다. 그 과정에서 돈이 오갔기에 내놓고 장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선언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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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8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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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선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들려줍니다.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역시 성당에 들어서면 기도보다 엉뚱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때로는 기도와 전혀 다른 생각에 젖거나 위험한 상념에 빠지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습관입니다.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좋은 습관을 몸에 익혀야만 합니다. 그러면 나쁜 습관은 저절로 고쳐집니다. 그러니 성당에선 언제나 선한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상상도 없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성전은 이렇듯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장소입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기에 엉뚱한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장사하지 말라고 해서 ‘좋은 목적으로 물건 파는 것’까지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당에서까지 세상일과 세상 번뇌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채찍을 만드시어’ 장사하는 이들을 몰아내셨습니다. 우리 역시 잘못된 습관은 과감히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을 성전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도 성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성당에서만큼은 착하고 선한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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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8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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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에서 솟아나는 물을 발견한다. 그 물은 광야를 거쳐 바다로 흘러간다. 물이 지나는 곳에는 생물이 살아나고, 온갖 것들이 활기를 되찾는다. 사막 문화권에서 물은 곧 생명이다. 성전은 물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처소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신다. 제물로 쓰일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상인들은 사제에게 미리 검사받은 뒤 동물을 팔았다. 그 과정에서 돈이 오갔기에 내놓고 장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선언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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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7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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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임금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그곳에 ‘계약 궤’를 모십니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 도시가 됩니다. 다윗은 이곳에 성전 건립을 추진하였고, 아들 솔로몬 임금이 기원전 957년에 완공시킵니다. 그리고 계약 궤를 안치해 둔 장소를 “지성소”라 불렀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두 천사가 ‘계약 궤’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파괴됩니다. 그리고 백성은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50년의 유배 생활을 종식시킨 이는 페르시아의 임금 고레스였습니다. 그는 잡혀 왔던 유다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성전 재건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전은 복구되지만 초라하였습니다.

로마 시대가 되자 헤로데 임금은 성전을 화려하게 재건합니다. 이후 성전 광장은 집회 장소가 되었고, 상인들과 환전상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유다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도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그러나 독립 운동이 거세지자 로마는 성전을 파괴해 버립니다. 정신적 구심점을 제거한 셈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서쪽 벽(통곡의 벽)의 일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 당신이시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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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7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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