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29.6%
[서울] 우리의 내적 성전
조회수 | 2,020
작성일 | 08.11.07
현재 우리 서울대교구 성당의 숫자는 217개입니다. 지난 10년 남짓 교구에서 새로 봉헌된 성당의 숫자는 100여 개에 달합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성당이 늘어났지만 마음은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성당이 늘어나는 그 숫자만큼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당이나 교회 건물이라는 외적 성전은 신앙생활을 위해 필요한 공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외적 성전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적 성전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영으로 가득 차서 이렇게 외친 바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지어 바칠 수 있는 집이 어디 있느냐? 나의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이사 66,1).

예수님께서도 눈에 보이는 외적 성전에 그렇게 집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제자들이 감탄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 6).

오늘 복음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사람이 지어 만든 성전이 화려하고 웅장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전인 주님의 몸 앞에서는 더 이상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과 만나는 진정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으로 통하는 문이며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 스스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바오로 사도는 우리들 역시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1 코린 6,19).󰡒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 코린 6,16).

너무나 놀라운 말씀이고, 너무나 감사한 말씀입니다. 욕심과 불신앙으로 똘똘 뭉쳐진 나를 허물어야(大死一番 대사일번), 새로운 성전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습니다(絶後再蘇 절후재소).

그것이 우리의 부활신앙이요, 우리의 성전신앙입니다. 거짓 성전을 허물어버리는 것이 십자가 신앙이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참 신앙의 내적 성전을 쌓아올리는 일이 부활신앙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라떼라노 성전 봉헌 축일을 함께 축하합니다.

박성칠 미카엘 신부
451 29.6%
너희는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어라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며 이상한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는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인 성녀의 축일은 지내도 성당 축일이라든지 건물 축일은 잘 지내지 않지요. 도대체 이 라테라노 성당이라는 곳이 어느 정도의 규모이며 어떤 의미가 담긴 건물이길래 해마다 이렇게 축일을 지내는지 의아해지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것을 두려움 없이 큰 목소리로 전하기 시작했고, 그리스도교는 차차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로마에까지 들어가게 된 그리스도는 그 곳에서 호된 박해를 받습니다. 로마에는 황제 숭배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대적인 박해가 계속 이어졌는데 그 박해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로마의 혹독한 박해를 이겨내고 희망을 주기 위하여 요한 묵시록이 쓰여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대대적인 박해는 313년까지 약 250년 이상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종교의 자유가 선언되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당시 교황님께 왕궁을 선물하였고, 그 때 처음으로 지어진 성당이 바로 이 라테라노 대성당인 것이지요. 라테라노에 교황좌가 있는 아주 큰 성당이 세워진 것입니다.

교황님은 대부분이 라테라노 대성전에 머무르셨고 나중에는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기셨는데 베드로좌가 있었던 성전이 바로 이 라테라노 대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전 세계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324년에 지어졌고 11월 9일에 축성식을 하였기 때문에 오늘을 축일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 축일인 오늘, 제1독서와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의 내용은 모두 성전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성전의 의미가 단지 건물의 의미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요. 성경은 우리의 몸 자체가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탁자를 둘러엎으시며 꾸짖으셨습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2,16)

예수님께서는 왜 이토록 화가 나신 것일까요? 탁자를 둘러엎고 채찍을 들어 후려치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예수님을 화나게 한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또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의문이 생깁니다. 성당을 지으면서 우리는 장사를 얼마나 많이 했었는지요? 장사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의 시대 배경을 좀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사건이 벌어진 곳은 과월절이 가까워진 때의 예루살렘 성전 마당입니다. 과월절이 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다인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과월절 제사를 지내는 것이 유다인 성인 남자의 의무 중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에 2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 유다인 중 19세 이상 되는 사람은 일년에 한번씩은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반 세겔 정도의 액수인데 이것은 성인이 2~3일간 일해서 받는 임금에 해당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이 성전세를 낼 때는 절대 다른 나라 돈으로 낼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 돈에는 그 나라 황제의 흉상이나 섬기는 우상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으므로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세를 낼 때는 반드시 이스라엘 화폐인 세겔로 바꾸어서 봉헌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둘러엎으신 것이 이 환전상들의 가게였지요. 환전상들은 상권을 독점하고 부정과 착취를 밥먹듯이 하고 있었습니다. 환율에 따라서 환금 수수료를 적당히 받아야 하는데 엄청난 폭리를 취했던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세금을 놓고 그렇게 부정을 저질렀던 것이지요.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환전상들의 탁자를 둘러엎으시며 그토록 화를 내신 것입니다.

또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 등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는 봉헌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간편하게 헌금을 하고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이렇게 현물로 봉헌을 하였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소나 양, 비둘기를 잡아 바쳤고 그 예물은 전혀 흠이 없고 티가 없는 깨끗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받기 전에 검사를 하는 검사관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또 몹시 부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 짐승들을 파는 상점들이 운영이 되었는데 이 운영권을 대사제들이 쥐고 있었습니다. 물건의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고 자기네 가게의 짐승들만 합격을 시키는 부정과 비리가 공공연히 자행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뒤집어엎으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신 것이지 가난한 사람들 위해서 성당 앞마당에서 장사하고 있는 것을 나무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폭리와 비리에 물든 장사를 금하시고 부정한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2,19)

예수님의 말씀에 유다인들이 마구 대듭니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요한2,20)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말씀은 당신의 몸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성전의 의미가 건물에서 사람의 몸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건물 자체는 그냥 건물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건물 자체를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거룩한 곳으로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코린토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람 자체가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머무시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3,16-17)

그 뿐만 아니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교회를 건물이 아닌 신자 공동체의 모임으로 정의 내렸습니다. 옛날에 우리는 󰡐성당󰡑하면 건물만을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모임, 믿는 이들의 모임 자체가 교회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성전에 대한 개념도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또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사는 자체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시면서 주님과 일치되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 내가 바로 주님의 성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성전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 답이 오늘 제 1독서 에제키엘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이 물은 흘러나오면서 점점 그 양이 많아지는데, 그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움터나고 숲이 번창하며 온갖 생명들이 번성해 갑니다. 심지어 이 물은 사해의 죽은 물 마저 단물로 변화시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성당에서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이제는 내가 바로 생명의 물, 생명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집에서 생명이 움터 나오고, 내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풍요로운 결실이 맺어지며, 내가 나가는 회사가 어둠과 오류의 집단이 아니라 빛과 정의의 집단으로 변화되는 것, 이것이 바로 생명수인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성전인 우리 신자들이 살아야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기양 신부
  | 11.08
451 29.6%
라테라노 대성전 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며 이상한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인 성녀 축일은 지내도 성당이나 건물 축일은 잘 지내지 않습니다. 도대체 라테라노 대성전이라는 곳이 어느 정도 규모이며 어떤 의미가 담긴 건물이길래 해마다 이렇게 축일을 지내는지 의아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두려움 없이 큰 목소리로 전하기 시작했고, 그리스도교는 차차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로마에까지 들어가게 된 그리스도교는 그곳에서 호된 박해를 받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황제 숭배 사상이 팽배했기에 그리스도교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대대적 박해가 계속 이어졌는데 그 박해가 얼마나 극심했던지 로마의 혹독한 박해를 이겨내고 희망을 주기 위해 요한 묵시록이 쓰여지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대대적 박해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당시 교황께 자신의 별궁을 선물했고, 324년 11월 9일에 축성식을 했기에 오늘을 축일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교황은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라테라노 대성전에 머무르셨고, 이 성전은 전 세계 교회 일치의 상징이 됐습니다.
 
라테라노 대성전 축일인 오늘, 독서와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의 내용은 모두 성전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장사꾼 소굴로 만드는 이들을 호되게 야단치시며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말씀은 당신의 몸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성전의 의미가 건물에서 사람의 몸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6-17)며 사람 자체가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도 교회를 건물이 아닌 신자 공동체의 모임으로 정의 내렸습니다. 옛날에 우리는 '성당'하면 건물만을 생각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들 모임, 믿는 이들 모임 자체도 교회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성전에 대한 개념도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 몸을 모시고 또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성전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 답이 오늘 제1독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이 물은 흘러나오면서 점점 그 양이 많아지는데, 그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움터나고 숲이 번창하며 온갖 생명들이 번성합니다. 심지어 이 물은 사해의 죽은 물마저 단물로 변화시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성당에서 예수님 몸을 모시고 또 예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변화됩니다. 이제는 내가 바로 생명의 물이 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명의 물을 지닌 나를 통해 집에 생명이 움터 나오고, 나를 만나는 이웃을 통해 풍요로운 결실이 맺어지며, 내가 나가는 회사가 나를 통해 빛과 정의의 집단으로 변화되는 것, 이것이 바로 생명수로 변화한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오늘 라테라노 대성전 축일을 지내면서 주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몸을 모신 신자들 공동체가, 화려하게 치장한 성전보다도 주님의 현존을 더 강렬하게 드러내는 빛과 소금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기양 신부
  | 11.08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510   [수도회]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1] 145
509   [청주/수원/전주] 참된 가족  [3] 118
508   [인천] 믿음 없이 제대로 봉헌할 수 없다  [1] 112
507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독서와 복음(11월 21일)  [9] 176
506   [춘천/원주/군종/의정부] 참 아름다운 우리 성전  [4] 2163
505   [부산/마산] 거룩한 성전  [5] 2205
504   [광주/전주] 당연하다  [1] 27
503   [안동/대구]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 28
  [서울] 우리의 내적 성전  [2] 2020
501   [수도회] 성전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  [4] 1914
500   [수원] 성전 정화 = 단순한 삶  [1] 361
499   [인천] 나를 필요로 하시는 주님  [4] 1930
498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독서와 복음 (11월 9일)  [23] 1714
497   [청주] 행복에로의 초대  [1] 396
496   [안동] “예수님께 기도드리면 빨리 나을 거예요.”  [2] 666
495   [원주] 전교는 우리의 마음에서  [3] 386
494   [수원] 선교는 신자들의 진정한 생활의 표양이다.  [7] 2015
493   [서울] 선교는 말과 행동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5] 2123
492   [대구] 전교와 신앙인의 삶  [5] 2068
491   [의정부] 불리움에서 파견으로  [5] 2046
1 [2][3][4][5][6][7][8][9][10]..[26]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