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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원주/군종/의정부] 참 아름다운 우리 성전
조회수 | 2,162
작성일 | 08.11.07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알려진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맞아 성전의 의미와 우리 신앙인 모두의 영적 안식처인 성당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아니 계신 곳이 없는 주님이시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당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시는 곳이 바로 우리의 성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분과의 일치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곳이 성전입니다.

아울러 우리 성당, 특별히 제단 앞자리를 물끄러미 바라 볼 때면 참으로 많은 생각에 빠져들곤 합니다. 한 생명이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은혜를 받는 자리가 바로 이 곳이며,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작하는 곳(혼배)도 이 자리이고,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주님께 되돌아 갈 때 마지막으로 들리는 곳도 바로 이 자리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의 살과 피로 영혼의 허기짐을 채우는 곳도 바로 이 자리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당신의 현존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 주시는 곳이며 우리의 삶과 죽음을 모두 봉헌하는 곳이 성전(성당)이기에, 이 성전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거룩하고 눈물 나도록 고마운 곳인지 우리 신자들은 모두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따라서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비록 외국의 대성전에 비할 수 없지만 신자들 모두의 정성으로 봉헌된 우리 성당에 대한 새로운 애착과 경외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아직 온전한 성당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본당 교우들은 더욱 다부진 각오로 성당 마련의 소망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다짐해야 할 것이며, 우리 모두 그분들의 갸륵한 소망이 하루속히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당의 거룩함을 생각하며 그 의미를 잘 깨닫게 된다면, 주님 안에서 영혼의 쉼을 얻을 수 있고 주님을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찬양하며 하나가 되는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성전(성당)을 더욱 아끼고 지켜내기 위한 마음가짐이 두터워 질 것입니다. 적어도 ‘성당에 쓰레기 따위를 무심코 버리거나 주보 등을 보고난 후 방치하는 행동 정도는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봅니다.

우리의 성전은 주님께서 우리 교우들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여성재 브루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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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기도로 지은 하느님의 집

육의 성전

라테라노 대성전에 대한 수식어는 많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전’, ‘로마의 4대 성전의 하나’, ‘모든 교황님들의 착좌식이 있었던 성전’ 등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300년의 긴 세월 동안 계속 되었던 로마 제국의 박해가 끝나고 세워진 성전이라는 의미는 감격 그 자체입니다. 끔찍하고도 잔인했던 로마 제국의 박해는 서기 313년 밀라노 관용령에 의해 끝나게 됩니다.

종교의 자유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도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280?~337)가 교황 ‘성 멜키아데스’(310~314년 재임)에게 자신의 라테라노 궁전을 선물로 주며 함께 성전까지 지어 주었다고 생각하면 감개무량합니다.

이 같은 성전이 324년 ‘실베스테르 1세’(314~335년 재임) 교황에 의해 봉헌되었을 때, 그 현장에 있던 수많은 신자들이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313년 밀라노 관용에 의해 종교의 자유가 찾아온 지 불과 11년 만의 환희였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역사가 우리 한국 땅에도 있었습니다. 1784년 천주교 신앙이 이 땅에 들어온 이래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 100년의 세월 동안 길고 모진 박해 끝에 한국천주교회 첫 신앙의 모태인 명동(당시 명례방)에 명동 대성전이 봉헌된 것입니다.

1898년 명동 대성전이 봉헌되었으니, 신앙의 자유를 찾고 12년 만의 환희였던 것입니다. 전국의 모든 신자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대성전이 봉헌되었을 때, 또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까 생각해 봅니다.

따지고 보면 라테라노 대성전이나, 명동 대성전만 그러한 감격을 누렸겠습니까. 전 세계의 무수히 많은 성전들이 모두 그 같은 기쁨과 감격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통하여 옛날 에제키엘 예언자의 예언대로 죽음이 생명으로 바뀔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허물라 하십니다. 그것은 성전이 처음 세워졌을 때의 마음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온갖 정성을 다 들여 처음 건립할 때에는 마음가짐이 분명 달랐습니다. 가톨릭 기도서에 있는 <성전 건립 기도> 중에는 이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저희는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온갖 욕심과 오만으로 가득 차 주님의 뜻을 소홀히 했나이다.”

처음 성전을 건립할 때엔 욕심과 오만이 없었습니다. 이는 영의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건립 후에는 다툼과 오만, 분열과 욕망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육의 성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 허물라 하신 것입니다.

영의 성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장사꾼들을 보시며 불같이 역정을 내시고 성전을 허물라 하셨을 당시 유다인과 제자들은 그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나아가 허물어진 성전을 사흘 안에 다시 세우시겠다 하셨을 때는 더더욱 이해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셨을 때, 비로소 그 말씀은 예수님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자주 우리에게 육의 성전이 아닌 영의 성전, 마음의 성전을 강조합니다. 이를 사도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 3, 16)

우리말에 ‘더럽다’라는 말은 ‘덜없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비워진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무엇인가가 남아 있을 때, 그 상태가 더럽다는 뜻이 됩니다. 깨끗이 설거지를 하였는데 설거지통에 오물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우리는 더럽다고 느낍니다.

내 마음 안의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미련과 욕망의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그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마음 역시 더러운 것입니다. 그럴 때 내 마음 안에 영의 성전, 하느님의 성전은 세워질 수 없습니다. 교회는 다시 성전 건립 기도 안에서 이렇게 기도하도록 가르칩니다. “

저희가 힘을 모아 주님을 예배할 새 성전을 세우고 그곳에서 주님의 뜻을 이룩하여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를 가꾸어 나가고자 하오니 저희를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소서.”
라테라노 대성전은 분명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전이며, 그리스도교의 으뜸 성전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전은 소중하고 귀한 하느님의 집입니다. 성전 건립 때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 같은 성전이 건립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나눔과 눈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그 고귀한 성전에 걸맞는 영의 성전을 세워야 합니다. 탐욕과 착취의 장사꾼집이 아닌, 하느님 사랑과 그 사랑의 열정으로 가득 찬 생명의 영혼들이 모이는 거룩한 집이 되도록 가꾸어야 합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루카 19, 46)

배광하 신부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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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교회 안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오늘 봉헌 축일을 맞이하는 라테라노 성당이나 또는 베드로 대성당, 바오로 대성당을 비롯한 옛 성당들은 그렇게도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이 주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전은 바로 우리 마음의 성전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리 마음의 성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제 1독서의 내용을 잠시 살펴볼까요?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이 강이 닿는 곳이면 모든 것이 살아난다…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말 그대로 생명수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생명수의 원천은 바로 주님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수가 흐르는 성전은 오늘 제 2독서에 나오듯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건물입니다…어떻게 집을 지을지 저마다 잘 살펴야 합니다…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실 우리의 성전을 잘 가꾸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언제나 성전에서 당신의 생명수가 흘러넘치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각자의 성전을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기초로 삼아 거룩하고 튼튼하게 짓고 문을 활짝 열어 주님의 받아들여 모신다면, 그리고 우리의 잔을 높이 들어올린다면,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마음 안에 함께 머무르시고 우리의 잔을 당신의 생명수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의 삶 안에서 이렇게 살아가기는 매우 힘듭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 마음에 주님의 집을 짓고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을 받아 마시기보다 우리의 개인적인 욕심의 채우는 창고를 짓고 주님이 아닌 세속의 다른 것들로부터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사람들은 하느님의 성전 앞에서조차 장사를 하고 환전 행위를 하여 개인적인 욕심과 이득을 채우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가슴 아픈 나머지 그들을 쫓아내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나무라신 것은 단순히 장사 행위를 지적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이 하느님보다 세속의 이득에 더 기울어 있음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진정 하느님의 성전으로 만들고 싶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건강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면 무엇이든 찾아다니며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먹습니다. 그러나 사실 진정한 생명수는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마음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생명의 물을 예수님과 '짠'하며 마셔보는 것은 어떠십니까?

<원주교구 박병옥 신부>
  |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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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아름다운 성전이란

부대 격오지 위문을 나갔을 때 일입니다. 차에 몸을 싣고 짧지 않은 거리를 가다보니 어느덧 잠에 빠져버렸지만 다시금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나서 격오지 부대라 종교행사가 힘들다는 중대장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종교행사가 힘든 신자사병을 따로 불러 중대장실에서 미사를 거행했습니다.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종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 들었고 오랜만에 드리는 미사이기에 서먹함과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미사 전 고해성사를 주고 다같이 모여 미사를 드리려고 할 때에 한 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신부님, 미사는 성당에서만 드려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 질문에 저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려야 하지만 여건상 힘들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주님을 찬미하면서 드릴 수가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짧은 미사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오랜만에 모셔보는 성체에 기뻐하였고, 제 자신도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라는 주님의 말씀을 체험해 본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 서품 동기 신부들과 농담 삼아 이야기했던 말이 기억이 납니다. 혹시 ‘주교님께서 천막 하나 주시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아무 곳에서 사람이 있으면 천막을 치고 미사 할 신부를 찾으면 누가 할 거냐?’ 라는 질문에 자신이 아니라 서로에게 떠밀며 ‘그래, 네가 잘할 거야’ 하고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분명 그렇게 살아간다면 고생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 비록 천막은 아니지만 군종신부로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미사는 예전에 생각했던 그 고생문이 아니라 이제 어느덧 기쁨이 되어 저에게 다가옴을 느껴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참된 성전의 의미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요한 2,21)처럼 당신 몸이 곧 성전임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다시금 말해서 예수님의 몸은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중심이요,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며, 생명수가 넘쳐흐르는 영적 성전임을 천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날로 높아져만 가고 커져만 가는 교회 건물들을 바라보며 그런 외형적인 건물들만이 주님의 성소임을 자청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진정 아름다운 성전은 겉모습이 하찮아 보이더라도 그 속에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아름다운 하느님의 신비를 느끼는 곳이 아닐까요. 매 미사 때마다 받아 모시는 성체를 통해 주님과 내 자신이 하나가 되고 그 기쁨을 주변 이웃들과 나눌 수 있을 때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아름다운 성전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군종교구 박재우(베드로푸리에) 신부>
  |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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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내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전은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이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하면서 가장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와 계약을 맺은 후부터 계약의 궤를 모시는 성막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만나셨고,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성막은 삶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지은 후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대해서 깊은 존경과 애정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의 집이 장사와 착취의 장소로 변해 버린 것을 보고 분개하셨고, 환전상과 장사꾼들을 쫓아내기까지 하셨습니다. 또 당신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분이기 때문에, 유대교의 성전이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새로운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성전으로 재건됩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 새로운 성전을 영적인 성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위에 지어진 교회가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의 몸에 딸린 지체로서 하느님의 성전이며, 성령의 궁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건물로 지어진 성전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해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만나지만, 말씀과 성체를 받아 모셨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곧 성전이 됩니다. 또 세상 안에서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자신도, 다른 모든 사람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거룩한 성전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는 그러한 성전을 함부로 훼손하는 모습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전쟁, 살인, 폭력, 중독, 유괴, 착취 등 하느님의 성전인 인간을 함부로 대하고 해치는 사건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자기 스스로 성전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자살률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7년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3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21.5명)입니다. 평균이 11.2명인 것과 비교하면 두 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세상의 어지럽고 탐욕스러운 것들로 그리스도의 성전인 우리 자신을 더럽혀서도 안되겠지만, 그 성전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으로 생각하고 거룩하게 대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거룩하게 대할 수 있고 그 성전에 머무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 의정부교구 문화미디어국
  |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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