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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위대한 신앙
조회수 | 3,231
작성일 | 07.09.21
지난 8월에는 중국의 북경과 연변, 그리고 백두산에 다녀 왔습니다. 북경에서는 북당성당과 남당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천주실의>의 저자이신 마태오 리치(1552~1610) 신부님의 묘소를 참배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인이신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묘소 앞에서는 신앙의 신비와 복음 전파의 오묘한 섭리에 대하여 묵상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1552년 이탈리아 태생이신 신부님께서는 예수회 설립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셨으며 1580년 예수회 사제로 인도에서 서품 되셨고 이후 모진 고난 속에 약 20년 가까운 중국 베이징 진입 노력 결과, 1601년 성공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궁정 학자가 되시어 그리스도의 사도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시면서 각종 교리서와 중국 고전 등을 라틴어로 번역하시게 됩니다. 리치 신부님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인 선교 국가의 참된 이해와 존경, 그들의 풍습과 문화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지니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때문에 중국의 공자 숭배와 조상제사 문제, 중국의 수준 높은 종교 심성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셨고 이해하셨습니다.

이같은 선교에 큰 성공을 거두어 1610년 5월 11일 선종하실 당시 약 2천 명의 개종자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명나라 신종 역시 신부님의 죽음을 국장으로 치룰 것을 명령하였고, 중국인들은 “성인, 성인, 성인이시여!”라고 그분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다고 합니다.

이같은 큰 인물이 중국에 들어 오시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전래를 위해 하느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저서인 <천주실의>를 조선의 실학자들이 읽게 되고 급기야 신앙을 받아 들이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니 말입니다. 마태오 리치 신부님은 중국의 풍습과 문화를 이해 하셨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 신앙에는 끝까지 포기 하지 않으셨고 그 유일 신앙이 조선에 전해진 것입니다.

“나라에도 주인이 있는데, 천지에 유독 주인이 없겠습니까? 나라가 하나의 군주에 통섭되는데, 어찌 천지에 두 주인이 있겠습니까?”(<천주실의> 마태오 리치 신부님 서문)

선조들의 굳건한 신앙심

신앙이 곧바로 조선에 전해져 조선 초기 천주교회의 창설자 중 한 분이신 정약종 선조께서는 <주교요지>교리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한 집에 가장이 하나이요, 한 고을에 관장이 하나이요, 한 도에 감사가 하나요, 한 나라에 임금이 하나이니, 만일 한 고을에 두 관장이 있으면 고을 일이 되지 아니할 것이요, 한 도에 감사가 둘이 있으면 도의 일이 되지 아니할 것이요,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으면 나라가 어지러울 것이라.
한 천지에도 반드시 임금 한 분이 계실 것이니, 만일 두 임금이 있다 하면 천지 괴관할 것이라. <중략> 천지 개벽한 후로 이날까지 일정한 법이 있어 만고에 바뀌지 아니하니 반드시 한 천주가 계셔 마련하시기에 온갖 법이 다 한 곬으로 나는 것이라.”

이같은 한 분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임금과 나라의 법이 하느님의 법과 부딪칠 때 신앙의 선조들은 주저함 없이 하느님의 법을 따랐던 것입니다. 때로는 온갖 투옥과 고문 중에도, 때로는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주님을 용감히 증거 하였던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로마 8, 35)

이 말씀은 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도 순교 직전 옥중 서한에서 밝히신바 있으십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가운데로조차 성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나게 하신지라, 그러나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우나 능히 이기지 못할지니, <중략> 이런 황황한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주님께 향한 일편단심의 신앙, 그 놀라운 신앙을 순교의 선조들은 보여 주셨습니다. 실로 주님을 믿는 강한 믿음은 세상의 온갖 것을 이기게 만듭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도 무엇을 첫 자리에 두어야 하는지를 또다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의 모든 장벽을 뛰어 넘어 보편 사랑의 삶을 사셨던 순교자들의 모습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모두를 받아 들이고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 끈끈한 유대의 정을 나누며 고난을 극복하신 순교자들의 삶이 오늘 우리들 신앙 안에서도 분명 재현 되어야 합니다.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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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오로 정하상과 그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한국 103위 순교성인들의 축일입니다.

우리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자랑스러운 조상들을 모신 후손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세계에서도 네 번째로 많은 성인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베트남 다음으로 많은 성인들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자랑스럽고 훌륭한 조상들을 모시고 있다는 것, 또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성인들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자랑거리여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위대한 조상들을 모시고 있는 후손다운 삶이 우리에게 자랑거리여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아주 훌륭한 조상들을 모시고 있는 가문이 있다고 합시다. 그 가문에는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는데, 지금 그 가문의 후손들이 조상 자랑만 했지 잘 살지도 못하고, 다른 이웃들에게 모범을 보이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그들의 삶은 조상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위대한 우리의 조상인 순교 성인들을 자랑해야 하겠지만, 우리 스스로도 그 후손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 교회는 우리 한국 교회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아마 단기간에 이토록 크게 성장한 교회는 한국 교회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곳곳에 본당이 새로 세워지고 수많은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 준비 중에 있고, 수많은 개종자들이 교회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신앙인에게는 책임감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참 신앙인의 삶의 자세는 ‘내어 놓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놓음, 자신을 낮추는 삶의 자세, 이런 것들이 갖추어져야만 우리는 순교자들의 삶을 닮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103위 순교 성인의 후손임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춘천교구 장성준 신부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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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합니다

태어난 모든 인간은 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 문제겠죠?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죽음에 따른 명칭도 다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에서부터 타살, 병사, 각종 사고로 인한 사고사 등등. 속된 말로 개(?)죽음이 있는가 하면 남을 살리고 자신이 죽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고귀한 죽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죽음은 "순교"(殉敎)라는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도 직책에 충실항 죽음에 이르는 것을 "순직"(殉職)이라 하고 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순국"(殉國)이라 하듯이, 순교는 자기가 믿는 교(敎)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교자"(殉敎者)는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 어떤 악랄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신앙의 진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고문과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그 뒤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영광과 희망을 위해서 참고 죽은 순교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흐르는 피 뒤에 숨겨져 있는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 '죽어야 산다'는 진리를 터득한 사람이었습니다.

행복합니다.

마지막 돌아갈 곳이 어딘지
분명히 알고 사는 이
행복합니다.
돌아갈 곳이 어딘지 알아
그 길을 닦으며 사는 이

<김 스테파노, "행복합니다"중에서>

우리는 어떠한 죽음을 원합니까? 마지막 돌아갈 곳이 어딘지 분명히 알고 사는 이는 행복하고, 돌아갈 곳이 어딘지 알아 그 길을 닦으며 사는 이는 더 행복할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지금 행복하게 살고, 앞으로 더 행복하기 위해서 마지막 돌아갈 곳이 어딘지 알아 그 길을 닦으며 살아갑시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사는 사람들,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또 그 분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춘천교구 이동수 세례자 요한 신부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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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사랑의 무한함

영원한 삶의 희망

한국 초대교회 신앙의 선조들의 영성을 이야기하라면 저는 당연히 겸손을 꼽습니다. 선조들은 참으로 대단한 겸손의 삶을 사셨습니다.

계급의 구분이 뚜렷했던 시대였는데, 어찌 그토록 자신을 낮출 수 있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자 선비이며 양반이었던 신앙의 선조들은 일단 신앙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무한히 내려오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비천한 백정들까지도 품에 안으셨고 같은 형제자매로 대하셨습니다. 배운 자가, 있는 자가, 기득권을 가진 자가 내려오니 복음은 일사천리로 퍼져 나갔습니다.

윗물이 맑고, 윗물이 모범을 보이니 아랫물 역시 맑게 되었고, 그야말로 신명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같은 끈끈한 정이 있고 서로가 낮추며 애덕의 신앙생활을 하니 박해 중에도 서로를 격려하며 용감히 순교의 길을 함께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의 모습은 분명 사도행전의 첫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빼어 닮았습니다. 샤를르 달레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당시 교우들의 삶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아주 아무 것도 없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줄 줄을 알았고, 과부와 고아들을 거두어 주니, 이 불행한 시절보다 우애가 더 깊었던 일은 일찍이 없었다.

이 일을 목격한 노인들은 그 때에는 모든 재산이 정말 공동으로 쓰여 졌었다고 말한다. 신입교우 중에서 남보다 학식이 많은 이들은 자기 집안이나 이웃에 있는 무식한 이들에게 기도문과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그리스도교는 시작부터 내려옴의 신앙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비천한 인간 세상에 내려 오셨는데, 우리가 무얼 그리 잘났다고 내려오지 못하는 것입니까? 신앙의 선조들은 분명 겸손 되이 내려오실 줄 아셨던 분들이셨습니다.

순교는 자신의 뚝심이나 고집, 자신이 내세우는 주장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느님의 은총이며, 그 은총을 지키며 겸손되이 더불어 나누며, 지금 바로 이곳에서 천국을 만들어 나갈 줄 알았던 이들이 순교의 영광을 입었던 것입니다. 미래에 주어질 영원한 삶의 희망을 바로 현세에서부터 만들어 나갔던 이들이 천국 영생의 행복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힘으로 이겨냅니다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때 순교자들의 행적 기록에는 당시 천주교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던 형구들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읽노라면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또한 그 같은 무서운 형벌을 선조들은 어떻게 이겨내고 순교의 길을 걸으실 수 있으셨을까를 생각하면 숙연해지며 저의 안일한 신앙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 당시 고문 몇 가지를 소개해 봅니다.

1. 곤장 - 곤장 서너 대를 맞으면 살이 터져 피가 흘러나오고 살점이 잘게 찢어져서 사방으로 튑니다. 열 대쯤 맞으면 곤장이 속뼈를 후려쳐서 몸서리치도록 끔찍하게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맞는 자나 때리는 자나 땅바닥이나 온통 튀는 피와 떨어져 나가는 살 조각 등을 뒤집어 쓰게 됩니다.

2. 주뢰 - ‘주리’, 혹은 ‘전도주뢰’라고도 하는데, 양편 발의 엄지발가락을 끈으로 한데 꼭 묶습니다. 망나니들이 정강이 사이에 두 개의 주릿대를 끼우고, 정강이 뼈가 활처럼 휠 때까지 서로 양편에서 주릿대를 힘껏 잡아당깁니다. 이 형벌은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다 하여 1732년(영조 8년) 금지령을 내렸으나 이후에도 계속 사용됐습니다.

3. 다리비빔(삼모장) - 삼각형의 몽둥이로 양다리 앞부분(정강이)을 세게 마찰합니다. 살가죽과 속살이 즉시 문드러지고 뼈가 드러납니다.

이밖에도 끔찍한 형벌이 많지만, 이렇게 피투성이 된 신자들을 감옥에 쳐 넣게 되는데, 감옥은 그야말로 더 끔찍하였습니다. 겨울은 너무도 춥고, 여름은 지독히 더웠습니다. 더구나 너무 좁고 옹색하여 거기에 갇힌 신자들은 다리를 뻗을 수조차 없습니다.

또한 매 맞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고름 등이 멍석자리에 젖으면, 이내 썩어서 악취가 코를 찔러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굶주림은 신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괴롭혔습니다. 깔고 누운 멍석을 뜯어 먹거나, 이, 벼룩, 빈대 등을 잡아먹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같은 상황에서도 신자들은 망나니들의 칼이 자신들의 목을 자르기 전에 감옥에서 목숨이 끊어질 것을 더욱 걱정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103위 성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무명의 순교자들이 이 끔찍한 길을 함께 걸으신 것입니다.

그분들은 어떠한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 등도 자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힘으로 이겨 내신 것입니다.(로마 8, 35~39 참조)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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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주일 지키기

“우리나라의 순교자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신앙생활을 꾸준히 했기에 순교의 영광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숨 걸고 주일은 꼭 지키세요!”

본당 교우들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제가 목숨을 바쳐서 주일을 지키라고 말하는 이유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이자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셨듯, 우리도 목숨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자는 의미입니다.

얼마 전 쉬는 교우들을 방문했습니다. 절대로 오지 말라고 하는 집도 방문했습니다. 제가 “왜 성당에 안 나오세요?”하고 질문하자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두 번 빠지다 보니까 계속 빠지게 되었습니다.” 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 한 번, 두 번 주일 미사에 빠지는 것이 신앙생활에 얼마나 위험한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만 명이 넘는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쳐서 하느님께 대한 커다란 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은 죽음의 고통 앞에서도 굳건하게 믿음을 고백하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그 어떤 박해도, 굶주림도, 위험도, 칼도 방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순교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신앙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매일 기도하고, 묵상하고, 다른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선행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멀리 사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며칠을 걸어가서라도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순교자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신앙생활을 꾸준히 했기에 순교의 영광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너무도 많은 것들이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 때문에, 공부 때문에, 다른 사람 때문에, 결혼식 때문에, 여행 때문에, 피곤하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하느님에게서, 영원한 생명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혹시 주일미사에 빠지고 싶은 유혹이 생기면 땅을 바라보세요. ‘순교의 피로 물든 땅위에 서 있으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반성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유혹이 사라지지 않으면 하늘을 바라보세요. “예수님께서 나를 죽기까지 사랑했는데 나도 목숨을 다해서 사랑해야지” 하고 스스로 말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실 엄청난 은총과 선물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성당을 향해야겠습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서성민 파스칼 신부
  |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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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무덤

“그분의 거룩한 순교 정신이 배여 있는 성지는, 마땅히 우리가 찾아보고 신앙 선조의 삶에 감사하고 지켜져야 한다.”

한국 천주교회 창립의 가장 큰 선구자이신 광암 이벽 세례자 요한, 그 분의 무덤은 일동에서 내촌가는 길 화현면에 작은 공동묘지 위에 모셔져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분의 유골은 다 파헤쳐 천진암에 커다란 무덤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모셔 놓았다. 원래의 무덤을 떠나 그분의 유골이 그곳에 강제로 옮겨진 것이 가슴 아프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분의 본래 무덤을 원형대로 다시 복원해 놓은 것이다.

가족들의 반대 속에서 신앙을 지켜 내야했던 이벽 성조는, 배교를 강요하며 집 안의 광속에 가두어 그의 신앙을 숨기려 했던 가족들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음식을 거절하며 끝내 그 속에서 굶어 죽는 순교의 삶을 선택하였다. 그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이벽 성조의 신앙을 호도하였고 배교했다고 보고하였기때문에, 성인품에서 제외되는 아픔도 지니셔야 했던 분이다.

이벽 성조에 대한 더한 죄송함과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지는 것은 이런 초대 교회 신앙의 중심이셨던 이벽 성조의 순교의 기록과 삶의 터전, 그리고 그분의 육신이 녹아있는 중요한 묘지가 우리 교구 내에 있다는 사실을 신자들이 잘 알지 못하고, 그분의 삶에 대해 제대로 조명해 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곳곳의 성지 중에는 그 역사성과 성지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곳도 많은데, 초기 교회 신앙의 선구자이며, 가장 약해지기 쉬운 가족들의 권유에도 끝까지 신앙을 지켜내신 그분의 거룩한 순교 정신이 배여 있는 성지는, 마땅히 우리가 찾아보고 신앙 선조의 삶에 감사하고 지켜져야 한다. 비록 우리가 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창립 초기의 성조들의 삶이 재조명되고, 그분들을 시복시성 하려는 노력 안에 이벽 성조도 포함되어 있어 우리가 함께 마음을 합쳐 그분의 시성을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지를 거대하고 화려하게 꾸미고,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성지 개발을 이유로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그런 개발은 나도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라도 신앙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치시고, 생명까지 내놓으신 광암 이벽 세례자 요한 순교자의 자취를 찾아보고, 그분의 삶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주 찾아보며 그분들의 삶에 감사할 때, 그분의 무덤은 초라하지 않고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우리 신앙의 표지가 될 것이다.

우리들의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면서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것이다.”(루카 9,24)라는 말씀을 삶으로 증거하신 우리 순교 조상들이 계셔 자랑스럽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작은 순교의 삶을 다짐해 본다.

김학배 안젤로 신부
  |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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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티 성지를 발굴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때 발굴에 참여했던 어느 해부학 교수가 가톨릭 신문에 이렇게 글을 썼다.

“시신을 하나 찾아냈는데, 나는 그냥 푹주저앉고 말았다. 시신에 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은 그대로 잘렸고 해골이 발밑에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시신 옆에 대여섯 살 쯤 되는 어린이의 하얀 뼈가 엄마품에 꼭 안겨져 있는 듯 놓여 있었다. 그 아이는 사내 아이였고 머리뼈가 함몰된 것으로 보아 맞아 죽은 듯했다. ‘아!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해부학을 했나!’ 작두 같은 것으로 허벅지가 댕강 잘린 뼈도 있고, 발목이 잘린 것도 있었다. 또 얼굴뼈가 다 박살이나 있는 뼈도 있고, 해골에 큰 구멍이 나 있는 것도 있었다. 시신을 옮기면서 흐르는 눈 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천주를 안 믿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무참히 죽음을 당해야 했다니 정말 너무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편안한 나의 믿음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여러분들은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을때, 자신의 신앙태도를 생각하면서 이 교수처럼 부끄러움을 느끼시는가? 천주가 무엇이고, 예수가 누구기에, 이 사람들은 마치 열병에 걸린 듯 상사병에 걸린 듯 이렇듯이 주님을 사랑하고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을까?
순교는, 가장 귀하고 중요한 자신의 생명이 박해자에 의해 중단되는 상황에서도 세상보다는 하느님을, 그리고 인간적인 가치보다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제시하신 가치를, 죽음으로 수호하고 선택하는 용기와 믿음의 행위이다.

하느님보다는 세상을 더 믿는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고, 벌을 받는 것처럼 보이고 더없이 어리석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그들이 받는 고통은 그 후에 받을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지혜 3,4-5 참조).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 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

순교자들은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나는 주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자기 목숨을 걸고 증언했던 사람들이다. 성경에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5-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나도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마르 8,38참조) 순교자들은 자기 신앙을 자랑했고, 주님을 자랑했다. 우리는 가끔 우리 신앙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나 생각해보자.

정약종은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어찌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는, 의를 배반하고 사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합니다.” 라고 했다. 순교자들은 한번 주님을 선택했고, 끝까지 주님께 대한 의리를 지켰다. 순교는 하느님께 대한 충성의 표시이다.

춘천교구 오상현 신부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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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살리라

우리의 순교성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살을 저미고 뼈를 부러뜨리는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하느님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고 평화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 는 단 한마디만 해도 그들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국 순교 성인의 계층은 아주 다양합니다. 저는 이분들 가운데 성 정하상 바오로를 소개 하고자 합니다. 정하상은 1795년에 출생하여 1839년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정약종이고 어머니는 유소사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 정약종과 이복 형 정철상은 순교하였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누이동생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유소 사와 정정혜는 서울로 올라와 정하상의 활동 을 뒤에서 지원하다가 1839년 순교하였습니다.

하상은 홀어머니와 여동생 정혜와 함께 무 척 어렵게 살았지만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교육을 통하여 아버지와 형을 빼어 닮은, 하느님 의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청년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는 1816년 스물한 살부터 1839년 마 흔네 살에 순교할 때 까지 20년 이상 북경을 왕래하며 사제를 모시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고, 모방 신부가 신학생을 선발할 때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소년을 추천했습니다. 그는 순교할 때 까지 동정을 지키며 오직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열심히, 그리고 지혜롭게 일했습니다. 앵베르 주교는 이미 마흔이 넘은 정하상 을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아마 기해박해 때 순교하지 않았다면 정하상은 사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체포되기 전에 그는 천주교의 교리를 변호하는 글 (상재상서)을 미리 작성하였다가, 체포되자 이 글을 재상에게 바쳤습니다. 이 교리서는 너무 도 훌륭하여 정하상이 순교한 후 중국 홍콩 교 구 예비신자 교리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사학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누구보다 도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정하상 바오로는 역관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1839년 9월 22일 오후 네 시쯤 서소문 밖 형장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평온하게 희광 이의 칼에 순교했습니다. 증인들은 이렇게 전 합니다. “바오로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으며, 아우구스티노는 묵상에 깊이 잠겨 벌써 이 세상 사물에는 조금도 구애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루카 9,25) 아멘!

<춘천교구 강동금 베드로 신부>
  |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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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신앙약속

어느 날 강론 중에 교우 분들께 이런 물음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사제는 직업 일까요, 아닐까요?” 돌아오는 대답이 별로 없었지요. 그래서 재차 여쭈었습니다. “수도자는 직업일까요, 아닐까요?” 그러자 몇몇 분들께서 조심스럽게 “아니요.” 라고 하셨지요. 그래도 아직 많은 분들께서 확신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 한 번 더 여쭈었습니다. “그러면 평신도는 직업일까요, 아닐까요?” 그제서야 많은 분들께 서 자신있게 “아니오!” 라고 답해 주셨지요. 길거리에서 간혹 이런 문구를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 병’ 그러면 신자는 어떨까요? ‘한 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 라고 말할 수 있나요? 예, 그렇습니다. 살다보면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운 때나, 또는 신앙이 싫어질 때 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포기하는 그런 때에,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포기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신앙인과 맺은 그 관계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 성사의 약속은 사람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 약속의 당사자로서 책임을 지시는 것이지요. 그 사람이 잘 하든 못 하든, 그 사람이 잘났든 못났든, 그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 하든, 등을 돌렸든 상관없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을 당신의 아들, 딸로서 사랑하시고 돌보 실 책임이 있습니다. 이 변할 수 없는 약속이 바로 세례 때 우리 영혼에 박히는 하느님의 인장인 ‘인호’이지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딸의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 손을 놓으려 하고 외면하려 해도 말입니다. 그러니 ‘한 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이지요. 신앙의 굳은 약속을 증거하는 사랑의 십자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불편함일 수 도 있고, 귀찮음일 수도 있으며, 번거로움일 수도 있고,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의 약속이 없다면, 우리는 주일 미사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될 테고, 간혹 고해소에서 자신의 죄를 마주하는 부끄러움을 면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잘못들에 마음 아픈 일도 훨씬 덜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 신앙의 약속을 지키는 다른 당사자인 하느님께서는 그 사랑의 십자가를 통해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셨고, 또 그 십자가로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당신의 나라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모든 것을 걸고 하느님만을 향했던 우리 나라의 순교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은, 그 선조들께서 목숨으로 값을 치르고 물려주신 가장 귀한 유산입니다. 이 유산은, 결코 변함없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앙의 약속이 지요. 우리가 잘하든 못하든, 덕이 있든 죄가 있든 상관없이, 심지어 하느님을 외면하고 그분을 거부한다 해도 늘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장하는 약속입니다.

세상이 살기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보험이 생겨나고 했지만, 그 어떤 보험보 다도 더 좋고 강력한 보험이지요. 우리에게는 신앙의 의무와 책임이 있지만, 한편 그 의무와 책임은 우리들을 향한 하느님의 의무와 책임이기도 합니다. 바람 맞는 갈대 같은 우리들과 달리, 한 결 같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시는 하느님께 더욱 깊은 믿음으로 기도드리는 순교자 성월을 지내시기를 빕니다.

▮ 춘천교구 조영수 마태오 신부 : 2016년 9월 18일
  |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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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사도 5. 29)라는 베드로의 말은 사도들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순교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는 ‘순교자’ 의 정의를 ‘목숨을 걸 고 참 종교를 증거함으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자’ 라고 했습니다. 순교자는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물의 세례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직접 따르는 ‘피의 세례’ 를 통하여 주님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한국 교회 신앙의 선조인 순교자들을 자랑으로 여기고 그 후손임 을 기뻐하면서도 그들의 모범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후손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기에 오늘 부끄럽고 슬픈 마음이 앞섭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 한 대목을 옮기겠습니다. 『형제들이여, 주님의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순교자들의 장미꽃만이 아 니라, 동정녀들의 백합화도, 기혼자들의 담쟁이꽃도, 과부들의 제비꽃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소명에 대해 실망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이를 위해 고난당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 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피를 흘리고 고난당함으로써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도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각 다른 소명을 붙여 주님께서 가꾸시는 작은 정 원입니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곡에 이순금 씨가 가사를 붙인 가톨 릭 성가 ‘180번 - 주님의 작은 그릇’ 의 2절 가사를 보면 “내 마음은 주님이 가꾸시는 작은 정원 봄비처럼 은총을 내게 내려 주옵소서. 땅 속 깊이 스미어 새 생명이 자라듯 나는 당신 사랑에 곱게 젖어 가옵니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세상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며, 누구는 장미와 백합으로, 누구는 담쟁이와 제비꽃으로, 그분의 사랑에 젖어 자신의 신앙을 환하게 꽃피우기를 주님께서는 바라실 것입니다. 우리 일상의 작은 삶을 통하여 순교자들의 영성을 본받아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을 따르는 온전한 봉헌의 삶이 되어 ‘현대의 순교자’ 가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순교자 성월을 기쁘게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춘천교구 김주영 시몬 신부 - 2017년 9월 17일
  |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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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라는 말씀은 2018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발표하신 현대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들이 갖는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문의 제목입니다. 선한 의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현실의 삶은 참으로 척박하고 수많은 걸림돌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라는 말씀은 추상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명령인 듯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
마태오 복음 5장 12절의 말씀인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의 의미를 묵상해보면, 예수님 때문에 박해받거나 모욕당하는 이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컷던 것처럼, 현실에서의 박해와 모욕을 이겨낸 이들 또한 그러하리니 세상의 불의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용기와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세상(세속)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부터 “역행하여”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올바른 길로 들어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참 행복을 누리게 되고 마침내 우리도 성인(santo, 聖人)이 될 수 있습니다. 시복 시성의 절차에서는, 영웅적 덕행의 징표들, 목숨을 바친 순교,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른 이를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 삶을 내어 주는 사례들을 확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모범적으로 닮고 살아냈음을 보여 주는 징표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경을 받을 만하기에(교황 권고 5항 참조) 순교자와 증거자들, 우리의 모범이신 성인들을 공경하며 그들의 성덕을 따르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덕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작은 몸짓은 어떻게 시작하고 완성해야 할까요? 어느 자매가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가 이웃을 만나 담소를 나누다가 남의 험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 자매는 마음속으로 외칩니다. ‘이건 아니야,
나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나쁘게 말하지 않을 거야.’ 이 마음 속 외침이 성덕으로 나아가는 작은 한 걸음입니다. 시장을 보고 나서 집에 갔더니 아들이 자기 꿈과 희망에 대하여 그 자매에게 말하고 싶어 했습니다. 내심 피곤하여 쉬고 싶었지만 아들 곁에 앉아서 사랑의 마음으로 참을성 있게 아들의 말을 경청해 주었습니다. 사소한 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바로 이러한 행위도 성덕을 가져다주는 작은 희생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막연한 불안감이 들 때 그 자매는 성모마리아의 사랑을 떠올리며 묵주를 손에 쥐고 믿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이렇듯 일상 속에서 행해지는 기도와 희생은 우리를 성덕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합니다.(교황 권고 16항)

오늘 우리가 기리는 한국의 모든 순교성인들도 험난했던 박해의 현실 속에서 성덕을 통하여 어려움을 이겨내며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 놓고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맞아 우리도 순교성인들의 모범을 본 받아 성덕의 소명을 실천하며 기쁘고 즐겁게 살아 나갑시다!

▦ 춘천교구 김주영 시몬 신부 : 2018년 9월 23일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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