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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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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마치 소풍이라도 가듯이
조회수 | 2,987
작성일 | 07.09.22
은혜롭게도 저희 살레시오 회원 가운데, 순교성인을 직계 선조로 모신 형제가 있습니다.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5대손이지요. 성인께서는 최양업 신부님 부친이기도 합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그 형제에게서 최경환 성인의 삶과 신앙에 대해 생생하게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더 안정된 신앙생활을 위해 안양 수리산 자락에 삶의 기반을 잡으셨던 최경환 성인께서는 즉시 교우촌을 건설하십니다. 모범적 신앙생활을 통해 성인께서는 오래 가지 않아 모든 마을 사람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십니다.

평소 순교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불타오르던 성인이셨기에 언제든지 순교할 마음의 태세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영광스런 순교의 때가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셨습니다. 다른 교우들에게도 자상하게 '순교 교육'을 시키며 '그날'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거룩하게 살아가셨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한밤중에 포졸들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결박을 당하면서도, 심한 구타 가운데서도 성인께서는 태연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잘들 오셨습니다.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수고들이 많으셨습니까? 저희는 오래 전부터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조금 쉬십시오. 곧 식사를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요기하시는 동안 저희는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성인께서는 교우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한 다음, "여러분,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다 함께 기쁜 얼굴로 순교의 길을 떠납시다"며 교우들을 독려하셨습니다. 해 뜰 무렵 성인은 포졸들을 깨워 정성껏 준비한 아침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포졸들에게는 잘 다려진 새 옷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최경환 성인과 40여명이나 되는 교우들은 마치 잔칫집에 가듯이, 단체 소풍이라도 가듯이 그렇게 순교의 길을 떠났습니다.

관헌으로 끌려가는 동안 사람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듯이 신작로로 몰려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이비 교도들' '천주학쟁이'라고 욕하며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징그러운 동물이라도 바라보듯이 우리 교우들을 쳐다봤습니다. 그러나 교우들은 함께 기도를 바치며, 함께 성가를 부르며, 서로 격려하면서, 서로 위로하면서 그렇게 갈바리아산을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이런 우리 순교성인들 신앙,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찌 보면 너무도 무모해보이기도 하지만 정녕 놀라운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순교성인들의 무고한 죽음, 그 비참한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 순교성인들 죽음은 어떤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가장 적극적 추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이 참혹한 죽음 앞에서도 그리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앞에 뵙는 듯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천국을 일찌감치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정신없는 제게, 아직 제 자신조차도 극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제게, 우리 순교성인들의 생애는 너무나 커 보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마지막 순간인 죽음 앞에서 우리 순교성인들처럼 그리도 침착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 순교성인들 전기를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러 나가셨습니다. 가장 값진 선물을 받은 어린이처럼 죽음 앞에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 후손들에게 순교를 통해서 한 인간의 생애가 이렇게 숭고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순교성인들 죽음은 어쩌면 자청한 죽음, 예정된 죽음, 계획된 죽음, 준비된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평생 이 마지막 순간, 장엄하게 낙화할 순교의 순간을 꿈꿔왔던 것입니다. 그들 평생에 걸친 순교자적 생애는 휘광이 칼날 아래 활짝 피어나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실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우리 순교성인들 죽음은 어쩌면 한 점 티 없는 어린 양이셨던 예수님, 순결한 봉헌제물이셨던 예수님 삶을 판에 박은 듯이 빼닮았던 가장 고결한 죽음이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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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적 삶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 초기 교회사를 읽다 보면, 신앙 선조들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가슴 뭉클해집니다. 자기 초월만이 자기실현의 길임을 보여 주는 이들의 삶 속에서 신앙인의 진정한 가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1독서의 말씀처럼 순교자들의 죽음이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는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재앙으로 생각되고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과 함께 걷는 의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이 받는 고통은 후에 받을 큰 축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곧 믿는 이들의 확신에 찬 열정을 바오로 사도께서 잘 들려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로마 8,31) 법정에 고발당한 피의자를 연상케 하는 이 대목에서, 피의자는 더 이상 두려울 것 없이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죽음, 자아와 율법 등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좌절하게 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바오로 사도처럼 넘치는 기쁨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은 하느님 사랑의 체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 네 가지 토막 말씀으로 들려 주십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루가 9,22)에 이어 나오는 예수 추종의 길은 예수님처럼 자기 부정과 십자가 수락을 전제합니다. 실상 초대 교회의 박해시기와 초세기 선교 시대에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생명을 내놓는 큰 결단이었습니다. 루가 복음사가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라는 표현으로, 일상생활 안에서 당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오늘날처럼 박해 상황이 아닌 때에는 매일의 삶 안에서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 실천하는 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루가 9,24 참조)이라는 역설은 거역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먹는 음식이 죽음과 연결되어 있고, 들숨과 날숨이 한 짝인 것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지금 일시적인 목숨을 보전하려고 작심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영생을 잃을 것이고, 일시적인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장차 하느님 나라의 영생을 차지할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구별이 없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도 없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을 그리스도교에서는 ‘종말론적 삶’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기실현의 길이 있음을 증언하는 종말론적 삶을 걷게 될 것입니다.

씨튼 까리따스 수녀회 최혜영 엘리사벳 수녀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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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다 할머니

몇 달 전 하나원에서 만난 분다 할머니는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전쟁이 나는 바람에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가 하나원에서 처음 미사를 하고 영성체하시며 우는 모습을 뵈었습니다. 북한에 계실 때는 딸한테조차도 신자임을 숨겼다고 합니다. 중국에 나와서야 맘놓고 성호 그으시는 모습에 딸이 하도 놀라기에 그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북한에 계실 때 미사를 한 번만이라도 드리고, 신부님·수녀님을 한 번만이라도 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늘 하시면서 힘겨운 일을 당하거나 곤란해질 때면 이불 속에서 또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성호를 그으면서 하루빨리 하느님을 외쳐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딸이 먼저 남한에 와서 생활을 하다가 여러 경로를 통해 마침내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는데 그때도 어머니는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57년 만에 하나원에서 드린 첫 미사는 바로 할머니의 오래고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 순교성인들의 대축일입니다. 분다 할머니야말로 순교자의 후예답게 신앙을 지킨 오늘날의 살아 계신 순교자임에 틀림없다고 여겨집니다.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신앙생활하실 때의 모습과 요즘 본당에서 신자들이 신앙생활하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고요. 그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남한 사회의 모습과 북한 사회의 모습을 비교해 볼 때 하느님께서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것 같다고 하면서 우리 북한 동포들도 하루빨리 이렇게 좋은 남한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분다 할머니처럼 침묵 중에 주님의 이름을 외쳐 부르고 있을 북한의 우리 교우들에게 하루빨리 신앙의 자유가 오기를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 저희 모두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하나 되게 하소서!

이선중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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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직장 동료이자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탄 적이 있다. 마침 엇갈려 지나치는 승용차에는 변호사인 친구가 타고 있었다. 서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순간 묘한 감정이 솟았다. 나도 저 친구처럼 변호사가 되어 승용차에 앉아 있을 수가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오랜 뒤에 그 변호사 친구를 만났더니 자기는 교단에 서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는 것이다. 글쎄다. 남의 떡이 커 보여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해보는 소리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무어라 해도 내가 하는 일이 참 좋다.

나는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으나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 못하고 법대에 진학했다. 법대에 진학한 뒤에는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가톨릭 학생운동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 행로가 바뀌기 시작했다.

게다가 3학년 때에는 ROTC를 받다가 안타깝게도 폐결핵으로 그만 도중하차를 하고 말았다. 제대로 마쳤으면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서 속된 말로 목에 힘 좀 주는 장교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내 인생여정이 달라졌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신병으로 인해서 여러 차례 훈련소를 다녀와야 했고, 젊은 혈기의 대학생 시절은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개신교 친구들을 만나 야학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졸업 후에도 2년 가까이 어려운 청소년들 곁에 있을 수 있었다. 이 모두가 내 인생의 진로를 선택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묘한 방법으로 나를 이끄신다. 내 젊은 시절의 병고조차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한때 병약했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내가 소망했던 대로 일이 잘 풀렸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참다운 가치의 기준을 알게 해주시고, 또 그 기준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그분을 가까이 느끼며 사니 행복할 뿐이다.

한상갑(전주 성심여중 교장)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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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오늘은 103위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순교자 성월에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라고 기도할 때마다 103위 성인뿐 아니라 무명의 순교자들까지 기억하며 감사의 눈물이 쏟아집니다. 순교자들이 제물이 되시어 이 작은 한국 땅을 주님의 제단으로 만드셨고 거룩한 성지로 만드셨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옥중편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싶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천주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그 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목적과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도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한다면 세상에 난 보람이 없고, 비록 주의 은혜로 세상에 나고 주의 은혜로 영세 입교하여 주의 제자가 되어도 충실함이 없으면 세상에 나서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함이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께 죄를 짓는다면 세상에 아니 남만 못하도다. (중략) 마음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할 신자들아, 이런 황황한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기병을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중략)”

양떼를 사랑하시는 목자 김대건 신부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나서 주님을 알지 못하면 세상에 난 보람이 없고,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어도 충실함이 없고 죄만 짓는다면 세상에 아니 남만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우리의 임자이신 주님을 잘 알고 사랑하기를 얼마나 애태우며 기도하실까요? 이러한 황황한 시절에 마음을 늦추지 말고 용맹한 군사가 기병을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싸워 이기라고 천상에서 기도하는 김대건 신부님과 우리 순교 성인, 무명 순교자들이 계시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김경희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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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상-아름다운 사람

오늘 우리가 한국 순교자 대축일을 지냅니다. 오늘 이 대축일의 정확한 명칭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 하상 바오로와 그의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길지요. 왜 이렇게 이름이 깁니까? 그냥 한국 순교자 대축일 하면 더 쉬울 텐데 왜 굳이 두 분의 이름을 명칭에 넣었겠습니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첫 사제일 뿐만 아니라 참으로 뛰어난 분이며 한국 교회의 자랑이요 한국교회사에 우뚝 선 거봉으로 한국 순교 성인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지요. 그런데 한 사람이면 되지 왜 굳이 정하상 바오로의 이름이 공식 명칭에 들어가 있는 가라는 생각을 해 보신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 김대건 신부와 함께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의 대표인 성 정 하상 바오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신유박해로 불리는 대박해로 주문모 신부를 비롯해 이승훈, 정약종, 홍교만, 최필공, 김현우 등 교회 지도자들이 대거 잡혀서 참수되고 전국적으로 박해가 치열하여 위기에 놓여 있던 한국천주교회의 부흥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정열적으로 일하다가 순교의 영예를 안은 분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평신도들에게 사표가 되기에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더불어 평신도로서 순교 성인의 대표로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하상은 아버지 정약종과 어머니 유소사 사이에 1785년 출생하여 1839년 서소문 형장에서 44세의 일기로 순교를 하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 정약종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에 참여한 초기 평신도 지도자로 명도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주교요지’라는 교리서를 저술하여 일반 대중들이 쉽게 천주교 교리를 접할 수 있도록 했던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정약종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고, 삼촌들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조선 시대의 가장 탁월한 저술가인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한국천주교회사를 쓴 달레는 이렇게 서술합니다. “박해로 인해 추방되고 파산을 하고 여러 사람이 아직도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정씨 일가는 천주교란 말만 들어도 벌벌 떨며, 그와 같은 교를 계속해서 믿으려 한다는 생각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척들은 정하상과 그의 집안 식구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방해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통렬한 비난, 협박, 멸시, 조소 심지어는 학대까지도 모두 동원하였다.”

가문이 엄청나게 중요하던 당시 시대상에서 이런 가문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정하상이 훌륭한 신앙을 지니고 교회의 지도자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형의 순교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가정교육이 탁월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범한 성품의 아버지와 뛰어난 부덕을 지닌 어머니의 영향으로 정하상은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내면서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열정으로 교회를 위해 일하고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학문 연구에 열중하였습니다. 달레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의 위대한 마음은 결혼 같은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고, 그의 고귀한 심경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었다.”

박해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교회를 다시 살리기 위해 20세도 되기 전에 1816년 북경을 다녀 온 정하상은 그 후 본격적으로 천주교회 부흥 운동만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치게 됩니다. 우선 성직자 영입을 위해 교황과 북경에 눈물로 편지를 썼는데 특히 유진길과 더불어 한국교회의 대표로서 정하상이 쓴 교황님께 올린 편지는 조선 교회의 비참한 실정을 소상히 기록하고 손을 내밀어 절망의 심연에서 그들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으로 교황청의 심금을 울리게 됩니다. 그 결과 유방제, 모방, 샤스땅 신부들과 앵배로 주교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모방 신부가 한국에 도착한 즉시 세 명의 신학생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보낼 때 그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하상은 모셔온 신부님들을 집에 모셨고 그분들의 비서, 곧 오늘날의 사무장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신자들의 지도자였으며 대표이었습니다. 그의 동료 순교자인 이 베드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와 모든 신자들이 증언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는 참으로 덕성스럽고 굳세었으며 충직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리에 무척 밝고 놀라울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이러한 재능과 덕 때문에 신자들은 그를 진정으로 장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정하상은 당시 재상에게 올리는 글인 상재상서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신앙을 지녔으며 그의 하느님과 한국교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털끝만 한 것도 다 하느님의 힘입니다. 낳으시고 기르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죽은 후에 받을 상은 그만두더라도 현재 받고 있는 은혜가 이미 무한하여 비할 데 없으니 우리가 마땅히 일생을 다하여 어떻게 받들어 섬겨드려야만 그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이 도리를 한 집안에서 실행하면 집안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며, 한 나라에서 실행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고, 전 세계에서 실행하면 온 세계가 평화로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는 정신이 흐려서 깨닫지 못하다가 죽은 후에 후회하고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목을 끊어버릴 큰 도끼가 앞에 있고 몸을 삶을 큰솥이 뒤에 있더라도 굳건히 신앙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목숨을 걸고 생명을 바쳐서 천주의 참된 가르침을 증거하고 천주의 영광을 나타냄은 저희들이 해야 할 본분입니다. 이 몸 또한 머지않아 죽어야 할 몸입니다. 이렇게 감히 말해야 할 때를 만나서 한번 머리를 쳐들고 길게 외치지 않고 슬프게 입을 다물고 죽는다면 산더미와 같이 쌓인 감회를 장차 백대가 지닌다 하더라도 다 풀지 못할 것입니다.”

1839년 기해년 6월 정하상은 체포되어 순교의 월계관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한국천주교회의 부흥을 위해 애쓰던 그는 결국 순교로서 신앙의 탁월한 증거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순교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순교의 의미와 오늘날 우리가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순교는 무엇보다도 신앙에 대한 증거입니다.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쳐서까지 믿는바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그것이 바른 행위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것은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순교는 참으로 커다란 사랑과 용기에서 나올 수 있는 결단입니다. 자기의 목숨보다도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고 그 사랑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고 이 또한 하느님의 은총 없이 불가능한 행위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돌아보며 더 큰 사랑을 지닐 것을 다짐하며 순교 성인들의 전구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순교 정신은 한마디로 희생정신이라 하겠습니다. 희생이란 자기를 나누고 남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버리는 행위입니다. 오늘 순교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가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위해 나는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지,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에 나는 내가 지닌 무엇을 나눌 수 있을 것인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예수회 류해욱 신부
  |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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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그 의미 작성일

오늘 복음(루카 9,23-26)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자신만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매일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십자가가 다른 사람과 같은 십자가는 아닙니다. 모두 자기 나름의 십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나의 십자가를 다른 사람의 십자가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자신의 십자가 가장 커 보이고 가장 무겁게 느껴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 하면 먼저 연상되는 것은 무겁고 힘들고 괴로운 고통을 떠올리게 됩니다. 고통, 아픔, 고난으로 다가오는 십자가를 피하지 하고 매일 짊어지고 갈 방법은 없을까요?

사람이 고통이나 두려움을 당하면 그 상황에 대해 직면하거나 회피한다고 합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불행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불행에 빠지지 않고 인생의 불가피한 고통을 잘 견딜 수 있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디어 낼 수 있다고 어느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고통의 의미를 찾는다면 고통에 대한 수용력은 더욱 넓어지는 반면에 고통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사람은 쉽게 절망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미는 아마도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디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은 주어진 운명에 직면하고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그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 기회를 통해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난다면 거기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의미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인내를 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의미를 성부에게서 찾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에서 부활을, 수난에서 영광을, 고통에서 환희의 의미를 우리는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는 이제 고통이 아니라 영광의 의미란 것을 우리는 깨달은 것입니다. 그 의미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성 김 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에 성인들께서도 자신들의 순교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으셨기에 기꺼이 순교의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랑스런 순교자의 후예들로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정원순 토마스 데 아퀴노 수사 신부·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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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   [청주] 행복에로의 초대  [1] 357
507   [안동] “예수님께 기도드리면 빨리 나을 거예요.”  [2] 634
506   [원주] 전교는 우리의 마음에서  [3] 351
505   [수원] 선교는 신자들의 진정한 생활의 표양이다.  [7] 1970
504   [서울] 선교는 말과 행동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5] 2082
503   [대구] 전교와 신앙인의 삶  [5] 2035
502   [의정부] 불리움에서 파견으로  [5] 2014
501   [수도회]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야할 복음  [5] 1719
500   [마산] 신앙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7] 2193
499   [부산] 그리스도 신앙인은 하늘과 땅을 새롭게 이해합니다.  [9] 2181
498   [군종] 내 삶이 내 메세지  [2] 360
497   [인천] 선교방법은 두 가지  [8] 2186
496   [전주] 믿는 것을 삶으로 증거하자.  [2] 1918
495   [춘천] 전교는 왜 해야 하는 것일까요?  [7] 2252
494   [광주] 우표붙이기  [2] 390
493   [대전] 복음화로 세상에 희망을  [4] 861
492   (녹)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주일) 독서와 복음  [5] 1925
491   (백) 수호천사 기념일 독서와 복음 (10월 2일)  [1] 12
490   [부산/마산/광주] 한 어린아이의 작은 길  [6] 2671
489   [수도회] 어디사세요  [7] 2227
1 [2][3][4][5][6][7][8][9][10]..[26]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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