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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일생의 순교자들
조회수 | 3,136
작성일 | 07.09.22
고통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게 병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지옥 같아도 그렇습니다.

1839년 8월, 정하상 성인은 순교하기 전 천주교 신앙을 변호하는 글인 ‘상재상서(上宰相書)’를 당시 우의정인 이지연에게 바쳤습니다. 이 글에서 참혹한 순교의 현장을 소리치고 있습니다 “옥안에서는 지쳐서 죽고 문밖에서는 목이 잘려 죽음이 연달아 끊이지 아니하여 피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통곡하는 소리 하늘을 찌르고 아비는 자식을 부르고 형이 아우를 부르고 궁지에 몰려 몸을 돌이킬 데가 없이 되었으니, 이것이 정녕 무슨 곡절입니까?”

박해를 피해 깊은 산중에 살던 교우촌 생활은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에까지 참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먹을거리래야 초근목피가 아니면 기껏해야 감자와 도토리가 전부였습니다. 선교사들은 교우촌을 수도원에 비유하였습니다. “세상의 소란과 쾌락에서 멀리 떨어져서…높은 산으로 마치 울안에 갇혀 있듯이 둘러쌓여 기도와 밭일로 일생을 보내는 이 교우들은 세속사람들보다 수도자들과 비슷합니다.”

교우들은 육신보다 정신을, 물질보다 영혼을, 감정보다 이성(理性)을, 자기 욕심보다 이웃사랑을, 내 뜻보다 하느님 뜻을, 현세보다 하느님 나라에 목적을 두고 강조하며 살았습니다. 가난과 헐벗음과 굶주림과 박해의 고통을 벗어난 세월에 살면서도 이 정신을 구교우들은 오랫동안 지켜왔고, 이것이 한국천주교회의 전통이었습니다.

1801년 최해두가 유배지에서 쓴 자신을 참회하는 글인 ‘자책(自責 : 스스로 자신을 꾸짖음)’에서 ‘도끼에 목이 잘려 죽는 순교는 잠깐 동안의 순교지만 자기를 부정하며,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며 사는 은수자(隱修者)와 고수자(苦修者)는 일생의 순교’라고 했습니다. 박해시대의 정신으로 살던 교우들은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른 일생의 순교자인 셈입니다

전주교구 김진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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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卽死(생즉사) 死卽生(사즉생)

어릴적, 물에 빠져 거의 죽음의 문턱에 다가갔다가 살아난 경험이 있는 나는 물과 친하지 못합니다. 이런 아픈 경험 때문에 물을 싫어하고 그래서 아직까지 수영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수영을 배울 기회가 있었고, 나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는 사람이 있어 수영의 기본원리를 이론으로 듣고 실습도 해본 기회가 있었지만 수영을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에 뜨는 기본동작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고개를 숙여 물속에 쳐 넣는 자세인데 물이 두려운 나는 자꾸만 고개를 쳐들고 물 위로 얼굴을 내밀려 하니 물에 뜨지 못하고 가라앉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순교자축일에 주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합니다. 목숨을 살리려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물속에 가라앉고 물에 내 목숨을 맡기고 고개와 온 몸을 담그면 물에 떠 살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내 생각, 내 기준, 나의 사는 방법은 세상이 가르쳐준 삶의 방법으로서 지배하고 움켜쥐고 칼로 결단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 기준, 방법은 정 반대의 생활태도로서 섬기고 내어놓고 인내로 참으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이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세상가치를 좇고 자기를 우선적으로 섬기며 오늘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은 아닌지요?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부활의 영광된 결실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 신비의 길을 걸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크리스찬은 이 길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순교자들은 바로 이 길을 따라 사신 분들입니다.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그리스도의 참 길을 따르는 삶이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전주교구 조정오 신부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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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상의 삶 속에서 치명할 때입니다

역사는 다른 사람이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사람 냄새가 나고 훌륭하게 사셨던 분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오늘 순교자 대축일의 복음을 읽으며 마음에 떠오르는 이 땅의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1839년(기해) 박해 때 순교한 박종원(아우구스티노)이 순교하겠다고 작정한 마음은 이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셨으니, 불쌍한 죄인인 나도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괴로움을 당하고 죽으셨으니, 나도 예수님을 위하여 괴로움을 받고 죽는 것이 마땅하다.”며 순교자이신 예수님을 본떠 순교하기로 마음을 다지며 살았습니다. 순교가 어디 한번 먹은 마음만으로 가능하며, 사람의 노력으로 될 일입니까. ‘하느님의 종’ 이순이(루갈다)는 일구월심 자나 깨나 구하고 바라는 것은 순교의 은혜였다고 합니다.

순교자들은 죽는 순간까지 예수님의 언행을 본떠 살고자 했습니다. ‘하느님의 종’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은 순교하는 모습까지 예수님을 본뜨고자 했습니다. 그분은 처형장으로 향하면서 수레를 끄는 사람을 불러 “목마르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나무라니까 하는 말이 “내가 물을 청한 것은 나의 위대하신 분(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뜨기 위함이오”라고 합니다. 이순이(루갈다)의 동생이며 1827년 전주 옥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이경언(바오로)은 형틀에 매어 모진고문을 당하며 줄곧 예수의 매 맞으심과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만을 생각하고 매질 할 때마다 예수 마리아를 불렀습니다. 자신이 초죽음이 되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깨닫고 “천주여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따라 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순교를 그리스도를 완전히 본받는 것이요, 보은 행위로 여겼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경언은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고 길을 가셨는데 내가 왜 이 길을 걷는 걸 두려워한단 말인가. 아니 나는 예수를 한발 한발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1801년 최해두는 유배지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꾸짖으며「자책(自責)」이라는 참회록을 썼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끼날에 죽는 치명은 눈 깜짝할 사이의 순간적인 치명이지만, 하느님께 순종하며 모든 것을 맡기며, 자신의 고통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한시도 쉼 없이 자신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헛된 욕망과 이기심을 물리치는 행위야 말로 일상생활 속의 치명”이라고 했습니다. 최해두의 말은 시대가 바뀐 지금에도 진리입니다.

전주교구 김진소 신부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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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미래

신태인 성당에 있을 때 75년 본당 역사를 정리하면서 박해시대에 회문산 자락에 대단위 신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1866년 대원군의 병인박해 때까지 충청도와 경기도에서 많은 신자들이 전라도로 피난와서 살았는데 그 중의 한 곳이 회문산 자락이었다. 당시 신자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1876년 조선이 문호를 개방한 후 1882년 조선 천주교회 교세 통계에 의하면 회문산 인근에 있는 태인·순창·정읍·부안 지역에 115곳의 공소가 있었다고 한다.

교회사를 보면 깊고 험한 회문산 자락에서 병들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신자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고문에 못 이겨 배교를 하지 않기 위해서 멀리 충청도와 경기도에서 피난와 살다가 죽은 것이다.

지금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동생 김난식 프란치스코와 7촌 조카인 김현채 토마스의 묘가 회문산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1839년 기해박해 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가 잡혀 순교하면서 김 신부님 집안이 이곳 전라도 부안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난식 프란치스코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어머니 고 우술라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시신을 미리내에 있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묘 옆에 안장하고 조카인 김현채 토마스와 함께 전라도 회문산으로 내려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처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집안은 박해 중에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김 신부님이 참수당하고, 어머니 우술라와 동생 김난식 프란치스코는 걸인생활을 하다가 죽는다.

우리 신자들은 1801년부터 1876년 문호가 개방될 때까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정하상 바오로 회장님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죽고 병들고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이분들은 모두 신앙을 위해 죽은 순교자들이다.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순교를 묵상하며 그분들의 믿음을 깊이 간직하는 날이다. 돌이켜보면 오늘날까지 우리 교회는 깊은 믿음과 활동으로 건강하게 성장해 왔다. 이는 모두가 순교자들의 신앙 유산이다. 따라서 우리는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이어받아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전주교구 김병환 신부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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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9장 23-26절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희생

“아들아, 네 온 마음을 담는다면, 죽은 나무도 꽃을 피운단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에서 나오는 영화 대사입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알렉산더는 전직 연극 배우이자 교수로서 명성을 날리며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알렉산더는 자신의 생일 아침 실어증에 걸린 아들 고센과 함께 산책하면서이야기합니다. 죽은 나무에 정성을 다해 물을 주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전설을 들려주며 죽은 나무를 바닷가에 심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들려준 대사입니다.

세상의 구원도, 아름다움도, 사랑도, 미래도 인간의 희생이 올바로 봉헌될 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희생은 강요해서도 안 되고 강요당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희생 안에 기쁨과 희망과 미소가 있어야 합니다. 희생의 깊은 내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자식의 인생 안에 부모가 살아 있듯,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속에 변함없이 살아 계시듯, 사람은 사람과 세상을 사랑한 만큼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 만큼 삽니다. 그 만큼이 인생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이 행하는 희생을 기억하는 소중한 오늘이길 빕니다.

김봉술 신부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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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이 사는 것

숲에도 큰 나무가 있듯이 우리가 눈여겨 볼 신앙 선조들은 스스로 진리의 문에 들어선 선비출신들이다. 그들이 신앙의 나이는 어렸지만 깊은 믿음살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입교하기 전부터 사람다운 사람, 성인이 되는 길을 굶주려 찾았던 사람, 믿음살이의 자세가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 예의 사람이 1801년에 순교한 정약종이다. 그는 권력에 맞서 “사람이라면 모두가 살기를 바라고 죽음을 꺼려하는데 어찌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의(義)를 등지고 살면 천지간(天地間)의 죄인이어서 살더라도 죽은 것과 같습니다.”(하느님의 종 정약종)하고 당당하게 의(義)를 택하였다. 이 말 뜻은 어려서부터 맹자에게 배워 골수에 심겨져 있었다.(맹자 고자장구 10)

선비는 독서가 본업이었다. 선조들은 복음과 많은 신앙서적을 독서하였다. 그들은 실행이 없이 입으로만 배를 젓는 사람처럼 구두선(口頭禪)의 사람이 아니라 실천을 중하게 여겼다.
선조들은 피흘리는 죽음만을 순교라고 하지 않았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온 힘을 다하여 영혼을 닦는 수행생활까지 순교로 이해하였다. 부모이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영원히 살 미래를 준비하기위해, 사도 바오로가 영적투쟁을 했듯이(에페소서 6, 10~20)

매일 내 안의 죄악과 싸우는 생활을 매일 매순간의 순교라고 하였다. 신앙선조들은 그렇게 영적투쟁을 하면서 삶이 변화해 갔다. 인간의 참 삶은 죄스런 ‘나’라는 존재가 죽어야 시작되는 것으로 깨달았다. 1801년 김제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하느님의 종’ 한정흠(스타니슬라오)은 ‘죽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육신의 자식은 부모의 뜻과 부모가 가르친 덕행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며 부모 앞에서 항상 출초(不肖) 곧 못난 자식이라고 하였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짐승과 다를게 없다고 여겼다. 신도들은 평소 편지 말이나 교회 앞에서 자신을 ‘죄인 아무개’라고 하였다. 고해성사에서 쓰는 말이 아니다. 하느님께 효성을 다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의 뜻이다. 순교자는 조선시대에 누어있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 곁으로 걸어 나와야 한다.

김진소 신부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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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기쁨

“제가 그토록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이 땅, 조선이라는 포도밭을 가꾸도록 부름을 받은 것에 대해서 기쁨에 가득차 있습니다.” 1887년 봄, 제도교회인 전주교구의 모태격인 천호산 「어름골」에 부임한 라푸르카드(羅)신부가 전임자였던 블랑주교에게 보낸 편지 말 입니다. 선교사들에게 순교자는 삶의 힘이며 용기였습니다.

나(羅) 신부는 처녀림과 깎아지른 듯 우뚝 선 첩첩이 쌓인 산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게 여겨지는 그 산들을 넘으며 험한 산길을 마치 평야를 달리는 기분으로 교우라는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영혼들을 찾아 뛰어 다녔고, 게다가 위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먹을거리로 연명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을 지신 주님에게 그토록 소중한 영혼들을 위해서라면 이러한 작은 육체적 고통쯤이야 견딜만 합니다”하며 선교사에게 육체적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1888년 7월 1일 조선에 입국한지 18개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하였습니다. 어찌 나 신부의 경우 뿐이겠습니까, 1886년 1월 안대동 공소에서 사망한 죠스 신부와 1915년 5월 22일 전동본당에서 선종한 보두네 신부의 죽음이 영양실조와 과로가 화근이었습니다. 아프리카가 아니라 내 조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병인박해 후 입국한 선교사들 중 상당수가 이렇게 죽었습니다. 박해 때 피흘려 순교한 숫자에 버금가는 수가 헐벗고 굶주려 죽었으니 살아남은 신자들의 생활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순교자이건 선교사이건 모두가 오늘 복음 말씀처럼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비록 죽을지라도, 예수님을 따라 제 십자가를 지고 삶을 살다 가신 분들입니다. 순교자들은 요한복음 17장 1~5절에서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신 하느님이 원하신 삶을 전심전력, 목숨을 바쳐 실천하신 분들입니다. 이 땅 어디에도 순교자들을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어 놓을 칼은 없었습니다.

김진소 대건 안드레아 신부
  |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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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그리고 병인박해(1866년)가 진행되는 동안 이 땅에서는 일만 명 이상이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하셨는데, 그 가운데서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103명이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이 땅의 103위 순교 성인들의 시성식 미사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순교자들의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닮은 것은, 그들의 죽음도 새 생명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새 생명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임을 당한 그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와 증인들의 산 공동체로서의 교회 안에 누룩이 된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의 격언이 바로 오늘 우리 눈앞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23-25)

우리 모두 조용한 침묵 속에서 예수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여정을 바라봅시다. 죄 많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으로 오르시는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무참히 넘어지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께서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걸아가실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 자체이시며, 모든 사랑의 원천이신”(1요한 4,10 참조)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그분의 전적인 신뢰와 사랑, 그리고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 인간을 위한 그분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제 삶의 무게와 고통에 짓눌려 아파하며 신음하는 우리들에게도 같은 힘과 사랑을 베푸시며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그의 저서 「신심생활 입문」에서 “인생의 실패는 넘어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려 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걸어가는 삶, 그것이 바로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살아가야할 삶의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 완전한 그분의 자녀가 아니라, 완덕을 향해 걸어가는 부족한 그분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불리움 받은 것이 아니라, 충실하기 위해 불리움 받았습니다.(We are called upon not to be successful but to be faithful)”라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 하루도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 지혜와 은총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

전주교구 서동원 신부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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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무명無名 순교자: 하느님 품에 머물러 계신 고은高隱 분들

이 고장의 바람은 어두운 강(江) 밑에서 자라고
이 고장의 살과 피는 바람이 끌고 가는 방향(方向)이다.
서소문(西小門) 밖, 새남터에 터지는 피 강물 이루고
탈수(脫水)된 영혼은 선대(先代)의 강물 속에서 깨어난다.
안 보이는 나라를 믿는 안 보이는 사람들.
-마종기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2.기해년의 강」중에서

인간들에게는 여러 욕구들이 있습니다만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다른 욕구들과는 달리 유한한 삶을 뛰어넘어 죽음 너머로까지 향하는 욕구입니다. ‘인사유명(人死留名)’ 하고자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되어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욕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교회는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세에 이름을 남긴 유명(有名) 순교자들 뒤에는 수많은 무명(無名) 순교자들이 계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천호 성지에도 네 분의 순교 성인의 무덤이 있고, 그 아래에 150년 전 무진박해 때 돌아가신 무명순교자들의 자그마한 묘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인 묘역 앞에서 기도할 때 저는 무명순교자들에게 더 깊은 친밀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아마 그분들의 이름 없는 삶이 우리네 어머니와 아버지같은 모든 민초들의 삶이었기 때문일겁니다.

무명 순교자들은 인간의 마음 속에 기억되길바라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마음 안에만 기억되길 바라며, 고단한 삶을 받아들이고 이름마저 남기지 않은 채 기꺼이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이분들은 이 세상에 속한 분들이 아니셨습니다. 이분들은 오직 하느님께만 속한 분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계신 분들. 하느님의 깊은 사랑 속에 숨어 계신 분들. 그래서 저는 이 분들을 하느님 안에 숨어 계신 ‘고은(高隱)’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본래 ‘인사유명(人死留名)’하고 픈 마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인사유주(人死留主)’하면 족하다고 여기는 것이 신앙의 핵심일 것입니다. ‘고은(高隱)’ 분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믿었고, 오직 하느님의 마음속에만 머물러 계셨던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세상에서 ‘무명(無名)’은 ‘하찮은’, ‘보잘것없는’과비슷한 말로 쓰입니다. 그러나 순교성인들 앞에 붙은 ‘무명’은 ‘하찮고 보잘것없는’ 이라는 뜻이 아니라 ‘고은(高隱)’이라는 뜻입니다. ‘유명(有名)’을 갈구하는 세상에서 우리 곁에 사셨던 ‘고은(高隱)’분들의 고운 삶과 사랑이 모든 신앙인의 것이 되시길, 그리하여 하느님 안에 깊이 머무르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전주교구 남종기 고스마 신부 : 2018년 9월 23일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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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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