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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조상들의 삶의 지혜
조회수 | 2,564
작성일 | 07.09.24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우리의 고유 명절인 추석(秋夕), 한가위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우리 고유의 명절인 오늘을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을 대축일로 받아들이고 지내는 것은, 각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전통과 문화 속에서 복음이 뿌리내리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한가위 대축일은 신앙인인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추석 명절이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일이 아니라,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조상들의 유업을 기리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축제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참으로 의미 깊은 복음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였는데, 풍작이 되어서 엄청난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부자는 작은 창고를 헐고 큰 창고를 새로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흔아,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부자가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수확을 혼자서 독차지하면서 즐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부자는 그 날 밤에 횡사(橫死)하고 말았습니다. 그 부자는 그 많은 수확을 혼자 독차지하지도 못했고, 실컷 쉬고 먹고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거둔 곡식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부자가 그 많은 수확을 혼자 독차지하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미 그는 죽음의 길에 들어서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부자는 죽을 짓만 골라서 한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우선 그 부자는 어떻게 해서 그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되었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지어 보신 분들은 어떻게 곡식이 열매 맺는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노력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도우심이 없다면 아무리 우리 인간이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한 톨의 쌀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때맞추어 비를 내려 주셔야 하고, 적절한 햇빛과 기후를 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요즘같이 농사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도 하늘의 도움이 없으면 결코 풍성한 수확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늘이 짓는 농사에 작은 노력을 보탤 뿐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이 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 부자는 자기가 땀을 홀려 애를 썼기에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가 하늘에 감사할 줄 모르고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은 오직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오만한 마음을 먹은 것이 근본적인 잘못이었습니다.

그 부자가 그 많은 곡식들을 서로 나눌 줄 모르고, 혼자 독차지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 수확이 자신의 노력으로만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그 부자의 주위에는 가난한 형제들과 굶주리는 형제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자의 눈에는 가난한 형제들과 굶주리는 형제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늘에 감사할 줄 모르는 오만함으로 눈멀어 있었고, 탐욕으로 눈멀어 있었습니다.

부자의 눈에는 하느님도 보이지 않았고, 하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형제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곡식 더미와 재물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많은 것들을 가난한 형제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혼자서 그 많은 것을 다 먹어 치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혼자서 독자치할까 하고 고민한 것입니다.

그 부자는 살 궁리가 아니라, 죽을 궁리만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할 줄도 모르고, 하늘이 두려운 줄도 모르는 오만함이 그에게 죽음을 가져온 것입니다. 부자는 창고에 재물만 잔뜩 쌓아 놓고 있으면, 얼마든지 호의 호식하면서 잘살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는 창고에 쌓인 재물을 더 믿었습니다. 그러나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재물이 그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은 것입니다.

부자는 서로 나누고 함께 누리면서,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고 혼자만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부터 죽음의 세력은 이미 그를 덮치고 있었습니다. 그가 혼자서 향락과 호사(豪奢)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주위에서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당하면서 죽어 가야 했습니다.

혼자서 독차지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 가난하게 되는 길이자 죽음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탐욕은 죽음의 늪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입니다. 한번 빠지면 여간해서는 빠져 나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언제나 불만족스럽습니다.

부자가 이렇게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그의 주변에서는 이웃과 형제들은 가난 때문에 서서히 죽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혼자 독차지하려는 탐욕이 자신도 죽이고 이웃과 형제도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부자는 창고 속에 엄청난 재산과 재물을 쌓아 놓고도 죽었던 것입니다.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또 있습니다. 부자는 자기 운명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자신이 쌓아 둔 재물에 희망을 걸면서, 혼자서 그 모든 것을 영원히 누리리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내일 나의 운명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한 시간 후의 나의 운명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서 숨쉬고 있지만, 내일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지금 서로 사랑하고 서로 나누고 베풀면서 성실히 사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내일을 대비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부자는 내일 어떻게 될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 모든 것을 혼자 독차지하면서 내일을 대비하려 했습니다. 그것 또한 죽을 짓을 골라서 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재산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하고, 지위와 명예를 뽐내고, 그러면서도 하늘을 두려워할 줄도, 감사할 줄도, 서로 나누어 가질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세상에는 어둠과 죽음의 세력이 더 크게 판을 치게 되고, 이 세상은 더욱 살벌한 세상이 되고 맙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고유의 명절, 한가위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우리의 선조들은 오곡 백과가 무르익는 이 가을에 추석 명절을 정하고,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고, 조상들의 은덕에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로부터 농사를 본업으로 해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았고, 하늘에 감사드릴 줄 아는 순박하고 슬기로운 민족이었습니다. 알맞은 기후와 적당히 때맞추어 비를 내려 주시어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하늘에 새로 수확한 곡식으로 빛은 음식과 햇과일로 상을 차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자연의 섭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뉴월 농부, 팔월 신선”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우리 조상들은 땀 흘려 농사를 지어서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은 하늘의 도움 때문이지, 결코 자신들의 노력으로만 그렇게 된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덥지도 춥지도 않고 모든 것이 풍성하게 결실 맺는 이 계절에, 한가위 명절을 정하고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를 벌였던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민족은 조상의 은덕에도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았고, 땅에서 솟아나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고, 선조들이 물려준 땅과 그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의 나는 조상들의 은덕을 바탕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삶의 바탕을 마련해 주신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를 드리면서, 그분들의 명복을 비는 제사를 바쳤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내는 추석 명절은 나눔과 사랑의 축제일이기도 합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햇곡식으로 빛은 음식과 풍성한 햇과일을 장만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웃과도 장만한 음식을 서로 나누면서, 사랑과 우의를 돈독하게 하는 날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가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우리 민족의 아름답고 고유한 풍습과 전통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유물론적인 사고와 찰나적인 퇴폐 향락 문화가 스며들어서, 우리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농자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땀 흘려 농사짓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더 편하고, 더 쉽고, 더 돈 잘 버는 일을 찾아서 젊은이들이 모두 농촌을 떠나고 있습니다.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면서 핵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면서, 조상의 은덕도 망각한 채 예의 범절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기적인 가정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돈과 재물과 출세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면서, 안일과 향락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지내는 이 추석 명절을 통하여 사라져 가는 우리의 고유한 풍습과 전통을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순응하고 감사하는 생활과,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날이 서로 사랑하고 나누는 즐거운 축제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조상들의 명복을 빌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풍성하기를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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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강영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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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오늘은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는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입니다. 한가위는 농사를 제일 중요한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우리 조상들에게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며 하늘과 조상들에게 드린 감사의 제사였습니다.

농사 일는 인간의 노력에도 불과하고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그 결실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특히 가뭄과 물난리에 대한 대책이 허술하기 짝이 없던 옛날에는 적당한 때에 맞추어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농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었고, 수확 또한 기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자연의 위력에는 어쩔 수 없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올해는 유난히 태풍만으로도 한해를 정성껏 준비한 농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풍성한 수확의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도움이고 하늘에 계신 조상들의 도움이라고 생각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 우리의 조상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감사의 정을 표현하는 명절이 한가위 명절인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농사일을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돈을 많이 벌수 있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와는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확의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과 조상들에 대한 감사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그래도 오늘 우리는 조상들의 전통 덕에 3일의 휴가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한가위명절 미사도 이러한 한가위 명절의 의미를 되살려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과 세상을 떠난 조상들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한해의 수확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인생의 수확에 대한 준비를 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성경말씀도 그러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요엘예언서에서 수확의 기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내려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고 예언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그리고 우리 인생의 수확에 대해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아무리 부요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하지만 우리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개미처럼 모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닙니까? 개미처럼 모으는 것도 모자라 욕심으로 가득 차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며 살아간다면 요한 묵시록의 말씀처럼 “주님 안에서 죽는 행복한” 이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온 가족이 모인 오늘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마산교구 남경철 신부
  |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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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감사는 십자가

찬미예수님!
늘 한가위 같은 마음으로 세상의 시름과 걱정을 덜어 놓고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고마움이라는 단어를 잘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인심도 흉흉할까? 언젠가 우리 마음에 고마움이 사라져가기 때문입니다.

물질 풍부시대에 우리는 공기와 물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문을 열어주거나, 잡아주거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려 주어도 ‘감사합니다’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 아닌 짐승에게 밥을 주면 ‘식사 전 기도’도 하지 않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급하게 먹습니다. 고마움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고귀한 마음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물이 귀한 줄 모릅니다. 공기가 귀한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짜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화생방 가스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그 흔한 공기가 그렇게 고맙게 느껴질 때가 없습니다. 또한 행군을 하다보면 그 물 한 방울이 그렇게 귀한 줄 모릅니다. 한쪽에서는 농약을 치고 있는, 그 논의 물도 엎드려 그냥 먹습니다. 비록 오염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 물로 인해 내가 살겠다 싶기 때문입니다. 그 논물이 고맙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 우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마움을 모릅니다.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말 두 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고맙습니다’와 ‘미안합니다’입니다. ‘미안합니다’는 자신을 잘못을 주저 없이 인정하는 멋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과 화해를 불러줍니다. 이러한 말들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특히 오늘은 ‘고맙습니다’라는 말씨를 마음속 깊이 심어야 합니다. 이러한 고마움은 우선 사람과 사람을 소통시켜줍니다. 고마움을 느끼면 무엇인가 나누려 하고 선물하려고 합니다. 선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 그러한 생각이 많이 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을 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아가 우리를 내어주신 하느님께도 고마워해야겠습니다. 고마움은 하느님과 나의 연결고리입니다. 그러기에 감사는 십자가를 닮았습니다. 감사는 사람과 사람의, 사람과 하느님의 연결고리입니다.

► 마산교구 김종필 가브리엘 신부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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