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7 89.6%
[전주/제주/청주] 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
조회수 | 2,330
작성일 | 09.03.25
하느님께서는 천지창조 이전부터 인류구원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당신의 섭리 안에서 인류가 구원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한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 안에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그들을 인도하셨다.

때로는 그들에게 풍요와 번영의 축복을 내리시고, 때로는 그들을 사랑의 매로 벌하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계획을 따르도록 인도하셨다. 또한 그들에게 예언자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약속하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메시아를 기다리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도록 이끄셨다.

그리고 때가 이르자 예언자들을 통하여 알려주신 대로 갈릴레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에 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하셨다. 이에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메시아의 강생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인류 역사 안에서 오직 한 사람 마리아만을 택하시어 그녀에게만 천사를 보내셨을까? 꼭 그렇다고 답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마리아만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보았고, 마리아만이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했다고 묵상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즉, 하느님께서는 스스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천사를 보내셨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부터 장구한 세월동안 티 없이 순수하고 의로우신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신 기워 갚도록 하시기 위하여 수많은 천사를 사람들에게 보내셨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설령 하느님의 천사를 알아보았을지라도 천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묵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먼저, 수많은 이스라엘 처녀 가운데 마리아만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알아보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마태 13,14)는 말씀처럼 많은 이들이 천사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듣지 못한다. 눈과 귀는 있지만 신앙의 눈과 귀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느님의 천사를 알아볼 수 있는 눈과 천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즉 신앙의 눈과 귀를 지니고 있었다. 하느님께 나아가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하다. 신앙 없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하느님께 나아가기 어렵다.

마리아가 천사를 맞이한 상태는 몽롱하고 흐릿한 정신 상태나 꿈을 꾸던 가운데에서가 아니다. 그녀는 아주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천사를 맞이하였다. 그녀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천사의 말을 들으며 당황하긴 했지만, 천사의 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할 정도로 맑은 의식 중에서, 뚜렷한 자의식을 지닌 상태에서 천사를 만났다.

그리하여 그녀는 천사에게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천사를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벌벌 떨다가 아무 말도 못하기 십상이며, 자칫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이 해야 할 질문을 서슴지 않고 했다. 이처럼 천사를 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신앙의 눈과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느님 앞에서 떳떳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처녀가 마리아였기 때문에, 그녀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녀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처녀였다. 천사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즉각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주(主)가 아니라 종이라는 사실, 그래서 종은 주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사는 신앙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주가 되기를 원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고,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이 주가 아니라 종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살았으며, 종으로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사는 신앙인이었다.

비록 그 길이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루가 2,35) 수밖에 없는 수난과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주님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살아가는 신앙인이었다.

그 어떤 모욕과 박해, 죽음까지도 각오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신앙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영원히 사는 사람이 되었다.

사도 요한은 “세상도 가고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1요한 2,17)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나가버리고 없어져버릴 세상 것에 얽매이지 말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영원히 사는 신앙인, 마리아처럼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자.

전주교구 경규봉 신부
447 89.6%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성탄절을 기준으로 아홉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신 일을 경축하는 날입니다.(예수님 탄생 예고 즉시 잉태하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대축일이라고 경축하고 있지만 당시의 실제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아주 작은 일이었습니다.(물론 마리아 자신이나 요셉에게는 심각하고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자렛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 그곳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시골 처녀 마리아. 마리아에게 누가 찾아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신경이나 썼겠습니까? 누가 관심 갖고 주목이나 했겠습니까?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이 다윗 왕실의 후손이라고 해도 이미 망해버린 왕실이고, 직계 후손도 아닌 곁가지 후손이었고, 사람들 눈에 뜨이지도 않는 가난한 시골 목수일 뿐이었으니 요셉의 족보나 혈통도 그 당시에는 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아기였는데, 그 아기가 태어날 때에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긴장하게 되고, 다시 몇 십 년 후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긴장을 하고, 또 좀 더 세월이 흐르게 되면 로마제국 전체가 긴장하게 됩니다.

문득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의 비유가 바로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오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신 일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야말로 작은 겨자씨 하나가 심어진 일이었는데, 그 작은 씨앗이 나중에는 온 세상을 긴장하게 만드는 큰 나무로 자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마리아를 밭으로 생각할 수 있고, 예수님을 겨자씨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칭 예언자, 자칭 메시아가 나타나면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가 역시나 하며 실망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나자렛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주 조용히 인류 역사의 반전(反轉)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탄생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도 흉내 내지 못할 최고의 반전(反轉) 드라마입니다. 이스라엘만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 역사의 반전 드라마입니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도 그렇게 심어지고 키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어느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는, 작은 씨앗 하나가 뿌려지는 것처럼 그렇게 희망의 씨 하나가 뿌려지고 조용히 자라면서 언젠가는 거대한 나무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 그런 것이 희망이 아닐까...

우리는 예수님 잉태의 첫 순간을 읽으면서 마리아의 두려움과 설렘과 기쁨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실감하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복음서의 내용을 알고 있고, 묵시록까지 읽은 사람은 인류의 종말까지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장면을 궁금해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심정은 어땠을까? 천사가 전해 준 몇 마디 설명 외에는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믿음 하나로 이 거창한 드라마를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으니... 아마도 칠흑 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멀리 수평선에 보이는 아주 작은 불빛 하나를 향해서 작은 조각배를 저어가는 심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 작고 희미해서 희망이라고 부르기에도 힘든 작은 불빛 하나.

그렇게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작고 조용하게 시작된 날이 바로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마리아라는 밭에 예수님이라는 겨자씨 하나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심어진 날.

40여 년 전 초등학생 시절, 당시 티브이라는 것도 없고 라디오가 유일한 낙이었을 때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절망은 없다.’ 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매주 한 편씩, 절망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재구성해서 방송했는데, 그때 방송 시작 시간이 되면 아나운서가 주제 음악과 함께 항상 반복해서 낭독하던 말이 “지진으로 무너진 들에도 샘은 다시 솟고...”였습니다.

그 다음 구절이 잘 생각나지 않는데, 아마도 이사야서 42장 3절,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 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 버리지 아니하며...(공동번역)” 그 구절과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시절 6.25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그 프로그램은 많은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기억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들이었고, 제목 자체가 ‘절망은 없다.’였으니...

그렇습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스스로 절망하지 않는 한. 우리도 각자 자신의 가슴 속에 희망이란 이름의 작은 겨자씨를 심을 수 있습니다. 아니, 심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온 세상에 그늘을 만들어 줄 거대한 나무로 자라기를 기대하면서.

송영진 모세 신부
  | 03.25
447 89.6%
[제주] 교회의 모습

오늘 복음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라는 대목에 시선을 멈추어봅니다.

이 세상에 오시는 구세주의 탄생 예고 안에 삼위일체 신비가 나오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어떤 영감을 받고 이런 천사의 알림을 넣었을까요? 주님 탄생 예고 자체가 삼위일체 신앙고백 안에서 생각되어야 할 부분인 것은 이 예고 자체가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여종 마리아의 응답을 들으셨습니다. 성령, 성부, 성자의 소식을 전한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 속에 조용히 응답한 마리아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가장 훌륭한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교회의 모습, 신앙인이 걸어가야 할 길은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일입니다. 머리로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이지만 겸손하면 우리 마음에 하느님이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제주교구 허찬란 신부>
  | 03.24
447 89.6%
[청주] 순명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일로 하느님을 섬기려고 애쓰는 것보다 극히 작은 순명과 복종을 더 좋아하신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순명이란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수도자가 되겠다고 어떤 사람 두 명이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두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을 합니다. “배추를 거꾸로 심어라.” 뿌리를 하늘로, 줄기를 땅으로 하여 심으라고 하는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 사람은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순종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말도 안 된다”라며 제대로 심었습니다.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원에 받아들여졌고, 제대로 심은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말합니다. “농사꾼을 뽑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합리적이냐 불합리적이냐 하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농사를 아느냐를 물어 보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순종하는지 하지 않는지의 여부를 확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도구가 되기 위한 관건은 순종입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의 순종은 우리 신앙의 귀한 모범이 됩니다. 성모님의 순종으로 하느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승리했습니다.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순종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순종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믿음이 자랍니다.

<청주교구 김훈일 신부>
  | 03.24
447 89.6%
[청주] 믿음에는 순명이 따른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0).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이해되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이 말씀에 결국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은 바로 마리아의 이 믿음과 믿음에 따르는 순명으로 인하여 구세주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풍습을 생각하면 약혼한 처녀가 부모도 모르고 약혼자도 모르게 임신하여 배가 불러온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응답은 죽음을 각오한 대답이었습니다. 사실 순종 없는 믿음은 그림의 떡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7)고 하셨지만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복종이 없이 천명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현주). 그렇다면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이든 주님의 뜻에 기꺼이 순명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당신이 쉼을 원하시면 저는 사랑으로 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일하라고 명을 내리시면 저는 일을 하면서 죽고 싶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일상 안에서 언제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두에게 은총을 쏟아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은총을 알아채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연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연장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도구가 되는 기쁨을 놓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수하면서 단테의 표현대로 "처녀인 어머니로서의 고통", 그리고 "아들의 딸" 즉 하느님의 딸로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길에서 고통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1,35). 하였습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우리를 덮어 죽기까지 믿음에 따르는 순명의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경청의 달인이요, 행동하는 어머니이셨습니다. 우리도 일상 나에서 다가오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대로 행하는 성모님을 닮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갈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2017년 3월 25일
  | 03.25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부활의 아침, 설레는 마음  [12]
!   [군종] 하나의 밀알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다  [2]
!   [기타] 부활신앙으로 무장하자.  [3]
!   [전주] “아! 잔인한 4월, 잔인한 부활”  [2]
!   [광주]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2]
!   [마산] '부활 - 돌을 치우자' (요한 20,1 이하 참조)  [5]
!   [수원] 구원받은 자의 삶으로  [7]
!   [원주] 우리는 주님 부활의 증인  [2]
!   [청주] 부활 메세지  [3]
!   [대전] 부활은 인간에서 하느님 발견하기  [5]
!   [서울] 부활을 선포하는 사람들  [15]
!   [의정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마태 28,7)  [7]
!   [춘천] 부활을 믿고 복음 전할 의무  [3]
!   [인천]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부활의 기쁨이  [12]
!   [대구]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5]
!   [안동] 부활의 증인이 되십시오!  [11]
!   [부산] 부활신앙은 예수님으로 부터 빛을 받아 살겠다는 약속.  [14]
495   (백) 예수 부활 대축일 독서와 복음  [7] 2194
  [전주/제주/청주] 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  [4] 2330
493   [서울/수원] 하느님의 선택 : 평범성, 일상성  [7] 2342
1 [2][3][4][5][6][7][8][9][10]..[26]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