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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우리는 주님 부활의 증인
조회수 | 2,263
작성일 | 09.04.01
주님의 부활을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거룩한 사순절을 통하여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에 참여했고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바탕이며 힘입니다. 밤이 아무리 캄캄하다 하더라도 날이 밝으면 그 어두움은 사라집니다. 주님의 부활도 빛과 같아서 위협적인 죽음의 세력이라도 역동적인 생명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제 고통과 슬픔의 수난은 사라지고 부활은 우리를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부활성야의 전례시작은 ‘빛의 예식’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어두움 속에서 부활초에 불을 밝히며 하느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신 그 신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탈출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의 한 가운데 마른땅을 건넜던 사실과 광야의 삶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거칠고 황막한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사십 여 년의 기간이 끝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시기에 구약의 이 사건을 묵상하며 주님의 부활사건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겪어야 할 수난의 고통과 죽음을 맞아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영광의 부활이 있기 전에 고통의 수난과 십자가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  무덤을 찾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한 젊은이가 하얗게 긴 겉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그들을 안심시키며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도 예수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신대로 갈릴래아로 먼저 가실 것이고 그곳에서 뵙게 되리라는 사실을 전하라고 일러줍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뒤 늦게 주님을 뵙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그들이 겪은 실망과 슬픔이 컸기 때문에 바로 그 그늘에서 벗어 날 수는 없었지만 뒤 늦게나마 그 기쁨을 나누며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죽음의 어두움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부활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제자들은 큰 기쁨과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세상에 나가 주님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제자들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빛의 증인이 될 수 있게 해줍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고 그분과 함께 죽고 묻혔으며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3-11).

우리는 부활 성야 미사 중에 세례 서약 갱신을 통하여 촛불을 들고 서서 세례 때에 한 신앙의 약속을 새롭게 합니다. 세례로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며 마귀와 그 행실을 끊어 버리고,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하며 세례 서약을 새롭게 합니다.

오월에는 지자체 선거가 있어 벌써부터 선거열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양심적이고 진정으로 주민을 위하고 산재된 나라 일을 위해 정직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유권자들이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번 선거가 좀더 성숙된 시민의식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판이 되는 계기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위해 먼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맞으신 것처럼, 우리도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진리를 증거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로마 6,8)

2006년 김지석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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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통한 봉사와 이웃사랑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 부활의 기쁨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수난과 죽음을 이기시고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구약의 어떤 사람도 스스로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 생전에 몇 차례 부활에 대한 가르침과 예고를 하셨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무덤에 다다랐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제자들도 빈 무덤만을 확인하고 당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요한 20,9)에서도 이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처럼 죽음을 체험하지 못한 우리에게도 예수님 부활사건은 생소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부활을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 기쁨과 영광을 나누어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즉시 주님의 무덤에서 주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했다하더라고 얼마 후에 사도 베드로는 두려움이 아닌 기쁨과 용기를 갖고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사도 10,39-40). 이와 같이 주님의 부활사건은 제자들이 체험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한 없는 용기를 갖게 해줍니다.

우리의 현실은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와 정치적인 혼란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이 주었던 슬픔과 아픔이 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듯합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실직자들이 늘어나고 그 고통을 겪어야 하는 그들 가정의 시름도 더욱 깊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실직자가 늘어나고 사는 것이 막막한 사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불안은 우리에게 큰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평범하면서도 분명한 진리가 우리의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 각자가 나누려는 실천에서부터 해결될 수 있습니다. 진리는 먼 곳에, 그리고 추상적인 이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 선조들이 어려움을 끈기와 슬기로 풀어나간 것처럼 우리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 스스로가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고 일치 하는 데에서부터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여러 상황에서 비판만을 내세우며 남에게 탓을 돌리는 모습들을 보아왔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현실을 보면 과거에 나라를 어지럽혔던 사색당파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반성해 본다면 누구의 잘잘못을 파헤치며 무조건 비방과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기보다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먼저 사랑으로 내 이웃의 상처를 감싸며 치유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바탕이 마련될 때, 비로소 우리는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가 있는 곳에는 진정한 나눔의 실천이 따를 수 있고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경제가 어렵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과 작은 것부터 나누고 배려할 수 있다면 정치적으로 또 사회적인 운동으로 전개하는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제일 힘든 것은 사회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가진 것을 나누었던 표양이 우리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은 신자들이 서로의 것을 나누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교회가 박해받는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사랑의 공동체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찰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사도 10, 41ㄴ).

우리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어려운 현실이라고 해서 희망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무기력하게 현실을 한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도와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이기적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나눔 정신이 있으면 서서히 어려움이 걷히고 찬란한 주님의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이 어렵다고 해서 우리마저 한탄한다면 누가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서 이 현실을 올바로 보고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이정표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봉사를 통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합시다.

2009년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김지석
  |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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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허무함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부활은 삶이 절망에 이를지라도 그 절망이 끝이 아님을, 그 절망 너머에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의 근원이 하느님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부활은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바꾸어 버린 사건입니다.

성경은 안식일 다음 날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존경하며 따랐던 예수님을 죽음과 함께 떠나보내고 슬픔을 닦고자 향유를 들고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시신의 주인과 쌓아온 지나간 추억을 나눌 수는 있지만 그와 함께 하는 더 이상의 미래는 담지 못하는 닫혀 있는 무덤, 그곳은 ‘절망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 무덤이 열려 있습니다. ‘닫혀 있는’ 무덤이 아니라 ‘열려 있는’ 무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흰 옷의 젊은이가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마르 16,6)

무덤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있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통해 절망으로 들어갔던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전하여 줍니다. 그분은 죽음에서 되살아나셨다고, 그래서 닫힌 무덤 속에 계시지 않다고, 보라고, 그분의 시신을 모셨던 무덤이 열려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절망 속에서 머무르지 않는 그분이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이십니다. 희망은 절망 속에 갇힐 수 없는 법입니다. 부활은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희망은 때로는 절망의 틈새에 갇히기도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을 거쳐 무덤에 머무르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절망의 늪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절망의 늪을 통과하여 나타납니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닫혔던 무덤이 다시 열린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희망이 절망 속에 영원히 갇혀버린다면, 그것은 거짓 희망일 뿐입니다. 참된 희망은 어떠한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빛입니다.

우리는 부활성야의 예식에서, 어두운 밤에 촛불을 밝혀 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합니다. 세례 받을 때 받아들었던 촛불도 떠올려 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빛으로 살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니,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좇아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밝혀 들은 촛불이 속삭이듯이, 우리는 바람이 불면 곧 꺼질 듯한 나약한 인간이기에 지상에 살고 있는 나약한 인간 조건을 하나도 외면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울고 웃으며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손에 나약하더라도 분명히 빛을 밝히는 촛불 한 자루가 들려 있듯이, 울고 웃더라도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의 삶 안에 밝히고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참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어섰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갈수록 각박하게 느껴집니다. 물가는 오르고, 자녀들 교육비는 등을 짓누르고, 자영업자들은 열심히 일해보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고, 실업자에게 일자리 찾기는 너무 힘듭니다. 빈익빈부익부의 사회양극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못살겠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모습을 볼 때, 사목자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삶이 비틀거린다 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중심을 잡으면 됩니다. 아니, 넘어져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닫혀 있는 무덤이 열리고 죽었던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절망의 틈새를 헤치고 희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십자가의 슬픔 뒤에 부활의 기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거쳐 마침내 부활시기에 이른 것처럼 슬픔과 절망 뒤에 기쁨과 희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기쁨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덤을 열어젖히고 갈릴래아로 가야합니다. 천사는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

갈릴래아,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먹고 뒹굴며, 삶의 체취를 남기셨던 곳, 당신과 제자들의 삶의 자리였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이루어질 참된 기쁨의 만남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갈릴래아, 그곳이 바로 우리가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자리요, 우리의 삶이 부활하는 자리입니다. 주님을 만난다고 일과 사람을 피해 심산유곡의 피정센터에 내내 머무를 필요는 없습니다. 부활한 주님과의 만남은 우리들 모두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 가정, 직장 그리고 이웃 공동체는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삶의 현장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희망을 갖고 돌아가는 삶의 자리 갈릴래아,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여러분에게 전해진 희망의 빛으로 주위를 밝히십시오. 아울러, 곧 이루어질 선거에 참가하여 올바른 선택을 권고합니다. 감정과 편견으로 인한 선택은 늘 국민들에게 아픔이었음을 기억하고, 과거에 대한 판단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바른 전망을 가지고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봉사할 보다 나은 지도자들을 일꾼들로 선출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2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주교 김지석
  |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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