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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부활은 인간에서 하느님 발견하기
조회수 | 2,246
작성일 | 09.04.11
요한 20,1-9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요한 20,1-16).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빈 무덤을 보고 예수님이 사랑하던 제자 요한과 베드로에게 달려갑니다. 마리아는 그들에게 "누군가가 주님을 옮겨갔습니다" 라고 전하며 예수님 얼굴을 덮었던 수건을 가리킵니다. 돌아가신 예수님의 얼굴을 덮었던 수건이 지금은 한 곳에 개켜져 있습니다. 수건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수건 속에 덮혀 있던 인간 예수님의 얼굴이 이제 부활하신 하느님의 얼굴로 드러나는 표징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을 봅니다. 다른 제자도 들어 가 보고 믿었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메시지를 사도들에게 전하는 첫 사도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주님이 죽은 이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서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완전하게 살아났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세상에 사셨기에 우리 인간도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온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기심과 욕심으로 하느님 닮은 모습을 점점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온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첫 모습으로 지금 다시 태어났습니다. 부활은 새로움입니다. 하느님의 새로움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새로움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부활을 증거합시다.

곽승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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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희망과 기쁨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사랑, 평화와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특별히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결심과희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 가난하고 외로운 분들, 고통 받는 이들과 직장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 효율을 앞세워 약속과 신뢰를 깨려는“세종시”에 대한 정부의 혼란스런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 부활하신 분의 얼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기까지 우리는 성 목요일에 피땀을 흘리시며 고뇌하시는 예수님을, 성 금요일에는“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라고 울부짖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봄에 그치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에 집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 외아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게 하셨고, 외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에페 2,4-5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1코린 15,14 참조).예수님께서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가시며 고통을 받으시는 동안에 스승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요한 21,15-17)라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며 새롭게 출발한 베드로의 발자취를 따라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교회는 또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 빛을 받았던 바오로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새 천년기」28항 참조). 죄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씻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십니다.

2. 생명과 자연을 살리는 사랑의 문화를 향하여

우리가 숨 쉬며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물질만능과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죽음의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아동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 나라의 존립자체가 위협받는 처지에 이를 것입니다. 가장 약하고 스스로 방어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하는 어머니뱃속의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 사회가 참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명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생명을 발전의 수단으로 삼고 파괴하는 행위는 자연환경에서도 똑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연 생명이 파괴되면 그 자연을 호흡하고 섭취하며 살아가는 인간 생명도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교회의에서 한국의 모든 주교님들께서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자연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심각한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주교님들께서는 정부 실무진의 설명을 들어보았지만,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인 합의 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며 수많은 굴삭기를 동원하여 한꺼번에 왜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욕심으로 인한 경솔한 개발의 폐해가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지워질 때, 이 시대의 책임을 누가 질 수 있겠습니까?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회칙「진리안의 사랑」에서“환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로서, 이를 사용하는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와 인류 전체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자연환경은 우리가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원료 이상으로 소중한창조주의 놀라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연에는 그것을 무분별하게 착취하지 않고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한 목적과 기준을 알려주는‘공식’이 담겨 있습니다.”(48항)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기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눈앞의 이익을 얻으려다가 창조주께서 몇 만 년을 두고 가꾸어 오신 소중한 작품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신앙인들 자신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성찰과 회개를 촉구하며, 정부 당국자들과 국민 모두가 우리 자신과 미래의 세대에게 책임 있고 양심적인 길을 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3. 서로가 통하는 친교를 위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내가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13,34-35) 라고 하신 말씀을 생활에 옮겨야 합니다. “새 계명”을 사는 것이 교황님께서“교회를 친교의 원천이며 친교의 학교로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 천년기에 우리가 당면한 큰 과제”(「새 천년기」43항) 라고 말씀하신 친교의 교회를 이룩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삼위일체의 하느님 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사랑의 관계를 이루고 계십니다. 한 분이시면서 삼위를 이루고 계시는 친교의 하느님, 공동체의 하느님, 관계의 하느님이십니다.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전화와 휴대폰, 문자메시지, 화상 통화와 인터넷 등, 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있습니다. 이웃과소통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고독과 외로움이 가장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고, 자신의 이익만을 찾는 이기적인 모습이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요,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나 혼자만 행복하려고 힘쓰면 모두가 불행해지고,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면 나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해져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 집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 이웃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며, 이웃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평화의 메시지를 주시기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죽을 때에만 부활의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미움과 불의를 조장하는 악의 세력에 무릎을 꿇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는 믿음 안에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면서“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4,34) 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주님의 일꾼이 되어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 나갔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각자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평화를 나누어주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물질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님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항상 깨어있는, 준비된 사람으로 존재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청합시다. 우리가 즉시 예수님 얼굴을 알아보고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형제자매들에게로 달려가“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 하며 기쁜 소식을 전하고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부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시다(「새 천년기」59항 참조).

2010년 4월 4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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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새봄을 맞아 죽은 듯이 보였던 대자연이 새로운 생명을 움틔우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 평화와 기쁨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하시는 일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당하며 고통받는 이들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 공동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요한 16,16)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을 전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부활하신 예수님은 공동체 안에서 당신 모습을 드러내셨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절망에 빠져있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함께 빵을 나누는 순간에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해주셨고(루카 24,13-35 참조), 제자들이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때 그들 한가운데에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를 전하셨으며(요한 20,19-23 참조), 고기를 잡고 있는 일곱 제자들에게 손수 빵과 물고기를 구워주시며 함께 아침식사를 드셨습니다(요한 21,1-13 참조).

부활의 삶은 더불어서 함께 사는 삶입니다. 제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함께 목격하고 체험하였듯이, “하늘의 시민”(필리 3,20)인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로마 6,8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는 세상의 불의한 구조마저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치로 돌려놓아야 할 책임이 따릅니다.

2. 혼란한 사회 속에서

우리가 생활하는 사회의 현실은 많은 어려움들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런 현실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으로 찌들어 있는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나에게 이익이 되면 선이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며,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면서도 무분별한 개발이 지속되고 있고,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나만 행복하려고 하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계층, 지역, 세대 간의 골이 깊어져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티없이 뛰어 놀면서 꿈을 키워가야 할 학생들의 폭력 소식을 접하면서 놀라움으로 할 말을 잊었습니다. 학교가 서로 더불어서 함께 사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인성교육에 바탕을 둔 교육이 아니라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만을 위한 경쟁교육으로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고 걱정하면서 ‘이래서는 안된다, 바뀌어야만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탐욕 그 자체를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콜로 3,5 참조). 탐욕이 하느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이 세상, 탐욕의 질서가 생명의 질서를 지배하는 이 세상은 죽음의 길목에 서있는 듯싶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요한 5,24) 부활의 증인인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권력이 진실을 호도하고 생명을 유린할 때 정의와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3. 공동선을 증가시키는 총선거

며칠 후에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습니다. 헌법 제 1조 1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합니다. 국민은 자유롭게 선출한 대표들에게 주권의 행사를 위임하지만, 그러한 통치 임무를 맡은 이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잘못하면 그들을 바꿈으로써 주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95항 참조). 국가의 중요한 결정들을 국회의원들이 결정하기에, 국회의원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합니다. 백성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정치를 기대하기 위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올바른 가치관과 비전을 지닌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열린 마음과 냉철한 자세로 후보자를 검증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참조하여 그 중에 가장 나은 사람에게 투표하여야 합니다.

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합시다. 정치에 대한 체념이나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투표의 권리를 행사하여야 합니다.

나) 국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공동선의 실현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지연, 혈연,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나라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국민을 속이는 자를 가려내고, 도덕성을 갖춘 사람을 뽑으면 그만큼 정치 질서도 나아질 것입니다.

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읍시다. 반드시 신자들을 뽑으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국민의 생각을 인내하며 경청하고, 대화하고, 조정할 줄 아는 열린 사람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 고통받는 이들의 ‘손과 입과 발’이 되어 줄 수 있는 이들을 뽑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라) 공정한 선거 관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언론은 공정보도를 통하여 공정선거를 담보하여야 합니다. 공직자들도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민을 섬기며 공동선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유권자들도 공명선거를 해치는 온갖 비리와 불법 행위를 적극적으로 고발하여, 깨끗한 정치 풍토를 가꾸는데 최선을 다합시다.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정치를 합니다. 올 해 두 차례의 선거로 투명하고 깨끗한 선거풍토를 조성하여 정직하고 도덕성을 갖추지 않고는 정치 지도자로 나설 수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킵시다.

4.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진정한 평화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의 삶은 완전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미움과 불의를 조장하는 악의 세력에 맞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제자들은 믿음 안에서 나눔과 섬김의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사도 4,34)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 나갔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정의와 평화를 나누어주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우리에게 닥치는 미움, 폭력, 불의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길을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배우면 좋겠습니다. 평화에 이르는 첫 번째 길은 “법”이며, 사람들에게 그 법을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정의를 완성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정의와 사랑은 때때로 반대세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둘은 동일한 실재의 양면일 뿐이며, 서로 통합되어야 하는 인간 삶의 두 차원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의 2004년도 평화의 날 메시지, 10항)

미움, 이기심, 불의로 얼룩진 현실 앞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건설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지혜를 주십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이 지혜는 영혼과 생각의 눈을 열어주시며, 이 세상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공동체 안에서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는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가 부활한 삶을 살 때에 주님을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2012년 4월 8일 예수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
  |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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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어린양, 신약의 파스카

오늘은 파스카 삼일의 절정을 이루는 성토요일 부활 성야입니다. 파스카(Pascha, 과월절 또는 유월절)라는 말은 '거르고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 탈출기에서 나와 있습니다. “당신들 자녀들이 이것이 무슨 예식이냐 묻거든 과월절(파스카)제사라고 일러주시오. 이집트인을 치실 때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을 그냥 지나가시어 우리 집을 건져 주신 야훼께 드리는 것이라고 일러 주시오. 이 말씀을 듣고 백성은 엎드려 예배를 드렸다.”(탈출 12,26-27) 라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결코 놓아주려 하지 않는 완고한 파라오에게 내리는 열 번째 재앙으로, 야훼께서 이집트의 맏아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 때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로 이스라엘 맏아들의 생명을 대신하여 그들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더 확대되어 이스라엘이 극적으로 갈대바다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을 주님의 천사가 그냥 지나갔다고 해서 그냥 지나갔다는 뜻의 유월, 과월이라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누룩 없는 빵을 먹었다 해서 무교절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해방되었다고 해서 해방절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파스카의 유래입니다. 이상은 탈출기 1장-14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성 목요일부터 오늘 성야까지를 ‘파스카 3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부터 부활하실 때까지의 과정이 구약의 파스카와 비슷합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거르고 지나가셔서 어린양처럼 당신의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신약의 파스카’라고 합니다. 오늘 밤 예식은 바로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식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제1부는 빛의 예식입니다. 성당 불을 다 끈 암흑의 상태입니다. 어두움은 예수님의 돌아가신 무덤을 뜻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높이 들고 그리스도의 빛이라고 외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점차적으로 예수님 부활의 빛이 세상으로 퍼져나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는 부활초 앞에서 부활찬송을 노래합니다. 부활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부활 시기 동안 내내 켜놓고 장례미사 때도 켜놓습니다. 제2부는 말씀의 전례입니다. 일곱 개의 독서를 읽고 서간과 복음을 읽음으로써 하느님께서 행하신 인류 구원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제3부는 세례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예비자들을 세속의 자녀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부활시키는 예식입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세례 때의 서약을 다시 갱신하고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 제4부는 성찬의 전례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전할 것을 다짐합니다. 천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상징하므로 제대를 꽃으로 장식하고 미사 후 잔치를 벌임으로써 파스카 음식을 나눠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란은 껍질 안에 생명이 살아 있다가 껍질을 뚫고 병아리가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 예수님이 무덤을 뚫고 새 생명으로 부활하신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부활의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멘,

방윤석 신부
  |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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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알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마태 28,5-6) 우리 모두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복음의 절정이며,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비의 시작이자 마침입니다. 창조에서 강생,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십자가 위의 죽음에 이르는 모든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는 주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 상실하고, 집착하며, 분노하는 우리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활 체험은 신비 그 자체이며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 체험은 우주와 인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바라보는 지평을 변화시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죽음만을 보고 세상의 일에 분노하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죄와 부족함, 그 한가운데 계시며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며, 진실로 거짓을 밝게 드러내고, 사랑으로 분노와 증오를 녹이고, 갈등을 품어 안으며 평화를 이루는 힘을 갖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신비이며 선물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감사하고 축하하며 세상을 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은 물질적 풍요와 편안한 생활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15초마다 충분히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어린이가 있으며, 전 세계 부의 소수 집중과 일자리 감소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물질적 빈곤은 자본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에 우선하는 체제와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주의라는 죄의 결과입니다.

엄마가, 아빠가 자녀를 죽이고,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끔찍한 폭행을 저지릅니다. 군대의 폭행, 교수 및 상사의 성추행, 간통, 약물과 도박, 음란물 중독 등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조차 허물어 버립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는 정신적 빈곤은 자살 증가, 부정부패, 대형사건 사고로 이어집니다.

윤리가 설 자리를 잃고, 더 강한 힘을 가진 승자가 되려는 목표만이 삶을 떠받치는 축이 되었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끔찍한 살인과 폭력이 난무합니다. 물질이 정신적 가치를 대신하고 탐욕과 풍요에 밀려 신비와 초월의 자리가 사라진 곳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거부하고, 외로움과 허무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영적 빈곤을 봅니다.

이처럼 죄로 가득 찬 빈곤 앞에 어느 누구도 자신은 빈곤하지 않으며, 이웃과 나의 빈곤에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잘못된 체제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우리 죄가 너무나 큽니다. 고통 받는 이웃에 무관심했으며, 인성보다 성적을 중시하며 자녀를 교육했고,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원칙을 슬그머니 저버리거나 직위로 타인의 인격을 짓밟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며, 자비와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빈곤을 치유할 용기와 힘을 줍니다. 허무와 분노에서 해방시키는 예수님의 성령이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어둠 속에 있는 형제자매에게 희망을 전하며, 내 것을 내주어 오병이어의 기적을 실천하는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씀으로 분노와 두려움을 거두시고, 창조와 강생,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태초부터 사랑하셨음을 다시 확인시켜줍니다. 오직 이 사랑만이 영적 빈곤에서 벗어나 윤리적 빈곤을 타파하고 근본적인 물질적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원천적 힘입니다.

교회는 무관심의 바다에 떠있는 섬으로 빈곤에 지쳐 표류하는 이들의 안식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비춰진 우리는 무관심의 고리를 끊고 빈곤에 처한 세상을 향해 자신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창세 4,9)고 물으시는 주님께 응답하며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서 가장 약하고 작은 지체를 우선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기도로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며 성령과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 주저함 없이 굳은 마음으로 주님의 복음을 삶과 선교로 증거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 평신도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평신도는 교회에 속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교의 헌장」 32항)라는 분명한 의식을 지니셔야 합니다. 교회는 사제 중심적이며 교계 중심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복음 선포와 인간 성화로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키고, 현세 질서를 완성하는 평신도의 활동(「평신도 그리스도인」 42항 참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평신도, 수도자, 사제가 하느님 백성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상호협력하며 더 열심히 복음을 살아갑시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교황님이 선포하신 「자비의 희년」이 시작되는 해입니다. 땅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고, 가난하거나 그 밖의 사정으로 노예가 된 유다인들을 풀어주었던(레위 25장 참조) 유다인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보니파시오 8세 교황님이 제안한 성년제도를 거쳐,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선포한 2,000년 대희년에 이은 특별희년입니다. 로마의 4대 성전 성년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는 희년에 교회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며 용서하는 가운데 세상과 화해합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믿고, 이웃을 용서하고, 이웃과 화해하는 삶을 삽시다. 광복 이후 분단된 한반도, 같은 언어, 같은 형제자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적으로 대하는 현실을 희년의 정신에 비추어 보며 우리의 죄를 반성합시다. 우리부터 통일과 화해를 위한 기도에 앞장섭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장한 순교성인들로 하여금 온갖 유혹과 잔인한 고문의 두려움을 이기고 신앙을 증거 할 힘을 주셨습니다. 신앙을 받아들이고 노비문서를 불태우며 형제애를 실천했던 순교성인의 자랑스러운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희년을 부활절인 오늘부터 준비합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관심의 사슬을 끊어주시고, 빈곤을 치유하시며, 우리를 한반도와 세상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앞당기는 신앙의 증거자로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진심으로 부활을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2015년 4월 5일 예수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
  | 04.04
447 89.6%
[대전]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콜로 3,3)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진심으로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자비의 특별희년” 기간 중 맞이하는 이번 부활은 어느 해보다 풍성한 은총이 함께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 죄를 뉘우치는 사순시기를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하느님은 징벌하시고 죄 값대로 갚으시며 우리도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라고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교회가 자비하신 하느님을 선포하며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부활은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을 온전히 만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총과 축하의 인사가 불편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암울하고 참담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중한 개성과 건전한 자아정체성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공부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어린 학생들과 미래를 향한 꿈을 제대로 품어 보지 못하는 많은 청년들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줄어드는 고용의 기회와 노년의 불안감이 모두에게 밀려옵니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은 단순히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평화를 위협하며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큰 문제입니다. 이런 긴박한 현실에서 점차 증가하는 갈등과 폭력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인간에 대한 불신을 증폭하며 물질적 성공이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인사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희망 없이 두려움으로 가득찬 우리 삶에 예수님의 부활이 과연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을까요? 어디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우리를 죄와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하느님, 자비로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제 죄의 뿌리를 차분히 살펴봅시다. 거기에는 현대인의 깊은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물질로 허기를 채우려는 영적 배고픔이 있습니다. 사랑을 확인하려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영적 허기를 권력과 물질이라는 옷으로, 외적 아름다움과 쾌락이라는 잠깐의 뜨거운 손난로로 넘겨본들 추위는 더 강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눈앞에 있는 이웃과 형제도 경쟁자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고통에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 우리는 대양을 떠다니는 난파선과 같습니다.

교회가 이러한 현대적 위기에 대응하여,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와 ‘자비의 얼굴’ 등을 반포하는 것도 시대가 보여주는 공멸의 위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잘못된 가치관으로부터 기인하는 개인과 사회의 고통,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비극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지성, 감각과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느님을 신비적이고 강렬한 체험 안에서만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구체적인 일상의 순간에 우리를 신비로 초대하시며 그 사랑으로 우리의 불안과 외로움을 치유하려는 손을 내미십니다. 이 신비가 우리로 하여금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담겨진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삶의 의미를 묻고 하느님을 찾도록 이끕니다. 신비이신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하느님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는 최고 절정의 사건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가장 근원적인 죽음의 두려움과 허망함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죽음의 고통도 견디어 내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한없이 용서하시며 자비로이 품어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죄는 하느님의 사랑에 무관심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에 나타난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빈 무덤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과 아마포가 잘 개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요한 20,9) 시몬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하고 대답하며,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그런 그조차도 빈 무덤에서 부활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이 세상사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까지 막아주는 방패이며, 존재의 의미를 정초하는 기반이며, 내게 상처를 준 사람까지 용서하는 자비의 샘물입니까? 세상의 모든 일을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보지 않고 부활 체험의 지평에서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직도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세상을 본다면, 우리는 또다시 예수님을 못 박는 유다인의 우를 범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믿는 구세주의 도래를 위해 열성을 다해 싸웠던 그들은 사랑과 용서를 강조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악은 악으로 갚는 것을 정의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하느님의 본성이 사랑임을 알려주며, 우리가 몸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모든 순간이 은총임을 알려주고 있기에 부활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에 맞서 세상에서 참된 가치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기주의에 맞서 타인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의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소비주의에 맞서 검소함을, 지배와 소유의 문화에 맞서 섬김과 나눔의 삶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순교’입니다. 순교는 ‘증거하다’는 어원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이 증거하는 이러한 모습 안에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 비칠 것입니다. 세상의 긴장과 적대감이 사그라들고 불감증의 세계화는 나눔과 섬김의 바람에 녹아버릴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과 활동은 한번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활동과 사목 안에 녹아들어 지속적으로 증거함으로써 구원의 방주로서 교회의 모습을 다시 살려내야 합니다. 이번 시노드를 통해, 어두운 시대에 “어떻게 대전교구가 순교 정신을 본받아 하느님 사랑이 현존하심을 증거하는 사목체제를 갖출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합시다. 성령의 활동 안에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시는 사랑의 신비를 체험하며 우리의 아름다운 몸짓이 교회의 등불이 되기를 함께 기도하며 걸어갑시다.

아울러 다가오는 선거일에 우리 국민이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고 실천하는 자비로운 정치인을 알아보고 투표하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입시다. 참된 민주주의는 성숙한 국민의 책임의식에서 맺어지는 열매이며, 신앙인의 정치생활에 대한 참여는 도덕적 의무입니다.(「복음의 기쁨」 220항 참조)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좌우되기보다는 봉사의 정신으로 공동선에 이바지할 수 있는 덕목을 갖춘 정직한 일꾼을 선출합시다.

사랑의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주시는 성령께서 세계무대로부터 점차 고립되며 긴장과 위기를 고조시키는 지도자들과 함께하시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가 하루 빨리 정착되기를 순교 선열들과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함께 전구합시다. 한반도가 평화의 표징이 될 수 있도록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교류하며 협력하길 바랍니다. 특히 인도주의적 차원의 교류와 협력은 재개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진정한 통일은 평화라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 2016년 3월 27일
  |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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