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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조회수 | 2,341
작성일 | 09.04.11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며, 그분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갈수록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사회 전반이 너무나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이 시기에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이 난관을 지혜롭게 잘 극복하고 이웃들에게 생명과 희망의 부활 메시지를 전해주어야 하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번 부활축제 시기 동안엔 주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또한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를 전례독서들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이 기간 동안 교회가 봉독하는 복음말씀들이 주님의 부활사건과 성찬례를 많이 결부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제자들이 성찬례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거기에서 자신들의 힘든 처지를 극복하게 되는 힘을 얻게 된 초대교회의 생활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세상 이야기들을 가끔 뒤집어 생각해보듯이, 성찬례 안에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성경의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성찬례를 떠나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참되게 만나 뵙기가 어렵다는 설명이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하여 경험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는 성찬의 삶에 기꺼이 동참할 때만이 비로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신 주님과 부활하신 주님이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빛은 주위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빛나듯이, 참 신앙인의 삶은 세상이 어려울수록 더욱 진가를 발휘하게 마련입니다. 이 어려운 세상에 여러분 자신이 주님 부활의 생생한 표징이 되도록 성찬의 삶을 실천하십시오.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주님의 모범을 따라 생명 나눔에 기꺼이 동참하십시오. 그래야지만 여러분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세상 사람들도 여러분을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교구는 교구설정 100주년을 준비하며 2009년을 ‘비전의 해’로 정하였습니다. ‘비전’은 우리 함께 미래를 잘 준비하고 미래를 함께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찬례를 이루고, 성찬례는 교회를 이룬다.”는 교회의 가르침처럼, 교회와 성찬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찬의 신비가 교회의 비전 그 자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올 한 해는 주님의 제자들처럼 주님의 성찬례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을 이웃들에게 힘차게 전하도록 합시다. 다시 한 번 주님 부활의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009년 예수부활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최영수 요한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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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삶

알렐루야! 부활 축하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알렐루야’를 노래하고 서로에게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우리들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가능해졌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으며 모든 가치 체계가 바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길 빕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지금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남북의 냉전과 대치상태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고, 세종시와 4대강 살리기 등, 양보하기 어려운 몇몇 굵직한 문제들로국민들의 마음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서해상에서 우리 함정의 침몰로 희생된 수많은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희망할 분, 우리가 기대할 분은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을 쳐 이긴 생명의 승리요, 절망을 쳐 이긴 희망의 승리입니다. 또한 거짓을쳐 이긴 진리의 승리요, 미움을 쳐 이긴 사랑의 승리요, 어둠을 쳐 이긴 빛의 승리입니다. 그래서주님의 부활은 이 시대의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인 것입니다.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장차 반드시 부활한다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처지에서도 절망하지 않게 하는 희망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어렵다하더라도, 하늘을 덮은먹구름 뒤에는 빛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듯이, 우리의 구원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고통과시련, 어둠과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삶이란 어떠한 어려움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삶이며, 과거의 구태의연한 삶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삶이며,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나누는 삶이며, 늘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삶을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주님의 부활이 가르쳐 주는 위대한 진리는 우리가 죽은 후에 새롭게 산다는 것만이 아니라 부활의 희망과 힘으로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산다는 뜻이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그래서 지금 여기서부터 우리가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부활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 부활 대축일의 이 기쁜 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서부터 부활의 삶을 살도록 다짐하고, 그로 인해 여러분의 앞으로의 삶이 더욱 행복하고 희망찬 나날 되시기를 빕니다.다시 한 번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2010년 예수 부활 대축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 타대오 주교
  |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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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새벽을 맞이하자

마태 28, 1-10

절에 다니는 분에게 극락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이렇게들 말합니다. ‘꽃이 만발하고, 궁궐 같은 집이 있고, 먹을 것이 많고, 모든 사람이 흰옷을 입고, 웃고 있으며, 아쉬운 것 없는 곳’이라고들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기는 놀거나 꽃밭을 거닐기만 하면 된다며 말들을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천당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불교 신자들이 말하는 극락하고 비슷하게 말합니다. 단지 거기에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추가하는 차이가 날 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힘들게 살지만 천당에 가면 모든 것이 주어지기 때문에 힘든 이 세상을 꾹 참고 살아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하게 천당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 세상에서 못 채웠던 ‘아쉬운 것 없는’식의
세상 행복의 조건들을 가지고 천당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려내는 천당의 조건들은 대부분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있는 집에 가면 ‘정원에 꽃이피고, 궁궐 같은 집이 있고, 먹을 것 많고,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천당이라는 말씀의 요지는 ‘세상의 축복, 현실적인 행복’의 기준과 천당이 같다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 있고, 배불리 먹고, 웃고, 칭찬 받는’ 것들이 천당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는 곳’이 천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못 받았던 것들을 대리만족 시켜주고 보상해 주는 곳이 ‘천당’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의 행복’들이 힘을 갖고 있었고, 그러한 기준으로 움직여 왔지만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하느님의 힘’이 우리와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그러한 현실을 목격하는 사람들이 바로 천당을 지금, 이 자리에서 누리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없이 사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더 기대고, 억울한 사람들은 더 하느님께 하소연 할 수밖에 없고, 배고픈 사람들이 하느님께 더 매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천당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셨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동시에 있고, 없음을 떠나서 그 누구도 자기 마음 안에 하느님 이외에 다른 힘에 굴복해서는 안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숙제는 가만히 있어도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힘을 믿는 사람의 노력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천당은 자신은 가만히 있고 모든 조건들이 자신에게 맞추어진 곳이 천당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꽃이 피고, 아쉬울 것 없고, 자신은 가만히 있거나 놀기만 하는’ 그런 곳이 천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관은 어린아이 같은, 초보적인 신앙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힘이 작용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곳이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어지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기쁨을 찾는 것이 이 세상에서 진정한 천당을 살 줄 아는 사람이고, 죽어서도 천당에 들어갈 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그려야할 천당은 ‘무위도식’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살든 죽든 하느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거기서 기쁨을 찾을 줄 아는 곳이 천당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는 것을 보고 기쁨을 찾을 줄 아는 것을 우리는 터득해야 합니다. 단순히 모든 조건들이 모두 자기에게 맞추어진 천당을 그리는 몽상가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지혜와 인간적인 노력을 우리는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부활의 의미는
어두운 내 신앙을 깨우치는 성장의 과정을 통해 새벽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김호균(마르코) 신부
  |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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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쁨의 증인이 됩시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주 예수님께서 모든 교우들의 가정에 부활의 기쁨과 평화를 가득히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기쁨은 이 세상이 주는 쾌락과 달리 가실 줄 을 모릅니다. 부활의 기쁨을 체험한 사람은 마 치 가진 것을 다 팔아 보물을 사는 상인(마태 13,46 참조)처럼 다른 모든 것에 앞서서 이 기 쁨을 가장 소중하게 여깁니다. 또한 이 기쁨이 그의 혼을 채우고 넘쳐흐르기 때문에 그것을 이웃과 나누고자 애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 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를 복음(福音), 곧 기쁜 소식이라 부르며,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께서 가 르치신 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는 바로 이 기쁨이 두드러져야 하는 것입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항 참조).

하느님께서 우리를 죽을 만큼 사랑하신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현장이 바로 미사 전 례입니다. 부활절은 1년에 한 번이지만, ‘주님의 날’이라는 명칭이 드러내듯 모든 주일은 예수님 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작은 부활절입니 다. 미사성제 가운데서 우리는 당신의 말을 들려주시고 또 당신 몸을 음식으로 내어주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이처럼 미사 중에 예수님의 말과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기쁨을 누 리게 됩니다.

십자가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진 정한 기쁨의 원천임을 무엇보다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순교자들의 삶입니다. 이미 많은 교 우들이 아시는 대로, 교황성하께서 아시아 청 년대회를 참관하시고자 오는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우리나라를 사목방문하시고, 8월 16일 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복자 위(位)에 올리십니다. 시복식은 물론이고 시성 식조차도 바티칸 이외의 장소에서 거행되는 예 가 극히 드문 만큼, 순교자들의 후손으로서 참 으로 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1984년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우리 나라를 찾으시어 103위 순교자를 시성하신 것 이 한국 천주교회에 있어 성장의 큰 디딤돌이 되었듯이,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도 우 리 모두가 보다 성숙하고 견고한 신앙으로 나아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교회가 외적으로 발전하는 것도 매우 요긴하지만, 신앙인 한 사 람 한 사람이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복 음 안에서 참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한 층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입니다.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 기는 것보다 낫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새 계명 을 주신 주님의 뜻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었습 니다(요한 15,11). 전례 안에서, 말과 기도 안 에서, 또 사랑의 섬김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누어주시는 작은 십자가 를 이웃을 위해 기꺼이 지는 것, 이 안에 부활 의 기쁨, 복음의 기쁨이 있습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언제나 새롭게 솟아나는 이 기쁨이 교 우 여러분을 항상 지켜 주기를 기도하며, 이미 승리하여 천상 광중에 계시는 신앙 선조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2014년 4월 20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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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교형자매 여러분의 가정에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운데 살아계시면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지난 사순절 동안 거룩한 전례를 통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해 온 우리는 이부활의 아침에 이 지상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의 기미를 느낍니다. 그것은 변천하는 세상을 여행하는 우리가 영원한 고향을 그리워하도록, 또 우리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주님의 은총입니다.

부활을 믿고 바라며 사는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인생의 최종 목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건강하게오래 사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지만 무병장수를 삶의 목표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재물과 명예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최선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 한 번 뿐인 인생을 통해 반드시 이루기를 바라는 한 가지는 바로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고,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세상 물결에 휩쓸리거나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수난하고 부활하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약하다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이런 연습의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비롯한 거룩한 성사들과 전례를 통해서, 또 성경 말씀과 기도 가운데서 예수님의 현존을 느낍니다. 부활하시어 이제 다시는 죽지 않으시는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부활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점점 강해집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한 가지 훈련은 바로 고통 중에 있는 형제들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병든 사람,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외로운 사람들 가운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5,31~46 참조).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주님의 모습을 소외된 이들 가운데서 발견하고 그분께 봉사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부활을 위한 훈련이기도 합니다.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 남의 짐을 함께 져주는 것, 내 시간과 재물과 노력을 내어놓는 것을 통해 실제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고, 바로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대림 첫 주에 발표한 사목교서에서 올해 교구의 사목 지표를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로 정한 바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분께서 이미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고 계시니 지체들도 함께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 모두의 본분이지만, 또한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희생과 봉사의 기회를 통해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은총의 초대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교우들 안에 심어주신 부활에 대한 믿음이 점점 자라나고 튼튼해져서 마침내 불멸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5년 부활절에
대구대교구 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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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정을 통해 전해지는 부활의 기쁨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모든 교우 여러분의 가정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리시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에 대한 사랑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시키셨습니다. (제1독서) 예수님의 부활로 십자가를 통한 사랑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보증되었고, 우리도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아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라고 하시며 토마스의 믿음을 꾸짖으셨지만 사실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을 막은 돌이 치워져 있고, 빈 무덤을 ‘보았지만’ 주님의 부활을 알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주님을 다른 데 모셔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뒤이어 달려간 시몬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요한 20,9)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 즉 성경 말씀을 전적으로 믿는 데에 있지, 빈 무덤이나 잘 개켜져 있는 수건 같이 어떤 단서를 찾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일깨워 주시지 않으시는 한, 눈으로 직접 보고서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부활의 신비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이끄심이 없다면 우리가 부활의 신비를 온전히 믿고 깨달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다른 제자”(우리가 요한이라고 알고 있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분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게 해 준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힘으로 요한은 빈 무덤과 개켜져 있던 수건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관심과 사랑은 새로운 삶을 깨닫게 해 줍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죽음의 문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지구, 공동의 집이 생태적 위기에 처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로 사람들은 죽음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너무 쉽게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흉악한 범죄가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빈곤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끔찍한 소식이 전해집니다. 죽음의 세력이 전 세계에서 판을 치고 있고 그 세력은 가정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듣습니다. 부활 사건은 온 세상 사람이 알아들을 만큼 확실하고 거창하게 전해지지 않고, 주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조용히 알려집니다. 그래서 세상은 마치 죽음의 세력이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세상에 생명과 평화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할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올해사목교서 「가정, 가장 가까운 교회」에서 교회를 구성하는 기초는 가정이며, 복음화는 바로 가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부활의 삶을 사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이 먼저 새로운 삶, 부활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을 사는 우리의 자세는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우리는 저 위에 있는것, 천상의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욕 같은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 관심과 배려 같은 하늘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활한 이들의 이러한 삶은 바로 지금 여기, 우리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관심을 갖고 사랑을 나눌 때, 가장 먼저 가정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가족 간의 가장 작은 배려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가정 안에서 부활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가정에 내려 주신 크신 은총에 감사드리며, 여러분 모두가 부활의 기쁨을 삶으로 증언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 2016년 3월 27일
  |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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