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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부활을 믿고 복음 전할 의무
조회수 | 2,232
작성일 | 09.04.11
진실로 끊어 버립니까?

알렐루야! 온 세상천지의 만물들이 부활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부활은 실로 자유이며 해방이고 다시 살아남입니다.

가슴 벅찬 부활의 감동을 우리는 부활성야의 밤 ‘부활 찬송’을 통하여 들었습니다.

“용약하라, 하늘 나라 천사들 무리. 환호하라, 하늘 나라 신비. 구원의 우렁찬 나팔 소리, 찬미하라, 임금의 승리.”

이처럼 감격의 노래를 부르는 까닭은, 부활이 진정 인간사의 모든 속박을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혔던 모든 불목이, 결코 풀리지 않았던 대화와 타협이, 우리가 인간 세상에서 여러 굴레에 묶였던 그 모든 사슬에서 진정 해방되었음을, 부활하였음을, 저 치욕과 죽음의 십자가를 끝내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통하여 그 모든 해갈이 이루어졌기에 진정 부활이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영광의 부활은 결코 죽은 송장의 뼈에 살점이 붙어 땅을 뚫고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활은 죽음 뒤에 오는 영생의 시작만이 아닙니다. 부활은 지금 이 순간 생의 나날에서 부활의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인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철저한 자기희생의 결과로 얻어지는 부활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민’ 신부의 말처럼 “우리는 생각을 돌려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현실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그때 부활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부활은 남을 위하여 죽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대체 이기심과 욕심으로 현실을 잘 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라는 교훈은 진정 옳은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부활 이래로 끊임없이 고백해 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신앙은 ‘부활 신앙’이라고, 그 같은 부활 신앙을 살기 위하여 장엄한 부활 성야의 거룩한 밤, 세례 서약 갱신의 약속을 또다시 살아야 합니다. 죄를 끊어 버리고, 악의 유혹을 끊어야 하며, 죄의 뿌리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은 진정 부활의 자유와 해방을 가로막는 올무이며 사슬인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 부활의 해방과 자유를 맛본 우리에게 사도 성 바오로는 옛 죄의 종살이에 매이지 말도록 일깨웁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라 5, 1).

진실로 믿습니까?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첫 시작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사실 신앙은 믿음입니다. 도대체 동정녀가 아들을 가졌다는 믿지 못할 성경의 가르침, 죽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 이 모든 믿을 수 없는 신비의 고백이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신앙의 신비입니다. 이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의 신비를 그대로 믿는 것이 부활 신앙인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은총으로 우리는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의 첫 걸음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린 아이와 같은 신뢰와 믿음이 이 놀라운 기적의 부활을 가능케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그 옛날 엠마오로 가던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당신의 부활을 설명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에 뒤늦게 깨달았던 제자들의 뜨거운 감동을 우리 또한 느끼도록 만들 것입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 ,32)

우리가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스스로 왜 죽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했던 슬픈 죽음을 체험한 이들의 통곡에 답을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은 이들의 서글픈 죽음, 조국과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인간 존엄을 위한 민주와 박애를 위하여 헌신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의 죽음은 허무한 절망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야 했습니다. 그 부활 믿음을 사는 우리는 또다시 부활 성야의 장엄한 예절 중 세례 서약 갱신의 믿음 고백을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활은 믿음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체념과 좌절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신앙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쓰러진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할 부활의 의무가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사는 신앙인들의 자세는 사도 성 바오로의 말씀처럼,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갈라 6, 2)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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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신부가 되면 마냥 좋은 줄만 알았습니다. 꿈에서만 그리던 ‘주임신부’ 가 되었으니까요. 하루 종일 아니 며칠, 몇 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어떤 걱정도, 근심도 없이 아름다운 나날만이 계속되리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침에 저를 반겨주는 것은 외로움 뿐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밥통에 밥을 하고 그 밥을 아무도 없는 식탁에서 홀로 씹고 있자니, 얼마 전까지 늘 함께 밥을 먹었던 옆방 신부님이 생각났습니다.

낮에 하루 종일 집을 지키고 있자니, 얼마 전까지 늘 함께 캠프를 하며 놀던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신자 수, 미사참례 수, 본당 재정 등을 고민하고 있자니, 얼마 전까지 일과 끝나고 수다 떨며 술 한 잔 기울이던 직장 동료들이 생각났습니다.왜 기쁘지 않았을까요? 왜 마냥 즐겁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값진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사순 시기를 보냈습니다. 부활 대축일만 되면 너무나 기뻐서 펄쩍펄쩍 뛸 것만 같았습니다. 교리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우리 또한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되는 아름다운 날이기에, 너무 가슴이 벅차 감동의 눈물이라도 펑펑 흘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부활의 감동을 느끼고 있을까요.

주임신부로 잘살기 위해, 부활 대축일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준비’ 를 해야 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내어주는 ‘봉사’ 와 ‘겸손함’ 이 필요합니다. 성 목요일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신 주님처럼 봉사와 겸손함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음은 ‘희생’ 과 ‘용서’ 입니다. 그 어떤 봉사와 겸손함은 희생이 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부활의 의미는 단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매를 맞으시고 피를 흘리시며 결국 십자가의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또한 이 세상에서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모두를 용서하신 주님의 모습처럼 우리 또한 서로를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해답을 알았으니 우리 한번 준비해 볼까요? 비록 좀 늦었지만, 비록 좀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지금이라도 열심히 준비하고 실천하려 한다면, 화답송에서의 시편 저자의 말씀처럼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 할 수 있으리라 희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이창섭 신부
  |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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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완성 ‘부활’을 나누자

요한 20, 1~9

죽어야 살리라

‘알렐루야’를 노래하는 기쁜 부활입니다. 부활이 그토록 기쁜 까닭은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난다 함은, 이미 죽었던 경험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육신으로 죽었든 영혼으로 죽었든, 죽었던 영육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기쁨이며 환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가운데 부활을 기뻐합니다. 아직 육신이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부활을 기뻐하는 까닭은 훗날 영원한 부활을 믿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사순의 긴 시간 동안 죽음을 연습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을 죽여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예수님 진리를 온 몸으로 살아보았기 때문에 부활이 기쁨인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내 자신의 고집을 죽이고, 이기심을 죽이고, 교만함을 죽이고, 욕망을 죽이고, 결국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의 평화를 위하여 내 자신을 죽이는 희생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부활이 기쁨인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그의 대표적 시인 ‘서시’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하며 노래하였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진정 자신의 모든 것을 죽이며 아름다운 희생과 투신의 삶을 살아가는 고귀한 이들에게 바치는 찬사일 것입니다. 부활이 내게 그리 큰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아직도 희생의 참된 가치를, 죽음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나의 희생으로 함께 사는 삶이며, 동시에 여러 아픔과 분노와 좌절에서 일어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함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절망에 쌓인 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죽었던 삶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또다시 소생된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벅찬 발걸음은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루카 24, 13~35 참조).

우리의 삶은 자주 엠마오로 곤두박질치는 나락의 희망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 같은 어둠의 삶에서 빛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삶이 진정 부활의 삶입니다.

사랑으로 살리라

신학자 ‘요하네스 브란첸’은 말합니다.

“인류의 고통은 너무나 큰 데 비해 우리의 노력이나 대답들은 아주 옹색하여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많다. 그러나 이 빈 자리는 하느님만이 대답을 주시고 채울 수 있는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그 대답을 주셨다. 즉 부활사건이다. 부활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의문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이시다. 저 모욕적인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다. 새 출발이 있고, 고통과 죽음 그리고 불신을 관통하는 찬연한 새 창조가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뢰와 사랑과 믿음을 배반한 제자들을 끝까지 “내 형제들”(마태 28, 10; 요한 20, 17 참조)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배반과 불신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 그 끝없는 사랑이 예수님을 죽음의 벼랑 끝에 내버려 두지 않고 부활케 하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음에 눌려 있을 수 없었던 하느님의 사랑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희망이며 기쁨인 동시에 사랑의 완성입니다. 때문에 부활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놀라운 사랑가운데 살도록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처럼 끝날에 부활하리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다시 ‘요하네스 브란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아도취에 빠져 있거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희망에 찬 시선을, 난경에 처한 형제와 슬픔을 겪는 자매와 나누고자 한다. 부활축일은 우리에게 ‘신체장애자들, 수명을 다 살지 못한 이들, 불의의 사고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구가 된 이들, 비명에 간 어린이들, 외면당하고 인생을 속아 사는 이들, 박약아들’과 희망을 나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부활축제는 결코 그리스도인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들만이 축하하고 즐기라고 예수님께서 모진 고통의 십자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부활은 소외와 눈물로 암흑의 어둔 동굴에 있는 형제들의 손을 붙잡아 함께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진정한 부활의 알렐루야를 기쁘게 노래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버리는 삶, 희생과 사랑의 삶이 함께 할 때 우리는 세상 질곡의 눈물을 이기고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 환호하며 거두리라”(시편 126, 5). 알렐루야!

배광하 신부
  |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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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평화가 우리와 함께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은혜로운 자비의 특별희년에 부활축제를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 춘천 교구 형제자매 모든 분들께 부활의 은총이 충만히 내리길 기도합니다. 자비의 특별희년의 전대사를 통해, 여러분과 사랑을 나누었던 영혼들, 지금은 사별하여 가슴 가득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그들에게도, 천국 영복의 은총이 깃들길 기도합니다.

2016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쟁과 폭력, 복수와 살인, 분노와 미움으로 얼룩져있습니다. 특히 중동지역과 우리의 남북한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어둠의 상황은 어느 한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인 추세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죽음의 문화가 독버섯처럼 우리들 주위에 창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무관심의 세계화’에 대해 끊임없이 질타하며 우리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1,36)”

자비의 하느님께 평화를 간구합시다. 증오와 보복, 폭력과 살인 그리고 전쟁은 하느님 백성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루카 6,36)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며, 하느님께 지혜를 간청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기를 들고 겁박하는 무리에게, 더 큰 폭력으로 응징하기 보다는, 서로 무기를 내려놓고 진정한 평화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지으신 예수님의 생전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네가 알았더라면(루카 19,42).”

4월 13일은 제 20대 국회위원 선거일입니다. 우리나라의 평화의 일꾼들을 뽑는 날입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국정을 심의하는 정치인을 우리들의 손으로 직접 선택하는 날입니다. 자비의 하느님께 지혜를 청합시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위해 봉사할 진정한 일꾼을 가려내야 합니다. 선관위의 슬로건처럼 ‘아름다운 선거’를 통해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합니다. 후보자들 가운데 상대를 비방하고 모략하며 흑색선전으로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사람은 우리의 봉사자로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길 원하고, 하느님께 의지하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선거일이 봄날에 맞는 ‘행복한 축제’가 되길 기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하길 기도합시다. 우리들 가정에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와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가 가득하길 간구하고, 자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특별한 전구를 청합시다. 온 세상에 주님의 평화가 봄 햇살처럼 따사롭게 내리길 두 손 모아 기도합시다.

▦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 : 2016년 3월 27일
  |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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