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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마산/광주] 한 어린아이의 작은 길
조회수 | 2,677
작성일 | 07.10.04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내어주실 만큼 세상을 사랑하신다. 또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다고 해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시지는 않는다. 이것이 하느님사랑의 법칙이다. 사람은 세상을 사는 동안 누구나 이 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겉으로 많이 받은 자는 속으로 허기짐을 느끼며, 속으로 충만한 자는 겉으로 아쉬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칙의 진가(眞價)를 깨닫는 자는 드물다.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 그녀가 바로 드문 선각자(先覺者) 중의 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허약한 몸 때문에 병석을 즐겨야 했던 성녀는 그만큼 속으로 옹골차졌던 것이다.

오늘 대축일의 주인공 마리아-프랑수아-데레사 성녀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알랑송에서 아버지 루이 마르탱과 어머니 젤리 게랭 가족의 아홉 번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성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반고아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마리아를 데리고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리지외로 이사 온 마리아에게 펼쳐진 시간들은 매번 새로운 영적 체험들이었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10살에 큰 병을 앓았으나 “미소의 성모 마리아”의 전구에 힘입어 치유되었다고 한다.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이 때 성녀는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여 명상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누이들이 극구 반대하였고, 리지외의 주교도 어린 나이 때문에 그녀의 입회를 거절하였다. 1886년 성탄절에 그녀는 전격 회심의 은총을 체험하였고, 이 체험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었고, 사랑의 삶을 그녀는 소명으로 깨닫게 된다. 1887년 아버지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고, 레오 13세 교황(1878-1903)을 알현한 자리에서 수녀원 입회를 간청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드디어 성녀 데레사가 15살이 되던 1888년 4월 9일, 그 해 성주간과 부활대축일로 인해 이동된 성모영보대축일에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겉으로는 아주 단순한 수도생활의 삶 속에서 그녀의 영성은 급상승하고 있었으니,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구체적으로 십자가 추종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죄인들의 불쌍한 영혼의 회개를 위해 스스로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가 보여준 “완덕의 길”에 정진하기 위해서도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녀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모범삼아 수도명을 데레사로 정한 것이다. 성녀는 하느님께 대한 내적 헌신으로, 마치 한 아기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그런 아이처럼 ‘작은 길’을 걷게 된다. 이는 단순하고 작고 평범한 일상 안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절감하고, 유아적 신뢰를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도움에 내어 맡기는 아이처럼 사는 것이다. 동시에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하고 사람들에 대한 사랑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 이것이 성녀가 걸어가는 ‘작은 길’의 핵심 사상이었다.

1895년 부수련장이 된 데레사는 원장수녀의 요청으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였다. 복음적 겸손과 단순함과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뢰심을 익히고,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이 같은 덕행을 수련자들에게 가르쳤다. 육체의 병고와 내적 충만함으로 죽기까지 영혼들을 구하고, 교회의 쇄신과 사제들의 성화, 그리고 선교사와 선교지역을 위해 기도하는 소임만이 성녀의 일상(日常)이 되어갈 무렵, 성녀는 성서를 유일한 독서로 삼았다. 폐결핵 진단이 떨어지고 1896년 성금요일에 첫 각혈을 쏟아냈던 성녀는 주님과 만날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그래도 아직 난 고통을 덜 받았다.”고 중얼거리며, 믿음과 희망으로 사랑의 주님과 만남을 준비하였다. 중병 가운데서도 자서전 기록은 계속되었고, 1897년 9월 30일 저녁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하느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했다. 1898년 성녀의 자서전 ≪한 영혼의 이야기≫가 출판되자 영성서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50개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작은 길’을 좋아했고,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갔던 데레사는 1925년 피우스 11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고, 1927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와 나란히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되었다. 1997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녀에게 교회학자의 칭호를 부여했다. 소화 데레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자로 세우시는 ‘한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부산교구 박상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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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

오늘은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이며 군인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한반도는 오늘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50년 이상이나 국토가 분단되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입니다. 더구나 주변의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이 시기에 국토수호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바로 국군장병들입니다. 우리교회는 바로 이러한 군인들의 노고를 생각하고 특히 황금어장이라 불리는 군인사회에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신앙을 찾고 지키며 살아가도록 군인주일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연중 26주의 복음내용 대신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의 고유독서에 초점을 맞추어 어린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치고 계십니다. 일명 소화 데레사로 불리는 성녀는 19세기말 프랑스 알랑송에서 태어나 15세의 어린나이에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했으며, 어릴 때부터 허약한 몸으로 항상 병을 안고 고통 속에서 살았으나 결코 자신의 병과 고통을 하소연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상적인 평범한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을 위하여 ??작은 길??을 용감하게 걸어 나갔던 인물입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그녀의 유명한 자서전 ??한 영혼의 이야기??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녀는 24세의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상에서 작은 일에서부터 충실하며 모든 영혼들의 회개를 촉구했기에 선교의 수호자로 칭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흔히 훌륭하고 위대한 일에는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지 만 사소한 일은 예사로 여기고 등한시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작은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큰일에 충실히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성실히 노력해서 조금씩 저축하려는 생각보다는 투기나 사행성 도박 등을 통해 소위 한탕하려는 생각들이 만연해가는 현실에서도 나타납니다. 또한 가정파탄이나 살인과 같은 엄청난 사건들도 많은 경우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참된 인격자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다듬어 가기 위한 우선된 조건이 있다면 일상생활 가운데 사소한 일,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을 잘 처리하고 보살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작은 일에서부터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 복음의 주제처럼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될 것이며 아울러 이웃의 보잘 것 없는 이들에 대해서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이 관심을 보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부산교구 전수홍 신부
  |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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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랑의 소중함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람이라면 누구나 또 어느 사회에서나 자기 몫의 기쁨과 슬픔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기쁜 일보다는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함께 누리고 나눌 수 있는 기쁨이 너무나 적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참된 기쁨이 어떤 것인지 잊은 지 오래가 되었습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은 월드컵이나, 야구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통해 즐겁고 요란스럽게 기쁨을 나타내기도 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즐거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조용히 누릴 수 있는 기쁨,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다가오는 미래를 보여주는 기쁨, 개인의 선심이나 공약에 좌우되지 않고 모두가 참여하여 같이 나눌 수 있는 기쁨은 너무나 적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적이고 물질적인 기쁨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쁨 없이 비관만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비관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아야 참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기 예수님의 성녀 데레사의 축일인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헤아리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새로움을 살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야서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양살이에서 해방되는 상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이사 66,10).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위한 새 역사를 시작하셨는데 그 일을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리라. 너희가 그 영광스러운 가슴에서 젖을 먹어 흡족해지리라.”(이사 66,11)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누리는 구원의 상황을 젖을 빨고 팔에 안기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말씀에 절정을 이루는 13절은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는 말씀으로 모든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참된 위로를 예루살렘에서 받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기쁘지 않을 수 없고, 우리 몸의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질 것이라고 새로운 경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제2독서는 코린토 1서 말씀으로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내놓습니다.”(1코린 7,25)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에 힘입어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하는 충고이니 믿을 만한 것이라고 하며 말하기를, 미혼자들에 대해서는 주님의 명령을 받은 것이 없고 사람들로 하여금 결혼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혼인을 해서 겪을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며, 결혼하는 것이 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으므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은 고통을 받지 않도록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1코린 7,26)고 하며, 큰 틀을 현재 누리는 삶에 바탕을 두면서도 구체적으로 아내에 매어 있더라도 갈라서려고 하지 말고 아내와 갈라졌다면 얻으려 하지 말고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가는 종말을 바라보는 때이므로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1코린 7,29-31)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1코린 7,32)라고 마무리하면서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7,35)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위하는 사람은 결혼에 매어있지 않은 사람으로서 몸으로나 영으로나 마음이 갈라지지 않은 사람으로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만을 걱정”(1코린 7,32)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의 말씀에는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사람입니까?”(마태 18,1)하는 질문이 나옵니다. 마르코 복음처럼 예수님께서는 일종의 비유로 한 어린이를 그들 가운데에 세우십니다. 그리고 아무런 언급도 없이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고 하시며 생각과 의지와 행동에 있어서 어린이와 같은 존재로 되돌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 질문에 대한 답으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마태 18,4)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린이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지는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그들이 작은 것을 알기 때문에 보호를 받고, 더 큰 사람이 자신들에게 베푸는 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어린이처럼”이라는 말을 첨가하여 앞 문장과 뒷 문장을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내용 면에서 이 대답은 학자인 랍비나 위대한 사람인 율법학자와는 대립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과 미천한 사람에 대한 축복의 말씀(마태 5,3; 11,25 등)과 동일한 지평에 놓여져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드러나는 신앙의 위대함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외받고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달라야 함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1) 오늘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님의 성녀 데레사 축일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작은 사랑의 소중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1897년 24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한 데레사 성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사제들을 위하여, 특히 먼 지방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하여 남몰래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1925년에 성인이 되시고 1929년에는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성녀 데레사는 아홉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과 언니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교육을 받았고, 그녀가 혼자서 처음으로 읽었던 단어는 ‘천국’이었습니다. 5살 때 어머니를 잃기까지의 삶을 데레사 성녀는 그녀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 참으로 땅위의 모든 것이 제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제 발길마다 꽃밭이었고, 또 제 명랑한 성격은 제 생활을 더 즐겁게 하였습니다.”(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안응렬 옮김, 44). 이렇게 그녀는 맑게 자랐고 어린이의 순수성을 지녔던 것입니다.

데레사의 집안에서 그녀의 작고 약함은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을 누리는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작음과 약함으로 인하여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많은 배려와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음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의 작음은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겸손의 조건이 되는 것이고, 예수님을 향한 신뢰의 길을 열어젖혀 그분께 모든 것을 희망하도록 하였습니다.

2) 짧은 생을 사신 아기 예수님의 데레사 성녀(‘소화’ 데레사로 표기함)와 우리가 10월15일에 축일을 지내는 예수님의 데레사 성녀(‘대’ 데레사로 표기함)를 한 번 대비하여 보겠습니다.

①(소화) 탄생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어린 아이가 엄마, 아빠 품 그리워하듯이 순진 무구한 사랑으로 완전히 휩싸였던 분이다. 즉 깊은 사랑에 푹 빠진 분이다.

(대) 상당히 이성적이면서, 지적 탐구욕이 대단한 분이다.

②(소화) 가슴 형으로 감성적인 사람이고 느낌으로, 통째로 사랑을 하신 분이다.

(대) 머리 쓰는 사고형으로 이성적이며 많은 학식과 학구열이 대단하다.

③(소화) 태생적으로 순진무구하게 가슴으로 가서 박힌 분이다.

(대) 머리로 추구하여 온 몸으로 부딪치신 분이다.

④(소화) 누구를 가리킨다든가 학구열이 없는 분, 사랑 하나에 겨워서 사신 분으로 이미 가슴이 열려서 성령의 은혜를 무지막지하게 받은 분이다.

(대) 성 아우구스티노처럼 정말 알고 누리고, 느끼고, 추구하고, 이해하려 했으므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학구적이다. 이성적이며 머리로 받아들이고 나서 가슴으로 감읍해서 환시 환청까지도 다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니신 분이다. 많은 학식과 추진력이 대단하신 분이다.

⑤(소화) 관상으로 뚫은 분이다.

(대) 종교 개혁 시대에 활동한 것을 볼 때 자기가 추구하고 알고 느낀 것을 실천적으로 활용하신 분이다. 오랜 세월 복음 선포를 위해서 추구했던 지식, 학식 등을 통해서 그것을 전달하려고 하신 분이다.

⑥(소화) 전교의 대주보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합일점에 가서 드디어는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철저하게 보고 느끼고 아신 분이다.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이 성녀는 열린 가슴, 성령의 힘으로 사랑의 성령님을 전파하실 수 있는 분이셨다. 사랑밖에는 모르신 분이셨고, 드디어는 사랑이셨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엄청난 힘과 에너지, 자비를 온통 느끼고 아신 분이다. 종래에는 그 복음을 알리라는 것이다. 수도회를 세우라는 것이 아니라 핵심은 복음이다. “내가 곧 사랑이 아니냐? 나 야 훼다.” 등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대) 리더쉽 같은 재능이 있었다.

< 종 합 > 두 분은 성품으로나, 살아오신 내용으로나 전혀 다른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성에서 합일점은 같습니다. 하느님을 어느 방향에서 만나느냐는 각자의 성향이지만 만나는 합일점은 같습니다. 두 분 다 하느님의 거대한 사랑에 대한 감읍함, 갈망 등을 만나신 분들이었고, 그 합일점에 도달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극점에서는 같지만 도달하는 방법이 전혀 달랐을 뿐입니다. 결국은 관상입니다. 관상은 하느님을 만나는 접점입니다. 두 분 다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3) 오늘 아기 예수님의 대축일을 맞으면서 우리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큰 것을 통해서 얻는 기쁨 못지않게, 작고 부족하고 나약한 것을 통해서도 기쁨과 큰 희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밝혔듯이 요란스러운 것보다 모두가 조용히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다가오는 미래를 보여주는 기쁨을 아기 예수님의 데레사 수녀님 삶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선심이나 공약에 좌우되지 않고 모두 참여하도록 제도적 보장이 되어 있는 이런 기쁨이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삶에서 가능함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어려운 현실에서도 우리는 비관이나 좌절을 하지 말고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소중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새롭게 찾고 발휘하여 세상에서 기쁜 삶을 시작하고 하느님 나라에 모두 들어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기 예수님의 데레사 성녀는 우리에게 작지만 참으로 든든한 사랑의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우리도 이런 작은 사랑의 삶을 오늘부터 시작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부산교구 김정수 신부
  |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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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얻는 것과 잃는 것

살면서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얻은 것은 또 가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잃은 건 모두 되찾을 수 없는 것들뿐이었습니다.

동심, 순수, 꿈, 열정 등등. 순수 하나면 넉넉한 시절, 동화 속 주인공마냥 꿈을 키우던 날들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허나 이만큼씩이나 자라버린 오늘, 제게는 동심도, 키워오던 꿈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황무지처럼 메마른 영혼의 깊이에서 영성을 길어내는 자신이 그저 초라할 뿐입니다. 철부지의 마음을 지녀야만 이를 수 있다는 영성의 마루. 그 완덕의 고지가 제게는 너무 높아만 보입니다. 정녕 말라버린 삶 앞에 빗물 같은 순수가 필요합니다. 그 여여한 흐름을 타고 당신께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의 발원. 당신 품에서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마냥 뛰노는 철부지 아이가 되어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왠지 수도원 담벼락 아래서 세상을 아름답게 살다갔다던 한 성녀의 삶이 자꾸만 그리워집니다. 황혼이 곱게 내려앉는 저녁, 장미 꽃비를 내리겠다던 성녀의 마지막 말씀이 노을이 되어 어느새 하늘을 저리도 곱게 물들여가고 있습니다.

▮ 부산교구 김강정 신부
  |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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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주 작은 자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 3∼4) 하십니다. 부모 없이는 성장하기 힘든 나약하고 부족한 어린이처럼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큰 사람이라고... 곧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고, 자신을 낮추어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어린이가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는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없고, 작은, 그래서 어머니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 어머니의 사랑에 완전히 의지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어린이 같은 겸손한 사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행복한 사람이며,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너희 생각을 바꾸어 겸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는 소박하고,‘아주 작은 자’입니다. 복음에서 말하듯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복음적인 사람이었으며 철저히 주님께 의탁한 어린이였습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25년이라는 짧은 생을 사셨지만 일상의 단순함과 겸손의 자세로 작은 일에 충실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늘 첫 마음으로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사셨습니다.

그 순수함이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녀께서는“나의 천국은 항상 주님 앞에 머물러, 그분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분의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니, 나의 천국은 내 안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올 형제자매 여러분!
겸손의 모범이신 주님을 본받아‘아주 작은 자’로 살아가신‘아기 예수의 데레사’처럼 우리 모두 어린이가 됩시다. 겸손하고 착한 어린이가...

▥ 부산교구 박명제 베네딕토 신부 - 2017년 10월 1일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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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누구나 성인이 되는 길을 보여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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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레사 성녀는 우리나라 나이로 16세에 가르멜 봉쇄수녀원에 들어가 살다가 24세에 세상을 떠난 분이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교회에 던진 감동은 대단했다. 숨어 지낸 짧은 생애, 데레사 성녀의 ‘작은 길’은 단순하고 사소한 일을 하며 평범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성인이 되는 길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1. 짧은 생애, 큰 메아리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1873-1897년)는 입회할 수 있는 나이보다 어려 교황님의 특별한 허락을 받고 16세에 가르멜 봉쇄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24세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인간적으로 볼 때 참으로 ‘삼가 조의를 표해야 할’ 일생이었다. 그러나 봉쇄수녀원 안에서 조용히 숨어 지낸 짧은 생애는 교회 안에 너무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교회 안에서 성녀의 생애와 영성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데레사 성녀는 수녀원 담장 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는데도 ‘선교의 수호자’가 되었다.

성녀는 지금부터 불과 100여 년 전에 살았던 분이기에 2000년 교회 역사에서는 실로 최근의 성녀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 데레사 성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좀 더 깊이 깨달아야 하겠다.

2. 사랑이 나의 소명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교회의 여러 지체들이 저마다 맡은 사명을 다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1고린 12─13장)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읽으면서 자신은 어떤 지체의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찾을 수 없어 속상해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여러분은 더 큰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1고린 12,3)와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1고린 13,3-13)라는 말씀에서 잠시 침묵에 잠겼다.

성녀는 모든 일을 가치 있고 위대하게 하는 것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사랑이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성녀는 자신이 교회 안에서 해야 할 소명이 바로 온 교회에 사랑을 불어넣는 일, 곧 교회의 심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녀는 부르짖었다. “오! 저의 사랑이신 예수님! 제 성소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3. 가는 실로 짠 베가 더 곱다

데레사 성녀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린이와 같이 되라.’는 말씀을 좋아했고, 이 말씀을 자기 삶의 지표로 삼았다. 어린 나이에 언니들을 따라 입회한 봉쇄수녀원의 생활은 실로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녀원 울타리 안에서 기도하고 일하는 것뿐이었다. 자서전에 보면 수녀원 안에서의 일이란 접시 닦고, 청소하고, 바느질하고, 때로는 제구(祭具)들을 닦는 단순한 것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신문에 날 만한 큰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수녀나 다 하는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할 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면 다 있는 그런 불편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겪어야 하는 ‘서로를 참아주는 일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았다. 그런데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위대한 성녀로 만들었을까?

성녀는 스스로 자신은 순교자들이나 사도들처럼 엄청난 일을 할 능력도 없고, 큰 활동이나 세상이 놀랄 만한 큰 자선사업을 할 처지도 못 된다고 하였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이 사소한 일들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열심히 할 뿐이었다. 그리고 성녀는 자신이 하는 사소한 그 일들과 일상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참으면서, 그 하나하나의 희생을, 복음을 전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끊임없이 바쳤다. 말하자면 성녀는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선교사들을 위한 희생으로 하느님께 바친 것이다. 성녀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가는(고운) 실로 짠 베가(천이) 더 곱다.”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성녀의 영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현대에는 신앙 때문에 생명을 바칠 것을 요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많은 신앙인들이 평범하게 직장일을 하고, 집에서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키우고 시장을 보면서 일상의 사소한 일 속에 묻혀 살고 있다. 누가 알아주는 일이 아니고, 신문에 날 일도 아니다. 데레사 성녀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 모든 사소한 일에,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삶도 하느님 앞에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일상의 평범한 일을 하며 사는 우리 모두는 다 성인이 될 수 있다. 월급쟁이도, 구두닦이도, 청소부도, 가정주부도, 군인도, 공무원도 다 성인이 될 수 있다. 내가 하는 사소한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서 할 때, 그 사소한 일들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사랑만이 모든 것 안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해 준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만이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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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 10.01
450 84.4%
[광주] 임종의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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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의 자리입니다. 자녀에게 단 한 마디만 말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남기시겠습니까? 남기고 싶은 단 한마디 말로서 부모와 자식관계의 핵심을 성찰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요? 성경은 분명 하느님의 많은 말씀임이 분명하지만 그 많은 말씀 중에 딱 한마디 성경 말씀으로 나에게 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들려주고 싶어 하실까 요?

아마도 당선의 외아들 예수님께 들려주신 이 말씀이 아닐까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선 공생활을 처음 시작하실 때 세례 자 요한으로부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타볼산에서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영광과 존엄을 세 제자들에게 보여 주실 때 당신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들으신 두 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줄곧 예수님을 동반하였고 그분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동안 내내 그의 마음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그분 생애의 빛이요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당신 사명이 무엇인지 믿는 사람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어느 한 사람 빠짐없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 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 · 딸이다”라는 말씀을 듣 도록 초대되었으며 예수님 안에서 이 생명과 사랑의 친교를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 딸”

하느님의 사랑받는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님 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명실 공히 실제로 하느님의 아들이요 딸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복음의 핵심 진리일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복된 관계를 맺는 근거요 모든 은총이 솟아나는 샘입니다.

신앙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이 핵심진리는 근대공로 지상주의에 의해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기쁨이라기보다 뭔지 모를 부담이요 짐이 되었습니다. 이런 때에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소화 데레사 수녀님을 통해 복음의 이 핵심 진리를 재발견케 해 주셨습니다.

가르멜 봉쇄 수도회의 수녀로서 9년이라는 짧은 수도생활 동안 완덕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는 ‘영적 어린이의 길’을 개척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사명인 사랑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완수하셨습니다. “영적 어린이 의 길은 신뢰와 사랑의 길입니다 ... 저의 사명, 그것은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였듯이 주님을 사랑하게 하고, 저희 작은 길을 영혼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마지막 대화 7월 17일).

“저는 좋으신 하느님을 압니다. 그분은 자기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품에 안으면서 행복해할 필요가 있는 아버지이시고 어머니이십니다.” (자서전) “영성체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보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만족스럽게 해 드리려고 그분께 나아갑니다.”(자서전)

소화 데레사 수녀님을 통해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받는 딸 · 아들로서 신앙생활을 기쁘게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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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남재희 신부
2017년 10월 1일
  |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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