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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교회의 담화문
조회수 | 1,301
작성일 | 09.06.20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창세 50, 20)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인간은 삶에서 동료들로 인해 상처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상처들 중에 형제들 간의 다툼으로 생긴 상처는 가장 크고 오래갑니다.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갈등과 미움도 큰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에 팔아넘긴 형제들을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미움에 사로잡혀 복수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느님의 공의를 생각하며 눈물로써 형제들을 용서합니다. 요셉의 용서는 대기근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고 큰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었습니다. 요셉은 용서를 통해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입니다. 어렵고도 힘든 일이지만 이제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을 통해서 남북 간의 갈등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잘못된 북한의 행동

최근에 북한은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는 로켓을 발사하고 2차 핵실험을 실행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단지 남북 간의 갈등을 넘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행동입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군사력 강화와 권력 승계에 치중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항상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을 내세우며 정작 한반도의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 진전을 통해서 풀어가려 합니다. 동족 간 전쟁의 참화로 지난 60년간 얼마나 아픈 시간을 보냈는지 잘 알고 있다면 무모한 핵개발을 통해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은 군사력에 의존하는 권력을 선택하지 말고, 정치적 민주주의와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 그리고 시민의식의 성숙을 통한 사회발전을 통해서 창출되는 권력을 지향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평화는 무력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며 대화하는 가운데 정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와 자신의 내면 의식에 대한 성찰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놓고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는가 하면, 북한당국의 태도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소리의 이면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인식이 우리 사회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 북한정권의 잘못된 행태를 다루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북한주민들의 희생은 감수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입니다. 둘째, 북한체제는 실패한 국가이며, 북한정권은 도덕적으로 나쁜 집단이기 때문에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때로는 물리적 충돌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 사회가 모든 면에서 북한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함께 살기 위해서는 북한이 우리에게 맞추어 일방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내적 의식은 ‘남과 북이 다르다’는 현실을 ‘북한은 잘못되어 있다’는 쪽으로 인식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편협한 인식을 가지고 북한 사회 및 주민들과의 ‘화해와 일치’는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 우리 교회에, 그리고 나 자신에게 북한은, 북한 주민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사람들인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과연 그들은 우리가 외면하거나 버리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돌발적 상황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과 정책 수렴 없이 내리는 결정은 자칫 남북관계에 커다란 어려움을 줄 수 있으리라 염려됩니다.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로 인한 위기는 세계적 경제 위기에 비해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입니다.

화해는 평화공존의 첫걸음

지난 부활절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화해는 어려운 일이지만 세계안보와 미래 평화공존의 필수조건”이라며 전 세계 분쟁지역의 화해를 촉구하셨습니다. 교황님의 부활절 메시지는 북한의 2차 핵개발과 로켓발사를 계기로 긴장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한반도에도 절실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교만과 욕심을 버리고 북한의 형제·자매들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으며, 우리끼리 원수가 되게 만들었던 모든 요소들을 없이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소서 2, 14)

평화를 위해 노력합시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일에 더욱 열심해야 합니다. 새터민들을 돌보고, 식량과 생필품과 의약품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인도적인 지원을 계속하며,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깨어있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 13)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통일의 순간은 도둑처럼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을 절실하게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사랑의 실천은 언젠가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로 승화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절실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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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8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운회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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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 안에 남과 북이 하나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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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을 묵상하는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켜주기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고,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들이 화해하는 삶을 살도록 명하셨습니다(2코린 5,18-19 참조).

죄로 인해 갈라졌던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를 통해 참된 일치를 이루어갈 수 있도록 초대받는 이 시기에, 우리 민족은 여전히 남북 분단과 적대적 대립의 처참한 현실에 놓여있습니다.

현재 남북관계는
1990년대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 그에 대한 대응으로 강력한 대북제재가 이어지면서 대화와 협력의 공간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북 화해와 협력의 마지막 상징으로
남아있던 개성공단도 올해 사순시기가 시작되던 재의 수요일 아침 전격적으로 폐쇄되었습니다. 전례력으로 사순시기를 마무리하고 부활의 큰 기쁨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보냈지만, 대결과 갈등의 어둡고 캄캄한 우리 민족의 사순 시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분단 과정에서 우리는 끔찍한 전쟁을 겪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은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기나긴 휴전상태가 이어지면서 전쟁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고 오히려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그 상처는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자리하여, 크고 작은 사회문제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야기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최첨단 무기와 대량살상무기가 한반도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또다시 벌어진다면, 남과 북은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

냉전체제가 무너지던 1990대 초
남과 북은 서로를 적대시하던 정책을 내려놓고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교류협력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하여 한반도를 핵무기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평화지대로 만들어갈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이하여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이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 주기를 호소하며, 아울러 핵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노력을 적극 지지합니다.

끝없는 무기경쟁에서
벗어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이사 2,4)’ 참된 평화가 한반도에 정착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평화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거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를 추구할 때 날마다 조금씩 이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에만 꽃필 수 있는 것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495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화해는 본질적으로 일치를 지향합니다.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화해는 일치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이 모두 통일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통일을 이야기하면서도 남과 북은 전혀 다른 방향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원하는 통일은 적화통일이고, 남한은 우리 체제로의 통일인 흡수통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통일에 목소리를 높일수록 갈등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치의 전제조건이 화해이듯, 통일의 전제조건은 평화이어야 합니다.

통일은 평화로움 속에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결실과도 같은 것입니다. 평화가 배제된 통일은 전쟁이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적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약속하셨습니다.
그 평화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은 힘을 통해 평화를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힘으로 이룬 평화는 타자의 고통과 분노 위에 세운,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불안한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는 힘이 아닌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평화입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평화,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라는 주님의 유일한 계명을 통해 얻어지는 평화를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평화를 통해 세상을 이겼노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요한 16,33. 참조).

주님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속 앙금을 털어내야 합니다. 전쟁의 상처와 기억이 키워온 적개심은 상대방을 증오의 대상으로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 속에는 ‘용서’라는 복음적 가치가 자리할 공간이 없었습니다. 돌처럼 굳은 마음은 ‘사랑하라’는 주님의 유일한 계명을 공허한 메아리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희년’은 기나긴 분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주어진 특별한 은총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자비의 특별희년
이 주제 말씀은 분단 상황 속에서 완고해진 우리 신앙인을 일깨우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악마에 대항해 우리 자신이 악마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비로움을 간직한 가운데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이 바른길로 돌아설 수 있도록 기도하고 촉구하여야 합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기도는 우리 신앙인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불가능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루카 1,37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공감’과 ‘연대’를 강조하셨습니다.

민족 분단의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고, 우선적으로 기도를 통한 연대를 이루어가기를 당부합니다. 지난해 한국교회가 함께 봉헌하였던 ‘저녁 9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모경을 바치는 기도운동’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뜻을 같이하는 우리 기도의 연대가 주님을 통해 놀라운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와
더불어 실천적인 행동들도 뒤따라야 합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가정이나 이웃, 본당 공동체에서 평화를 위한 행동들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또한, 불행과 고통 중에 있는 휴전선 너머 우리 형제자매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공감하고 사랑의 나눔을 통해 연대의 정을 더욱 튼튼히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평화의 노력들이 평화를 원하는 이들과 또한 우리 자신을 평화롭게 만들 것입니다(루카 10,6 참조). 주님의 은총이 한반도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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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9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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