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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군종] 주님 흩어진 당신 백성들을 모아 주소서
조회수 | 1,470
작성일 | 09.06.20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1,26)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라고 하신 것은 하느님은 홀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사랑의 친교 안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인간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인간끼리 서로 손을 잡고 살도록 창조되었고 피조물인 자연과 형제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는데, 하느님처럼 되기는커녕 인간을 파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창세3장).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누리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나누어야 하는 그런 공적인 존재인데, 우주의 중심을 자기가 차지하고 자기가 그 머리에 서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인간의 파탄이요, 원죄인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 창조 때부터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하느님 곁에서 서로 사랑했지만, 어느 순간 하느님의 영역까지도 침범해 버렸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인 양 행동했습니다. 하느님을 부인하고 내가 그런 하느님의 자리에 서서 삶의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내 형제와 자연 등 다른 모든 존재들을 내 존재와 삶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전락시켜, 공동체적인 일치는 깨져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파탄에 빠진 인간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이기심이 가득 찬 이 세상의 무질서까지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실 정도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외아들을 무질서한 세상과 맞바꾸시기까지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것은 이 세상입니다. 이스라엘 한 민족이 아닙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 하느님께 적대적인 사람, 남한과 북한 사람 등  누구도 가리지 않으시고 이 세상 전체를 품에 안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신 일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을 무한히 용서하셨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을 용서하기 위해 그렇게 모든 일을 다 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화해와 일치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먼저 마음을 모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염원만으로 이루기 어려운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하늘에 의지해야 하고 하늘이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에겐 그런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도대체 없으므로 용서는 오로지 하느님께 맡기라는 역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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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교동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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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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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천주교인 통일인식 조사’에 따르면 평신도들 중 과반 수 이상이 남한의 경제에 이득이면 통일하고,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상황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함이 옳다고 답했습니다. 이의 결과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에 앞서서, ‘어떻게’라는 논의가 세대를 아우르러 이루어져 왔음을 살피게 됩니다.

실상 한국 사회는 ‘통일’을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에 ‘왜’라는 물음을 생략한 채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담론들은 결국 영혼 없는 몸과도 같아서, 앞선 설문의 결과처럼 당연하다던 통일이 결국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도출되는 오류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담론에 따라 제시된 통일방안으로 말미암아 통일로 나아가는 역사의 시계 바늘이 과거로 되돌아 가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여러 방법론적 담론들의 충돌로 말미암아 분단 이후 지금껏 지속 가능한 통일정책은 단 한 번도 수립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사회는 반드시 ‘왜’를 물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답변에는 국가 구성원들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포함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가 비로소 구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통일에 대한 가치관이 확고부동한 것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이후로 이어지는 통일정책들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자들께 묻습니다. ‘왜 통일인가?’이에 대한 답은 각자의 몫으로 돌립니다. 다만 답하기에 앞서서 ‘세속이 자본의 위선을 덧씌워 요구하는 통일의 가치’와 ‘교회가 제시하는 일치의 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고민하십시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담화문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천주교회의 입장을 숙고하십시오.

한국천주교회는 우선적으로 민족의 자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대결구도에서 벗어나기를 남북 모두에게 촉구합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평화, ‘서로 사랑하여라.’는 주님의 계명을 통해 얻어지는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밝힙니다. 이를 위해 신자들은 자신이 가진 최대의 무기인 기도로써 한반도 평화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이루는 한편, 삶의 자리에서부터 우선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들을 행함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땅에 드러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다시금 묻습니다. ‘왜 통일인가?’

만일 당신이 ‘신앙의 눈’보다 세속의 원리를 우선으로 여긴다면, 당신은 화해와 일치의 통일관을 자본의 논리 뒷전으로 밀어 놓을 것입니다. 반면에 당신이 ‘신앙의 눈’을 어떠한 신념들보다도 우선시한다면, 당신은 화해와 일치의 통일관으로 주변을 살피는 한편, 새롭게 깨닫게 되는 그 무엇을 곧장 실천해 나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 구성원이자 그리스도교 신자인 당신의 답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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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회인 바오로 신부
2016년 6월 19일
  |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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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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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하냐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냐고 당당하게 물어봅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일곱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한 번 용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일곱 번 용서한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용서를 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오늘 복음말씀 본문의 앞부분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형제가 죄를 지으면 먼저 깨우쳐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죄를 지은 형제가 있으면 단둘이 만나 타일러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는 방식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타이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스스로 깨닫도록 알려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은 보통 죄를 지어놓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일을 먼저 하라고 일러주십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이 스스로 잘못된 길로 빠졌다는 것을 알고 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는 죄인이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주라는 의미입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남북한의 통일을 기원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서로 반목과 전쟁의 위험 속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한 형제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인 대립과 도발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방을 타이르는 만남과 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형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분열과 갈등이 서로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하나가 될 때까지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면서 기다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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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이종민 요셉 신부
2016년 6월 19일
  |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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