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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구/부산] 주님을 향한 열정의 사도 야고보
조회수 | 2,425
작성일 | 09.07.25
성 야고보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의 형이다. 이들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로서 아버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들은 주님께서 부르시자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주님을 따름으로써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마태 4,21-22).

주님께서는 베드로, 요한과 함께 야고보를 특히 사랑하셨으며,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나(마르 5,37), 타볼 산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실 때(마태 17,1-9), 그리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마태 26,36-46) 등 중요한 순간에 이 세 제자와 함께 하셨다.

이들은 다른 제자들보다도 주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이 컸던 것이다. 주님께서 사마리아에서 냉대를 받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가 9,54)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야고보 형제는 자신들이 주님을 사랑한 그 만큼 주님께 대한 요구도 컸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에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을 수 있기를 간절히 부탁하기도 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마르 10,35-41). 이처럼 주님께 대한 열정이 가득한 야고보 형제에게 주님께서는 천둥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셨다(마르 3,17).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참수를 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다(사도 12,1-2).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순교하기 전에 에스파니아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에스파니아의 갈리시아 지방으로 옮겨져 모셔졌다고 한다. 후일 이곳에 야고보 사도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 도시는 유럽의 3대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야고보 사도는 에스파니아의 수호성인이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 가까이로 인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님을 향한 열정이다. 열정 없이는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 열정은 우리 안에 있는 사념들을 불태워서 오직 한 가지 마음을 갖도록 해준다. 어떠한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 역시 열정이다. 주님을 향한 열정은 주님께 가까이 나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사도 야고보는 열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부르시자 배와 그물도 버리고, 삯꾼과 아버지까지 그대로 남겨둔 채 주님을 따랐다. 그가 중요한 순간에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나,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대답한 것 역시 주님께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바로 그러한 열정으로 사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하였다.

오늘 사도 야고보의 축일을 지내면서 무엇보다도 주님께 대한 열정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기를 기도하자. 주님께 대한 열정으로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물리치도록 하자.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신앙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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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경규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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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기쁨

건강이 안 좋아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때론 중환자실에 입원할 때도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가족 걱정을 하고, 못다 한 일 걱정에 조바심을 칩니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무슨 복을 타고나서 저렇게 건강하게 사나.’ 하고 부러움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친하게 지내는 스님께 문안전화를 드립니다. 스님은 직장암을 앓고 계시지만 여행도 많이 하고 사람들도 잘 챙기는 분입니다. “스님, 평안하시지요?” “우리 같은 사람은 더 나빠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요. 병이랑 친구하고 지냅니다.” 목소리를 듣고 나면 남들보다 더 잘 살고, 남들보다 더 행복해야 한다고 욕심을 부렸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집니다. 암까지도 친구하며 지내는 스님은 죽음도 친구처럼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스님을 뵐 때마다 나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합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때론 단순하게 반복되는 무엇인가를 계속하는 것이 큰 고문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또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이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숨통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큰일을 당하고 나면 이 작은 일상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아무 일 없이 가족들이 건강한 것도,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것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것까지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에게 축복이었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새롭게 살게 되는 이 시간을 힘든 이웃과 함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데 바치겠노라고 결심해 봅니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말씀을 묵상하며 죽음도 일상처럼 저에게 편안하게 다가오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죽음이 오는 순간에도 평안할 수 있다고, 기쁘게 맞이할 수 있다고 가슴 깊이 받아들여 봅니다.

임인자(도박중독센터 `희망을 찾는 사람들` 사무국장)
  |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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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개방을

오늘은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제인 성 야고보 사도 축일입니다.
성서에 언급된 야고보 사도의 모습은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와 함께 항상 앞부분에 제시 되어 있습니다.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는 치유 현장에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성전이 무너지는 종말이 언제 올는지에 대해 다른 제자들을 대표해서 묻기도 합니다.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는 기적을 지켜보았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의 순간을 목격했으며,
게쎄마니 동산에서 공포와 번민에 싸여 기도할 때에도 다른 제자들보다 더 예수님 가까이 있는 등
예수님의 활동에서 중요한 순간을 늘 함께 지낸 것으로 나타납니다.

한편 야고보의 아버지 제베대오는 삯꾼들을 부리고 있었고,
어머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는 장소까지 따라다닌 행적으로 보아,
예수님 일행이 복음을 전하며 팔레스티나 일대를 다니실 때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까닭에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는 듯합니다.

또한 야고보는 동생 요한과 함께 “보아네르게스 곧 천둥의 아들”로 불리었는데,
이는 아마도 야고보와 요한의 기질이 ‘다혈질’이라서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 두 형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일행을 맞아들이지 않자,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불살라 버리자고 건의할 만큼 과격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반면 이런 다혈질은 예수님을 철저히 따르고자 하는 열망으로 승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마시게 될 고난의 잔과 죽음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선뜻 그러겠노라고 답변합니다.
이때 장담한 대로, 야고보는 신약성서가 12사도 중 명시적으로 분명하게
그 순교 사실을 기록한 첫 번째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인인 우리는 언제나 십자가의 신비를 몸으로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논리로 신앙을 바라봅니다.
신앙은 십자가의 논리로 밖에 설명될 수 없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나의 논리로 하느님의 논리를 꿰맞출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것은 마치 인간인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더러 우리를 섬겨달라고
때를 쓰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하든 못하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원하시는 방법으로 경직됨 없이 부드럽게 나를 개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큰 신앙을 이룰 수 있는 모습이지요.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개방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단점까지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길 바라십니다.
마치 야고보 사도의 다혈질을 받아들여 주님처럼 죽을 수 있는 열망으로 승화시켜 주신 것처럼...

대구대교구 채홍락 (시몬) 신부
  |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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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너희도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오늘은 성야보고사도 축일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성야보고사도는 베싸이다 출신으로서 제배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사도의 형입니다. 또한 야고보사도도 베드로사도와 같이 갈릴레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도중의 한분이시며 훗날 열 두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하신 분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야보고 사도의 어머니는 훗날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실 때 두 아들인 야보고사도와 요한사도를 오른편과 왼편에 각각 자리 잡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자리가 갖고 있는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함께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함은 물론이고, 높은 이가 되고자 한다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함을 설명하시면서 몸소 그 뜻을 실천하려고 오셨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자식을 위해서 애쓰시는 모습이라고 이해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광만을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야보고와 요한 사도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통 없는 영광을 기대하고, 단순히 축복과 기쁨만을 바라면서 하느님을 섬기고 따랐는지 반성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우화가 있습니다. 한 여인이 꿈을 꾸었는데 시장에 가서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셨습니다. 이 가게에서 무엇을 파느냐고 여인이 묻자 하느님이 대답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팝니다.” 이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여인은 한참 생각 끝에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을 먹고 “마음의 평화와 사랑과 지혜와 행복 그리고 두려움으로 부터의 자유를 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가게를 잘못 찾으신 거 같군요. 이 가계에선 열매를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만 팔지요.”

실상 우리는 나의 삶에 좋은 것만을 주시기를 끊임없이 기도하고 바라면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바람이 나에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멀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과 이 우화는 그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느님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바라는 것을 주시고 계십니다. 다만 그 바람의 시간과 장소가 우리의 생각과 다를 뿐입니다. 주시는 분께서 시간과 장소를 정하시는 것이지 받는 사람이 그것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 생각에 따라 그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면 우리가 마셔야 할 잔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그릇도 필요하지만 어려움과 십자가 고통을 받을 잔도 필요합니다. 축복의 그릇과 고난의 잔은 서로 상반된 관계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없는 영광은 빛이 나지 않고 영광없는 고통은 우리에게 삶의 무게만 더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서 높은 가치를 알게 됩니다. 이것을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삶 전체를 통해서 섬기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고 마침내 자신을 바쳐 우리를 높은 위치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물으십니다. “너희도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라고 말입니다. 용기를 내어서 "예, 마실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힘든 삶의 여정도 헤쳐 나갈 수 있으며, 그 분이 원하신 시간에 주시는 축복에도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으며 늘 첫째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평화롭고 기쁘게 만들어 줍니다. 아멘.

<부산교구 이석희 신부>
  |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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