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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세례성사의 은총을 보존하자!
조회수 | 2,375
작성일 | 11.01.06
마음에 드는 물건은 아껴 써야하지만, 동시에 항상 애용합니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옷을 가졌을 때, 아끼고 싶은 마음에 장롱 속에 꼭꼭 숨겨두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음에 드는 그 옷을 입음으로써 스스로는 만족감을 얻고 또 다른 사람 앞에서는 돋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옷, 좋은 옷을 자주 입는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입을 수는 없습니다. 옷이 더러워지거나 상하면 그만큼 속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은 사람입니다.(갈라3,27) 우리는 이미 과거의 잘못된 삶을, 죄와 탐욕으로 얼룩진 삶의 옷을 벗어버리고 순수하고 깨끗한 천상의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옷을 깨끗하게 오래 입어야 하듯 세례성사로 거룩하게 된 우리의 몸과 마음도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이 먼저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세례 받은 우리도 세례성사의 은총을 잘 보존하고, 다른 이에게 그 은총의 힘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나 혼자만 만족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품위를 유지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과 호감을 느끼게 하며, 환경이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성사로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 혼자만 기쁨을 얻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이웃이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주님께로 마음이 끌리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의 삶이 되고, 우리의 이웃에게 참된 기쁨을 줄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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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강진기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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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다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봤으면 합니다.

찬미예수님!
거리를 그렇게 떠들썩하게 하던 성탄 캘롤송도 이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반짝이던 성탄 츄리들도 하나 둘 씩 걷혀졌습니다. 제대 앞에 차려졌던 구유도 이젠 치워졌습니다.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성탄시기의 끝이자 연중 시기의 시작인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주님의 성탄 시기 끝에 주님세례 축일을 지내오고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세례 축일을 주님의 성탄 시기의 마지막에 지내는 것은 주님의 세례가 성탄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람은 누구다 다 세례를 통하여 새로운 탄생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성탄 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 탄생하여 나타나셨지만 세례 때는 신비 속에 하느님으로 다시 탄생하듯이 그렇게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성탄 때는 동정녀를 통해 사람으로 나타나셨지만 세례 때는 신비 속에서 주님의 존재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탄생하실 때 그의 모친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있었지만 세례 때는 신비를 통해 당신의 신성이 나타나실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고 당신 음성으로 그를 안으십니다. 성탄 때 어머니 마리아가 그를 고이 품에 안고 귀여워 하셨지만, 세례 때 아버지께서 애정 어린 말씀으로 당신 아드님을 보살피십니다. 어머니는 그를 동방박사들에게 내어 주어 경배하도록 하셨지만 세례 때 아버지께서는 그를 뭇 민족에게 드러내시어 흠숭하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의 성탄의 연장이고 완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아울러 우리 자신이 이미 받은 세례를 되돌아보고 세례받은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예전에 천주교 신자 생활 실태 자료를 조사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주일미사에 참여 이유 중 40% 이상이 의무감 때문이라고 응답했으며, 약 25%가 가정과 세상살이에 대한 축복을 얻기 위해서라고 답변했습니다.

또 이 자료에 의하면 5명중 1명은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아직 많은 수의 신자 분들은 신앙이 주는 참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살고 있다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이 내 삶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이 따로 따로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이 떨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일날 성당에 나오는 것과 한 주일간 세상을 사는 것이 따로 따로 여서는 안되겠습니다. 방금 복음에서 들은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떠올리면서 예수님의 세례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귀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 그것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겠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세례로써 우리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요 딸이 되었습니다. 우리한테도 하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도 하느님의 아들 딸로 새로운 탄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로운 탄생”이란 뭘 말하겠니까? 니고데모의 질문처럼 다 큰 사람이 어머니 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겠습니까? 어떻게 다 큰 사람이 또 태어난단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탄생이란 육체의 탄생이 아니라 영적인 탄생입니다. 그로 인하여 내 삶이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바뀐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받고도 내 삶이 하나도 바뀌지 않고 전과 똑 같다면 오늘 주님 세례축일을 맞아 다시 한 번 내 모습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유아세례를 받았든, 초등학생 때 세례를 받았든, 중 고등학생 때 세례를 받았든(어른이 되어 받았든) 세례성사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다 잊으셨을 겁니다. 잊으셔도 괜찮습니다. 세례를 받고 진짜 중요한 것은 세례성사에 대한 교리 내용이 아니라 내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례받고 달라지는 것, 그것이 “참으로” 세례성가 뭔지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를 얘기할 때 마다 드는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이야기는 갓 세례를 받은 아저씨와 그분의 친구가 하는 대화입니다. 저는 이 아저씨야말로 세례성사의 교리 내용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계신분이라 생각됩니다. 얘기는 이렇습니다.

-“그래, 자네 세례를 받도 천주교 신자가 됐다지?” “그렇다네”
-“그럼 예수에 대해 꽤 알겠군. 어디 좀 들어 보세.
그분은 어디서 태어났나? “모르겠는걸!”
-“죽을 때 나이는 몇 살이었지?” “모르겠네.”
-“설교는 몇 차례나 했나?” “몰라.”
-“아니, 세례받고 신자가 됐다면서, 정작 그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잖아!”
“자네 말이 맞네. 아닌게 아니라 난 아는 게 너무 적어 부끄럽구먼. 하지만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지 : 3년 전에 난 주정뱅이였고, 빚을 지고 있었어.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돼 가고 있었어. 저녁마다 처자식들은 내가 돌아오는 걸 무서워하고 있었던 걸세. 그러나 인젠 난 술을 끊었고, 빚도 다 갚았다네. 이제 우리 집은 화목한 가정이야. 저녁마다 아이들은 내가 돌아오기를 목이 빠져라고 기다리게 됐거든. 이게 모두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이루어 주신 걸세. 이만큼은 나도 그리스도를 알고 있네!”

형제 여러분. 지금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 세례 받고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세례받고 달라진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혹시 전과 똑같이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전과 똑같이 화를 내고, 전과 똑같이 이웃에게 아픈 말을 내뱉고, 전과 똑같이 자기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그로 인해서 지금 낙담해 있거나 실망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나 같은 사람은 죽어야 해!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은 주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다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봤으면 합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시고 지금 하늘에서 이런 소리를 들려 주시고 계십니다.“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 내 마음에 드는 딸이다.” 아멘.

<대구대교구 박광훈(안드레아) 신부>
  |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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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出師表)라는 말은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재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날 때 임금에게 올린 글을 말한다. 출사표란 ‘군대를 일으키며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이다. 제갈공명은 그저 군대를 일으켜 사람을 죽여서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임금에게 글을 올렸지만, 오늘 우리 주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생활을 시작하심으로써 하느님과 세상 사람들에게 출사표를 던지신다. 제갈공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분의 출사표는 세상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출사표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출사표요, 세상 사람들에게 희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출사표이며,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무엇인가 보여주시는 위대하고도 장엄하며 동시에 소박한 출사표이다. 이에 세례자 요한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는 말로 그분의 출사표에 최고의 경의를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 말로 그 분의 위대하고도 소박한 출사표에 경의를 표현 할까? 우리 각 개인이 세례자 요한의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릴 경의는 무엇인지 만들어 보자.

그분은 세례를 제정하신 분이시기에 세례가 필요 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본보기로 우리에 앞서 세례를 받으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이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례가 필요한 것이고,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해야 하고 우리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 놓으셨기에 우리 역시 우리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아주 단순한 신앙이고 믿음이다. 많은 신학과 교리가 있지만 가장 쉽게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가 힘든 세상살이에서 방황하고 길을 잃을 것을 미리 아시고 본보기를 보여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보여주신 그 분의 발자국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예수님만큼 사랑하고, 예수님만큼 희생하고, 예수님만큼 배려하고, 예수님만큼 용서하기만 하면 된다. 쉽고도 간단하다.

2016년도 벌써 10일이나 지났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새해의 결심 중에 다른 것보다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만이라도 최소한 본받자는 우리 각자의 출사표를 세상을 향하여 던지자. 새해 하느님의 축복 안에서 신명나는 2016년이 되도록 하자.

▥ 대구대교구 정해철 라우렌시오 신부 2016년 1월 10일
  |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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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받는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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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말씀은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태어나실 때에는 구유에서 우리를 맞이하시고 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지구상에서 가장 낮게 움푹 팬 요르단 협곡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모든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십자가로 우리를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자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어린이들은 보이는 것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면서 성장합니다. 감각을 통해 새로운 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지식의 욕구를 해결합니다. 성인이 된 우리들은 조금 더 고차원적인 질문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해 질문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등 존재론적인 질문을 하면서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자 합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하십니다. 요한의 세례로 백성들은 기대에 차 있었고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말하는 세례자 요한에게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확증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목소리에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대로 복음을 선포하시고 사랑받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로 정체성을 확립하십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먼저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사랑받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보이는 대로 믿고, 믿는 대로 보듯이 우리가 누구인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는 기도를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일상의 순간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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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서준영 라파엘 신부 : 2019년 1월 13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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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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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산소와 수소의 화학적 결합물로 공기와 더불어 자연계의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갈증 해소와 정화의 의미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은 보통 성수와 세례수로 축성되어 종교적 정화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특히 세례성사 때 죄를 씻어내고 하느님의 자녀로 성별하거나 성물을 축복하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나오는 “주님의 종” 사명은 세상에 진리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입니다.이 사명 수행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떠한 상황도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종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사신 분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셨을 뿐만아니라 십자가의 수난까지도 받아들이시며 참으로 주님의 종으로 사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참사람이신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면서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세례는,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꿀것을 요구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요한의 외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수님도 이 세례에 동참하십니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시는 겸손과 십자가상의 희생까지도 선택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은 간혹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리고 싶을 때도 있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자신보다 나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얕잡아보고 깔보고 하찮게 여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들 때에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인생살이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지신 예수님,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통하여 우리들이 세례 받을 때에 고백한 신앙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세상 것으로가득한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고, 예수님의 사람답게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는 겸손과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드는 아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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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남종우 그레고리오 신부
2020년 1월 12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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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내가 사랑하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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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세례 받으심을 기념합니다.
주님 세례를 기념하면서
우리 자신의 ‘세례 때의 새로남’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제가 신학교 5학년 때,
그러니까 1991년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신학교 식당에서,
세례식과 좀 닮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수 신부님들께서 신학생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신학생 식당에 내려와 식사를 할 때입니다.
당시 학장 신부님이 정하권 몬시뇰이셨는데
그 앞에는 우리 동기 김아무개 신학생이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담소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밥을 먹던 중에
그 아무개 신학생이 재치기를 했습니다.
학장 신부님 얼굴을 향하여 입 안에 가득 든 음식들,
그 맛있고 아까운 것들과 국물이 한 번에 쏟아졌습니다.
옆에서 봤는데 정말 많은 양이 입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한 긴장감’이라고나 할까요?
학장 신부님은 얼굴에 쏟아진 국물과 음식을
맨 손으로 쓸어 내시면서 이러셨지요.
“나는 어릴 때 세례 다 받았는데….”
그러시면서 그 난감하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그렇게 재치 있는 배려로 넘어가셨습니다.
저는 그 때 한 수 배웠습니다.
‘아! 저런 순간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넘어가 주는 것이
세례 받은 이의 처신이구나.’라고 말입니다.
화를 내고 식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며
적어도 한 30분 나무라실 만도 했는데….
당시 학장 신부님은 자신에게 아주 엄하셨는데도
신부님의 그런 면모를 통해
제자들을 향한 깊은 배려와 자상하심을 상기하게 됩니다.
“세례”란 단어에 그 날이 생각나서 적기는 하지만
혹시 신부님, 동기 신부님께 누가 될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가톨릭 신문을 읽으며 느낀 것입니다.
“<제10회 국제기부문화심포지엄 기빙 코리아 2010>에서 발표된 한국인 개인 기부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가톨릭 신자의 44%가 사회적 자원봉사에 참여했다고 응답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옛날 당쟁하며 정열과 시간을 허비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정치 소식, 지구 곳곳에 많아진 재난 소식, 넘쳐나는 사기와 반인륜적 범죄 소식 속에서도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그나마 사랑을 살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습니다.

오늘 주님 세례축일에
우리는 우리가 세례 받던 때처럼 또 새로워질 각오를 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기를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계명을 더 사랑하며, 더 용서하며, 더 나누며 살기를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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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박병래 안토니오 신부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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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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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연극이나 영화를 봅니다.
영화나 연극이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거나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 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주연은 물론이고 조연이나 엑스트라까지도 자신들이 해야 하는 역할에 온 힘을 다할 때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열심히 하는 배우들일수록,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는 배우들일수록 자신의 것을 내 놓지 못합니다. 극중에서는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생각이나 말, 행동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작가와 감독의 지시대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최선을 다 할 때 그 작품이나 배우들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배우가 인기가 있다는 말은 제대로 된 배우라는 말이겠지요.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며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여기에다 비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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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아버지의 뜻에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사신 분입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받지 않아도 되는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하느님마음에 드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제대로 된 아들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뜻대로 산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자신의 고집이나 생각대로,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것을 다 접어두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충분히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하느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배우가 자신에게 지시하는 감독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또 겉으로 표현해 내지 못하면 관객들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듯이,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지 못하면 사람들은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전혀 알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세례 축일을 맞아
세례 때의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활, 내가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생활을 할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 뜻대로 사는 우리의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는 “저 사람은 정말 제대로 된 하느님의 자녀다.”라고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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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박승재 알로이시오 신부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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