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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죽음을 잘 맞이하자
조회수 | 3,551
작성일 | 07.09.24
명절이 다가오면 저희 같은 '홀아비'들도 명절 분위기 좀 내라고 따뜻한 마음을 보내는 고마운 분들이 계십니다. 그럴 때마다 경리 신부님은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가 무엇을 보냈는지 식당 게시판에 공지합니다. 예를 들면, ○○수녀원-포도 한 상자, 김○○ 할머니-송편 한 접시 등등….

작년(2004년) 추석 때였습니다. 그때도 게시판에는 선물 목록과 보내온 사람 이름이 쭉 적혀 있었는데, 선물 중 아주 특별한 선물이 있었습니다. 보낸 사람: ○○가정법원 ○○○판사님, 선물 내용: 박○○(15살), 이○○(17살). 판사님께서는 마땅히 갈 곳 없는 두 아이에게 저희 집으로 보호처분 판결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 선물을 보고 저희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 선물은 선물 중 선물이었습니다. 그 선물은 추석 선물 중 가장 소중한 선물이자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사는 저희 집에는 여러 경로를 통해 "갈 곳 없는 아이를 받아줄 수 없겠냐?"는 구조 신호가 옵니다. 그럴 때 가급적 거절하지 말고 기쁘게 받아들이자고 저희 식구들은 의견을 모았습니다.

손에 쥔 것이 별로 없는 수도자들, 늘 받기만 하는 저희가 이웃과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나눔이 무엇인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아이들, 남들이 다 포기한 아이들조차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쁜 얼굴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추석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친지들 가운데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걸맞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관대한 나눔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또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는 부자를 향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사실 재물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은 우리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능력과 달란트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정직하고 깨끗하게 부(富)를 축척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산이 어느 정도 있어야 봉사활동도 할 수 있고 인간다운 품위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재물에 대한 과도한 욕심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 생애를 오직 재산 축적에만 몰두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전노처럼 돈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재물을 하느님 위치에 올려놓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형태의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물은 때로 마약과도 같아서 우리 인간의 오관 기능을 마비시키고 판단 능력을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결국 재물은 우리를 거룩함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속을 가장 잘 대표하는 재물이 우리 영혼에 끼치는 이런 악영향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재물을 지혜롭게 잘 사용할 것을 강하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사실 얼마만큼 세월이 흐르고 나면 우리 생애는 덧없이 시들고, 우리는 무대 뒤로 사라져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때 우리가 모아뒀던 재산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쌓아온 재물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과 세상, 하느님 나라를 위해 봉헌했던 나눔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소리 없는 나눔, 그것은 하느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실 봉헌인 것입니다.

매일 우리가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재물에 죽고, 목숨처럼 중요시 여기는 자존심에 죽고, 나만의 영역에 죽고, 내 울타리에 죽을 때, 마지막 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잘 왔노라'고 우리를 환영하실 것입니다.

누구나가 다 고상한 죽음, 남 보기에 민망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합니다. 나아가서 고귀한 죽음, 향기로운 죽음, 이웃들 뇌리에 강한 긍정적 각인을 하는 죽음을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그런 죽음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매일 부단히 죽는 사람들, 매일 자아포기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 부단히 자기 혁신을 위한 아픔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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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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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2,15-21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매일 저녁 되풀이해야할 고민 한 가지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거짓말 조사 결과 이런 거짓말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출근하지 못할 것 같아요.”

“거래처 좀 다녀올게요.”

“차가 너무 막혀 출근이 늦었어요.”

“집에 일이 있어 일찍 퇴근해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 갔다 오느라 늦었습니다.”

“난 거짓말 같은 것 할 줄 몰라요.”

며느님들이 시어머님께 주로 하는 거짓말 Best 5도 있더군요.

5위: 저도 어머님 같은 시어머니가 될래요.

4위: 전화 드렸는데 안 계시더라구요.

3위: 어머님이 한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2위: 용돈 적게 드려 항상 죄송해요.

1위: 어머님, 벌써 가시게요? 한 며칠 더 계시다 가세요.

어르신들은 이런 거짓말을 많이 하신답니다.

“내가 얼른 죽어야지!”

말은 그렇게들 하시지만 정말 두려운 것이 죽음입니다.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과제가 죽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녕 견디기 힘든 고통이기에, 또한 가장 큰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기에 사람들은 기를 쓰고 죽음을 피해 다닙니다.

그러나 죽음처럼 공평한 것이 또 없습니다. 그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부자건 거지건, 최고 권력자건 평민이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피하고 싶더라도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손님이 죽음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는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매일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잘 있으라는 말 한마디도 남기지 못한 채 순식간에 이 세상을 떠나가지만, 그 죽음이 적어도 내게는 아직 멀었으려니, 내게는 해당되지 않으려니,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때로 죽음이 내가 매일 출입하는 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각하지도, 준비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던지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내 죽음이 올해 연말이라면, 이번 달 말까지라면, 아니면 오늘까지라면, 우리들 삶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불안, 공포, 초조에 떨기도 하겠지만, 남아있는 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도 할 것입니다. 내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기도 할 것입니다. 이웃들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었나? 아직 화해가 안 된 사람은 누구인가 돌아보기도 할 것입니다. 너무도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지난날을 가슴 치며, 남아있는 시간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것입니다.

사실 성화(聖化)의 비결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매일을 내 생의 마지막으로 여기고, 매일 저녁 위와 같은 고민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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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연초에 한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문간 방 안에는 아주 연세가 많으신 할머님 한분이 계셨는데, 그 할머님께도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집 분위기가 약간은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서 본의 아니게 저는 조금 오버를 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반전시켜보려고 그 할머님께 새해인사도 드릴 겸, 농담도 건넬 겸, 큰 소리로 이렇게 인사드렸습니다.

“할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오래 오래 사세요. 그러나 너무 오래 사시지 마시고 100살까지만 사세요.”

그 말을 마친 저는 썰렁했던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지려니 했었는데, 분위기가 더 썰렁해졌습니다. 할머니 얼굴도 안 좋아지시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난처해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할머니 올해 연세가 99세였습니다. 99세 할머님께 100살까지만 살라고 했으니 얼마나 속상하셨겠습니까?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 수명이 엄청 높아져서 OECD회원국 평균을 따라잡는다는 이야기 들으셨죠? 여성들은 80세 남짓, 남성들도 75세 정도라고 하니 대단한 수치입니다.

오늘 추석입니다. 먼저 떠나신 선조들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날들도 헤아려보며 ‘죽음’이란 단어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봐야하는 날입니다.

과연 몇 살까지 살다 이 세상 떠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80살까지? 아니면 100살까지? 그도 아니라면 150살까지?

혹시 200살까지 살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오히려 반대일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이미 친구들은 다 세상 떠났을 것입니다. 아들들이나 손자들도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새해만 되면 KBS, MBC, SBS, 세계 기네스 협회에서 다들 찾아와 난리들일 것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놀라지 마십니다. 올해 200세를 맞이하시는 어르신이 아직도 멀쩡히 살아계십니다. 그럼 취재나간 리포터를 연결해보겠습니다.”

그 정도 되면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불행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임종자들을 떠나보내며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죽음이 있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은 하나의 은총입니다. 죽음은 해결사입니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방황의 세월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이 악습의 굴레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이 처절한 소외감, 이 심연의 고독, 이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한없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죽음이 있어 행복합니다. 죽음을 통해 거칠고 험난했던 오랜 여행길을 마칠 수 있습니다. 결국 죽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군요.

그 오랜 세월, 상처와 고통의 나날을 접고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한 영혼을 바라보며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인 해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결코 마지막 날, 인생 종치는 날, 밥숟가락 놓는 날, 쫄딱 망하는 날, 무작정 슬퍼할 날이 아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죽음은 그간 힘겹게 지고 왔던 모든 멍에를 홀가분하게 내려놓은 날, 기쁜 얼굴로 주님의 얼굴을 마주 뵙는 날, 환희와 축제의 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먼저 떠난 분들 위해 제사상을 차려놓고 아직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신 분들도 많으시지요. 뭐가 그리 급해서 그리도 경황없이, 잘 있으란 말 한마디 없이 떠나간 그가 야속하기도 하겠지요. 마음이 허전하고, 싱숭생숭하시겠지요.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우리보다 훨씬 사정이 낫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겨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편안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더 이상 고통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원망도 없는 곳에서, 자비하신 주님 품안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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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2,22-24.26ㄱㄴㄷ
요한 묵14,13-16,
루카12,15-21

“삶은 선물이다.”

제대 앞, 상위에 놓인 갖가지 봉헌 예물 열매들이 상징하는바 깊습니다.
호박, 배, 사과, 밤, 대추, 고추.... 다 그 고유의 모습 열매로 제대
앞에 놓여 있듯이 우리 또한 언젠가 죽음이 오면 각자 고유의 ‘참 나’
의 열매로 하느님 앞에 나갈 것입니다. 과연 믿음, 희망, 사랑으로 잘
익어가고 있는 ‘참 나’의 열매들인지요?

새벽 긴 시간 말씀 묵상 중 깨달음처럼 떠오른 강론 주제였습니다.
“삶은 선물이다.”
가을철 추석에 더욱 실감나는 주제입니다.

얼마나 자주 잊고 지내는 주제인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하느님은 풍성
한 수확철의 가을과 더불어 추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가만히 삶을 들여다보십시오. 선물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이 자리의 성전도, 미사도, 내 생명도, 여기 미사에 참석하고 있
는 형제자매들도, 내 입고 있는 옷도,,,, 도대체 선물들 빼고 나면
‘내 것’이라 남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온통 하느님 사랑의 선
물로 이루어진 우리 존재들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자각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1독서의 요엘 예언자 말씀 따라 온갖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
양 드리기 위해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추석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고 우
리들입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
라.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
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렇습니다.

‘삶은 선물이다’라는 자각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찬미와 감사요, 기쁨
이요 행복입니다. 그러니 살아있음 자체가 찬미와 감사요, 기쁨이자 행
복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삶은 축복의 선물이다.’라는 삶의 정의
가 도출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 축복의 선물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
다.

탐욕에 중독되어 위로 하느님을 잊었고, 옆으로의 이웃을 잊었고, 안으
로 참 나를 잊었습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
산에 달려있지 않다.”

어찌 생명뿐이겠습니까?

아무리 돈 많아도 그 돈으로 생명은 물론, 참 기쁨도, 행복도, 사랑도,
희망도 살 수 없습니다. 이 모두들 재산이 아닌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
다. 살 줄 몰라 불행이지 살 줄 알면 모두가 행복입니다. 내 마음 하느
님께 온전히 뿌리 내릴 때 풍성한 생명과 사랑, 희망, 그리고 참 기쁨
에 행복입니다.

탐욕의 피해가 너무나 큽니다.

완전히 마음의 눈을 가려 버려 위로 하느님을, 옆으로 이웃을, 안으로
참 나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육신의 눈 있어 하늘을 봐도 하느님을 보
지도 못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봐도 이웃을 보지 못하고, 나를 봐도 참
나를 보지 못하니 눈 뜬 소경입니다.

완전히 ‘이기적 나’의 감옥에 갇힌,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폐쇄
적 인간입니다. 살아있다 하나 영혼은 죽은 사람입니다. 남아있는 건 육
적 욕망 하나뿐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독백을 들어보십시오.

“곳간들을 헐어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
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위에 하느님도 주변의 이웃도 없고, 있는 건 다만 이기적 육적 욕망의
나만이 있을 뿐입니다. 곧 이어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 어리석은 부자
는 물론 탐욕에 중독된 모든 이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어리석
은 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하느님 앞에 부유한, 참 부자요,
지혜로운 사람이겠습니까?

첫째, 눈 들어 하늘을 보며 마음 활짝 열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
리는 사람입니다. 활짝 열어 하느님을 찬미하는 마음 그대로 드넓은 푸
른 하늘,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둘째, 주변의 이웃들과 재물은 물론 내 지닌 것들을 나누는 사랑의 사람
입니다. 나눌 것 없어서 못 나눈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돈 없어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미소, 친절한 말, 진실한 마음, 소중한 시간이 때로는
물질보다 더 큰 위로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지혜로웠다면 곳간들을 짓기 전에 모든 곡식과 재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이들을
나눴을 것입니다.

부단히 위에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옆으로 이웃들과 사랑을 나
누는 사람이 진정 지혜롭고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
저축해 둘 수 있는 것은 찬미와 감사의 삶, 이웃과 나누는 사랑의 삶뿐
입니다.

애매하고 추상적인 ‘참 나’가 아니라, 이런 하느님 공경과 이웃 사랑
의 실천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자녀로서의 ‘참 나’입니다. 이런 이
들이 주님 안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요한 묵시록을 통한 주님
의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
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선물 인생입니다. 결코 고해의 허무 인생이
아닙니다.

위에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주변의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며,
참 나를 살라고 주어진 축복 인생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
사드리며 마음 활짝 열고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이수철 신부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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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김사빈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집 뒷마당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보름달이다.

달밤에 달구 잡기 하다 넘어져
무릎이 깨어져 울던 일곱 살이다

한참 잊고 살다 생활에 지쳐
고향 생각나면 달려가던
뒷동산에 만나던 첫사랑이다.

큰어머니가 해주던 찹쌀 강정과
송화 가루로 만든 다석이다

울담 안에서 오가던 정을
건네주던 푸성귀 같은
내 사랑 여인아

책갈피 속에 곱게 간직한
진달래 꽃잎 같은 내 친구야

괴롭고 힘들 때
영혼의 안식처
내 쉼터인 것을

‘영혼의 쉼터’라는 우리 카페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시이지요. ‘홍천 영혼의 쉼터’는 바로 그렇게 괴롭고 힘들 때, 서로 쉼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추석은 바로 그런 쉼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추석에 가족이 함께 모여서 서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러분 모두 그런 추석이 되시기 바랍니다.

추석(秋夕)│박민철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감싸고
아늑한 풀벌레소리 꿈속으로 이어지면
한적한 오솔길 저녁 따라간다
귀뚜라미 모여사는 그리운 초가
책 보따리 동여매고 동구밖 어귀 서성이면
십리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
석양 길 때때옷을 입혔다
고대 때부터 내려왔던 달의 신앙은
아버지의 손등을 붙잡고
만월이라는 축제의 자리로 초대되어
팔월의 가부새 바람으로 슬슬거린다
매달리었던 만큼 매달려 왔던 한가위의 포근함
탕숫국 국물이 퇴주 그릇에 빠지지 않도록
조상의 풍요로운 은덕 시접을 가지런히 놓았다
성묘를 끝낸 신곡주의 송편이
뒷 집의 순이를 불렀다

저는 뒷집 순이가 아닌 어머니를 가만히 불러 보지만 메아리만 들려옵니다. 시인이 노래하듯 제가 어린 시절 장에서 돌아오신 어머니가 때때옷을 입혀 주셨었지요. 기억만으로도 한가위의 포근함을 느낍니다. 모두 그런 기억을 되새기며 풍요로운 달맞이하기로 해요.

예수회 류해욱 신부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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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억 한다는 것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 가운데 하나다. 기억이란 사물을 다스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똑같이 배웠어도 그것을 얼마나 많이 기억해 내느냐를 능력의 차이로 이해하기도 한다. 또 일상에서도 기억해 내는 정도를 보고 관심과 사랑과 우정의 정도를 말하기도 한다.

우리에겐 기억해야 하는 날들이 많다. 때가 되면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준다. 또 새해가 시작되면 지난 한 해를 기억하고, 계절이 바뀌면 반복되는 그 계절에 대한 기억을 한다. 무더운 여름에는 복날을 기억하고, 여름의 끝에서 입추를 생각하고 시원한 날씨를 기다린다. 또 명절을 기억하고 명절을 잘 지내려고 준비한다. 어느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에 접어든 이 계절에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명절을 지낸다. 그것은 곧 한가위, 추석 명절이다. 한가위는 살아 있는 이들이 조상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교류하며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한다.

오늘 독서 말씀은 주로 넉넉하게 베풀어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가 중심을 이룬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전하는 것은 하느님께 우리가 순종하였기 때문이라는 축복의 말씀과 풍요로운 재물에 현혹되지 말고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하라는 말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섬기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한가위 명절은 참으로 우리 마음을 넉넉하고 풍요롭게 한다. 느긋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준다. 늘 바쁘고 조급했던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의 축복받은 마음으로 되돌려 준다. 하느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기억’시켜 주는 때다. 나와 우리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 오늘은 인류라는 가족을 생각해 보고 싶다. 갈수록 더 험악해지는 범죄도 사실은 가족의 부재가 그 원인이라고 하니 오늘은 아주 조금만 더 나한테서 벗어나, 내 가족한테서 벗어나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싶다.

박강수(재속회 선교사)
  |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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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에 있으니…

오늘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온갖 풍성한 곡식과 과일들을 수확하며 하늘에 감사를 드리고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이 축제는 모든 이에게 풍요로운 명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걷어 들인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고백하고 곡식을 수확하는 데 필요한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고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갖가지 조건들을 채워주신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이 축제는 조물주 앞에 참으로겸손한 우리 조상들의 신심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는 자신의 수확물을 바라보며 모든 것이 자신이 이루어 낸 것인 양 이런저런 계획들을 세워가며 스스로 모든 것을 주관하려는 어리석은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일이 잘된 것을 망각하고 그분께 감사드리기는커녕 모든 것을 자신의 공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우리에게 인식시켜 주십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분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음을, 더 나아가 우리 생명 또한 그분의 허락이 없이는 연장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 혼자 힘으로 되어가는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모든 것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특별히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하고 그분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니 우리를 위해 온갖 좋은 것을 다 마련해 주실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지금 당장 어떤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 같고 실패로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좋은 계획이 있으니 우리는 늘 그분께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좋은 것만을 허락하시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바오로 수도회 창립자이신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느님께 맡기는 기도]를 함께 봉헌해 봅시다.

“나의 하느님, 오늘 제게 무슨 일이 생길지 저는 모릅니다. 주님께서 영원으로부터 저의 더 큰 선을 위하여 미리 보고 마련하신 것 외에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뿐이오나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영원하시고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계획을 받들고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온 마음을 다해 이를 따르며 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희생제물에 합쳐 저의 온 존재를 당신께 제물로 바칩니다. 예수님의 무한한 공로에 의지하여 그분의 이름으로 비오니, 주님께서 원하시거나 허락하시는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과 저의 성화를 위하여 어려움 중에 참고 견디며, 온전히 순종하게 하소서. 아멘.”

성바오로 수도회 안성철 마조리노 신부
  |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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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죽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연초에 한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문간 방 안에는 아주 연세가 많으신 할머님 한분이 계셨는데, 그 할머님께도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그 집 분위기가 약간은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서 본의 아니게 저는 조금 오버를 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반전시켜보려고 그 할머님께 새해인사도 드릴 겸, 농담도 건넬 겸, 큰 소리로 이렇게 인사드렸습니다.

“할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오래 오래 사세요. 그러나 너무 오래 사시지 마시고 100살까지만 사세요.”

그 말을 마친 저는 썰렁했던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지려니 했었는데, 분위기가 더 썰렁해졌습니다. 할머니 얼굴도 안 좋아지시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난처해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할머니 올해 연세가 99세였습니다. 99세 할머님께 100살까지만 살라고 했으니 얼마나 속상하셨겠습니까?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 수명이 엄청 높아져서 OECD회원국 평균을 따라잡는다는 이야기 들으셨죠? 여성들은 80세 남짓, 남성들도 75세 정도라고 하니 대단한 수치입니다.

오늘 추석입니다. 먼저 떠나신 선조들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날들도 헤아려보며 ‘죽음’이란 단어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봐야하는 날입니다. 과연 몇 살까지 살다 이 세상 떠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80살까지? 아니면 100살까지? 그도 아니라면 150살까지? 혹시 200살까지 살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오히려 반대일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이미 친구들은 다 세상 떠났을 것입니다. 아들들이나 손자들도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새해만 되면 KBS, MBC, SBS, 세계 기네스 협회에서 다들 찾아와 난리들일 것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놀라지 마십니다. 올해 200세를 맞이하시는 어르신이 아직도 멀쩡히 살아계십니다. 그럼 취재나간 리포터를 연결해보겠습니다.”

그 정도 되면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불행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임종자들을 떠나보내며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죽음이 있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은 하나의 은총입니다. 죽음은 해결사입니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방황의 세월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이 악습의 굴레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이 처절한 소외감, 이 심연의 고독, 이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한없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죽음이 있어 행복합니다. 죽음을 통해 거칠고 험난했던 오랜 여행길을 마칠 수 있습니다. 결국 죽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군요. 그 오랜 세월, 상처와 고통의 나날을 접고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한 영혼을 바라보며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인 해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결코 마지막 날, 인생 종치는 날, 밥숟가락 놓는 날, 쫄딱 망하는 날, 무작정 슬퍼할 날이 아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죽음은 그간 힘겹게 지고 왔던 모든 멍에를 홀가분하게 내려놓은 날, 기쁜 얼굴로 주님의 얼굴을 마주 뵙는 날, 환희와 축제의 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먼저 떠난 분들 위해 제사상을 차려놓고 아직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신 분들도 많으시지요. 뭐가 그리 급해서 그리도 경황없이, 잘 있으란 말 한마디 없이 떠나간 그가 야속하기도 하겠지요. 마음이 허전하고, 싱숭생숭하시겠지요.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우리보다 훨씬 사정이 낫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겨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편안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더 이상 고통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원망도 없는 곳에서, 자비하신 주님 품안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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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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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하느님을 향합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를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생명과 생명 목숨과 목숨을 이어주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생명 안에서 우리의 오늘 한가위는 그냥 이루어진 날이 결코 아닙니다. 감사와 사랑이 최고의 해답임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풍요로운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의 이 시간에 감사드리는 한가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어머니의 시간 아버지의 시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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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2019년 9월 13일
  |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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