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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는?
조회수 | 2,148
작성일 | 11.01.06
어느 집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목욕을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예' 하고 아버지를 따라 갔습니다. 목욕탕에 가서 아들은 아버지께 몸을 맡겼고, 아버지는 아들의 때를 씻어주었습니다. 목욕이 끝나고 나와서 아들은 속옷부터 새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는 갈증이 나서 아버지와 함께 우유를 마시고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는 아버지와 함께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는 따뜻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들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 내가 역시 이분의 아들이구나. 이제부터는 좀 더 아들답게 효도하면서 살아가야지...'

오늘은 주님세례축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성령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에는 '너는 내 아들이다'라는 하느님의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목욕은 단지 몸의 때를 없애주는 것이지만,
세례는 영혼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처음 아버지가 아들을 불렀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다음 아들이 '예' 하고 대답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께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갔습니다. 세례를 통해 아버지는 우리를 씻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들은 용서를 받고 깨끗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모두 깨끗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부르심에 대한 솔직한 응답을 통해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아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모든 죄가 씻어지고,
주님과 함께 죽었다가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하느님의 자녀답게 올바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유혹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유혹의 결과는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세례를 받는 순간 친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녀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정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세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밤에 잠이 들고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것은 밤에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고 아침에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같이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는 것입니다. 이제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성호를 긋고, 오늘 하루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성호를 긋고 새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십시오. 그 잠깐의 시간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아주 풍요롭고 든든하게 만들어줍니다.

오늘 주님세례축일을 맞이해서
세례 때 가졌던 그 다짐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봅시다.
혹시나 흐트러짐이 있었다면 새로이 마음을 추스르고,
이제 새로 시작하는 연중시기를 힘차게 출발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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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권형배 알베르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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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사제직·왕직·예언직을 통해 하느님께로

주님 세례 축일인 오늘은 세례를 통해 받게 되는 중요한 직분인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훌륭하게 실천하며 살았던 이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사제직입니다. 사제직은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간자(사제)의 역할, 하느님의 은총과 선하심을 세상과 함께하도록 하는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오래전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바르톨로메오 데 라스 카사스(1474~1566) 신부를 소개합니다.

그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갔던 콜럼버스(1451~1506)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라스 카사스 신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권을 최초로 부르짖었습니다. 당시 유럽 사회와 교회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인간이 아니란 말이오? 그들은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외쳤습니다.

1515년, 소유하고 있던 쿠바의 농장을 포기하고 도미니코수도회에 입회한 후 사제가 돼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복자들이 저지른 ‘신대륙 파괴’를 규탄했습니다. 또 많은 저서를 통해 참다운 화해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지금도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회연구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페루의 해방 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라스 카사스 신부는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참다운 사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왕직은 봉사입니다. 페루의 ‘빗자루 수사’ 마르티노 데 포레스(1579~1639) 성인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흑인인 성인은 스페인 출신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많은 인종 차별을 겪었습니다.

성인은 이발사(돌팔이 의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이 이를 뽑아준 ‘환자’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여러 병자가 치유되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온 생애를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 도미니코수도회에 입회를 신청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습니다. 수도회 문지기로 사는 것을 겨우 허락받습니다.

그는 7년간 동물들과 함께 밥을 먹고, 청소와 온갖 잡일을 하면서 철저하게 하느님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하지만 정식 수도자는 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수도복 착용만 허락받았습니다. 성인은 계속해서 수도회를 위해 봉사하고 가난한 리마(페루) 주민들을 치유해줬습니다. 또 그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다정한 이웃으로 살아갔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하느님의 신비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성인이 사는 곳 건너편에 성인보다 7살 아래인 백인 여성 로사 데 리마(1586~1617) 성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성녀는 필리핀 선교를 원했지만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미니코회 제3회원으로 열심히 살다가 세상을 떠난 후 54년 만에 남미 최초의 복자가 됩니다. 마르티노 성인은 이보다 291년 늦은 1962년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복자로 선포됩니다. 흑인들과 유색인들의 후손들이 마르티노 성인의 영성과 삶을 꾸준히 기억하고 실천했기에 이뤄진 신비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언직은 정의 선포라 생각합니다. 예언직은 하느님 기준과 시각으로 세상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모든 사람의 깨달음) 운동’을 50여 년 동안 이끌어 가고 있는 아리야라트네 박사를 소개합니다.

그는 참여 불교와 간디 사상에 뿌리를 두고,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를 근간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고전적 방식을 통해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3가지 독(욕망, 성냄, 무지)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식수 설비 설치, 도로ㆍ화장실ㆍ주택ㆍ도로 건설, 에너지원 확보 등 다양한 일을 펼치며 가난한 마을의 자립을 이끌었습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르보다야 운동을 통해 자립한 마을이 1만 5000여 개에 이르고, 무상 유치원도 4335개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아리야트네 박사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위대한 도덕과 원칙 속에서 내 마음이 작동하는 ‘독’을 꿰뚫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고 강조합니다.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그리스도인의 직무인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실천한 이들을 생각해봤습니다. 세 가지 직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길 바랍니다.

<안동교구 박재식 신부>
  |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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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축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도직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할도 함께 알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세례는 본래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 행해졌던 예식입니다. 그러나 죄지은 이들이 받는 세례를 죄인도 아닌 예수님께서 왜 받으셨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에 대한 답은 마태오 복음 3장 14절에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요한은 분명히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당신께서 세례를 받으셨듯이 우리 역시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죄를 씻기 위한 물의 세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과 불의 세례입니다. 한 차원 높은 세례입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례를 받는 예수님께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죄의 사함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되는 순간이 바로 예수님의 세례였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앞에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세례는 우리 존재 자체가 변화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 뒤에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기도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깊이 새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세례와 함께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대화입니다. 신자가 되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신자가 되었기 때문에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대화가 없으면 관계가 단절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지만 기도가 없으면 그 관계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합니다. 부모 없는 고아가 힘들게 살아가듯 우리의 삶도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 드리지 못하면 고아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 없이 내 힘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 은총으로 가능한 세례이기에 신앙생활 역시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내 힘이 아닌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공생활 가운데 중요한 순간에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주님 세례축일을 기념하는 오늘, 예수님의 세례사건과 기도하는 그분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다시 한 번 내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그날의 가슴 벅찼던 감동과 하느님 아버지께 드렸던 혼자만의 약속도 기억해 냅시다. 또한 기도하는 삶을 살도록 매일 잠깐만이라도 틈을 내어 하느님 아버지께 인사드리며 내가 고아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양팔을 벌리고 나를 맞아주십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통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나와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

▥ 안동교구 윤정엽 세례자 요한 신부 2016년 1월 10일
  |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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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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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물로 주는 세례, 즉 회개 후 죄를 씻어 내기 위한 세례라면, 예수님의 세례는 죄와 벌을 모두 사해주고, 인간을 구원하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님께서는 왜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세례의 물은 일차적으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에 본다면 예수님의 세례는 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십자가 사건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또한, 세례의 물은 과거를 씻어 내고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십자가 사건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뜻은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마에 물 부음을 받으면서 과거의
나는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능력이 있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아닙니다. 아무런 자격도, 능력도 없는 우리를 하느님께서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자격을 갖추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뒤에 하느님께서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진정으로 해야 할일은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을 하느님께로 이끌기 위해 나 자신을 내어 맞기고,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로서, 충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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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윤여홍 시몬 신부
2021년 1월 10일 <안동교구 주보>에서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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