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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그리스도 따라 세상의 때 벗자
조회수 | 2,245
작성일 | 11.01.06
세례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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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죄인들이 받아야 할 세례를 죄가 없으시고 죄인의 죄를 용서해 주실 분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주라 하신 마지막 지상 명령에서 보았듯이 세례는 신앙 입문을 위한 절차 의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세례의 신앙을 이 지상에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던 세례자 요한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를 부담스러워 하며 자신에게는 과분한 것이라고 굳이 사양하려 합니다.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역시 겸손 그 자체이신 분이셨습니다.

세례의 시작은 결국 나약한 인간성을 인정하며 겸손해 지는 것, 하느님을 세상의 창조주, 주님으로 겸손히 고백하며, 그분께 의탁하여 찬양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나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사는 것이 세례의 삶입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분명 선포의 모습이 달랐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임박한 하느님의 심판을 외치며 회개할 것을 선포한 반면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 영원한 기쁨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 됨의 삶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 3).

자비와 사랑을 사는 삶이 세례의 삶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금욕과 단식의 삶을 살았으나, 예수님께서는 먹고 마시는 밥상 공동체로써 친교의 잔치를 베푸셨고, 제자들과의 마지막 밥상에서 당신의 살과 피 전부를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 놓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가족 밥상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 서로가 자기의 것을 나누어, 누구도 굶주리고 소외된 이웃이 없도록 사는 것, 그것이 세례를 사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외치는 종말론적 예언자였으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이 땅에서부터 실현시키셨던 분이셨습니다. 진정 세례를 사는 삶은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가는 것, 천국을 만들어 가며 평화와 기쁨을 심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십니다. 이제는 세례 받음으로 끝이 아니라, 성령의 기쁨과 그 열매를 맺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세례를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역시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사랑을 받는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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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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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줄 때, 당시의 종교지도자들, 기득권을 쥔 자들은 극심히 반대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요한 1, 25).

이는 우매한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속죄 제물을 성전에 바쳐야 하는데,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였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이고 맑은 물에 몸을 담그는 세례로 족하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결국 성전 수입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종교 지도자들의 얄팍한 속셈이 드러난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의 모습도 예수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의 우상, 맘몬은 ‘돈’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정 사회나 종교 역시 돈에 소중한 가치를 팔아먹는 몰락의 길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우리에게 익숙한 홍세화님은, 오랜 프랑스 생활을 끝내고 조국에 돌아와서의 놀란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20년 만에 귀국했을 때 한국사회에선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 무척 놀랐다. ‘마음의 부자’가 되자는 게 아닌, 소크라테스 식으로 말해 ‘배부른 돼지’가 되자고 하다니 …. 소크라테스는 ‘배부른 돼지가 되지 말고 헛헛하더라도 인간이 되라’고 했는데, 이 땅에서는 서로 ‘배부른 돼지’가 되자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주장이 거침없이 나오고 아무런 거부감이나 위화감 없이 관철되는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존재’를 아름답게 가꾸려고 노력하는 대신, 오로지 소유를 많이 하려고 애쓸 뿐이다.

인간 존재의 가치와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오로지 소유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돈독이 오른 사회에서 전인적 인간은 사라지고 경제동물로 남는다. 인간성은 실추되고 인간 관계는 파괴된다.”

세례를 사는 우리 신앙인에게 너무도 고마운 지적, 충고로 들립니다. 세례는 세속에 묻은 온갖 때를 벗는 것입니다. 특별히 돈의 노예로 살았던 삶을 벗겨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례를 받으시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드님께서 보여주신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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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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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순간

얼마 전 2007년을 정리하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참으로 지금까지 어떤 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인가 생각 해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것인가 생각하면 저것 같고, 저건가 생각하면 요것 같고, 요것도 아니면 혹시 내가 기억해 내지 못하던 순간 중에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생애 최고의 순간’이 언제 입니까? 배우자를 만났을 때, 자녀를 얻었을 때, 직장에 취직했을 때, 내 집을 마련했을 때….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각기 다른 모습의 ‘내 생의 최고의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작년에 세례 받은 신자분들 재교육을 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 입니까?” 어느 자매님이 자신있게 대답하셨습니다. “세례 받았을 때입니다!” 그 자매님을 보니 세례식 때의 기억이 났습니다. 그 자매님은 세례식 내내 눈물을 흘리며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저 자매님은 어떤 사연을 지니고 계시기에 저렇게 우실까?’ 생각했었습니다. 자매님이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지금 평화와 기쁨 속에 열심히 신앙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 분의 최고의 순간은 분명 세례였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자매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세례성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 이제는 과거에 내가 지었던 모든 죄와 악에서 죽고 사랑과 은총으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 이제 나의 삶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간직한 세례. 분명 세례성사는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했고, 다른 삶을 살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는 분명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죄 없는 분이 죄를 씻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전하시는 분이 새로운 삶을 향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통해서 보듯 하늘과 땅의 만남을 위해서였습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땅으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결국 주님의 세례로 하늘이 열려 우리의 죄와 악으로 물든 땅은 하늘의 자비와 사랑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땅이 하늘의 영광과 평화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세례로 이 세상은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성탄시기가 끝나고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연중시기에 그동안 받은 예수성탄의 은총과 사랑을 이웃과 만나 행함으로써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는 신앙인들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안수일(요한보스코) 신부
  |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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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신자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3,17).

예수님에게 세례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장엄한 선포이며, 메시아로서의 공적 사명의 시작이고, 나아가 이 사명 완수의 어려움을 즉 십자가를 짊어짐을, 그리고 십자가상의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마르 10,39).

그러면, 우리에게 있어 ‘세례’란?

“세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베드 3,21).

우리에게도 세례란 역시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남이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할 사명이고, 모범이 되는 삶을, 그리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충실하게 뒤따르겠다는 공적 서약임을 알아듣게 됩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를 위한 묵상글이 떠오릅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던 날,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 착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약속했어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소리에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하시며 흐뭇해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며 살고 있나요? 하느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게 생활하고 있나요? 말로만, 형식적으로만 주님의 아들딸이라고 하지는 않았나요?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며 세례 때의 약속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로 해요.”

김대건 신부님께서도 “교우들 보아라. … 다행히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었으니 그리스도 신자라는 이름이 얼마나 고귀한가? 그런데 그 이름에 걸맞는 행실이 따르지 않으면 그 이름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라고 간곡하게 훈유(訓諭)하셨음을 잊지 맙시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됩니까? 이름이나 겉치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지향이, 본질이, 내용이,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삶과 행동이 따르지 않는 신앙생활로는 무늬만 신자라는 오명을 씻지 못 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끝으로 구유도 치워질 것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현존이 우리 육안으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사라진다는 뜻이며, 오로지 신앙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일상이, 암중모색의 일상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무늬만 신자라는 불명예를 안지 않기 위하여 신앙의 눈으로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만나,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작은 별이 되려고 애써 봅시다. 그러기 위해 세례 때의 서약에 충실한 삶을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도록 합시다.

박영근 신부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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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갈증을 느껴본 분들은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주를 탐사하는 우주선도 다른 어떤 행성에 물의 흔적이 있었는지, 혹은 물이 지금도 존재하는지를 찾고 있습니다. 물은 바로 생명의 흔적이며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도 생명의 시작은 어머니의 양수, 곧 물이었습니다. 인간이 아기였을 때에는 9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고, 성인이 되면 우리의 몸은 70%이상이 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물은 진정 생명입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물을 갈망하여 물이 있는 곳에 살게 되었고 모든 종교의 정화 예식도 물로 시작됩니다. 불교든 이슬람이든 유다교든 힌두교든 우리 그리스도교 역시 성수와 세례수가 모두 물인 것입니다. 과연 물은 깨끗이 씻는 정화 예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구약의 에제키엘 예언자는 말합니다.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에제 36,25)

또한 동양에서는 모든 선의 최고의 경지를 물에 두고 있습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언제나 낮은 곳으로 향하는 최고의 겸손을 보이고, 막히면 돌아가고 빈곳은 채워주는 덕을 지녔기 때문에 물을 그토록 칭송한 것입니다. 우리는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영으로 새로이 탄생되던 때에 우리는 다시 물속에 잠기어 ‘나’ 라는 인간은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참된 모범을 보이시기 위하여 죄인인 인간이 죄를 씻기 위한 속죄 예식인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지닌 여러 겸덕의 모습을 당신 스스로 보이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가장 낮은 겸손의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로써 물로 세례를 받은 우리도 세례의 정신을 살라고 하십니다. 온갖 악으로 혼탁한 세상을 물로 깨끗이 씻으라 하십니다. 물이 되라 하십니다. 정화수가 되라 하십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울부짖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물을 주라 하십니다. 식량을 찾는 이들에게, 보호를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 치료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비를 베푸는 물이 되라 하십니다. 서로가 다투며 남을 짓밟고 오르려 할 때, 우리더러 물처럼 내려오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가장 필요한 겸덕은 ‘겸손’ 이라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분명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다른 한편 물에서 나왔으니 철저히 물이 되라 하십니다. 우리가 세례 때의 정신으로 충실히 삶을 살아갈 때,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 때 들으신 그 칭찬의 말씀을 우리 또한 들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루카 3,22)

▥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2016년 1월 10일
  |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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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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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축일이다. 하늘이 열리며 소리가 들려오고 성령께서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오늘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내일부터연중시기가 시작된다.

루카 복음은 주님 세례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루카 3,21-22 참조)

하느님께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 당신의 아들이 죄 많은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신 것에 감동하시어 참된 아들로 인정하신 것이다. 참된 아들로 인정받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다짐을 하셨을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답게 그리고 세례 받은 이답게 살자’ ,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리고 세상에서 성실하게 공정을 펼치자’ (이사 42,3 참조). 예수님은 이러한 다짐들을 죽는 순간까지 충실하게 지키셨다. 그래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세례를 받았고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세례를 받으면서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자녀답게’ 또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예수님처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동시에 오늘 사도행전에서 사도 베드로가 한 말씀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사도 3,34-35) 나아가서 교구80주년을 맞아 주교님께서 제안하신 세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1. 남들이 바뀌길 바라기에 앞서 ‘나부터 먼저 바뀌자’ 2. 서로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자’ 3. 이미 받은 은총에 감사하며 ‘신앙의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누자’ 우리가 이러한 다짐을 충실하게 지켜나간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고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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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정비오 비오 신부 : 2019년 1월 13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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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하느님의 크신 은총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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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많은 부분을 꿰차고 있으면서도 절대 자신을 추켜세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낮추어 보다 겸손하게 다가오십니다. 의외의 모습에 화들짝 놀랍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황하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그분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로움’을 이루기 위해 세례를 받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의로움은 좋은 일을 하면 상을 주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내리는 공정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뜻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주님이 죄 많은 우리 인간을 회개하도록 이끌어 용서하고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뜻합니다.

이제 그 약속이 세례자 요한을 통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는 그 순간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그분에게 내려오십니다. 눈으로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눈앞에 드러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례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계십니다. 그것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영이 늘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어둠에 몰려 있던 자아에게 사랑의 빛으로 환히 밝혀주십니다. 거기에다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이는 내가 사랑하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들어라.”오늘 제 1독서인 이사야서는 “주님의 첫째 노래”를 서술하며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실” 그분이 오실 것을 예고합니다. 이 예고의 말씀이 세례를 받는 동시에 현실로 드러납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 세례를 통해 드러납니다.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이 말씀은 지금의 우리에게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불림을 받았다는 표지임을 분명히 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새로 난 사람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그분의 손길에 우리는 새로 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받는 동시에 지금까지 우리는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받아가는 자녀로서 얼마나 효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신지요?

베드로 사도는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아무리 우리의 시선에 죄인처럼 느껴져도 주님에게 다가오고자 한다면 받아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자신의 죄로 구속받고 있는 공간에 머물러 있어도 다가오고자 한다면 받아 주어야 합니다.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편견에 갇힌 사람입니다. 편견 속에 자신을 구속하지 마시고, 하느님의 크신 은총, 세례를 통해 새로 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효심을 다하는 자녀의 역할을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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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김효식 이냐시오 신부
2020년 1월 12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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