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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청주]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시편67,7)
조회수 | 1,770
작성일 | 12.09.29
오늘은 우리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백가지가 모두 무르익고 성숙하는 한가위를 우리 조상들은‘좋은 시기’로 불렀으며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이 날을 가장 중요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시골이라도 상례에 따라서 쌀로 술을 담그고 또 닭을 잡아 찬을 만들며 온갖 과일을 따서 차려놓고 조상들을 기억하며 가족들과 함께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했습니다. 그래서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며 늘 한가위 날 같기만  하여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낸 한가위라는 풍속이
이런 것이 라면 우리 조상들은 이미 주님이 쏟아 주신 비와 햇빛으로 풍성한 결실을 얻고 하느님을 찬미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기에 온갖 열매를 땅에서 얻을 수 있고 그런고로 하느님을 찬송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낸 한가위 풍속에 의하면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누구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상들을 기리며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은 인간의 삶이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의식에서 나온 것인 만큼 하느님의 은총인 영원한 생명을 기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기도했다는 것은 이 세상의 삶에도 올바른 가치를 두고 생활했지만 다음 세상에 보다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고 생활한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오늘 고유 감사송에 의하면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과 섭리가 우리 조상들을 통하여 이 땅에서도 일어난 것이고 지금은 우리를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오늘 한가위 명절에
우리 조상들의 얼을 이어 받아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은총으로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면서 조상들을 위하여 영원한 안식을 기도해야합니다.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시편6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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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이대재 막시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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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감사” “기억” “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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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어릴 때의 추억은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온 가족이 모여 송편 빚고, 오랜만에 친인척을 만나 함께 성묘 다니고, 때로는 새 옷도 얻어 입었던 그저 즐거운 날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랜만에 친인척을 만나도 어릴 때 같지 않고 송편을 먹어도 그때 맛이 아니다. 그리고 조상들의 주검 앞에 자신의 죽음이 비춰지는 엄숙한 성묘 시간이 되고 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좋은 날, 한가위입니다. 모든 가정에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히 내리시길 빕니다. 한가위의 정신은 “감사”와 “기억” 그리고 “친교”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 생명을 자신의 살과 피, 그리고 뼈로 지금의 우리가 있도록 해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파스카 사건을 기억하면서민족의 정체를 지키며 살듯이, 우리는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정신들을 기억하며 오늘을 사는 데에 또 다른 힘과 지표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가족친지들과 함께 하는 만찬을 통한 친교가 새롭고도 풍요한 관계를 이루는 소중한 은총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감사” 와 “기억” 그리고 “친교”의 구체적 표현이 바로 제사(미사)와 성묘입니다. 그러므로 가벼운 이유로 함께하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제사(미사)와 성묘를 미리 앞당겨 지내버리는 모습은 하느님과 조상님들께 정말 죄스런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재화에 목숨을 맡기지 말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맡기면서 세상을 살라고 하십니다. 노후를 위해 지금 재화를 부지런히 모으고, 그 모은 재물에 마음 흐믓해하는 사이에 우리의 몸은 늙고 병들어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한가위는 하느님과 조상님들 사이에서 생명과 죽음을 묵상하고, 다가올 우리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을 향하는 새로운 깨달음의 명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오늘 한가위는 하느님과 조상님들을 위한 날이 되고 우리에게는 은총의 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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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백성수 시몬 신부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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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을 맞이하여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날입니다.
하느님과 조상님들을 기억하고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혈육의 조상뿐 아니라 천상의 삶에 눈을 뜨게 한 신앙의 조상들도 기억합니다. 부모와 이웃에 감사하고 그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명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합니다.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납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부모, 형제, 친척, 이웃을 만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의 정을 키우는 날입니다.

아무쪼록 지금 내가 여기에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처지와 환경이 어떠하든 주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니 만큼 찬미의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에는
“제사의 근본정신은 선조에게 효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과 뿌리의식을 깊이 인식하며, 선조의 유지를 따라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가족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데 있다”(제134조1항)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명절을 통한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나라는 다종교 사회이므로 종교의 신념을 표현하는 제례 방법이 다릅니다.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모처럼 만난 가족들이 서로 자기의 신념을 강요한다면 갈등만 커질 것입니다. 가족 서로 간에 성숙한 사랑이 넘쳐 나길 희망합니다.

우리는 우리 생명의 근원이신
부모의 은혜에 대한 보은에 남다른 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부모에 대한 효의 실천은 세 가지 양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첫째가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길이 전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벼슬길에 올라서 부모의 이름을 드높여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고 효도함은 돌아가신 후에도 제사를 통해서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으로써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생이 계속됨을 믿었고 살아계실 때와 같이 가족공동체와 계속적인 유대 관계를 유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사는
죽은 이들을 계속 공경함으로써 효도를 이어가는 방법이며 결국 제사의 의의는 은혜를 갚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하느님의 계명과 아무 마찰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나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고 예를 드리는 것은 신앙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이는 죄나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성균관’에서 명예학위를 받게 되셨는데 매스컴은 추기경님께서 과연 성균관의 예법에 따라 절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추기경님께서는 서슴없이 절을 하셨습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를 갖추었다면 그게 우상숭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천주교는 제사 문제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조상공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우상숭배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조상제사를 철폐하였고 이는 부모의 은덕을 망각하는 인륜을 저버린 짐승만도 못한 무리라고 하여 천주교 신자는 죽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1939년 12월8일에 이르러서야 교황청은
“조상의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닌 조상에게 효성을 표시하는 미풍양속이며 민족의 훌륭한 유산이므로 수용해야 하고 토착화해야 한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아픔이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사를 지냄에 있어서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신주 문제입니다.

신주는 밤나무로 만들었는데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그 신주에는 조상의 혼이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은 혼백(넋)의 갈림길이라고 믿었고, 이 혼이 의지할 곳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는데 떠돌아다니게 그냥 두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혼이 머무르도록 하기 위해서 안식처를 만들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주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 때는 바로 그 신주를 모셨습니다.
신주를 모신 것은 돌아가신 이를 섬기기 위해서는 볼 수 있는 상이 필요했고 신주는 바로 돌아가신 이의 상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돌아가신 이를 만나는 하나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 영혼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브서 9장 27절) 그리하여 천국이나 지옥, 아니면 연옥에 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죽은 이의 혼이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근본적으로 대치됩니다. 만약 죽은 이의 혼이 떠돌아다닌다면 세상은 난리판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하느님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허술한 하느님을 누가 하느님으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다 하느님의 권능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주를 모시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번은 제대 앞에 기억하는 분들의 이름을 달지 않았습니다. 바로 신주를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제사날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음식을 잡수시러 온다는 사상과 조상들을 잘 공경하면 조상이 복을 준다는 사상은 바꿔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돌아가신 분들이 음식을 잡수러 오시기 때문에 음식을 차렸다면 신앙과 위배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은 음식을 잡숫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이나 못해 드린 음식을 차려 대접함으로써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기억하는 것이지 조상이 와서 잡숫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고 복을 주고 안 주고는 조상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을 부르고 음식을 차리고 거기에 복을 기원하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들이 천상에 들지 않았다면 천상에 오르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천상에 계시다면
그분들이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심을 믿습니다. 제사의 핵심은 효요,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 천주교회의 전통적인 제사는 무엇입니까?

미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바치신 십자가의 죽음을 제사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하시며 이 제사가 계속 이어지기를 명하셨습니다.

명절에는
특별히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아직 천상의 영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 연옥에 계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의 기도와 희생으로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위령미사는 바로 교회공동체가 한마음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 자비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주 미사 봉헌을 하여 효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유한 미풍양속인 제사를 봉헌하며 세상을 떠난 조상이나 부모,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꼭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참고로 불교의 49재를 말씀 드립니다.
49재는 한마디로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 즉 불공입니다. 석가모니께서는 25세에 출가하여 6년의 고행을 한 후 득도하여 48년간 설법을 하셨고 49년째에 세상 나이 80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49라는 숫자가 중요하고 또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믿는데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49재를 치르는 날 사이의 기간을 ‘중유’라고 하여 이 기간에 생전의 업에 따라서 다음 세계가 결정된다고 봅니다. 즉 모든 중생은 천상, 인간, 축생, 아수라(싸우다), 아귀(다툼), 지옥의 여섯 세계를 윤회하며 이 가운데 아수라, 아귀, 지옥을 ‘삼악도’라 하여 고통과 지옥으로 가득찬 세계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49재는 죽은 자가 삼악도에 들어가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비는 불공입니다.

49일째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그날을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9재 미사를 봉헌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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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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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변치 않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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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공부 좀 해라.
뭐가 될려고 그러니…….”
“컴퓨터 게임 좀 그만 해라.
미사 시간에 졸지 좀 마라.
할 일은 하고 놀아야지…….”

결혼도 하지 않은 제가 양업관(예비신학생 기숙사)에서
고등학생 아이들과 살다보니, 잔소리 많은 엄마가 다 되어 갑니다.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지... 부모님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새삼 실감하며 삽니다. 그 나이 때는 다 그렇다고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할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제일 힘든 건 반복된 잘못으로 저와 아이들 사이에 믿음과 희망이 점점 흐려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하느님을 찾아가 따집니다.

“왜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나요? 저는 이 아이들과 계속해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하느님, 저 이제 어떻게 해요? 네?”

이런 저에게 하느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초대 양업관 담임으로 아이들과 살다보니 잘 키우고픈 욕심이 저도 모르게 생겼나 봅니다. 욕심이 생기다 보니 세상의 논리와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며, 정작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구해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불멸하는 유산, 곧 하느님이다.”(성 암브로시오)

공부, 능력, 외모, 재물, 건강……. 모든 것이 다 지나가도 하느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시다는 사실 말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변치않는 하느님처럼 저에게도 변치않는 사실이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말썽을 피우든 안 피우든, 성격이 좋든 안 좋든 이 아이들이 “내 아들들”, “교회의 아들들”이라는 사실을……

아이들 때문에 잔소리만 늘어가고 때론 내 맘대로 따라오지 않아 화가 날 때, 변치 않는 하느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잘잘못 앞에서 이러한 변치 않는 사실(하느님)을 간과하고는 살 수 없는 제 자신을 발견하며 다시 하느님 앞에 서게 됩니다.

“하느님! 부족한 저를 대하실 때도 이런 마음이셨어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모이는 한가위 명절입니다. 이번 명절은 가족 간에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변치 않는 사실(하느님=가족)을 마음으로 보고 느끼며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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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조덕희 대건 안드레아 신부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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