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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복음화로 세상에 희망을
조회수 | 886
작성일 | 15.10.17
[대전] 복음화로 세상에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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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현대인들은 모든 가치의 중심을 하느님 나라의 가치가 아닌 다른 데서 찾고 있습니다.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산업 자본주의가 문화 자본주의로, 시장 중심에서 네트워크 중심으로, 현실세계에서 가상세계로, 자기 발견과 자율의 삶에서 연기 연출의 삶으로 세상은 변화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특징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과거 니체는 ‘자라투슈트라’라는 사람을 등장시켜 “신은 죽었다.”고 외쳤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까지 하느님 나라의 가치로써 인정되던 진리와 선과아름다움의 가치 규범이 사람들에 의해서 죽었다는 말이고, 사람들의 관심이 하느님에게서 다른 데로 돌려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현대인들이 인생의 정치나 경제 문화와 사회, 그리고 사상과 가치 면에서 그저 즐길 수 있는 것을 찾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혼란과 어둠이 초래되더라도 자신의 뜻에 맞기만 하면 선택하고, 다른 이가 위험에 빠지더라도 내 뜻에만 맞으면 투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면서 사회에는 극도의 혼란과 어둠이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을 보면 희망을 잃어버려 자살자가 늘고, 희망의 날개를 꺾어버리고, 자신을 팽개쳐 버리듯이 사는 사람들도 늘어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즉 세상을 복음화하라는 명령입니다. 왜 우리는 선교를 해야 합니까? 게르하르트 슈뢰더독일 총리는 부헨발트 수용소해방 60주년 기념식에서“나치의 만행에 대해 독일은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질수 있도록 이 시기의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희생자와 가족들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이러한 행사는 매년 4월 나치 강제 수용소가 있던 독일 지자체별로 열려왔으며, 총리나 부총리, 대통령 등이 연방정부를 대표해 참석했습니다. 이러한 회개의 정신은 독일이 지닌 그리스도교 정신의 힘입니다. 그리스도교 문화는 항상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이켜 보며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복음화가 되지 않은 일본과 독일이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근본적 차이입니다.

우리나라가 복음화 된다고 하는 것은 곧 이러한 자기반성의 정신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정신적 문화의 힘을 기르는 것이 되어야 하고, 혼란과 어둠의 세상에 질서를 이루고, 빛과 소금의 역할이 요청되기 때문이며, 절망에 희망을 심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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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이창덕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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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전교 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이날을 제정하였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자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파견 설교로 전교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까지도 섞여 있는 불완전한 사람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시며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삼 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서’.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면서 지키게 하여’. 제자로 삼으라 하십니다.

주님의 마지막 말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것은 그 어느 때든지 ‘만민을 제자로 삼아야만 함께 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여정에 있다 하여도 ‘지금까지 그러한 것처럼 영원히 ’당신께서 함께 있을 것이라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힘입어 교회는 어느 시대에나 어떠한 조건과 차별도 없이 하느님 구원에로 만민을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복음은 결코 억지스러운 것이 아니기에 그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기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 기쁨을 교회 안에만 가두어둘 수 없어. 세상 끝날 까지 세상 속으로‘ 교회 밖으로 가져가길 외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교 주일을 맞아 우리 자신을 들여다봅시다. 주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셨지만 우리는 쉬이 그 길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서의 참된 기쁨을 우리 자신이 완전하게 맛보질 못 했기 때문일 것이고. 늘 세례를 베풀고 가르친다고 하여도 그 저 찰나의 기쁨 을 맛보기 때 문 입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그들의 일상 속으로、그들의 문화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거 기서 그들보다 먼저 그들의 마음과 생각, 삶 안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하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거기서 또다시 당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기쁨을 잊지 않고 주님의 현존을 바라보며 선교의 길을 떠날 때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될 것입니다.

전교주일을 맞아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선교를 위해선 먼저 각자가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고、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믿고、신앙의 여정을 충실히 걸어가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인 선교、그 길로 기쁘게 떠나는 제자가 되어봅시다.

▥ 대전교구 박요순 베드로 신부 - 2017년 10월 22일
  |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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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처음 왔을 때’(First they come)라는 시로 유명한 마르틴 니뮐러(Martin Niemöller)는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나 본히퍼(Dietrich Bonhoeffer)처럼 히틀러 나치에 저항하였고 후에 감옥 생활을 오래한 목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뒤 ‘제 2차 대전 책임백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당시 독일에는 세계대전의 책임을 나치에 전가하고 잔재를 청산하자는 여론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세계대전의 책임이 독일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있다는 내용이어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일곱 번이나 이런 꿈을 꿨습니다. 제가 주님의 심판대를 통과하고 있는데 제 뒤에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는가?’라고 물으셨는데 그는 당당하게 ‘아무도 제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해 주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 자리에는 히틀러가 있었습니다. 계속 반복되어 꾸던 이 꿈이 제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가 죽기를 바랐던 적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정작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 적은 없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은 것에 대해 모두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들은 전교주일을 지내며,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우리들에게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라고 하셨으며, 또한 토요일 복음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주님도 우리를 증언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람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웃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갖게 될 때에 비로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시는 예수님처럼, 책망과 무시보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먼저 다가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대전교구 민병섭 바오로 신부 : 2018년 10월 21일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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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 19-20).

10월의 마지막 주일을 한주 앞둔 오늘은 세상 모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와 노력을 다짐하는 전교주일입니다. 1922년 비오 11세 교황의 교서에 의해 제정된 전교주일은 1926년부터 전 세계 교회에 확산되어, 우리나라는 오늘, 유럽교회는 다음 주일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는 교회와 신자 본연의 사명인 “선교”(Mission)의 권리와 의무를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선교의 사명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남겨준 유언의 말씀으로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의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 “전교” 또는 “복음화”, 이런 말들 앞에 우리는 갑자기 부끄러워지고 몸 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전교는 우리 교회가 지니고 있는 가장 본질적 사명 가운데 하나이지만, “전교” 하면 왠지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도 사실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 아닌, 열심한 그 누군가의 몫이려니” 하고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0주년을 기념하여 교황 바오로 6세께서 1975년 성년을 마치며 발표하신 『현대의 복음 선교”라는 권고서에 14항에 보면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루가 4,43) 하신 구세주의 말씀을 교회는 잘 알고 있고, 강하게 의식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고린 전 9,16)하고 말한 성 바오로와 교회는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복음 선포를 위해서입니다. 즉 하느님 말씀을 설교하고, 은총을 베푸시는 수단이 됨은 물론 죄인들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성제로써 그리스도의 희생을 영속시키기 위해 교회는 존재하는 것입니다.』라고 지적하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청개구리”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말썽 많은 새끼 청개구리를 위하여 엄마 청개구리는 자신이 죽으면 냇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아생전에 엄마 청개구리의 말도 듣지 않고 말썽만을 피우던 새끼 청개구리도 엄마가 세상을 떠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엄마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냇가에 무덤을 세우고 비만 오면 엄마의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개골개골하며 운다는 것입니다. 하찮은 미물도 이처럼 마지막 유언의 말씀에 충실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어떠하겠습니까? 아무리 불효자라 할지라도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나시며 남기신 마지막 유언의 말씀을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유언의 말씀대로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심성인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유언을 남기시며 자신의 본 고향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남기신 이 유언은 단순히 2000년 전의 열 한 제자에게만 내리신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그분을 믿고 따르며 그분의 제자라고 하는 우리 모두에게 내리신 유언이기도 한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 19-20).

이처럼 선교는 주님이 우리들에게 남겨주신 마지막 유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하느님께서도 이사야 예언자를 시켜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세상에서 야훼 하느님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사야서 40,10에서 “너희가 바로 나의 증인이다. 야훼의 말이다. 너를 뽑아 내 종으로 세운 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나를 알고 믿게 하려는 것이요, 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려는 것이다.”(이사 43,10)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성령에 의하여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은 바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느님의 목적과 동일한 것입니다. 곧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찬양하며, 주님의 구원업적을 이 세상에 전하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이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전할 때에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이곳에서는 여러 자세 중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 만을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1. 무엇보다도 증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성령께 의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만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증인이시며, 우리들도 오직 성령을 통하여서만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시고 세상 끝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만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 14,26)라고 하셨으며, 또 “진리의 성령께서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 16,13)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증인으로서 하는 선교는 인간의 말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과 능력으로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1테살 1,5).

2. 복음의 증인이 가져야 할 또 다른 자세는 기도하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의 이유 때문에 기도하여야 한다. 하나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터 주셔서 그리스도의 심오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기 위하여(골로 4,3)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하시려는 사람을 미리 불러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게 하여 주십니다(2테살 2,14). 그러하기에 하느님께서 준비하여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적인 모든 노력도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올바로 그리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에페 6,19)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증인들의 참된 모델은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앞에서와 본시오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1디모 6,13)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선교가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게 하여 드리는 것(1테살 2,4)임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인간적인 말의 기교에 억매이거나 또는 인간적인 반응에 마음이 동요를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열정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주님의 참된 증인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한 본당에서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전 구역 신자화라는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각자 선교할 대상을 선정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각자 자기들이 선교할 대상을 정하여 봉헌 시간에 하느님께 봉헌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만은 아무도 선교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성질이 하도 고약하고 또 아주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종교라고 하면 모든 종교를 싸잡아 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당 신부님은 그 사람을 선교할 사람이 정말 없는가 하고 다시 한 번 신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서로 고개를 흔들며, 그 할아버지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자신이 그 할아버지를 인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림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그 다음날부터 매일 학교에 가면서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할아버지가 나오자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신부님께서 할아버지도 한 번 성당에 놀러 오시래요”하고 말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화를 내며 문을 확 닫아 버렸습니다. 그 소녀는 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집의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나오자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신부님께서 할아버지도 한 번 성당에 놀러 오시래요”하고 인사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화를 내며 다시 한 번 그런 일로 대문을 두드리면 혼날 줄 알라고 하며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그 다음날 학교에 가면서 다시 그 할아버지의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그 소녀를 때렸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웃는 얼굴로 똑 같은 말만 하였습니다. 학교에 가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그 소녀는 계속 그 할아버지의 문을 두드렸고 똑 같은 말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게 한 참을 지나자 그 할아버지는 생각하였습니다. 도대체 성당에 무엇이 있길래, 나한테 그렇게 혼나고도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가. 한 번 가서 보아야 하겠다하고 그 할아버지는 성당에 찾아갔고.... 그래서 결국에는 영세를 하여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선교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남겨주신 유언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결코 고아처럼 혼자 내버려 두시지 않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심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전교 주일을 지내면서 우리들도 우리에게 맡겨진 이 유언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미사를 지내면서 먼저 우리들의 마음에 선교의 용기를 심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이웃들의 마음에 주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여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성령을 믿고 힘차게 선교의 대열에 참여합시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우리를 통하여 이웃에게 전달될 때만이 더욱 우리를 새롭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십시오.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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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민병섭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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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성당이 골프장, 낚시터보다 더 좋은 곳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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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던 친구 둘이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주일 아침 성당 다니는 친구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어이, 친구, 오늘 골프 치러 가지 않겠는가?”성당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습니다. “고맙네만 나는 오늘 성당에 가야 한다네.”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런가? 나는 자네의 믿음에 정말 감탄사가 나오네. 내가 그동안 자네에게 일곱 번이나 골프를 치자거나 낚시터 가자고 했는데 성당 때문에 모두 거절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자네는 번번이 성당 때문에 내 청을 거절했는데 내 생각에는 성당이란 곳이 골프장이나 낚시터보다는 갈만한 곳이 못되는 것 같네.”이 말을 들은 성당 친구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성당이 골프장이나 낚시터보다 훨씬 중요하기에 친한 자네의 청까지도 매번 거절하지 않았는가?”그러자 다른 친구가 대답했습니다.“정말 자네에게 성당이 그렇게 중요한 곳이라면 왜 나에게 한 번도 같이 가자는 말을 안했는가? 나는 낚시터와 골프장이 정말 좋아서 자네에게 가자고 그렇게 청했는데 자네는 그런 적이 없지 않은가?!”이들의 대화는 여기서 끝납니다.

여러분들은 성당에 오시는 것이 정말 좋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그 좋은 곳을 함께 가자고 권하지 않습니까? 이웃에게 우리의 주님을 전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이웃 사랑이고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귀한 사람에게는 귀한 것을 선물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지요.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하는 한 주간되시기 바랍니다. 이상은 평화신문 오늘자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교황 베네딕또 16세는 전교 주일 담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교는 교회가 해야 할 첫째가는 임무입니다. 교회는 문화와 사화와 윤리를 복음화하며, 가난, 폭력, 인권 유린으로 억압받는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선교 명령은 참으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전교 주일을 통해 선교에 대한 더 깊은 인식을 도모하고, 우리 시대에 복음 전파를 위하여 교회 간 협력을 증진하고 새로운 선교사들을 육성할 수 있도록 적절한 영적 여정과 교육 여정을 함께 일구어가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선교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도입니다. 한 목소리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외치는 부름이 모든 공동체 안에 울려 퍼져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복음화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교구 소속 선교 사제들과 남녀 수도자들과 평신도 자원 봉사자들, 그리고 다양한 자격으로 복음 선포에 헌신하는 모든 이를 날마다 기도 안에서 기억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사도로서 진심어린 축복을 보냅니다.”이상입니다. 아울러 전교 주일인 오늘 예비 신자들과 쉬는 교우를 위해서도 기도해 드립시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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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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