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0 76%
[안동]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과 종의 모습
조회수 | 2,955
작성일 | 07.09.24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한다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기도를 했음직 합니다. 말씀에 따라 살려고 하는 신앙인의 모습에서 믿음은 구원의 선물이며, 다른 모든 선물의 토대입니다. 그래서 사도들 또한 직감적으로 자신들의 믿음이 굳세어져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이 정도라면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작은 믿음이 없는 자신을 보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믿음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단순하고 작은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하고 작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하고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지식이나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살지 않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큰 믿음을 가진 것도 아니고, 부자가 큰 믿음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작은 믿음은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은 자신을 종으로 생각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종은 농사를 짓고 가축들을 돌보며 집안을 돌보는 일을 합니다. 또한 그는 요리를 하고 식사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종의 할 일이 이런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나 종은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하잘 것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종의 모습을 실제로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나자렛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목수의 아들이라는 평범한 모습과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날에 스승이지만 제자의 발을 씻으시는 예수님의 종의 모습과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며 성부의 뜻을 기꺼이 따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겸손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결국 숨겨지지 않고 부활을 통해 다시 온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받은 달란트에 최선을 다하며 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며, 단지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그분께 무엇을 드리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잘못된 우리의 생각을 배격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무엇을 잘 했다고 해서 반드시 상을 주셔야 할 의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빚을 지고 계시지도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보상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무슨 일을 했다고 요구할 권리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저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라는 말을 할 따름입니다.

오늘 한가위를 맞아 가족이 함께 모여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총에 감사드리고 또 조상님들께도 감사를 드리는 소박하고 화목한 한가위를 맞이하실길 빕니다.

-------------------------------------------------------------------------

안동교구 최장원 라우렌시오 신부
460 76%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이날을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불렀는데, 중국에서도 월석. 추중(秋中)이라 하여 명절로 삼고 있다 합니다. 우리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과,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천고마비의 좋은 계절에 햇곡식과 햇과일이 나와 먹을 것이 풍성했기에 생겨난 속담들입니다. 이날에 사람들은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으며 새 옷이나 깨끗한 옷을 입는데 이를 추석빔이라 합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제수로는 햅쌀로 만든 떡, 술, 오색 햇과일로 마련하는데 이것을 천신(薦新)이라 하고, 차례를 지내고 나서 음복한 뒤 조상의 묘를 찾는 것을 성묘(省墓)라 합니다. 그리고 마을마다 여러 가지 놀이와 행사가 이루어지는데, 농악과 강강술래, 줄다리기, 씨름 등을 펼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 친척들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겼는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중로상봉(中路相逢) 또는 '반 보기'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반보기가 아니라 '온 보기'인 듯 시집간 여성들의 친정나들이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한가위는 수확기를 맞아 풍년을 축하하고, 조상의 덕을 추모하며 제사를 지내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으며 이웃끼리 인심을 나누고 놀이를 즐기는 명절로서, 예로부터 연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민족의 고유 명절을 맞이하여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데에는 사람의 역할보다는 자연의 역할이 더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연의 섭리를 이루어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림은 당연한 일입니다. 제 때에 비를 내려 주시고, 태양을 골고루 비추어 주시고, 오곡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하느님의 자비를 잊고 살아간다면 오늘 복음 말씀처럼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 하느님께는 인색한 사람(루가 12,21)"이 될 것입니다.

한가위는 풍성한 먹거리를 먹고 마시며 즐기는 데에 의미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생각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은혜를 갚는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집회 3,31)"이라는 말처럼 하느님의 은혜와 조상님들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앞으로의 일도 잘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축복으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이 땅에서 수고하는 모든 농민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땀흘려 농사지은 곡식과 과일이 없었다면 한가위의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요즘 국내에 수입된 중국산 먹거리들에 발암물질이 첨가되었다 해서 뉴스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요즈음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이 땅의 농민들에게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가진 바를 서로 나누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옛말에 "후한 쌀독에 후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우리 마음의 독을 넓게 가져 후한 인심을 지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갈수록 세상 인심이 각박해져 외롭고 배고픈 자들이 늘어난다는 요즘에 먹을 것을 서로 나눈다면 하느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배고픈 자에게 인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도 인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루가 9,13)"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한가위가 되어봅시다.

오늘 한가위를 맞이하여 우리 마음의 결실도 풍성하게 맺어 갑시다. 자연은 풍요로워졌는데 우리 마음이 풍요롭지 못하면 진정한 한가위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도 자연을 닮아 풍요로운 마음을 가져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냅시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으며 너희 주 하느님을 찬양하여라(요엘 2, 26)."

안동교구 권상목 요한 신부
  | 09.24
460 76%
조상님들을 기억하는 한가위

추석을 잘 지내고 계십니까? “실없이 웃음이 나오는 날, 밥 안 먹어도 배부른 날, 길이 막혀도 화내지 않는 날,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민족 대이동을 치르는 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랬으면 하는 날, 고향이 떠 오르는 날, 고향이 있어도 못가는 사람들이 생각나는 날, 돌아오는 날, 돌아 올 수 있어서 다행인 날,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욱 슬퍼지는 날, 돌아 갈 곳 없는 사람이 서성이는 날, 서성이다 괜히 붉어진 눈시울을 들어 달을 보는 날,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이리 저리 슬프고 힘들어도 이 풍성한 주님 은총에 감사드리는 날!” 누군가 추석 한가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랬노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표현들이 너무 많아서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렸습니다.

가을에 접어든 이 계절에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명절을 지냅니다. 그것은 곧 한가위 명절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설 명절과 더불어 한가위 추석 명절을 교회 안에서 거룩하게 지내왔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자 기억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의 조상님들을 위한 이 미사는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셨던 그분들을 위해 우리가 구태여 기도를 하고 복을 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오래된 유교의 관습이라고 치부해 버릴 분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열심히 살면 되지 구태여 돌아가신 분들까지 챙겨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어울리는 한가지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전 가난한 시절이었던 한국에서 집안도 가난하고, 도움 받을 곳조차 없는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던 어느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이 아가씨의 평생 소원은 돈을 많이 벌어 돈 걱정 하지 않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공장에 가서 일을 하면서 아껴쓰며 돈을 모으고 밤엔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가난한 부모와 집안을 불평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던 이 아가씨는 더 좋은 회사에 취직을 했고, 그러다가 어찌 어찌하여 말레이시아로 가서 그 나라의 최고 갑부였던 중국 사람을 알게 되어 그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같이 지내면서 이 아가씨는 늘 이 최고의 갑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느냐고.” 그러나 한번도 이 중국인 갑부는 이 질문에 답을 해 주지 않았고,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몇 년을 그의 곁에서 일을 도와 주던 아가씨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안 중국인 갑부는 송별파티를 크게 베풀어 주면서 그동안의 우정에 감사해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아가씨는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내 평생 소원이 돈을 많이 가진 부자가 소원인데 어찌하면 당신처럼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부자가 “그렇게 부자가 되고 싶느냐? 부자가 되는 법을 알고 싶느냐?”라고 묻더니만 이 아가씨를 데리고 어마어마한 자신이 살고 있는 저택의 뒷산으로 갔습니다. 그러더니 그 뒷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묘는 나의 부모님, 이 묘는 나의 조부, 이 묘는 나의 증조부.. 이렇게 5대 조상의 묘를 다 보여 주더니 하는 말이 “이 조상님들이 사시면서 고생을 하고 애써 준비를 하였기에 내가 이렇게 지금 부자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지금 현재 당신이 진정한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5대 뒤의 후손을 위해 열심히 길을 닦고 준비를 하라. 그러면 지금 당신은 가난하게 살더라도 5대 후손은 잘 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가씨는 정말 깨달은 바가 있어 부자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는 실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상님들의 은덕없이는 우리가 감히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공로와 고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서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조상님들이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에 비록 어려운 가운데서도 큰 걱정없이 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조상님들을 잊어버리고 지금 내가 잘 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큰 착오입니다. 나의 부모와 내가 있도록 해준 조상님들이 흘린 땀과 노고를 생각하고 현재를 살아갑시다. 그분들 뵙기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갑시다. 오늘 한가위를 지내면서 우리의 조상님들을 다시 한번 생각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하느님과 우리를 내신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기도드리도록 합시다. “주님, 그들에게 평화의 안식을 주소서. 아멘. ”

안동교구 차호철 세례자 요한 신부
  | 09.24
460 76%
조상 제사와 신앙의 토착화

오늘은 민족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내는 우리 고유의 풍습에 따라 각 본당에서는 합동 위령미사를 봉헌합니다.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 앞은 대개 꽃꽂이로 장식하지만, 추석 명절 미사 때 시골본당들은 흔히 차례상으로 제단 장식을 대신합니다. 본당에 따라서는 돗자리도 깔고 가족 단위로 나와 향을 피우며 큰 절을 올리기도 하면서, 효도의 마음으로 살아계실 때처럼 돌아가신 조상님을 섬기는 차례의 의미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바치는 위령미사로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천주교 교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전통적인 제사 예식과 미사를 비교해가면서 설명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의 전통 문화가 천주교 신앙에 결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습니다.

1962년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이라는 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타 종교에 개방된 입장을 표명하면서,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 안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내지 윤리적 선과 사회적 내지 문화적 가치를 긍정하고 지키며 발전시키기를" 모든 신자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는 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는 해에 공의회의 정신을 실현하고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사목회의를 개최하여 민족 문화의 고유한 유산을 계시의 빛으로 조명 수용하고,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토착화의 가능성을 탐구하여 적극 추진함으로써 민족 문화 창달에 노력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국 신자들의 의식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전통 조상 제사를 현대에 맞게 복음화한 제례 예식이 <상제례 예식서 시안>으로 발표되고, 주교회의에서 그 중에서 세 가지 안을 승인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족들이 함께 지내는 제례예식은 가정마다 지내는 방식이 다르고, 가족들의 신앙이 다른 경우도 많아, 주교회의가 승인한 제사예식이 쉽게 일반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신자들을 위한 교회의 관심과 배려에서 마련된 상제례예식 규정이 신자들의 각 가정에서는 일상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새로운 안을 추가로 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처음부터 일반적인 지침만 제시하고 각 가정의 관습에 맡겨야 할 불필요한 작업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규범적인 예를 중시하고 법식대로 시행할 것을 강요하는 유교에서조차 상제례만은 통일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새로운 제례예식을 제정하는 것 자체가 토착화의 본래 취지를 오해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가위 명절을 맞아 합동 위령 미사에 민족 고유의 풍습인 차례를 병행하면서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조상제사가 한국 교회의 초기 백년 동안에는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중국에 처음으로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들이 유교와 천주교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유교의 부족한 부분을 천주교로 보완한다는 보유론의 입장에서 한문 교리서를 저술하였으며, 조선의 유학자들도 유교의 문화 위에 천주교를 성공적으로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앙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편협한 주장으로 조상제사금지령을 발표한 교회의 결정은 하느님의 뜻을 가로막는 무리들로 예수님의 비난을 받았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외에 그 어떤 것도 절대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예수님의 단호한 가르침을 따라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진정한 토착화의 실현일 것입니다.

안동교구 권용오 마티아 신부
  | 09.24
460 76%
추석(秋夕)은 24절기 중에서 가장 좋은 시절입니다. 그래서 명절입니다. 태음력으로 달이 가장 밝고, 날씨가 가장 청명하며, 기온이 상쾌하고,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한 해의 첫 수확이 있는 때입니다. 이날에 어찌 축제를 열지 않겠습니까?

가장 좋은 날, 아니면 가장 고통스럽거나 슬픈 날 우리는 누구를 생각합니까? 가장 놀랄 때 우리는 어머니를 부릅니다. “어머나!” 서양 사람들은 God(하느님)을 부릅니다. “Oh my God". 그 어머니는 우리의 고향입니다. 물리적인 고향은 우리가 태어나고 묻히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정신적 고향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고향은 타향살이의 설움과 인생살이의 모든 고통과 애환을 용광로처럼 녹이고 감싸 안아 줄 것만 같은 넓은 품입니다. 고향을 생각하면 당연히 조상들을 생각합니다. 조상들은 우리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대 사안을 결단할 때나 입․출국 시나 중책을 맡게 되면 고향을 방문하고 묘소를 참배합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의 시선은 조상을 넘어 하느님을 봅니다. 그 하느님을 우리네 조상들은 천지신명(天地神明)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조상과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제사(祭祀)를 차례(次例) 혹은 다례(茶禮)라고 합니다. 차를 올리는 예식이라는 의미이겠지만, 하느님 차례, 조상 차례, 부모님 차례, 우리 차례라는 순서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질서 속에서 순리에 따라서 살았습니다. 제사 양식이나 미사의 감사송을 보면 조상을 부르고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고백하고, 미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하늘과 조상을 섬기고 가족 간의 회포를 풀고 정을 나누며 삶을 경축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진단하고 경축하며, 미래를 기약하는 축제가 곧 명절입니다. 축제는 삶을 축하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참 멋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없어지지만 우리의 고향은 없어지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영원한 이상향 유토피아입니다. 명절은 그것을 재삼 확인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며 내일을 기약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참 신앙인의 자세요, 참 인간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명절은 웰빙(Well being)입니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욕심입니다. 그중에서도 물욕입니다. 제사를 잘 지내면 후손이 흥합니다. 형제나 친지들이 우애가 있으면 제사를 잘 지냅니다. 서로 싸우면 제사를 잘 지낼 수 없습니다. 형제나 친척간의 싸움은 대부분 재산 문제에서 발생합니다. 우애가 있으면 단결하니 잘 살고, 싸우고 미워하면 단결을 파괴하니 못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세상 재물에 파묻히면 끝이라고 합니다.

철학자들은 현대인이 고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의 지주가 흔들린다는 말입니다. 흔들리는 이유가 물질주의, 쾌락주의, 개인적인 이기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명절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음식장만, 손님 치루기 등이 귀찮고 그래서 다툼으로 비화한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음은 하나의 은총이요 축복입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사는 모든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을 함께 기억하며 이 제사를 봉헌합시다.

정 일 가브리엘 신부
  | 09.12
460 76%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우리 민족고유의 명절 한가위입니다. 이번 추석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갑니다. 설과 추석 양대 명절에는 민족의 대이동이란 말이 적합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갑니다.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씩 걸려가면서도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추석에 꽂혀 있습니다. 그래서 지루하고 힘든 여정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추석에 고향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형편이 어려워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과 몸이 아파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 직업과 직장사정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향민이나 시설에 수용되어 못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명절에 고향에 갈 수 있는 사람이든 사정 때문에 고향에 못가는 사람이든 마음만은 고향과 그리운 사람들에게 가 있습니다. 이렇게 추석은 고향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도대체 추석명절이 무엇이기에 저마다 사느라고 바쁘다는 사람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여 서로 정과 사랑을 나누도록 강요(?)하는 것일까요?

추석의 기능을 4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추석은 조상을 기억하게 합니다. 햇곡식 햇과일을 차려놓고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해준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합니다. 우리 삶의 뿌리가 되는 조상을 생각하고 조상들의 음덕에 감사드림으로써 그분들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하게 해 줍니다.

둘째로 추석은 각지에 흩어진 사람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여 서로 만나게 하고 사는 얘기를 나누게 합니다. 그래서 궂은 일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좋은 일을 맞이한 사람에게는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게 해 줍니다.

셋째로 추석은 나와 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어렵게 사는 이웃도 돌아보게 해줍니다. 우리 조상들은 너무 가난해서 제사상 차릴 형편도 안 되는 집에는 쌀이나 제수용 재료를 주어 최소한 조상 앞에 차례 드리고 추석만이라도 식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옛날 가정에서는 추석이 되면 식구들뿐 아니라, 머슴들까지도 새로 옷을 한 벌씩 해 주던 전통도 있었습니다.

넷째로 추석은 여러 가지 놀이나 시합을 통해 공동체 정신을 길러주었습니다. 소놀이, 활쏘기, 줄다리기, 강강술래, 가마싸움 등을 통해 협동정신을 기르고, 서로 힘을 합쳐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지혜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추석은 오랜 역사를 지나오면서 민족적 축제로서 아름답고 풍요로운 정신으로 우리 민족에게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매년 추석명절을 지내고 체험하면서 위를 향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라는 인간의 도리를 익히고, 더 나아가 이웃들에게 인정으로 덕을 베풀고 살아야 함을 깨우쳤습니다. 그런 면에서 추석명절은 인성교육의 장이며 덕을 기르는 학교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예화의 결론은 하느님도 이웃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인 삶은 어리석은 삶이며,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과 나누며 사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사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매년 지내는 추석은 우리 민족에게 오늘 복음의 가르침을 미리 깨우쳐 주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조상을 넘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제자리에 놓는다면 추석은 그야말로 복음을 배우는 학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추석에 담긴 풍부한 내용을 잘 실천하려 노력한다면 추석은 보다 더 충만한 복음적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추석을 맞아 먼 길 달려 고향에 오신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추석명절을 자신만을 위한 추석으로 만들지 말고 달리 말해서 자신을 중심으로 추석을 지내지 말고, 가족 모두에게 뜻 깊은 추석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추석명절에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거나 TV 앞에만 앉아 있지 말고, 집안 어르신들과 다정하게 얘기 나누는 시간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찾아보지 못했던 친구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 문안이라도 드리는 여유도 가져보시면 더 좋을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건성으로 머무는 추석이 아니라, 마음을 내고 정을 내어 가족이나 친구들의 가슴을 훈훈한 인정으로 채워주는 추석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추석을 지낸다면 훨씬 의미 있고 가슴에 남는 추석이 될 것입니다.

안동교구 김학록 신부
  | 09.29
460 76%
[안동]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

얼마 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롯데 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형과 아우, 아버지와 아들간의 다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둘째 아들의 경영권 확보로 귀결된 듯이 보여지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피도 눈물도 없는 처절한 싸움에서 가족 간의 유대 관계는 깨어졌고, 오랜 세월 함께 회사를 일구었던 일꾼들은 형제간의 힘겨루기에 줄서기를 강요당하거나 혹은 오랜 우호적인 관계를 배신으로 결말을 내어야 했습니다. 한쪽은 승리를 쟁취했고 다른 한쪽은 패배자가 되어야 했지만, 이대로 그냥 막을 내릴 것도 아닌 듯합니다. 패배자는 전열을 가다듬어 언젠가 반격할 준비를 하겠지요. 이젠 형제간이 아니라 원수가 되어 한쪽은 지키기 위해, 다른 한쪽은 빼앗기 위해 온 힘을 쏟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비정한 관계이고 비정한 세계입니다. 경영권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혈연 공동체의 사랑과 헌신보다 대단할까요? 반문해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즉 재산(돈)은 곧 권력이고, 그 재산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돈으로 사람을 사서 부릴 수 있고, 어제의 적도 오늘의 아군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은 거의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을 얻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정 자신을 믿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관계가 될까요? 정말로 모든 것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들이 진정 자신의 것이고 자신을 지켜줄까요? 혈연 공동체를 무참히 깨버리고 사람들을 배신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얻어진 결과로 참으로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얻어진 모든 것은 또 다시 그렇게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키기 위해 더 많은 권모술수와 배신을 감행해야하고, 함께 했던 동료들이 자신을 배신할까 끊임없이 감시해야하고, 빼앗긴 원수가 언제 반격을 할까 노심초사 걱정해야 합니다. 행복하기보다 불안한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지겠지요.

오늘 복음은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15)고 이야기 합니다. 나아가서 “자신을 위해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은 그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주인은 한 분 하느님이십니다. 재산과 힘이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하느님 외의 다른 우상(재산, 권력, 명예…)은 우리에게 참 생명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 말씀처럼 하느님을 위해 부유해져야 합니다. 곧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위해 부유해지는 길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나눔과 섬김의 삶입니다. 가진 바를 나누고 이웃을 섬기는 삶이야말로 하느님을 위해 부유해지는 길입니다. 자신을 위한 재물은 결국 인간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어 갑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속에는 잘된 농사에 감사하고 햇곡식과 햇과일을 만들어 조상을 기리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후한 인정과 미풍양속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넉넉하지 못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었지만, 따뜻한 정과 나눔을 실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상들의 미풍양속이 지금 이 시대의 우리들 삶 안에서 실천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이웃을 위한 나눔의 실천이 우리들의 관계를 살찌우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가지 않을까요.

이번 추석은 가족 간의 사랑의 관계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채워나가면 좋겠습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명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즐거운 시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시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지고 배려한다면 더 즐겁고 행복한 추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의 명절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 곁에서 함께 추석의 기쁨을 맞보지 못하는 분들이 있음도 함께 기억하고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안동교구 배인호 베드로 신부
  | 09.25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527   [수도회] 마음의 가난  [7] 2157
526   [서울] 주님, 이런 이야 당신의 얼굴을 찾는 족속이니이다  [4] 2243
525   [청주] 행복론 최고인기  [1] 29
524   [마산]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 1783
523   [춘천] “웃으면 복이 와요.”  [2] 1762
522   [수원]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니…”  [2] 1828
521   [의정부] 행복을 찾아 낸 바보들  [2] 1728
520   [대전] 행복에 관한 복음 말씀  [2] 1945
519   [인천] 나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불행한 사람일까요?  [4] 2400
518   [원주] 행복선언  [1] 13
517   [안동] 성인의 조건  [1] 508
516   [광주] 성인 聖人  13
515   [부산] 행복 선언  [5] 2322
514   [대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3] 2518
513   [전주]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는 사람  [3] 1924
512   (백)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독서와 복음 (11월 1일) (참행복 선언)  [11] 1899
511   [수도회]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야할 복음  [6] 1827
510   [마산] 신앙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8] 2340
509   [청주] 행복에로의 초대  [2] 502
508   [수원] 선교는 신자들의 진정한 생활의 표양이다.  [9] 2120
1 [2][3][4][5][6][7][8][9][10]..[27]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