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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단순한 삶
조회수 | 468
작성일 | 16.11.12
[수원] 단순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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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9월 2일 진사리 성당으로 이동하는 날,
내 눈을 의심케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1톤 트럭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 흐르려는 내 짐들이었다. ‘언제 저렇게 많아진 거지? 내가 워낙 키가 큰 까닭에 맞는 침대가 없어 침대도 가져가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짐이 많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너무 많네’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동하는 내내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을 따르는데 필요한가?’라는 자문을 했다. ‘그 많은 짐들이 주님이 아닌 내 편리함만을 위한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과 환전꾼들로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신다. 복음 말씀을 묵상하는 내게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상인의 모습이 다가왔다. 소, 양, 비둘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 봉헌하는 제물이다. 성경에서도 드러나듯이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키운 가축 중에서 그것도 가장 좋은 것을 골라 하느님께 제물로 바쳤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대신해서 바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방해하는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과 상인들 옆에서 돈을 바꿔주는 환전꾼들이 예수님 눈에 띈 것이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하느님께 참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봉헌할 제물을 정성 다해 키우지 않더라도, 편리하게 돈만 가지고 오면 충분히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께 제사만 드리면 내 의무는 다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왜곡되고 더럽혀진 성전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열정에서 몸소 정화하신다.

이제 우리 자신을 바라보자.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느님께서 몸소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을 성전답게 가꿀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 온전히 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과 맺은 관계에서 편리함만을 찾을 때가 있다.
아마도 한 번쯤은 경험했을 텐데,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내 바람만을 하느님께 요청할 때가 많다. 내 바람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얼마나 편한 일인가? 마치 종에게 일을 시킨 주인처럼, 일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기도가 아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오히려 단순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듯 정성껏 키운 소와 양을 제물로 봉헌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 각자의 삶 전체를 봉헌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삶을 봉헌하고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기도가 아닌가?

하느님 앞에서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것,
언제나 하느님의 성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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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인진교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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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자아실현이 아닌
자아제사가 드려져야 할 성전

영화 ‘공작’(2018)은 대북공작원인 실제인물 ‘박채서’를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의 핵심 내용은 박채서 씨가 흑금성이라는 안기부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할 당시 김대중 대통령 선거에 있을 뻔한 북풍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안기부에서는 그동안 선거가 있을 때마다 여당의 승리를 위해간첩침투와 비무장지대 폭격 등의 조건으로 북에 돈을 지불해왔습니다.

남북관계가 긴장관계 모드가 되어야 보수여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수여당을 지지해 준 자신들도 안위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채서 씨가 야당의 김대중 씨가 빨갱이라고 하면서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북에 도움을 요청하는 안기부와 집권여당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바치던 박채서 씨는 ‘북한이 무력도발 등으로 김대중 씨의 당선을 반대 한다면 오히려 김대중 씨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적합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정일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이용해 김정일을 설득하여 폭격을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김정일은 그의 말을 듣고 폭격을 해 주려는 마음을 접습니다. 이에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고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흑금성 박채서 씨는 그 덕분으로 이중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게 됩니다.

안기부라면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안기부가 자신들의 개인적 안위를 위해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원치 않아 오히려 자신들이 맞서 싸워야하는 북쪽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내용은, 물론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무엇이 조직을 오염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조직은 그 조직의 정신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다면 오염된 것입니다. 어느 단체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단체는 본래의 정신을 잃습니다. 가족이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서로를 이용한다면 그 가족이 오래 유지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염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정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이유가 이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성전은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여 자신 안에서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기도의 장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전에서 오히려 자아실현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권력과 돈, 명예와 쾌락 등을 추구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실현되는 장소이지 내 뜻이 실현되는 장소여서는 안 됩니다.성전이 이렇게 오염되어 버렸다면 성전의 주인은 어때야할까요? 당연히 그 성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화해야 할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채찍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과 환전꾼들의 책상을 뒤엎고 그들을 성전에서 몰아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도 작은 성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사시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안위를 위하는 마음이 정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은 또 장사꾼들의 소굴에서 견디셔야합니다.

레위기에는 성전에서 어떤 제사가 봉헌되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제사는 총 다섯 가지, 번제-곡식제-친교제-속죄제-보상제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지금 우리 자신의 성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살라 바치는 봉헌의 제사이고, 곡식제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드리며 참 주인은 주님뿐이라는 신앙 고백이며,그리고 친교제는 친교는 나눔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재현하는 제사이고, 속죄제는 자신의 죄를 위해 죄를 지은 장본인인 자기 자신을 바치고 더 나아가 그 보상으로 보상제까지 거행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제사가 성막을 지은 다음 당신 성막 안에서 드려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을 제사지내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 안에서 자아실현의 형태로 살아나려 한다면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제사가 봉헌되지 않는 제단은 의미를 잃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제단이 있고 그 제단에 자기 자신이 봉헌되어야 주님께서 머무십니다. 봉헌이 곧 순종입니다. 돌로 된 성전만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주님께 봉헌되는 참된 성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성령의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몰아내는 작업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2018년 11월 9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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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베드로 대성전이 신축되기 전까지
교황의 거처였던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라테라노 성전에 들어가면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되었던 식탁이 대표적인 유물로 남아있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한 식탁은 그 위에서 성찬례가 제정된 숭고한 유물입니다.

저는 그 유물을 보며 생각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성찬례가 교회의 중심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모습을 묵상하곤 합니다. 교회의 성찬례는 바로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 잔치를 상징합니다. 한 아버지를 둔 교회 가족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식탁 주위에 진정 ‘가족’으로 모여야 합니다. 분명 성당도 그런 분위기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 가족이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꼭 성공해야만, 혹은 성공을 위해서만 가야 하는 곳이라면 참 가족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부모에게 사업자금을 챙기기 위해, 혹은 다른 형제들보다 성공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찾아가야 하는 곳이라면 그런 가족은 가족의 참 의미를 잃은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거대한 라테라노 대성전을 보면
그 거대함 속에 약간은 성만찬 식탁의 의미가 묻혀버린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성당이 너무 크고 화려해서 전통시장처럼 편안한 것이 아니라 백화점처럼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백화점이 크고 화려한 이유는 그 크고 화려함에 비해 우리가 얼마나 초라한지 느끼게 만들어서 새 옷을 사게 만들고 새 구두를 신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성당이 백화점과 같아서
그곳에 온 가난한 사람들이 주눅 들게 된다면 오늘 복음에서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채찍을 들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저도 본당신부를 할 때,
어떤 분의 “신부님은 돈 있는 사람들과만 어울리세요!”라는 충고의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따로 돈 있는 사람들을 만나려 한 적은 없었지만 사실 사목회나 본당에서 굵직한 여러 봉사를 하시는 분들은 비교적 넉넉한 분들이었기에 가난한 분에겐 그렇게 보였을 것 같습니다. 교회 시스템 자체가 가난한 이들은 바빠서 봉사할 수 없는 처지이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봉사하며 사제와 어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예수님께서 원하신 성전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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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금관의 예수’에서
거지는 신자들이 성탄 미사를 마치고 갈 때까지 밖에서 떨고 있어야 했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이들은 자녀들 대학 걱정, 새로운 사업에 대한 걱정들을 아기 예수님께 쏟아붓고 갔습니다. 내년에 잘 되게 해 주면 비단 이불과 금관을 씌워주겠다고 아기 예수님께 약속하고 떠났습니다. 거지는 그들 틈에 끼일 수 없었습니다. 부자들이 자녀들에게 공부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고 손가락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 돌아가고 아기 예수님께 자기 누더기를 벗어 덮어준 사람은 바로 그 거지였습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린 사람은 거지 한 명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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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시하는 교회를 말한다면 부자들로서는 역차별이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교회에 부자들도 부담 없이 올 수는 있지만, 부자인 교회에 가난한 이들이 편안하게 올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지역보다도 부자 동네에 가톨릭 신자 비율이 높다는 것은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가난한 이들도 부담 없이 성당에 나와
주님을 찬미하게 할 수 있을까요?
백화점의 모습이 아니라
전통시장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면 됩니다.

교황이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에게
로마로 들어오는 돈 수레들을 보며 “‘이제 나는 은도 금도 없소!’라고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토마스도
“맞습니다.
‘자 일어나 가시오!’라고
말하던 시대도 지났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라테라노 성전의 최후의 만찬 식탁은
황금 장식품으로 거의 가려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으로 화려하다!”라는 감탄이 나오는 성전이 아니라
‘내가 꾸미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는 성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거지라도 자기 누더기를 덮어드리고 싶은
추운 겨울에 떨고 있는 아기 예수님과 같은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지도 부담 없이 성전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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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튜브에
「자신을 끔찍이 학대한 주인을 법정에서 다시 만난 반려견」이란 동영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행인이 쓰레기통 안에서 개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여행 가방 안에 넣어져 버려진 개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주인은 동물 학대죄로 7년이나 이어지는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개가 죽었는지 알고 가방에 넣어 버렸다고 말했지만 실상 학대를 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재판관은 그럼 마지막으로 개를 만나보게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7년 만에 주인을 만난 개는 멋쩍어하는 주인과는 다르게 바로 달려가 꼬리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자신을 가방에 넣어 버릴 때부터 개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이 그전에는 개의 그런 반응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반응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교회도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난한 이가 필요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한겨울 마구간에서 벌거벗고 추위에 떨고 계셨습니다. 어른이 된 예수님은 세상에서 박해받고 옷 벗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헛간이라도 있다면 좀 쉬고 가시라고 내어드리고 싶고, 수건 한 장이라도 있으면 그분의 얼굴에 묻은 땀을 닦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게 만드는 삶을 사셨습니다.

교회가 이런 모습을 되찾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을 허물라고 하시며 참 성전의 모범이 십자가에 매달린 당신 모습이어야 함을 깨우쳐주려 하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나 성당이
온전한 성전의 모습을 유지하려면
십자가의 예수님 모습을 닮아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이 성전입니다.
그대로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짓는 성당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가난함으로 지어진 성전이라면 가난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성당이 되려면 가난한 이들보다 더 가난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넘어 가난한 이들이 필요한 교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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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20년 11월 9일
  |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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