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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정부/서울] 이웃과 함께하는 삶
조회수 | 205
작성일 | 17.08.11
[인천] 이웃과 함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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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기억이 하나 떠올려집니다. 아마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담임 선생님께서는 산수(요즘에는 초등학교에서도 수학이라고 한다면서요? 하지만 제 때에는 산수라고 했기 때문에 산수라고 씁니다)를 무척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채점을 한 시험지를 나눠주시고는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0점 맞은 사람 일어나.”

한두 명이 자랑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한 이 친구들에게 ‘박수’를 쳐주라고 말합니다. 박수를 치고 난 뒤에는 이번에는 “60점 이하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는 반평균을 깎아 먹는 X이라는 말, 돌대가리라는 말 등을 퍼부으시면서 사랑의 매를 때리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60점만 되어도 잘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00점에 비교하면 형편없이 낮은 점수라고 할 수 있지만, 틀린 것보다 맞은 것이 더 많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우리의 삶이 꼭 100점처럼 완벽할 수 없습니다. 절반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합니다. 제가 사제 서품 받기 전에 어떤 선배신부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본당신자 100%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정말로 훌륭한 신부일까? 아니야.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어. 딱 51%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도 훌륭한 신부야.”

다른 이들을 누르고서 1등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 꼭 성공한 인생이 아닙니다. 최고만을 지향하다보니 다른 이들이 경쟁상대로만 보이고, 그래서 늘 혼자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과연 행복할까요? 그보다는 절반 정도의 삶을 살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삶, 그러면서 절반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면 진짜로 성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이 세상 안에서 최고의 자리를 탐내지 마십시오. 또한 나만을 생각하는 삶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밀알 하나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나의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진짜 성공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만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만족을 주는 이 세상의 1등 삶이 아니라, 영원한 만족을 주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1등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금 갖추고 있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나를 당장 죽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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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17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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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당신에게 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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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로 남아 있으면 나는 나일뿐입니다. 당신에게 나를 강요하면 당신은 내게서 더 멀어져 역시 나는 나이고당신은 당신일 뿐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나누어지면 나는 당신이 되고 당신은 내가 됩니다.

하나인 내가 여럿인 당신들 안에서 수많은 내가 되는 것입니다. 나와 당신 사이가 메워져 모두가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나누어지는 만큼 나는 더욱 커집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변화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변화에 나를 맡기기가 솔직히 두렵습니다. 나를 나누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이요. 이는 참을 수 없는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이 되고 당신이 내가 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지만 그 때를 기다리며 나를 나누고 나눌 만큼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나만 나누어야 하는지 이기적인 어리석은 물음이때 없이 밀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내가 되심으로써 나를 당신으로 만드셨음을 믿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내게 먹히심으로써 나를 살리셨음을 믿기에 당신 안에 나를 나누는 아픔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당신에게 기쁨과 희망을 심는 사랑을 살고 싶습니다.

당신과 내가 하나 되는 아름다운 순간에 도달하지 못해도 그날을 바라보며 기꺼이 나를 나누는 기쁨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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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2017년 8월 10일
  |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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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는 것을 ‘삽질하다’라고 말하지만, 아마 다른 의미로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헛된 일을 한다는 의미로, 별 성과가 없이 삽으로 땅만 힘들게 팠다는 데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인 헛된 일을 의미하는 삽질을 참 많이 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저 역시 삽질을 참 많이 했습니다.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야구부에 들어갔던 적이 있고, 기타리스트가 되어 보겠다고 방학 내내 기타만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바리스타 등등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것에 쏟아부은 돈과 노력을 생각하면 분명히 삽질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삽질로 끝난 것일까요?

별 성과가 없는 것 같지만 분명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미난 일을 하면서 재미난 인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추게 된 것도 내 삶에 또 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도 의미 없는 삽질은 없습니다. 실패에도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의미를 찾아가는 삶 안에서 나의 소중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땅에서 새 생명으로 싹이 터, 본디 그것을 낳은 식물의 본성을 드러낸다는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실제로 당신의 몸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교회가 무수한 밀알로 싹이 터서 성체라는 생명의 빵으로 구워졌으며, 그 빵을 받아 모시는 우리 안에서 몇 곱으로 늘어났습니다.

죽음 자체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음을 교회의 역사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죽음으로 이제까지의 모든 일이 의미 없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이 생명을 잃고 얻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어에서 ‘생명’이라는 낱말은 영혼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옳은 방법과 그른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 안에서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른 방법이고, 하느님의 모습 안에 있는 영혼을 사랑한다면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결국,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삶,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섬김의 길은 우리를 영광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삽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삽질’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광을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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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0년 8월 10일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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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안에서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생에서의 모든 것이 끝나고
단순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에게 죽음은 하나의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람,
이웃을 사랑한 사람,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던 사람은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성인과 성녀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광만을 위해서 산 사람,
이웃에게 상처를 준 사람,
회개하지 않았던 사람은 어둠의 세상에 머물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 또한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전구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입니다.
평생 군인으로 살았던 분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최장수 시장이었던 분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삶의 길이 언제나 영광과 행복이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 양심을 속이기도 했고, 때로 갈등과 번민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생에서의 공과 허물은 묻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생에서 가장 뛰어났다는 사람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보다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도록 주어진 하루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교회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살라 처형하였습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순교하였지만 교회는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교회의 보물은 화려한 건물, 진귀한 그림, 황금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외로운 사람,
병든 사람이 교회의 보물이었습니다.

후배 신부님도 비슷한 일을 하였습니다.
코로나19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우들에게 1,000불씩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취지에 공감한 교우들 중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굶주리고,
지금 헐벗고,
지금 아픈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주님께 해 드린 것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였습니다.

‘울지마 톤즈’에 이어서 ‘부활’이 개봉하였습니다.
울지마 톤즈는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기억하는 영화였습니다.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나병환자들의 발에 맞게 신발을 만들어 주었고,
꿈이 없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서 희망을 전해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건강이 악화되어서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고,
톤즈의 아이들과 교우들은 신부님을 기억하며 고마워하였습니다.

부활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썩었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던 학생들,
신부님과 음악을 함께 했던 학생들,
신부님과 정이 들었던 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신부님과 함께 했던 학생 중에는 의사, 약사, 공무원이 많았습니다.

지금 의대에 다니는 학생도 4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남수단의 교과서에도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신부님은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180여명의 제자들은 신부님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자들 모두 이태석 신부님께서 보여주신 희생의 길, 사랑의 길, 나눔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참된 부활의 삶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병든 이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살아가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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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20년 8월 10일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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