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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수원] 죽으면 열매를 맺는다
조회수 | 201
작성일 | 17.08.11
[청주] 죽으면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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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2고린9,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소유한 것이 무엇이든지 하느님 앞에 씨를 뿌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탈란트, 시간을, 능력을, 물질을,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몇 갑절로 늘려 주셔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의 밀알을 심는 것은 열매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원하면 그만한 정성과 사랑으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밀알이 땅속에 묻히면 죽어서 싹을 틔우게 됩니다. 만약에 씨앗이 땅속에 묻히길 거절한다면 아마도 새한테 먹히거나 짐승한테 밟혀 으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묻혀야 합니다. 밀알이 땅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어짐을 뜻하지 않고 생명을 낳기 위하여 뿌리를 내림을 뜻합니다. 사실 죽는다는 것은 곧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얻기를 원하는 만큼 심어야 합니다. 얻기를 원하는 만큼 죽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예수님의 죽음은 생명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진정한 생명을 위하여 감당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그리고 더 높은 가치 때문에 지상의 생명을 거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과 그분의 나라 때문에 지상의 매력에 집착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삶 안에서 이웃을 위하여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생명의 기쁨이 더해집니다. 지금 세상에 대해 죽으면 매 순간이 새 생명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12,2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하고 결국 그리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함께해 주시고 또 영광스럽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감당하고 있는 모든 일상의 삶을 기왕이면 밀알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기억하는 라우렌시오 성인은 “로마 교회의 부제직을 수행하고 거기에서 거룩한 피의 봉사자로 일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성 아우구스띠노) 그는 모진 박해를 예상하고 교회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으며 “나는 주 하느님을 경배하며 그분만을 섬기니, 네 잔인한 고초를 두려워하지 않는도다.”하며 믿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바로 그 믿음의 씨앗이 오늘 우리에게 신앙의 열매로 주어진 것입니다. 과연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입니다”(성 예로니모).

일상 안에서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상대를 위한 배려를 하다가 그만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당신도 바뀔 때가 되었지 않느냐! 이제는 철이 들 때가 되었지 않느냐! 왜 나만 양보해야 하느냐! 이제는 당신차례야!”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은 남에게 미뤄야 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묻혀 썩어야지 남이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12,24). 그렇다면 열매를 맺고 안 맺고는 나의 죽음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차례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색을 내지 말고 끝까지 항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그날까지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기쁨을 차지해야하겠습니다.

지금은 미약하게 보일 지라도 풍성하게 해 주시는 주님을 믿고 밀알의 두려움을 극복하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의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필리2,13). 그러므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2코린 6,1).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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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17년 8월 10일
463 57.2%
[수원] 준 것을 기억하지 않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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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솔제니친이 쓴 ‘암병동’이란 책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병원에 환자들이 누워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주제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 또 어떤 사람은 고상한 삶, 또 어떤 젊은 여자는 연애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읽으면서 우리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암이 걸려 당장 죽어갈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을 되찾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놓치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구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위해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으니 이웃을 위해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삶입니다. 어떻게 이웃을 즐겁고 행복하고 불편하지 않게 해 줄 수 있는가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입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당시 교황청의 모든 재정을 맡아보던 이였습니다. 그런데 황제가 돈이 필요하게 되자 교회를 박해하였고, 목숨을 담보로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교회의 재산을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모든 물적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가난한 이들을 황제 앞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재산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인은 달궈진 석쇠에 죽어야 함을 알면서도 본인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재산을 받아준 가난한 이들에게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채우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불쌍한 이들에게 후하게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치켜들리리라”(시편 112,9)라는 구절을 인용하며“기쁘게 주는 이”를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주는 것이 곧 내 의로움의 본성입니다. 주지 않으면 의롭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생명까지도 나에게 주셨으니, 나 또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려는 노력을 해야 의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기쁘게’ 주어야합니다. 어떤 분들은 십일조를 내는데도 더 가난해진다고 불평을 합니다. 십일조는 내가 부자가 되기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받았으니 그 받은 것들이 주님의 것이라며 돌려드리는 신앙고백일 뿐입니다. 더 주시고 안 주시고는 주님이 결정하실 일입니다. 그리고 기쁘게 바치는 이에게는 반드시 부족함 없이 갚아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당신 의로움을 넓히기 위해 후하게 내어주는 의로운 이에게는 더 주시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런 확신이 있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어떤 인도 거지들은 돈을 받아도 감사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신들 때문에 하늘에 재물을 쌓게 되니 오히려 자신들이 감사를 받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이웃에게나 하느님에게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나를 나로 살게 해 주는 이들이고, 그들 덕분에 내가 하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낳고 키웠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자신도 부모님으로부터 그렇게 키워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인도의 디팩 쵸프라는 아이들이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너희들은 이웃에게 어떤 좋은 일을 할 것인가만을 생각해라”고 되풀이해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자녀로 키우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너무 경쟁에만 치우쳐있고 아이들은 자기만 아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눌 줄 아는 자녀들로 키워야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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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2017년 8월 10일
  | 08.10
463 57.2%
로마의 일곱 부제 중의 한 분이신 성 라우렌시오(+258)는 교황 식스또 2세의 부제였다. 성인이 모시던 교황께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성인은 매우 슬퍼하였다. 이 모습을 본 교황은 라우렌시오 역시 삼일 안으로 당신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라우렌시오는 사형을 당할 때 석쇠 위에서 불에 태워져 순교하셨다.

그분의 일화 중에 석쇠 위에 누워서 한참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제 한 쪽이 알맞게 익었으니 뒤집어 놓게!” 하셨다고 한다. 이 성인의 순교를 통하여 로마가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고, 로마에서 이교 신앙이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의 문장은 석쇠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고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이 없어져야 한다. 여기서는 죽는 것으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모두 없어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죽는다는 표현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모두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거기에서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없이하는 것은 새로운 모습의 나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25절)라고 하신다.

복음에서 죽는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을 죽이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신앙인이기 때문에 대 사회적으로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이웃을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많은 경우에 나 자신을, 나의 의지를, 나의 고집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묵은 나를,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여 세상의 뜻을 따라가는 나를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조류를 역행하는,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어렵고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세상을 거슬러 살고 또 거기에 죽는 것을 견뎌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우리는 첫 발을 내딛기를 망설이고, 과감히 내딛지를 못하기 때문에 항상 제자리에 서있는 경우가 많다. 신앙인이든 다른 사회에서나 내가 여기에 멈추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있겠으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뒤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공동체의 일치의 대열에서 스스로를 이탈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26절)라고 하신다. 나를 죽이는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영광을 하느님 안에 있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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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17년 8월 10일
  | 08.10
463 57.2%
[수원] 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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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렌시오는 부제였지만
지금과는 조금 달라서 당시엔 바로 교황에 오를 수 있는 교황 수위권이 있는 부제였습니다.

그는
교황 시스토 2세 밑에서 교회의 재정을 담당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로마 황제 발레리오는 지하무덤인 지금의 칼리스토 가타콤베에서 몰래 신도들과 미사를 지내고 있었던 교황 시스토 2세를 그 자리에서 살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재정을 담당하고 있던 라우렌시오를 붙잡아
교회 재산을 반납하면 목숨을 살려주겠고 부자로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합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 재산을 정리하고 가져오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며칠만 기다려달라고 청합니다. 황제의 허락을 받은 라우렌시오 부제는 자신이 관리하던 모든 교회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리고는 약속된 날 황제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데려가,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교회의 재산은 물질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혼들이기에 라우렌시오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속은 것에 대해 화가 난 황제는
라우렌시오를 자신이 보는 앞에서 석쇠에 구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생선 구울 때 쓰는 것처럼 철망과 같은 석쇠 위에 올려놓고 밑에서 불을 때기 시작합니다. 산 채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매우 뜨거워야 하는데 라우렌시오는 오히려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불을 더욱 뜨겁게 올리라고 합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라우렌시오는 크게 외칩니다.

“이제 뒤는 충분히 구워졌으니 뒤집어 주시오.”

박해 때의 성인들의 믿음은 매우 영웅적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자살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은 자신을 위해 죽는 것이고 순교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자살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지만,
순교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증가시켜 더 많은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많은 경우는 자신의 명예나 자아가 실추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그것을 만회하거나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반대로 순교하는 분들은 자신을 미워하기까지 버리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순교와 자살은 완전히 정반대되는 죽음입니다. 내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자살에 가까이 가는 것이고 내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산다면 순교의 삶에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가치로 따질 때는 순교만이 좋은 열매를 맺는 죽음입니다.

일본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생명을 먼저 생각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일본 사람도 아닌 한국 유학생이 선로로 뛰어들었습니다. 기차가 오는 것을 알고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피하지 않고 사람을 구하려다가 자신의 생명까지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일본에선 전철 선로위에 떨어진 사람을 구한 사람 수가 8명, 10명씩 늘어났습니다. 너도 나도 뛰어드는 것입니다. 이수현씨가 많은 사람들 안에 깨어나고 있지 못하고 묻혀있던 사랑의 씨앗을 깨어나게 한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었으니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순교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였기에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그런 건 자살행위라고 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겐 그런 상황이 있으면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라면 옛 우리 순교자들처럼 자녀들까지 신앙을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말도록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영웅적으로 죽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적으로 자녀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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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2017년 8월 10일
  |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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