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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선조들 처럼
조회수 | 263
작성일 | 17.09.14
[청주] 선조들 처럼

순교자들이 처형되던 서소문 형장 가까운 곳에는 눈물다리라고 하는 누교(泪僑)하나가 있는데 한자로 ‘泪’는 ‘눈물 루’ 자로 흘러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아니라 흘리지 못하고 눈에 가득 괴어두어야 하는 눈물을 뜻합니다.

죽음을 당하는 순교자들의 가족들은 절대 울거나 통곡을 해서는 안 되는 조건으로 이 눈물다리에서 자기 육친의 마지막 비명소리를 듣게끔 허락이 됐습니다. 펑펑 쏟아도 시원찮을 눈물을 쏟지 못하고 눈에만 괴어 두어야 하는, 그래서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 하는 극한 상황의 아픔이 서린 다리였습니다.

이 다리에 얽힌 이야기는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4남매의 자식들을 둔 어머니가 천주교를 믿다가 붙잡혀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휘광이들의 칼이 원체 무뎠기 때문에 순교자들의 목을 한 번에 내리쳐 자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서 내리쳤습니다. 그러니 그 고통은 더 클 수 밖에 없었지요.

이런 사실을 아는 어린 자식들은 어머니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는 그날부터 쌀을 동냥하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등에 업혀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어린 동생을 달래가며 쌀 한 말을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사형이 집행되기 하루 전날 자기 어머니의 목을 칠 휘광이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는 이 쌀을 줄 터이니 자기 어머니의 목을 칠 때 제발 한 번에 잘라 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휘광이는 감동이 되어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마침내 사형 집행일이 되어 어린 자식들이 눈물다리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숨을 죽여 가며 목이 잘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기 어머니 차례가 되었을 때 아이들은 큰 소리로 자기의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이 소리는 휘광이와 미리 약속한 사인이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휘광이는 고개를 끄덕인 후 온 힘을 칼에 모으고는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이 얼싸안고 기뻐 뛰면서 “우리 엄마 목이 한 번에 잘렸다. 우리 엄마 목이 한 번에 잘렸다.”하고 소리쳤습니다. 자기 엄마가 처형당하기는 했지만 고통 받지 않고 한 번에 죽게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던 것이지요. 이러한 사연이 이 눈물 다리에 얽혀 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순교자들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만 매번 지내는 이 축일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옛날처럼 하느님을 배반하라고 총칼을 들이대는 사람은 없지만 세속과 마귀와 육신이라는 커다란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문이나 총, 칼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마귀의 온갖 유혹들이지요.

이런 것들은 언제 하느님을 배반하는지도 모르게 만들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늘 깨어있는 자세, 변함없는 기도, 하느님께 대한 항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일수록 더욱더 하느님을 가까이 찾으려는 열정을 갖고 있을 떄 우리 선조들처럼 하루하루를 순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청주교구 박창환 가밀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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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순교, 너의 몫이 아니라 나의 몫

“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 중, 사용하고 사용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인생을 살면서 쪼개어 나누고 나누어도 모자람 없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생명’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기에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생명이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선뜻 ‘생명’이라고 대답하지 못합니다. ‘생명’은 유한하다고 생각하면 소멸되어지는 것이지만, 무한하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생명의 시작이신 하느님께 자신의 생명을 되돌려드림에 용기를 낸 순교자들의 믿음을 봅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위해 던져진 생명. 아기를 살리기 위해 던져진 부모의 생명. 정의를 위해 던져진 의로운 이들의 생명. 복음을 위해 던져진 순교자들의 생명.

허무하거나 의미 없이 던져지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생명은 아이에게 이어지고, 순교자들의 생명은 하느님 백성들에게 이어져 새로운 교회의 생명으로 잉태되고 탄생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영원성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시작된 생명은 하느님께 되돌아가도 영원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용해도 줄지 않고, 아무리 나누어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 생명입니다. 다만 육체의 시간만이 길거나 짧게 보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숨까지도 하느님의 생명을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 내쉬어야 합니다. 주어졌기에 그냥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어줌으로 너를 채워주고, 나를 비움으로 너를 받아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순교란, 생명이 하느님의 것임을 보여주는 믿음입니다. 생명을 나누어야 함을 보여주는 사랑입니다. 생명이 영원함을 보여주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순교는, 너의 몫이 아니라 나의 몫입니다.”

▮ 청주교구 박진성 프란치스코 신부 : 2016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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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나의 ‘십자가’를 짊어질 용기를.

매년 9월 순교자 성월이 되면 우리들은 자연스레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신앙의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합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육체적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국 순교자들의 삶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분들의 삶에 대한 숙연함을 너머 “과연 나였으면?”이라는 질문을 갖게 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지금은 박해의 시대가 아니니 다행이란 생각을 갖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스레 여쭤보고 싶습니다. 과연 지금이 박해의 시대보다 신앙을 지키기가 훨씬 수월할까요?

독일의 어느 시골에 있는 수도원에 한국 신부 한명이 개인피정을 갔습니다. 그 수도원에는 80세를 전후로 하는 고령의 독일인 수도자 몇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동방의 나라에서 온 젊은 신부에게 이분들은 다양한 관심을 보이셨고, 특히나 젊고 역동적인 한국교회에 부러움을 표하기도 하셨습니다. 대화의 끝에 어느 한 노(老) 수도자가 조심스레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우리 수도원은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무일도 소리와 성가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끔직한 전쟁 속에서도, 나치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 수도원에는 젊은 수도자들의 아름다운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속화’라는 보이지 않는 무서운 힘에 지배를 받은 이후부터 이 수도원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세계 전쟁 중에서도 문을 닫지 않았던 우리 수도원이었지만 더 이상 입회자들이 찾지 않아 이 분원(分院)은 폐쇄를 결정하였습니다..”

분명 우리는 육체적 고통이 뒤따르는 박해의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성당에서 매일성체를 모실 수 있고, 고해성사를 위해 몇 달을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저버리게 만들 수 있는 유혹들은 박해의 시대보다 더 무섭게 주변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고통’과 ‘죽음’은 원치 않고 오직 ‘축복’과 ‘부활’만을 바라는 현대인들의 신앙풍조 안에서 이러한 유혹들은 더욱더 위협적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 말씀 안에서 주님께서는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합니다. 주님의 이 말씀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2독서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으시는 하느님이 나의 편”이라고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이러한 믿음으로 나의 ‘십자가’를 짊어질 용기를 지녔으면 합니다.

▦ 청주교구 김성우 이사악 신부 : 2018년 9월 23일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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