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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순교자 가문
조회수 | 304
작성일 | 17.09.15
[군종] 순교자 가문

우리는 가끔 누구누구의 ‘집안이 좋다’, ‘가문이 훌륭하다.’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요즘 시대에는 무엇을 보고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학력이나 재력, 가족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부모님의 학력과 재력이 좋은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에게 더 좋은 교육의 기회와 사회적 혜택이 주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현실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전시대에는 어떠했습니까? 모양만 다를 뿐이지 그 시대도 현대와 크게 다른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 시대에는 양반 가문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가문의 좋고 나쁨의 기준이 되었고, 양반 가문 중에서도 누구의 후손인가가 훌륭한 가문의 기준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좋은 환경에서, 좋은 가문에서 자라난 후손들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았습니다. 흐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싶어 하고 풍족한 가정을 꾸며가고 싶어 합니다. 다만 그것을 현재화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현실의 장벽입니다.

분명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그리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환경조차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신앙인으로서의 환경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신앙의 흐름을 지닌 민족입니까? 우리들의 몸에 어떤 피가 흐르고 있습니까?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순교자들의 후손이며 우리 몸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놓은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훌륭한 가문의 후손인 것입니다.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자발적인 신앙과 피로서 증거한 신앙을 물려받은 후손인 것입니다.

훌륭한 가문의 명성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그 후손들이 선조들의 업적을 본받아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이듯이 피로서 지킨 신앙이 오랫동안 지켜지기 위해서는 순교자들의 후손인 우리가 선조들의 그 정신을 기리며 삶을 본받아갈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순교, 현재 내가 있는 자리에서 순교하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회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에 휩쓸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에 우리의 몸과 마음의 중심을 두고 그분을 닮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또한 내가 만나는 동료들과의 작은 마주침 안에서 희생과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피로써 주님을 증거한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후손인 우리는 이 시대의 순교정신을 기꺼이 따라 살아 갈 수 있습니다.

▥ 군종교구 김태완(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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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신앙적 결단으로서의 순교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아마도 우리 한국 천주교회에게는 가장 특별한 대축일이며, 순교 성인들의 후손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품어야 하는 날입니다. 성교회의 무수한 선교 역사 중에서도 특별한 사례로서 평가 받는 것이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입니다. 그러한 신앙의 역사의 시작부터 엄청난 박해와 시련이 함께 이루어졌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당연한 역사적 실제의 사건이라기 보다는 마치 하느님께서 직접 이 땅에 역사(役事)하셔서 이루어내신 신비로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어렸을적 들었던 한국 순교 성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그때 잔혹하고 모진 고문과 박해를 견디어 내고,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자신의 신앙을 간직하며 증언했던 성인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순교 성인들께 가해졌을 단순한 폭행에 대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은데 여린 살갗을 불로 달궈서 시뻘건 인두로 지졌고, 심지어는 그 불덩어리를 입에 넣어 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 외의 성인들께 가해졌던 잔혹한 고문 방법들을 전해 듣고는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박해자들은 그토록 잔혹한 방법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할 수 있었으며, 이와 함께 천주교 신자들은 그 극심한 고통을 어떻게 감수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어린 마음에는 극심한 고문을 이겨내시고 기꺼이 순교를 선택하신 성인들께 놀라운 신앙에 대한 경탄과 존경에 못지않게 놀라움과 두려움이 너무나 컸습니다. 그러면서 제발 나는 그러한 위험에 처하게 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저는 신학생이 되었고 부제가 되기 전 30일간 영신 수련을 했었습니다. 피정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순교를 주제로 묵상을 했었습니다. 묵상 중에 내 자신이 순교 성인들께서 겪었던 것처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이유로 반대자들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있는 상상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고문 도구들을 들고 있는 박해자들이 머릿속에 떠올려지면서, 온 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묵상에서 벗어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잠심 중에 묵상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러한 고문의 고통을 견디어 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묵상을 마칠 수 있었고, 무척이나 평온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 결단의 순간이 단 한번으로 평생동안 지속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아무래도 지금도 순교에 관한 묵상을 다시 하게 된다면 하루 종일, 아니 한달 내내 끝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신앙인의 삶의 완성을 순교로 여기셨던 우리의 신앙 선조들께서는 정말 평온하고 순결하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죽음에 임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 이면에는 ‘성인들께서도 무척 고뇌하시고, 갈등하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조금의 갈등과 동요도 없이 그 모든 것을 평화롭게 받아들이셨다면, 아마도 성인들께서는 ‘이미 인간이기 이전에 천사들이셨지 않았을까?’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현대의 신앙인들은 일상의 사회 생활을 하면서 가끔 종교적인 문제와 충돌하게 되고, 그에 따른 선택과 결단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물리적인 강압만 없을 뿐 신앙 앞에서 현실의 환경은 많은 갈등을 제공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 생활에만 목표를 정하고 전력하기만 한다면 커다란 어려움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순교의 상황은 신앙 선조들에게만 허락된 특은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는 것으로 신앙을 선택한 것으로도 부족해 자신의 귀한 목숨과 맞바꿀 만큼의 진지한 선택과 결단을 보여준 우리 신앙 선조들의 모습이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후손들에게 가장 훌륭한 대답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 군종교구 우중근 신부
  |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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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현대적 의미의 순교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늘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모든 분들을 기념하며 그분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분들의 정신을 기리며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들은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목숨을 하늘나라를 위해서 바치셨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 바로 순교자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분들은 비록 지상의 육체적 목숨은 빼앗겼지만, 그로인하여 천상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은총을 받은 분들이십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과거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유롭고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의 박해시대가 아니기에 예수님과 우리를 갈라놓는, 즉 배교를 강요하는 박해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배교를 강요하는 외부적인 박해는 없지만, 배교를 강요하는 외적이고 내적인 유혹은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유혹을 늘 받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혹들… 예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외적이고, 내적인 유혹들이 현대적인 의미의 배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현대적인 의미의 순교는 바로 우리와 하느님 사이를 멀게 하는 죄의 유혹들을 단호하게 끊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주일 열심히 일하고 주일 날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편하고자 하는 유혹을 끊고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순교이고, 저녁에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방송들을 할 때, 그러한 방송들을 보고 싶은 유혹을 끊고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순교입니다. 또한 성당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는데, 그 사람이 보기 싫어서 성당에 안 나오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유혹을 끊어버리고 성당에 나오는 것이 바로 순교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오늘날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아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여러 가지 유혹들을 단호하게 끊고 자신을 희생하며 주님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박해시대에 우리를 예수님과 갈라놓는 피를 부르는 박해는 없어졌지만, 지금 현시대에는 주님과 우리를 갈라놓는 유혹은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강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현대적인 의미의 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순교자들의 순교 정신을 이어받아 주변에서 우리와 예수님을 갈라놓는 유혹들을 단호하게 물리치며 주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참된 순교의 정신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군종교구 김창환 베드로 신부
  |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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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작은 순교

순교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또는 그리스도적 성덕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세우기 위해, 또는 그리스도적 성덕(사랑, 인내, 용서, 가기 봉헌, 순종 등)을 보여주시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순교로 시작된 천주교는 그 기원부터 순교의 종교라 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교회 역사 속에서 수많은 박해의 시기가 있었고 많은 순교성인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대축일 역시 한국의 그러한 순교성인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대축일을 맞아 하늘에 계신 그 많은 순교성인들께서는 지금의 우리네 신앙모습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하실지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백년, 백오십년 전에 당신들이 믿고 있는 그 천주교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는데 당신은 그러한 신앙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바쳤습니까?’

오늘 우리는 한국의 순교성인들의 모습, 즉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셨던 그 모습을 통해, 각자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분들을 본받아 우리도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박해의 시기가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순교란 일상의 삶 안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과 이웃을 위해 활용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나의 모든 활동과 행동, 시간들이 하느님의 위한 봉헌으로 쓰여 질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무 어렵다, 대단한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과 내 주위의 이웃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을 다하고 사랑으로 다가서는 것, 나를 죽이고 용서하는 것,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직하려 노력하는 것 등이 오늘날 우리의 ‘작은 순교’일 것입니다.

▥ 군종교구 유원석 스테파노 신부 : 2016년 9월 18일
  |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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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단 열두 척의 배만으로 300여척의 일본 대군에 맞서 싸웠던 장군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해마지않는 이순신 장군입니다. 전력 차이가 너무 커서 모든 조선 수군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유명한 명언을 남깁니다.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 여기 있는가!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이 말과 함께 가장 먼저 적진으로 향했던 이순신 장군의 모범은 그 당시 조선 수군의 가장 큰 적이었던 ‘공포’를 ‘용기’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조선 수군은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공포라는 가장 큰 적에 맞섰던 이순신 장군의 한마디는, 놀랍게도 오늘 기념하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대축일 복음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6)하느님 때문에, 신앙 때문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셨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순교 선조들에게 있어서도, 그 순간 가장 큰 적은 두려움과공포가 아니었을까 묵상해 봅니다. 죽음에 대한공포,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가 마지막까지 순교성인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았을까 묵상해봅니다. 그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아는 우리기에, 그래서 그분들의 순교는 더욱 위대하고 아름답게 여겨집니다.

순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우리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두려움과공포를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순교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그 공포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만이, 순교를 선택할 수 있으며,이를 통해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동반하는 피의 순교는 아닐지라도, 순교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요청됩니다. 불의 앞에서 당당해 져야 하는 순간에, 하느님 뜻과 무관한 내 안의 욕망이 꿈틀대는 순간에, 사랑하고 용서하기 위해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에,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두려움과 공포와 싸우게 되며, 순교로 초대받게 됩니다. 그 초대에 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순교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패배일지 몰라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위대한 용기이자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 군종교구 최혁 베드로 신부 - 2017년 9월 17일
  |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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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물려받아야 할 것과 거부해야 할 것들......”

우리는 지금 순교자 성월을 보내고 있고, 특별히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기리고 있습니다. 한국 순교성인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 분들의 굳은 믿음을 새겨 봅니다. 하루의 짧은 순간순간에도 작은 일들 때문에 실망하고 흔들리는 저의 모습을 보며 남은순교자 성월만큼이라도, 아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 순교성인들처럼 굳건하고 담대한 믿음을 주님께 청해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순교성인들을 기념하는 오늘, 저는 성인들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인문화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왜 그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가? 도대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우리 모두가 고백하는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하느님이십니다. 그 어느 생명 하나도 죽음으로 내몰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들을 보면 이를 확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러 오신 예수님께서 죽음에 이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순교 성인들은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결국 기존의 지배이념과 흔들리지 않는 권력의 토대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그것에 반하거나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되면 그 누가 됐건 죽음으로 내모는 조선시대의 모습, 그로 인해 이름 모를 우리의 선조들은 무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과 복음을 선택했던 순교자들의 믿음은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지만 기존의질서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의 무자비함을 지금의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의 시대는 조선시대처럼 칼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사회의 여러 분야에 스며든 죽음의 문화는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아마도 순교에 이르기 전, 성인들이 품었던 마지막 물음이 아닐까요?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오늘날예수님께서 사셨다면 과연 이 시대에, 이 사회에 어떻게 살아가셨을까?”에 대한 물음에 머물러 보아야합니다.

사람을 살리려고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바라보며, 지금 여기에서 혹여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은 없는지, 내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없애버리지는 않았는지,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이를 모른 체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면 좋겠습니다. 순교자들의 믿음과 더불어 죽음의 문화까지는 물려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 군종교구 이재경 사도 요한 신부 : 2018년 9월 23일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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