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29.6%
[원주] 전교는 우리의 마음에서
조회수 | 386
작성일 | 17.10.17
[원주] 전교는 우리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예수님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

오늘 우리는 전교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교란 어떤 것일까?" 묵상하다 "Amor fontalis"(사랑의 샘)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전교를 하는 것이라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마태 28,18) 하는 것이라면, 분명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샘처럼 우리의 모습과 마음가짐도 그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낯선 이들에게 전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나는 말재주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신앙도 깊지 않아서 전교를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이들에게 그리고 전교의 사명을 부여받은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교는 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살아계시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지만 전교 또한 내가 '내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좋은 전교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전교를 함에 있어 부담을 느끼기 보다는 자신감과 확신 안에서 내가 체험한 것을, 예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마음 안에 무엇을 지니고 있어야 할까요? 바로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샘이 마르지 않고 끝없이 흘러나오듯 우리는 예수님의 그 샘 안에서 생명의 물을 마시고 힘을 얻어 내 마음 안에서도 사랑의 샘이 흘러나오도록 해야 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이 마실 수 있도록 내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면 우리는 분명 예수님의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전교를 통해 다시금 예수님으로부터 당신의 제자가 되도록 초대받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5,4). "가거라. 나는 너를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보내려고 한다."(사도 22,21)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에 대해 제자들이 "스승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4-5)라고 응답했듯이, "나를 따라오너라."(마르 1,17)라고 말씀하시는 그분께 "네"라고 응답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네"라는 응답이 바로 전교의 시작이자, 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또 하나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하느님의 힘입니다. 전교는 우리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 그분의 자녀가 되었듯, 우리의 힘이 아니라 그분의 이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로마 1,16)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게"(로마 8,21) 되었듯이, 다른 이들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그 영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전교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라는 것과,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우리도 만민을 향해 자연스레 하느님의 그 사랑을 전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그 사랑의 샘에서 물을 마시고 힘을 내십시오. 그리고 그 샘에서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체험하여 내 마음 안에도 그 샘이 흘러넘치도록 하십시오. 그럼, 마르지 않는 샘이 밖으로 흘러나오듯 우리의 모습도 샘과 같이 전교라는 행위를 통해 하느님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

원주교구 이규준 신부
451 29.6%
[원주] 사랑의 공동체

----------------------------------------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교회가 전교주일을 지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신자들의 본연의 사명인 선교의식을 일깨우고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나 전교 지역의 교회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돕고자 함입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교회에서는 '선교'라는 말은 굉장히 생소한 단어였고, '선교사'하면 개신교에서만 사용하는 용어 정도로 이해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반대만 하는 운동권 정신으로 유지되던 선교의 시기가 지나자 예비 신자의 감소와 함께 쉬는 교우의 증가 문제가 대두되었고 결국 교회는 위기감 속에서 선교 문제를 뒤 돌아보면서 새로운 선교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타 교회에 비하면 신자들의 의식과 열성, 교회의 선교에 대한 마인드와 예산 문제 등 모든 면에서 뒤쳐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선교 사명'을 교회의 근본 사명으로 재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선교사명의 반성을 통해 '복음화'의 개념을 재정립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커다란 의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만민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복잡한 신학 언어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해설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결론은 세례 베품과 예수님 계명 선포를 통해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가르침 아래 하나로 묶는 단일한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복음화의 사명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의 조화 속에서 완성될 수 있는 사명이라는 사실입니다.

평신도 교령 5항에 보면 "그리스도의 구원 성업은 본래 사람들을 구원할 목적을 가졌지만 현세 질서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도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할뿐 아니라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현세 질서를 완성하는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생활환경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활동도 복음화의 중요한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반대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과 가치관, 사상과 생활양식을 바로잡고, 복음의 근본정신이 각 민족 문화의 근원에까지 생명력 있게 스며들 때 복음화의 사명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

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 10.17
451 29.6%
[원주] “교회와 우리 자신부터 복음화하자”

-----------------------------------------------------

「적이 사라진 시대의 증후군」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탈냉전 시대에 찾아온 몸살과 같은 혼돈을 말합니다. 이 이론을 내놓은 올리히 백에 의하면 냉전의 논리가 지배했을 때 서유럽은 평온했다는 것입니다. 공산독재라는 적의 존재가 분명했고 적과 맞서기 위해 요구된 내부의 통제가 외견상 질서의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산독재라는 「분명한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서 냉전의 시대가 종식되자 이제는 인종과 지역 종교 등과 관련된 내부의 분쟁들이 오히려 더 혼돈적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유럽의 국가들은 이러한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사라진 적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적을 찾아 나서는 역설적인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유럽만의 상황뿐 아니라 우리 개인 안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사고방식, 즉, 한 집단과 자기 자신만의 가면적인 삶의 의미를 가지기 위하여 끊임없이 대립적인 상황을 고착화 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본능의 자연적인 모습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 같은 모습은 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성숙을 방해할 수 있기에 힘들지만 포용과 조화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전교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전교주일을 지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신자들의 본연의 사명인 선교의식을 일깨우고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나 전교 지역의 교회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돕고자 함입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교회에서는 「선교」라는 말은 굉장히 생소한 단어였고, 「선교사」하면 개신교에서만 사용하는 용어 정도로 이해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더 이상 반대만 하는 운동권 정신으로 유지되던 선교의 시기가 지나 예비신자의 급속한 감소와 함께 쉬는 교우의 증가 문제가 대두되자 교회는 위기감 속에서 선교 문제를 뒤돌아 볼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선교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타 교회에 비하면 신자들의 의식과 열성, 교회의 선교에 대한 마인드와 예산 문제 등 모든 면에서 뒤쳐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선교 사명」을 교회의 근본 사명으로 재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선교사명의 반성을 통해 「복음화」의 개념을 재정립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커다란 의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에서의 발현사화로써 복음서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입니다. 내용은 만민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복잡한 신학 언어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해설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세례 베품과 예수님 계명 선포를 통해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가르침 아래 하나로 묶는 단일한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 말씀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의 계명이 우선되는 공동체의 건설은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으뜸 사명이 되는 것이고, 아마 오늘 교회가 전교 주일을 지내면서 선교 의식을 재확인 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과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복음화의 사명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의 조화 속에서 완성될 수 있는 사명이라는 사실입니다. 평신도 교령 5항에 보면 『그리스도의 구원 성업은 본래 사람들을 구원할 목적을 가졌지만 현세 질서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도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할뿐 아니라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현세 질서를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생활환경을 복음으로 변화시켜는 활동도 복음화의 중요한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반대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과 가치관, 사상과 생활양식을 바로잡고, 복음의 근본정신이 각 민족 문화의 근원에까지 생명력 있게 스며들 때 복음화의 사명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과거의 포교 사업처럼 복음화의 대상이 되는 환경과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우리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착은 안된다는 사실과 복음화의 대상에서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을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칫 선교의 대상에서 교회와 교회안의 문제를 배제할 때 복음화는 단지 「변화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수단 내지 다원화 사회안에서 자기 정당성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쓰여 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러한 선교 사업은 단순한 집단 이기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 10.17
451 29.6%
[원주] 마음을 울리는 외침

-----------------------------------------------------

교우 여러분,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들이 하느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믿음의 선물 안에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전하라는 사명이 담 겨져 있음을 기억하고 그 사명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며 이 주일을 봉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특정 몇몇 사람만 선택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제자에게 선교의 사명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오늘 전교주일을 지내며 떠오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간혹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붉은 글씨의 팻말과 함께 큰 소리로 외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나는 정말 저들처럼 언제라도 맘껏 예수님을 믿으라고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 해보거나 외쳐 본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과, 둘째는 저렇게 입으로만 외치는 것이 진정 예수님을 전하는 것일까?

그렇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예수를 믿으라고 이야기 해 본적도, 권해 본적도 없는 듯합니다. 괜히 하느님 나라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늘 쑥스럽고, 작아지는 저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 나의 이야기가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까지 하면 더더욱 성당가자는 말소리는 작아지기만 하는 듯합니다. 실상은 참으로 좋은 것을 나누려 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러기에 다시금 다짐해 보았으면 합니다. 좋으신 주님을 내가 사랑하는 내가 아끼는 우리 이웃과 나누고 함께 하는 맘으로 주님을 전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다짐해 보았으면 합니다.

또한 그 외침이 허공에 대고 외치는 외침이 아니길 바래봅니다. 예수님을 전한다는 것은 그저 외침이 아니라 울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외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외침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확신에 찬 믿음으로 부터 나오는 삶의 모습들이 참된 외침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내 자신이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에 젖어 들고 그 사랑을 보여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공허한 외침이 아닌 마음을 울리는 진정한 전 교가되지 않을까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의 사랑에 가득 빠져보십시오. 그것이 전교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하여 그 사랑이 제 마음에서,제 삶에서 흘러넘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 하십니다.

--------------------------------------------

원주교구 배현아 안토니오 신부
2018년 10월 21일
  | 10.17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510   [수도회]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1] 145
509   [청주/수원/전주] 참된 가족  [3] 118
508   [인천] 믿음 없이 제대로 봉헌할 수 없다  [1] 112
507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독서와 복음(11월 21일)  [9] 176
506   [춘천/원주/군종/의정부] 참 아름다운 우리 성전  [4] 2163
505   [부산/마산] 거룩한 성전  [5] 2205
504   [광주/전주] 당연하다  [1] 27
503   [안동/대구]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 29
502   [서울] 우리의 내적 성전  [2] 2021
501   [수도회] 성전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  [4] 1914
500   [수원] 성전 정화 = 단순한 삶  [1] 361
499   [인천] 나를 필요로 하시는 주님  [4] 1930
498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독서와 복음 (11월 9일)  [23] 1714
497   [청주] 행복에로의 초대  [1] 396
496   [안동] “예수님께 기도드리면 빨리 나을 거예요.”  [2] 666
  [원주] 전교는 우리의 마음에서  [3] 386
494   [수원] 선교는 신자들의 진정한 생활의 표양이다.  [7] 2015
493   [서울] 선교는 말과 행동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5] 2123
492   [대구] 전교와 신앙인의 삶  [5] 2068
491   [의정부] 불리움에서 파견으로  [5] 2046
1 [2][3][4][5][6][7][8][9][10]..[26]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