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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독서와 복음(11월 21일)
조회수 | 190
작성일 | 18.11.20
▥ 제1독서 즈카 2,14-17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너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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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마태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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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했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이다.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성모님께서 세 살 되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쳤다고 전해 온다. 이날은 본디 6세기 중엽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모 성당의 봉헌을 기념하는 날이었으나,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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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신자들은 천주교 신자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교회의 전통을 받아들여 복음의 순수함을 잃었다고 비난하곤 합니다. 특히 성모님을 공경하는 전통은 오직 믿음과 은총, 성경만을 강조해 온 한국 개신교계가 우리를 가장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복음에 등장하는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란 표현에서 성모님의 평생 동정을 의심하거나, 아들을 만나러 온 어머니와 가족을 박대하시며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고 반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토대로 성모님에 대한 우리의 공경심을 비하하기도 합니다.

가톨릭 신앙도 성경을 신앙의 최고 규범으로 삼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이 성령의 감도를 받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칩니다. 누구나 성령을 받아 성경의 말씀을 삶에서 체험할 수는 있지만, 성경의 유권적 해석에 관해서만큼은 교도권, 곧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의 가르침에 맡겨져 있다고 가톨릭 교회는 가르칩니다. 그것은 교회의 권력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도전승의 참된 의미를 지켜 가기 위함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형제들은 마리아의 다른 자식이 아닌 ‘친척들’이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미 사도들과 함께 사시며 오순절 성령 강림 때 교회가 세상에 선포되는 순간부터 언제나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성모님께서 공경받으셔야 하는 이유는 그분만큼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간직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분이 역사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육을 취하신 말씀을 잉태하셨고, 그분의 믿음의 응답을 통하여 말씀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교리적 논쟁을 떠나, 예수님의 성심과 결합되어 십자가의 길을 평생 함께 걸어가신 성모님께서는 참으로 위대하고 공경받으셔야 합니다.

▦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미사 2018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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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뜻밖의 행동을 하십니다. 모처럼 어머니와 친척 형제들이 찾아왔는데도,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반문하신 다음,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과 친척들을 무시하려는 의도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요. 혈연관계를 부인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혈연보다도 더 중요한,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주님을 믿고 그분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신앙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우리는 모두 혈연만큼 강한, 신앙으로 굳게 맺어진 새로운 형제자매라 하겠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저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실천하려면 서로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아울러 오늘 묵상하고 싶은 점은, 세례를 받았다는 자체로 하느님 나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은 채, 그저 입으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데 그친다면, 주님의 참된 자녀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신앙으로 맺어진 새로운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미사 2017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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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께서 자신을 성전에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S. Maria Nuova)의 봉헌일(543년)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날 동방과 서방의 교회는 함께, 원죄 없으신 잉태의 순간부터 성령으로 가득 차셨던 성모님께서, 어린 시절에도 성령의 영감으로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했던 것을 기념합니다. 그래서 또한 이 축일은 동서방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도 매우 뜻깊은 축제입니다.

성모님의 어린 시절과 오늘 기념하는 봉헌의 사실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많은 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부모님이 이미 봉헌한 약속에 따라, 세 살 때에 다른 소녀들과 함께 손에 등불을 들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의 안내에 따라 성전으로 인도됩니다. 마리아는 아직 어렸지만, 성전의 열다섯 층계를 올라갔고, 다른 소녀들과 함께 앉지 않고, 대사제들이 일 년에 한 번 자리하는 지성소에 앉았다고 교회의 전승은 알려 줍니다.

마리아의 봉헌은 실제로는 훨씬 더 겸손하면서도 영광스러웠을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친 이 봉헌을 통하여, 마리아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특히 마음을, 하느님의 아들을 받아들이려고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 안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다.”는 말씀을 새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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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매일미사 2016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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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과 관련된 축일이나 기념일에서 오늘 말씀은 상당히 자주 발견되는데, 여러 가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인 것도 사실입니다. 가족을 소홀히 하는 듯한 예수님의 태도를 불편해하기도 하고, 가족을 떠나는 예수님의 결연함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모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셨으므로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 틀림없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말씀하실 때에, 성모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의 조건을 채우셨습니다. 인간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깨달으셨을 때에는 남김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도, 단순히 계보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사실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그 뜻이 실현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이로써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도, 성모님께서 당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라는 사실보다는 그분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셨다는 사실이 더 우선이었지요.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은 성모님의 뒤를 이어 모두 예수님의 가족이 됩니다. 어머니를 홀대하시는 듯한 태도를 취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가 되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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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 2015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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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가 지내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성모님께서 아주 어린 시절에 아버지 요아킴과 어머니 안나에 의해 주님께 봉헌되었다는 전승에서 유래합니다. 티 한 점 없이 순수한 존재로서 주님께 봉헌되신 성모님은, 고단한 세상살이에 방황하거나 버거워하는 이들에게 늘 위로이자 희망이 되셨습니다.

순결하게 봉헌되신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죄인들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신앙인들의 확신은 예술에도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전구하시는 성모님의 모습은 예술 속에서 가장 순수하고 희생적인 여인의 기도로 나타나곤 하는데, 유명한 예로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를 들 수 있습니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파우스트의 영혼이 결국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그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이가 성모님께 매달리며 올리는 기도를 통해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19세기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의 ‘탄호이저’는, 중세 때의 기사이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음유 시인인 탄호이저가 마녀의 유혹에 빠져 관능적 쾌락과 거룩한 삶 사이에서 갈등하였으나, 애인 엘리자베트의 순수한 사랑과 그녀의 죽음에 의하여 영혼의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입니다. 탄호이저가 신성 모독과 관능적 향락을 찬양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저주받고 추방되었을 때, 애인 엘리자베트는 그를 위한 동정 성모님의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끊임없이 바쳤습니다.

그러한 그녀가 그만 병들어 죽었습니다. 탄호이저는 그녀의 관을 바라보며 “거룩한 엘리자베트,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하고 절규하며 숨을 거둡니다. 이제 동이 트며 그의 구원을 알리는 순례자들의 합창이 들려옵니다. 그녀의 진실한 기도가 그를 구원으로 이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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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 2014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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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성모님을 공경해야 할까요? 많은 이가 예수님을 잉태하시어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오늘 복음을 통해 더욱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실행하신 분이십니다. 전승에 따르면, 세 살이 되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당신의 삶을 봉헌하셨습니다. 또한 처녀인 몸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시어 예수님을 잉태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우리는 성모님을 혈육을 뛰어넘어 신앙적인 차원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로 공경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개신교에서는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 카나의 혼인 잔치입니다(요한 2,1-11 참조). 그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아신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이를 알려 주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십니다. 이때 성모님께서 보이신 모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더 이상 강요하지도 않으시고, 상황을 길게 설명하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곧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뜻을 따르도록 이끄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을 공경할수록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더욱 깊어집니다. 성모님께서 몸소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시고,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공경해야 할 어머니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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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 2013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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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당신의 형제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성모님께서는 인간적으로 섭섭하셨을까요?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이야말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가장 완전하게 따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철 스님이 어머니에게 돌멩이를 던져 쫓아 버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성철 스님은 유림(儒林) 집안의 장남임에도 출가하였습니다. 귀한 아들이 출가하자 그의 어머니는 수시로 옷가지와 음식을 준비하여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결코 어머니를 맞아 주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산속으로 도망치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어머니가 절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어머니에게 돌멩이를 던져 대기도 했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돌멩이를 던졌다는 것은 분명 불효입니다. 그러나 더 큰 깨우침을 얻고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곧, 혈육의 정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보편적입니다.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하는 길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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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 2012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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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인 야고보 원복음서에 따르면,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어렵게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세 살 되던 해에 하느님께 약속한 대로 성전에서 아이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봉헌하는 날 사제가 아이를 받아 들고 입을 맞추며 축복을 한 뒤 제단의 셋째 층계에 앉히자, 은총이 내려 아이가 두 발로 춤을 추었을 뿐만 아니라, 부모를 뒤돌아보지 않고 스스로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성전에서 지내도록 합니다.

오늘날 동방 교회는 이 사건을 기념하며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입당 축일’로 지내고, 가톨릭 교회는 성모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봉헌하셨다고 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지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즈카르야 예언서는 오늘 기념일의 기쁨을 잘 드러내 줍니다.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러나 오늘 복음은 축제 분위기를 조금 흐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모님이야말로 참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셨던 분, 곧 예수님의 참된 어머니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잉태되실 그 순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고 초대 교회 때에도 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신 분이셨습니다. 이렇게 보니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이유가 단순히 육신을 낳아 주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신 분이시기 때문임을 선언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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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매일미사 2019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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