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대축일/명절강론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9 92.4%
[인천] 믿음 없이 제대로 봉헌할 수 없다
조회수 | 143
작성일 | 18.11.20
어떤 사람이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성호 이익 선생님을 찾아와서 야생 거위를 기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위에게 불에 익힌 음식을 먹이자 거위는 몸이 점점 뚱뚱해져서 날지를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거위가 음식을 전혀 먹지를 않고 한 열흘쯤 굶더라는 것입니다. 뚱뚱해졌던 몸이 점점 가벼워졌고 그리고 얼마 뒤에 스스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성호 이익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사람이 주는 음식을 계속 먹다보면 자신의 야생성이 사라졌겠지요. 물론 굳이 먹이를 찾아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고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육되면 될수록 자신의 소중한 자유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삶이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고생하지 않는 편안한 삶이 좋을까요? 아니면 많은 수고를 동반해도 자유로운 삶이 행복할까요?

우리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하고 쉬운 삶을 살고 싶지만,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은 아닌 것입니다. 스스로를 잘 지키면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며 살아갈 때 비록 편하고 쉬운 삶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편하고 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시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잘 지키는 삶, 그래서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러면서 성모님의 봉헌에 대해 묵상을 하게 됩니다. 성모님의 봉헌은 과연 저절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성모님께서 선택하신 것이고, 스스로를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성모님과 친척들을 향해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말씀하시지요. 분명히 서운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이미 하느님께 봉헌되신 성모님께서는 주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에 대해 어떤 서운함의 표시를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받아들이시고, 그 뜻을 따르십니다. 이렇게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 곧 온전히 당신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사시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믿음 없이 제대로 봉헌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봉헌 없이 주님과의 완벽한 일치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결국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 정말로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노력은 어떠했는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잘 지킬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5년 11월 21일
459 92.4%
아주 어린 자녀와 함께 여행을 갔다가 비상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산소가 부족해서 산소마스크를 써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를 제쳐두고서 자기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 아니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아이에게 먼저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겠습니까? 당연히 사랑하는 아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씌워줘야 할 것 같지만, 비행기 이륙 전에 하는 안전 안내 방송을 보면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보호자부터 빨리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뒤에 아이를 돌보라고 하지요.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아이보다는 어른이 훨씬 더 이성적이기 때문에 어른인 보호자가 먼저 착용한 뒤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재가 났을 때에 인명 사고가 많은 이유는 자신이 들어갔던 문으로 탈출을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공포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 빠르고 안전한 출구를 찾기보다, 자신의 기준에 구축한 행동 양상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이나 시련으로 인해 힘들어질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이들이 과거의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될 때, 당황해 하면서 어떻게 할 줄을 몰라 하는 것입니다.

본능이나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는 감정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을 찾아내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주님과의 관계는 더욱 더 인간적인 관점과는 차이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한계를 지니고 있는 인간의 기준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봉헌은 성모님 삶 전체를 통해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지만, 이를 인간적인 기준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인간들처럼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주님 중심으로 사셨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면서도 우리의 어머니가 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께 봉헌된 몸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살고 있습니까? 인간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주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때,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8년 11월 21일
  | 11.2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523   [수도회] 수호 천사  0
522   [수원 / 전주] 수호 천사  0
521   [인천/서울] 수호 천사  0
520   (백) 수호천사 기념일(10월 2일) 독서와 복음  [9] 88
519   [수도회] 죽음을 잘 맞이하자  [8] 3700
518   [마산] 조상들의 삶의 지혜  [2] 2659
517   [대구] 명절 고향길  [4] 2805
516   [안동]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과 종의 모습  [6] 2949
515   [부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7] 3416
514   [서울] 세 개의 고향  [6] 3176
513   [수원] 감사의 마음  [3] 2875
512   [인천] 감사의 마음  [8] 2932
511   [의정부] 가장 큰 부자  [3] 2853
510   [춘천/원주] 한가위는 감사의 축제  [1] 257
509   [대전/청주]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시편67,7)  [3] 1757
508   [전주/광주] 세월은 유수와 같다.  [1] 423
507   (백) 한가위 (추석) (음력 8월 15일) 독서와 복음  [8] 2487
506   천사에 대한 상식  [2] 1198
505   [수도회] 수호 천사  [10] 1977
504   [부산/대구/수원/청주/마산/전주] 천사들과 함께 주님께 영광을  [14] 2094
1 [2][3][4][5][6][7][8][9][10]..[27]  다음
 

 

대축일/명절강론 코너 ( 대축일/명절 미사에 관련된 강론자료입니다... )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05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