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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갑시다.
조회수 | 458
작성일 | 19.01.08
[원주]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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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교회는 해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를 기념하면서 우리가 받은 세례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우리 삶을 반성하며 신앙인으로 보다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내려 오셨고, 하늘에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마태 3,16-17 참조)

예수님은 정녕 하느님의 사랑받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드님이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지극히 중대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기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이 세례는 회개의 증표로, 죄의 사함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흠도 죄도 없으신,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드님이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강생하시어 사람이 되셨고, 사람들 가운데 사시면서, 마치 죄인들처럼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기까지 당신을 낮추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을 비우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께 선택되었고, 새롭게 태어났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의 지체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러한 비난의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왜 저래?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더 하더라. 성당에 다니면 성당에 다니는 사람답게 살아야지? 아무개 꼴 보기 싫어서 성당에 못 다니겠다." 등등의 많은 비난조의 소리를 듣곤 합니다.

무엇 무엇답게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무엇 무엇답게 산다는 것은 바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인은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어른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깊은 이해심과 사랑과 아량을 지녀야하고, 자녀들은 자녀답게 부모에게 순종하며 사랑과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하겠습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거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증거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책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성가책을 끼고 다닌다고 해서, 매일 미사책을 가지고 매일 미사에 참여한다고 해서 하느님의 자녀라고 자부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거 하는 것은 삶으로써, 생활로써 보여주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답게 처신하고, 며느리는 며느리답게, 가장은 가장답게, 자녀들은 자녀들답게 서로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세례를 받은 신앙인으로서 얼마나 신앙인답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하느님의 자녀로서 얼마나 충실히 살아왔는지, 예수님의 삶을 얼마나 닮으려고 노력했는지, 조용히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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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백인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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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세례성사로 하느님 자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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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우리가 받은 세례를 묵상해 봅니다.
 
세례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성사'입니다.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기 전에는 인간의 자녀로 태어나 인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례성사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무엇으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무슨 삶을 살아가는지 결정됩니다. 동물로 태어나면 동물의 생명으로 삽니다. 하루살이 곤충은 하루만 살다 죽는 하루살이 생명을 살고, 파리는 며칠 동안 파리 목숨을 살고, 개는 개밥을 먹고 개집에서 살다가 여름철이 되면 보신탕으로 끝날 수도 있는 개의 생명을 살아갑니다.
 
우리 인간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의 생명을 받아 사람의 삶을 살아갑니다. 곤충이나 짐승보다 훨씬 가치있고 고귀한 삶을 살아갑니다. 100여 년 가까이 살면서 진선미를 알고 자유를 누리며 사랑도 하면서 뛰어난 지혜로 삶의 질을 향상시켜 행복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러나 이런 고귀한 인간 생명에도 한계가 있어 늙고 병들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한계를 가진 존재인 인간이 세례성사를 받으면 전혀 다른 존재가 됩니다. 하느님 생명을 받아 하느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돼지새끼가 돼지의 삶을 살고 사람의 자녀가 사람의 삶을 살듯이 하느님 자녀가 되면 하느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일반 사람은 인간의 삶 그 이상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례로써 하느님 자녀가 된 사람은 인간 삶을 넘어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 하느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왕세자가 없는 왕이 시골 촌뜨기를 왕세자로 뽑았습니다. 시골에서 상놈의 자식으로 태어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천하디천한 시골 촌뜨기가 왕세자가 된 후 삶이 달라졌습니다. 왕자 옷을 입고 왕자의 음식을 먹고 왕자 대접을 받으며 왕궁에서 생활합니다. 삶이 180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천덕꾸러기 상놈의 아들이 아니라 머지않아 왕이 될 왕자가 됐습니다. 이제 나라 전체가 자신의 것이고 모든 재산과 부귀영화가 자신의 손안에 있습니다.
 
한낮 인간이 세례를 받아 하느님 자녀가 되는 것은 마치 천하디천한 상놈 아들이 일약 왕세자가 되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아니 세상의 왕세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출세요, 변화이며 더 큰 축복과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 하느님 자녀가 된 사람은 인간의 왕보다 천 배 만 배 높으신 하느님 왕의 아들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받은 신자들은 하느님의 왕자요 하느님의 공주입니다. 세례받은 신자들은 왕자답게 공주답게 살아야 하고 왕자님 공주님 대접을 받아 마땅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상속을 받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아 하느님 자녀가 됐으니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우리가 아직은 인간 생명으로 인간의 삶을 살지만 이 세상 삶을 마친 다음에는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아 하느님의 생명을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우리 삶은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과 다릅니다. 단순히 인간 생명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몇 십 년 후에 그 삶이 끝난다고 여기기에 살아 있는 동안 무언가 더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그러나 세례받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더 가지려고 발악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례를 받고 하느님 삶을 살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 전혀 딴사람이 됩니다. 한 예로, 제가 아는 천덕꾸러기 장애인 김씨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할 만큼 절망적 삶을 살다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된 후 그 삶이 행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 깨닫는 순간 그 은총은 더 커질 것입니다. 기껏해야 100년도 못사는 인생이, 그 100년 동안에도 인간 능력의 한계 때문에 수없이 많은 고통으로 살다가 죽어 없어질 가련한 우리가 감히 하느님의 자녀가 되다니!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아 영원히 살 것이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영광이요 행복입니까? 하느님의 아들 왕자님들, 하느님의 딸 공주님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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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박용식 신부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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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할머니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찾아와 고민이 있다며 말씀하신다. ‘신부님, 고민이 있어요. 경로당에 가서 점심을 먹을 때, 성호를 긋고 식사 전 기도를 하면 옆의 할머니가 야단을 쳐요. ‘야! 여기가 뭐 성당이냐? 기도는 성당에 가서나 해!’ 하면서요. 그래서 기도를 못하겠어요"

할머니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은데서 기도하다 면박을 받았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몰래 표시나지 않게 기도 하신단다. 그런데 다시 한 번생각해보자.

과연 내가 천주교 신자임이 부끄러운 일인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창피한일인가?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다. 하느님이신 분이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 주님의 세례 축일은 또 하나의 공현축일이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 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이 아버지 하느님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우리의 세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순간 우리도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정확히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고 자랑스러운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이다.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차 그분의 인도를 받는 사람,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 바로 하느님의 자 녀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자랑스러운 하느님의 자녀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하느님이여야 하고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와 일치해야하며 전인격적인 믿음과 자긍심을 가지고 기쁨으로 살아가야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남들은 받지 않아도 되는 수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난은 의미 있는 고통이요. 우리에게 유익한 십자가이다.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수난이기 때문이다.

남의 눈이 무서워 성호 긋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한마디... “할머니, 얼마나 좋은 기회예요? 선교할 기회가 왔네요. 기도한다고 야단치는 할머니와 싸우지 마시고 십자가의 의미를, 기도의 의미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고 그 분의 사랑하는 자녀임을 자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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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박호영 베네딕토 신부
2019년 1월 13일
  |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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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삶의 기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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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디트리히 본회퍼)

새해를 맞으며
하느님이 주는 선한 힘이 우리 각자의 삶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인류의 미래를 지켜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세례는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 흘러나오는 강의 기원, 수원지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보고 들으면서 자신이 받은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은총을 삶에서 살아 내기를 청합니다.

■ 복음의 맥락

복음은 마르코가 전하는 예수님 세례 이야기입니다.
세 복음서(마태 3,13-17; 루카 3,15-16.21-22; 마르 1,7-11)가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조금씩 다르게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요한을 직접 찾아갑니다.(마태 3,13) 인간 구원을 위해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찾아가는 예수님 모습이 세례에서부터 드러납니다. 그런데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루카 3,21)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십니다.

문득 미국인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밤샘을 하고 노숙도 하면서 줄서 기다린다는 뉴스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제 코로나19 백신은 우리 시대의 구원자가 된 듯합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보다 백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긴 줄 안에서 기다리는 형제와 자매들 가운데에서 예수님도 겸손하게 당신 차례를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줄 안에 들어가 선다는 것은 그 사람들의 삶에 기꺼이 동참해 경청하고, 공감하고 기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이

예수님은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고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성령과 하느님 목소리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모든 업적은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힘과, 아버지와 누리는 친교에서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당신은 하나라고 할 정도로 깊은 친교 안에서 그분의 생애 전체,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을 삽니다. 정말 하느님 속에 닻을 내리지 않고서는 복음서의 예수라는 인물은 그저 희미한 그림자와 같고 비현실적이며 도무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강조하는 루카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기도할 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이 장면을 기록해 준 루카에게 깊이 고마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기도 중에 체험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재는 잣대와 주변의 기대에서 나오는 소리에 따라 본인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들에는 하느님의 숨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우리의 잠재력을 성장시키는 생각보다 체념과 부정적인 생각이 담겨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의 참된 정체성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감춰져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성장시키는 참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듣는 것이 우리 삶을 형성합니다. 우리가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분 말씀을 경청할 때 하느님은 정말 우리를 염려하는 아버지로서 우리 삶 안에 개입하십니다. 고요한 가운데 우리가 자주 잊어 버리고 있는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알려 주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 내 마음에 드는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말하는 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질 때, 나아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온갖 유혹이 다가올 것입니다.

■ 정체성에서 소명으로

예수님의 세례는
사랑 받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명, 나아가 세례 받은 우리 사명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지만 그 사랑은 우리 삶에서 책임을 갖고 응답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의 종은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고 인간을 온갖 악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주님의 영을 받습니다. 특히 이 종이 지닌 겸손한 태도에서 예수님 모습, 우리 모습이 보입니다. 작은 선의의 불씨도 꺼버리지 않는 온유함,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는 공감능력과 섬세함, 소명에 따르는 시련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용기.

베드로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세례를 준비하는 설교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성령과 힘을 받은 후에 하신 일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사도 10,38)

■ 세례, 성령 안의 삶

세례는
그리스도교 입문 의식에만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도 바오로의 세례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서 6장에서 바오로는 세례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 그리스도 운명을 내 운명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로운 삶의 특징을 ‘성령 안의 삶’으로 소개합니다. 이제 세례의 여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하는 역할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체험과 분리해 성령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체험이 먼저고 성령 체험이 이어집니다. 성령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삶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 성령이 주는 선한 능력 안에서 세상의 고통에 잠기면서 하느님께 협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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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2021년 1월 10일 <가톨릭 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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