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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주] 당연하다
조회수 | 147
작성일 | 19.11.09
[광주]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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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하고 있는 행동이나 말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껏 내가 말해왔고 행동했던 것이 내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인들 또한 나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성전 상인들과 환전상들도 성전에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당연한 생각을 뒤집어 버리십니다.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쫓아 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를 엎어 버리시고, 비둘기들을 치워라 하십니다. 그리고 성전 상인들과 환전상에게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십니다. 즉 성전은 예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장사해도 되는 곳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을, 그들의 행동을 뒤엎어 버리십니다. 당연하다는 그 생각과 마음과 행동들을 뒤엎어 버리십니다.

하느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장사에 눈먼 그들의 마음을 장사에 눈먼 그들의 이기심을 뒤엎어 버리십니다. 하느님보다는 당연히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그들의 마음과 행동을 뒤엎어 버리십니다. 우리들 또한 당연하다는 그 자체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행동하고 말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당연히 내 자녀가 잘되는 것이 우선이지, 내가 먼저 승진하는 것이 우선이지, 내가 속한 단체가 우선이지, 우리 본당이 우선이지 하는 마음으로 행동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무능력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삶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으로 인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성전은 병들어 갑니다. 오늘 제2독서인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의 마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마음 때문에 새하얗던 우리 마음의 성전은 점점 검게 물들어 갑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그저 받아들이기보다는 정말 당연한 것이었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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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소진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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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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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주교좌 성전으로 교회에서 가장 역사 깊은 성전이다. 이 성전은 320년경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건립하여 교회에 기증하였으며, 324년에 그리스도께 봉헌되어 그리스도교의 으뜸 성전이 되었다. 1843년 이후 교회 예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교황성하께서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이 성전에서 집전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시는 듯하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예수님께서 폭력을 휘두르실 정도이므로 예수님의 진노가 어느 정도인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복음 안에 예수님께서 폭력을 행사하시는 대목은 이 대목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진노하신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그만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성전은 곧 하느님을 보여주는 하느님의 집이다. 성전을 순례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하며,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장사꾼들이나 환전상은 순례자들을 부당하게 속이거나 폭리를 취함으로써 하느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도둑과 강도, 사기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순례자들에게 하느님을 가렸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손상시켰다. 그래서 하느님의 집인 성전을 소중하게 여기신 예수님께서 그토록 진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성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성전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볼 수 있도록 성전을 가꾸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머무르시는 성전이 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성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주님의 성체가 모셔진 성전이 사람들에게 주님을 만나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삶의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성전이 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몸을 가리켜 성전이라 말씀하셨다(21절). 사도 바울로도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1고린 3,16-17)라고 말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임을 분명히 했다. 더욱이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1고린 6,19-20)라고 말했다. 우리의 몸은 하느님께서 주님의 값진 피로 사신 것이다. 당신의 성전으로 쓰시기 위해 사신 것이다. 하느님의 성전에는 하느님만이 어울리며, 하느님만을 모셔야 한다. 하느님의 성전에 그 어떤 우상도 모실 수 없고 모셔서도 안 된다. “하느님의 성전에 우상이 어떻게 어울리겠는가!”(2고린 6,16)

오늘 성전은 하느님을 보여주고 만나는 하느님의 집임을 기억하자. 우리의 성전이 하느님을 보여주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성전이 되도록 하자. 나아가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서 사신 하느님의 성전임을 생각하여, 우리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살자. 재물, 지식, 힘 이외에 그 어떤 우상도 내 안에 둘 수 없음을 생각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모시는 하느님의 성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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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경규봉 신부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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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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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요한 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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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고치고 바로잡으려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개인뿐만 아니라 종교 전체의 잘못된 일들을 고치고 바로 잡으려고 오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또 성전에서 장사하는 일 자체를 금지하신 일은, 그 일이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성전에서 가축을 팔고 환전을 해 주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허락하고 자릿세를 받은 사제들이나 그 장사꾼들에게서 가축을 사고 환전을 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그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 것은,
성전에서 파는 가축들은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용 가축이었고, 또 ‘환전’도 외국 화폐를 봉헌용 이스라엘 화폐로 바꿔주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일을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장사를 해서 얻은 수익금을 하느님께 바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차지했고, 사제들은 자릿세를 받아서 자기들이 챙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팔아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을 섬기는일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는 일이었고,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이었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을 모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대죄’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마르코복음에는 예수님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마르 11,17).”

성전은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집이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니 성전에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짓을 하는 것은 성전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이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 바쳐야 할 돈을 가로챈다는 점에서 하느님을 상대로 강도짓을 하는 것이고, 만일에 다른 곳에서는 물건을 사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이비싸게 파는 것만 사라고 강요한다면 그것도 역시 강도짓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집에서
강도짓을 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입니다. 성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실상 종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종교는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곳이고, 사람들을 섬기는 곳입니다.

‘섬김’이란,
나를 버리고, 섬기는 대상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일입니다. 성전에서 장사를 하면서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것은 ‘섬김’의 반대쪽에 있는 일, 즉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일이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일이고, 하느님을 거스르고 반역하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일은 잘못되어 있는 종교를 개혁하신 일이기도 하고, 잘못되어 있는 신앙생활을 개혁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옛날 유대교의 잘못된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지금의 우리 모습을 반성하고 쇄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과거 역사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 모습인가?

종교 간판을 걸어놓고서 개인의 물욕을 채운다면, 그것은 사이비 종교입니다. 개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아도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일만 한다면, 그것은 사이비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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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요한 2,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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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라는 유대인들의 말은,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라는 뜻입니다(마르 11,28).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강도들의 소굴’로 변한 성전은 허물고 성전을 새로 지으라는 명령이고, 또 그런 종교는 개혁하고 쇄신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권한이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만일에 하느님에게서 온 권한이 없는 사람이 그런 말을 감히 한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이고, 하느님께 반역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까 예수님의 권한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었으니까 예수님의 권한도 안 믿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과 일을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라는 말씀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신 말씀이고, 강도들의 소굴을 없애고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바탕으로 한 종교로 새롭게 쇄신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종교로 개혁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종교와 성전은 ‘나의 구원’을 위한 곳이고, 동시에 ‘우리의 구원’을 위한 곳입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짓은 결코 하면 안 됩니다. 또 신앙인이 신앙생활을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면 곧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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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2020년 11월 9일
  |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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