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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내 안에서 칼이 울었다
조회수 | 30
작성일 | 20.09.15
[수도회] 내 안에서 칼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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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그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 남아있는가 봅니다. ‘이순신 어록’이 여기저기 많이 떠돕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 조국을 지키고 싶은 자 나를 따르라.”

‘불멸의 이순신’을 제작하는데 많이 참고했다는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는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슬픔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기록에 충실했던 분임을 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칼의 노래’는 무인답게 간략하고 단순 소박한 필치로 기록한 장군의 일기를 토대로 쓴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만을 상대해서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군은 의혹에 찬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던 선조임금과 조정대신들, 자신의 실속만 차릴 뿐 오히려 방해만 되던 명군들, 자신 안에 활활 타오르는 분노와 수시로 치받고 올라오는 고열, 계속되는 전투로 만신창이가 된 심신의 고통 등 다방면의 적군들과 힘겹게 싸워야만 했습니다.

계속되는 오해, 근거 없는 모함, 그로 인한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으면, 또 얼마나 억울했으며 “내 안에서 칼이 울었다” “차라리 육신이 죽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이 내 몸은 죽어지지 않았다”라고 고백했겠습니까?

이순신 장군의 최후는 또 얼마나 장렬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이후 군부 지도층은 철군을 명령합니다. 필사적으로 고국 땅으로 돌아가려는 왜군들, 더 이상 피를 흘리지 말자고, 이쯤해서 적당히 타협하자고 회유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순신 장군은 전쟁 중에 수도 없이 죽어간 부하들과 백성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지난 7년간 저 바다에 수많은 전우를 묻었다. 우리 손으로 이 전란을 끝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 조선 백성의 한을 씻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죄인의 굴레를 벗을 수 없을 것이다. 단 한 척의 배도, 단 하나의 적도 살려 내지 마라.”

어떻게 보면 이순신 장군의 죽음은 예정된 죽음, 자청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냥 두었으면 적들은 알아서들 조용히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가는 적들과 마지막 전투를 벌입니다.

죽을 각오로 임한 마지막 해전에서 아니나 다를까 이순신 장군은 치명상을 입습니다. 총탄에 맞은 이순신 장군은 병사들이 동요될 것을 염려하며 이렇게 부탁합니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이순신 장군은 죽어가면서도 부하들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먼저 걱정했습니다. 백성들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철저하게도 이타적인 삶, 자신 안에 자신은 하나도 없었던 삶이 장군의 삶이었습니다.

마치도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십자가상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단말마의 고통에 괴로워하시던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어머님을 걱정하십니다. 제자공동체를 걱정하십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장면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극심한 자신의 고통, 자신의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직 어머님과 제자 공동체가 잘 되기만을 바랍니다.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 고통은 다국적군과도 같습니다.

끔찍할 정도로 큰 대못이 박혀있던 손과 발의 통증,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이었겠습니다. 체중이 아래로 쏠림에 따른 심장의 압박, 그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인한 고통도 만만치 않았겠습니다. 계속 흘러내리는 피와 땀으로 인한 탈수 증세는 심각했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고통은 극도의 수치심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거의 알몸인 상태에서 높이, 높이 매달려져 있다는 사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겠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어머님을 위로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십자가형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자신을 잊고 죄인인 우리를 생각하는 예수님의 그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메시아의 마음입니다.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는 그 마음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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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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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 아빌라의 성 데레사이다.

어느날 우연히 「천주 자비의 글」을 서점에서 읽고
그만 이분을 내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물론 성녀께 허락받은 것은 아니고 나의 일방적 선언이었다. 당시는 가락시장에서 점원으로 생활할 때였는데 시장생활의 고달픔을 이분의 책을 통하여 이겨낼 수 있었다. 마치 어머니 품 같았다.

성모 마리아를 생각하면
아빌라의 데라사가 기도했던 장면이 늘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제부터 나의 어머니가 되어주세요.”
“내가 성모께 빌었던 것들 중에 응답을 받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수도회의 원장 자리는 성모님의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이 성녀에게 성모께서 영향을 주셨을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어머니와 여인들이 밑에 서 있었다.

이때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은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신다.

깊은 내적 체험에 이르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뵙게 되는데 바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들을 보는 것이라 한다. 어머니는 십자가 위의 아들을 바라보면서 아들이 겪는 깊은 고통을 같이하고 있다.

아무런 말이 없지만 가슴이 찢어질 뿐이다.
이때 예수께서 자신이 어머니의 아들됨을 말하고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 공동체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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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덕 목사 (경기도 덕혜원)
  |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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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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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삶은
예수님의 삶만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믿으셨기에
믿음 하나에 자신의 전 생애를 내던진 분, 나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에 귀 기울이신 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였기에 혈연을 넘어 신앙 가족 공동체의 중심에 세워지신 분….

마리아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처럼 적나라한 인간실존의 고통과 죽음을 관통하실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리아는 가난한 이민자로서
이집트 피난살이를 경험하였고, 가난한 과부로서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냈으며,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아들에게서 하느님의 뜻을 찾았고, 마침내는 사형수의 어머니로서 십자가 밑에 섰습니다.

고통을 겪은 사람만이
남의 고통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통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결코 피해서는 성장할 수 없는 인생의 길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피하기보다는 금이 불 속에서 단련되듯 우리 자신들도 고통의 용광로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인내심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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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씨튼 수녀회 최혜영 수녀
  |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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