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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전주/부산] 진정한 자유
조회수 | 8
작성일 | 20.09.21
[수원] 진정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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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사도는 본래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는 세리였다.
이 직업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매국노와 같은 미움을 받는 직업이었다. 세리였기 때문에 미워하고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착취당하는 그런 처지였다. 이러한 세리가 예수님께 불림을 받고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다. 마태오는 60-90년 사이에 마태오 복음서를 아람어로 저술하여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다. 마태오는 동방으로 가서 순교하였다고 하는데 에티오피아나 페르시아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 진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오를 부르신다.
그러니까 마태오는 즉시 예수님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마태오는 자기 집에 예수님을 모셔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여기에 마태오는 지금까지 함께 일하며 사귀었던 친구들도 함께 초대하여 식사를 하였던 것 같다. 아마 그들을 부른 것은 주님을 따라 나서기 전에 그들과 인사를 하는 기회를 만들었을 것 같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된 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나선다. 제자로 삼는 것도 너무나 큰 죄인인 세리를 뽑고, 노는 것도 그런 부류하고만 논다는 것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한 마디로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셨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을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건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 모두가 당신의 자녀로서 살기를 바라시고 부르시고 계시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응답이 마태오처럼 즉시 일어나서 그분을 따르듯이 응답을 할 것인지 아닌지는 각자 인간의 의지적인 응답에 달렸다는 것이다.

언제나 하느님 앞에
우리 자신이 부족하고 죄스런 인간임을 느끼는 것이지만, 그것을 물으시는 주님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항상 주님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는 삶, 회개하는 삶이 있다면 그것으로 주님께서는 기뻐하시는 것이다. 마태오와 같이 세관에 있는 것이 지금까지 편안하고 안정된 것이었겠지만, 용감하게 그 자리를 떠나 전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든지 이렇게 첫 발을 내딛기가 어려운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착각 때문에 우리는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과감히 일어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잘 알 수 있고, 또 변화되어 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님의 뜻 안에 머무르려 노력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마태오 사도와 같이 매 순간 용감한 결단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우리 되도록 주님의 은총을 구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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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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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신약성서에서 토마스와 함께 나란히 명단에 나오는 것 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다.

다만 마태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갈릴래아에서 헤로데 안티파스를 섬기는 자였으며 세관원으로 일했다. 그의 의무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이었고, 어업이나 공산품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부정한 면면이 드러나는 지탄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마태오의 직업인 세관원은
당시 어느 곳에서나 불신과 멸시를 받았다. 마태오 역시 부를 누리면서 살았지만 지탄을 받는 죄인의 대표적 표상이었고, 같은 민족에게 따가운 시선과 멸시를 받았다.

그래서 마태오는
자신의 그릇된 삶에 대해서 몹시 괴로워했던 것 같다. 마태오는 예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시자 즉시 따라 나선다.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는 것은 그릇된 삶과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뒤를 이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마태오는 세상의 부귀영화보다는
진리를 따라 사는 자유와 해방을 더 그리워했다. 마태오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자유와 해방과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진리를 위해 과감하게 세상을 포기할 줄 아는 큰 사람이었다. 마태오는 예수님을 만나자 밝은 빛을 보게 되었고, 찌들고 어둔 삶에 생명수를 얻게 되었다.

우리 역시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부당하게 재산을 모으고 그릇된 삶을 사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만심과 이기심으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면서 불완전한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태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모든 그릇된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자유와 해방의 큰 기쁨을 맛본다. 참으로 행복한 결단이며 모습이다. 이는 주님의 큰 은총이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총과 축복이 주어지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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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병환 신부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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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혹시, 저더러 따르라는 말씀입니까?” --- 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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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오늘 사도이자 복음사가였던 마태오 성인의 축일을 기념한다.

마태오의 죄인에서 성인에로의 길은
어느 날 자기 동네 어귀에서 한창 세관업무를 보던 중에 예수님의 부름을 받는데서 시작되었다.

마태오는
갈릴래아 지방 가파르나움 출신으로 12사도들 가운데 자신이 집필한 것으로 전해오는 마태오복음서 때문에 누구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전직(前職)인 세리는
당시 유대사회에서 죄인과 다름없는 직업이었다. 그가 오늘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로 따라 나선 것이다.

세리 마태오의 소명사화와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다른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눈 이야기는 마르코와 루카 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다. (마르코 2,13-17 / 루카 5,27-32)

마르코와 루카는
여기서 마태오를 ‘레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마르코는 그를 일컬어 ‘알패오의 아들’로 좀 더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12사도 명단에는 그냥 ‘마태오’로 적고 있다. (마르코 3,18)

따라서 마태오복음의 원저자는
마르코복음의 두 부분을 참조하여 ‘레위’라는 이름을 자신을 지칭하는 마태오로 바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승에 의하면 마태오는 동방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선교하다 42년경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나를 따라 오라.”는
예수님의 한 말씀에 즉각 따라 나선 마태오다. 단 한 구절의 간략한 이 대목은 사실상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가파르나움 도읍의 나들목에 자리를 잡고
로마제국을 위해 각종 세금을 거둬들이는 세리 마태오는 이미 당대의 상업적 죄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만약 내가 세리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설마 나를 향한 말씀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
본인 스스로가 죄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의 이 대목을 기록한 마태오 복음사가
스스로가 자신을 죄인의 부류에 넣고 있다. 그러나 “나를 따라 오라.”는 우렁찬 낯선 이의 목소리에 도대체 누구를 부르는 것인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을 것이다.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태오는 자신을 가리키며 “혹시, 저 말입니까?”하고 반문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태오의 반신반의(半信半疑)가 믿음으로 기울었다. 이미 여러 제자들뿐 아니라 무리를 거느리고 다니시는 예수께서 분명히 자신을 지목한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드디어 기회는 왔다.
언젠가는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세리의 직업을 벗어 던지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서 마태오는 아무런 미련 없이 예수를 따라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마태오가 보인
예수 추종의 두 번째 행동은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다른 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를 두고 트집을 잡은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의 불평과 트집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는 일에 ‘죄인’이라는 굴레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음을 가르쳐 주신다. 더욱이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13절)는 말씀으로 예수 자신의 죄인을 위한 파견사명을 밝혀 주셨다.

뿐만 아니라
유대 사회에서 약하고 소외되고 고통을 받던 사람들에게 ‘율법의 굴레’를 씌워 죄인으로 취급하고, 자신들은 율법이 규정하는 제사를 드림으로써 거룩하다고 자처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호세아서 6,6)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선포하셨다.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예수 안에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
하느님의 말씀과 행동의 핵심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 스스로 죄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대한 자비와 용서이다.

이로써 예수님 시대에
죄인으로 분류되었던 세관원이 제자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이다. 이 땅에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이래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일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되었다.

걸어 다니시고 말씀하시며 행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자연과 마귀와 죄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권위로써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선물을 이 땅에 선사하시는 것이다.

남을 부정(不淨)하다고 하여
자신이 정(淨)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남을 죄인으로 규정한다고 자신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세리 마태오와 같이 오직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며 ‘나를 따르라’는 거룩한 부르심을 추종하여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스스로 실천할 때 하느님 앞에 거룩한 자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기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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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박상대 신부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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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갈릴레아 호수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뒷날 마태오 복음서를 썼고, 전승에 따르면 동방에서 신앙을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사가와 예수님의 첫 만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멸시와 비난을 받던 인생이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인생으로 변하였나 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나오는 티브이 광고에 이런 게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의 전화번호는 많다. 그런데 정작 전화를 걸 사람은 없다. 삶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 성서는 세리였던 마태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마태오는 세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돈은 많이 벌지만 멸시와 비난을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마도 틀림없이 면전에서는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췄을 것입니다.

마태오 앞에서는
세금을 낮춰달라고 굽신거리며 아양을 떨고, 뒤돌아서서는 멸시와 비난을 했을 것입니다. 세리였기 때문에 멸시와 비난은 받았지만, 세리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대접도 받았을 것입니다.

마태오 자신도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자기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마음을 털어놓고 지낼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소위 잘 나가는 직업과 좋은 집,
갖가지 호화로운 가재도구들을 갖추고, 먹고 입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살고 있는데, 마음은 행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건듯 부는 바람에도 가슴 저 밑바닥까지 쓸쓸해지고, 외톨이로 살고 있는 자기 삶에 대한 회의가 물밀 듯 찾아오곤 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대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삶이 얼마나 허탈한지.
삶에서 진정한 것들은 돈으로는 살 수 없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오는
축 늘어진 어깨, 초점 없는 눈동자, 어둡고 우울한 얼굴로 세관에 앉아서 소문으로 듣던 예수라는 젊은이를 열광하며 폭풍처럼 몰려오는 군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런 그를 보시고 부르십니다.
그는 서슴없이 따라나섭니다. 그리고 예수와 동행하며, 삶에서 진정으로 찾아야 할 것을 보고 듣고 느낍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 그 너머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는
때때로 찾아들어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그 절망감이 행복감으로 바뀌는 걸 체험합니다. 어둡고 무거웠던 마음이 밝아지고 가벼워지는 걸 체험합니다. 자유로움, 해방감, 행복이란 자신의 움켜 쥔 손을 펴는 것이라는 걸 체험합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것을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내어 놓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 줄 알게 된 사람이 가는 길로 걸어갑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자신의 가진 것을 내어놓습니다. 자기에게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뉘우치며 배로 갚습니다. 삶을 깨우치며, 자신의 가진 것을 다 내어놓음으로써 그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마태오는 예수의 행적을 기록하고, 진정한 해방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자신이 보고 듣고 깨친 것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우리들이 변화되는 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들려오던 내면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대답하는 때일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통해 오래 전부터 우리를 부르시며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예‘ 대답을 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이 비로소 열리는 순간일 것입니다. 앞으로만 달려가던 우리가 머리를 들어 비로소 하늘을 보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참삶이란 무엇일까 고뇌하는 그 순간이 새 삶이 열리는 시작일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드물게 찾아오는 어떤 획기적인 일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늘 만나는 자잘한 일상들에 얼마나 예민하게 깨어있는가?
나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나의 마음을 얼마나 열어놓는가?
그것이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열쇠이며,
결단을 내려 하느님의 것을 선택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마태오의 삶처럼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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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권경렬 베드로 신부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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